20091215

잠깐 든 생각

 

http://knowyoume.pe.kr/main/view.asp?seq=3661&crm=d

심심할 때 한번씩 보는 비타민을 보다가.

 

글쎄.. 물론 도요타를 따라 세계적인 기업들의 전략과 경영을 배우고자 하는 측면이 있어서 도요타를 연구했겠지만 위의 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도요타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이 보이는게 사실이다. 이걸 저자는 도요타와 혼다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가의 차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도요타는 아들에 손자에 계속 물려가는 대물림에다가 총수가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말하자면 재벌 스타일의 구조니까,  우리나라 기업 구조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워낙 많이 연구하고 각종 언론 기관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런거 아닌가.

이에 비해 혼다는 한겨레 기사(링크)에서 보듯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개인 지분을 몽땅 회사 직원들에게 무상 증여하고, 자녀 뿐만 아니라 친척들에게도 혼다 입사를 허용하지 않는 등 우리나라 대기업은 흉내낼 수도 없고, 내고 싶지도 않은, 괜히 부추켜서 들쑤셔 봐야 자기들 좋을 일 하나도 없는 회사니까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인거고.

 

인터넷 세상이니 정보의 균형이니 어쩌구 해도 의지가 없고, 알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저런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물론 도요타를 연구해서 나쁠 일까지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왜 혼다는 연구를 안하는걸까를 생각해 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관절 무슨 생뚱맞은 스토리 이야기인지...

(더불어 스토리를 만든건 과연 도요타일까 매경일까)

20091203

파업

철도 공사가 파업을 철회했다. 조건부를 달기는 했지만 며칠전 '친히' 근처를 찾았다는 어떤 할 일없는 전 사업가와 소위 여론 악화의 영향일 것이다. 전자는 원래 그런 자이니 그려려니 하지만 후자가 역시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큰 이익을 위해 조그만 불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작은 불편 따위 백만금을 준다해도 결코 포기안하는게 지금 이 순간 다수의 선택이라는게 아쉬움을 넘어 연민을 만든다. 어떻게든 나가버리는게 역시 유일한 선택지인가.

20091027

저작권 다툼

이 내용에 대한 RT는 생략. 그리고 이에 대해 내가 생각할 꺼리를 제공한 기사도 생략. 참고로 노키아 대 애플의 최근 소송 관련, 살짝 욱했던건 애플의 오피셜한 입장이 아니라 어느 분석가의 비평.

어차피 가봉이나 짐바브웨의 초원 주변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엄두도 못낼 고가의, 다룰 수도 없는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그들에게 커넥팅 피플(노키아의 카피 문구)을 제공하는 단순하지만 이메일 기능 등 최소한의 SNS를 제공하는 휴대폰을 쓰레기라고 매도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

나 역시 비싸고, 활용하는데 또한 많은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살짝 노력한다면 부족함 없이 할 수있고, 더구나 저렴하고 부담이 없기 때문에 노키아를 사용하고 있다.

훌륭한 스펙, 유려한 디자인 만이 쓰레기 물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 저렴한 가격, 가능한 유지 비용 역시 중요한,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결정적인 선택의 유인이다. 그러므로 절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는 거라고 믿는다.

20090930

두가지 노마드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여성영상집단 '반이다'가 만든 다큐멘터리 '개청춘'을 보고 왔다. 사실은 늦게 가서 다 본건 아니고 뒷부분 살짝하고 제작진+우석훈 강사와의 토크쇼(라고 하고 질문에 대한 대답받는 시간)만 보고 왔다. 관련 홈페이지는 http://dogtalk.tistory.com/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는 됐고. 유목민 이야기가 잠시 나와서 문득 생각난 것. 본래의 유목민 말고 현대 사회에 유명한 노마드가 있다. 디지털 노마드, 유로 노마드, 비지니스 집시, 호모 노마드 등으로 불리는 부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전문 직업군으로 구성된 노마드다.

보통 자발적인 노마드라고 불린다. 살짝 다르지만 어쨋든 신나게 돌아다니는 제트족같은 것도 있고, 부모 직업따라 역시 신나게 돌아다니는 스몰 월드 같은 것도 있다.

 

또 하나는 부담스러운 이천에 삼십짜리 사무실을 십오짜리로 바꿔서 일년에 두번씩 이사다니고, 취업이 안되어 일본에 가 알바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고, 아니면 방글라데시와 모로코에서 한국 공장에 취업하러 오고 뭐 그런 노마드다. 비자발적인 노마드라고 불린다.

몇 년전에 나오는 책도 있지만 어쨋든 사람들이 주목하는건 디지털 노마드다. 그렇지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는건 정착민 아니면 비자발적인 노마드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지만 관세 장벽이 점차 사라지고 노동 장벽마저 사라지면 civil service 업종 말고는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자발적 노마드가 될 것이다.

 

아래쪽 발상을 살짝 확대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20090925

URBN

주식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 Urban Outfitters(URBN:US)에 대해 몇 달 전에 좀 알아보면서 휴대폰에서 사용하는 블룸버그에 주식 등록을 해놨었다. 아무리 경기 탓이라지만 너무 내려있네 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움직일 지는 몰랐다.

Screenshot0122

의류 시장과 관광 시장은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인데 저렴한 패션 브랜드라서 그런지 전반기 매출 회복이 생각보다 빨랐다. 과연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건가? 여하튼 재미나구나.

20090915

단상

달러는 1200원대에서 대충 안정을 찾고있다. 문제는 엔화인데 이게 꽤 비싼 상태로 머물러있다. 금값은 1000불을 돌파했다 내려갔다 그러고 있다. 중국 주식은 유난히 올랐고, 한국 주식도 만만치않다. 엔화 리보와 달러 리보 금리 사이가 역전되었다. 미국 금융권은 회복을 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며칠 전에도 4개인가가 망했고 꾸준히 시장에서 몇개씩 퇴출되고 있다. 수습이 불가능할 듯해 살려뒀다던 AIG가 벌여놓은 문제들(CDS들!) 중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마련된 것도 없다. 여튼 대부분의 나라들은 저금리와 재정 팽창 정책으로 빚 탕감을 뒤로 계속 미루고있다. 이러다 잘 풀리면 문제들은 또 몇십년 미뤄질테니 걱정없고, 안 풀리면 어차피 다 망하니 함께 모여 대책을 찾지 않겠나 하는 마인드가 요즘 생각인 듯하다.

금리를 올리면 버블은 꺼지겠지만 더 극심한 불황이 찾아올테고, 금리를 내리면 이 불안한 안정 상태를 조금 더 지속 시킬테지만 터져야할 거품은 더욱 커질거다.

대의 민주제의 문제점은 이런 상황에서 후일을 위해 지금 거품을 제거해야하고, 그러니 고통을 감수합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가는 바보가 아닌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090904

정운찬 총리

(퇴고 미완료)

이번 정권 안에서, 나같이 시큰둥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름 복잡한 사건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정운찬 총리의 등장이다. 이 시기에, 왜 정운찬인가가 먼저 궁금하다. 우선 엠비의 정책 선회. 미국 선거, 그리고 이어진 일본 선거의 결과를 보고 정책 대선회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예상이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 가능성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또 하나는 박근혜 라이벌 육성이다. 현 정부 정책 추진의 중요한 타이밍 곳곳에서 박근혜가 등장했었고, 간단히 말해 현 정부는 그걸 맘대로 컨트롤할 능력이 부재했다. 정운찬 총리는 괜찮은 대항마가 될 수 있고, 잘 들어맞는다면 다음 대선까지 엠비는 둘간의 경쟁을 통해 레임덕을 가능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가설의 문제점은 비록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지만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색이 무척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다지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니다. 물론 돌아가는 모습을 봐야 알겠지만 어설프게 대항마로 활용되다가 밀려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과연 정운찬이 대선 경쟁까지 어떤 포지셔닝을 유지할지도 궁금하지만, 우리나라 경제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가 지금으로는 더욱 궁금하다.

좌파 케인지언은 작금의 상황을 대체 어떻게 보고있을까. 그리고 현실 정치 안에서 유능한 행정가 중 한명이기도 한 그가 어떤식으로 움직일 것인가. 보나마나 한나라당 대부분과 몇몇 중요한 곳에서 극심한 의견 대립이 있을텐데 그걸 어떻게 해결해나갈까. 정정길처럼 자기가 주장하던 이야기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현정부의 입이 되버리고 말까?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정운찬이 오케이를 하게된 이유가 과연 뭘까가 가장 궁금하다. 도대체 미끼가 뭐였고, 정운찬이 모른척하고 덥석 문 이유가 뭘까?

20090806

walk alone

i want to make this place(blog) new.
before that, come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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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darity는 불가능한가

쌍용차 문제가 결국 강제 진압으로 얼룩졌고, 아마도 청산의 수순으로 나아갈 듯이 보인다. 이런 결정이 경쟁업체 등의 로비에서 나온 것인지, 나중에 혹시 생길지 모를 책임을 회피하려는 복지부동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나온 결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디벨롭핑 국가로서 이례적으로 후방 연관 효과가 저리도 큰 자동차 산업을 청산하는건 과감하기 이를데 없는 정책임은 분명하다. 미국 같은 나라도 GM을 결국 (약간 오묘한 방식이지만) 살릴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경쟁력 없는 업체의 청산, 리버럴리즘, 시장주의 원칙 운운을 계속 되뇌고 있다.

우리나라 노사 대립이 으레 그렇듯 사측은 이번에도 대화를 단절시킨채 시종일관 언론 플레이로 노측을 배수의 진을 칠 수 밖에 없는 궁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여론(혹은 여론이라는 이름을 빌린 다른 어떤 것)의 힘을 등에 업고 진압에 나섰다. (참조 링크) 90년대 이후 노조가 합법화되면서 계속 보이는 전술이다. 넓은 저변을 지닌 노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이 없다는 사실은 이렇게 계속 우리의 입지를 좁게 하고, 패퇴하게 만든다.

사측은 이러한 '대화 단절-무시-언론 플레이' 전술을 통해 '귀족 노조'라느니 '노조 이기주의'라느니 하는 단어를 시민들 머리 속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이나,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뒤통수를 칠 지 모르는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무관심과 (혹은 무관심을 부추키거나 조장하는 언론들과), 이에 반비례해 자신의 복지보다 일련의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GDP 순위의 등락에 더 관심이 많은 '착한'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 경쟁력 없는 업체는 사라져야 한다느니, 노조의 이기주의일 뿐이라느니 해대는데 당해낼 장사가 누가 있을까.

이번 사태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민주 노총이 이런 저런 서포트를 하기는 했지만 총파업 시도 한번 못한채 부족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같은 처지에 언제 놓일지 모르는 동종 업계의 파업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마다 복잡한 계산을 해대느라 연대는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사원들과 협력 업체까지 수 만명이 얽혀있는 회사 하나가 사라지려고 하는데 연대 파업 한 번 없이 모두들 숨죽이고 그저 어떻게 되가나 바라보고만 있었고, 결국 그들은 외로운 투쟁을 계속 했다. 아쉬움을 넘어 이런 졸렬한 연대 의식을 대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구명 튜브 한 번 던져줄 생각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격이다. 발을 동동 구른다고 물에 빠진 사람이 살아 나오지는 못한다.

귀족 노조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그저 레토릭일 뿐이다. 노사의 대결 구도에서 노측은 언제나 약자일 수 밖에 없는게 자본주의의 구성 원리다. 하지만 산업과 사람을 두고 저울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에, 노조가 산업의 편에 서 있었다거나 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현대 / 기아차가 나중에 노사 갈등이 생기고 총파업을 시도하려고 할 때, 과연 시민들에게 어떤 말로 동의와 협조와 연대를 구하려고 할지 자뭇 궁금하다. 위급한 순간에 사람 편에 서지 않는 노조 따위는 존재 가치가 없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어쩌구 운운하는 이야기를 그때가서 들으면 나같은 사람으로서도 화가 좀 날거 같다.

20090723

한마디라도

사는게 경황이 없지만 한마디라도 덧붙여놔야 할 거 같아서 끄적끄적.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통과시키고자 했던 몇개의 '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상정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게 우습다. (그런 기대라도 안고 있어야했던 내 자신도 우습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유인이라고는 '그들'의 호의 밖에 없고, 찬성하는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유인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허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급 혼동을 하고 있는 일군의 민중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는 제외하자.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수(실정법을 여러가지 어겼다)를 두어가며 통과시킨 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차피 불행한 과거 중 하나로 역사책을 장식할 생각이었다면 구색이라도 맞추려고 하는게 아닐까 싶다. 농담할 때가 아니겠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농담을 부른다.

여하튼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구인 국회를 자의적으로 놀림 거리로 만들고, 그 간극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획득하는 지리한 테크닉은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기록과 경험들이 남아있음에도 여전히 동작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괜히 중우정을 걱정했던게 아니다. 이육사 시처럼 그저 철인이나 기다리고 있어야 할 판인가.

대의 민주주의의 발란싱 툴 중 하나는 임기가 정해져있다는 건데, 이번 정권에 들어서면서 시종 일관 - 각 부의 하부 기구들, 위원회들, 공기업 등등의 - 임기를 흔드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법은 국회 의원의 실질적 임기(집권당의 재선이 무척 유리해진다)를 늘리려는 방법이고, 이 작업의 화룡점정은 아마도 개헌 시도가 될 것이다.

물론 개헌 시도는 지금 법 몇개 통과시키는 것과 다르게 국민 투표를 해야 한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미디어법이 무척이나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의석수를 2/3 이상을 점유한 거대 여당이라는 것은 우리 헌법에 의하면 그 어떤 것도 두려울게 없다. 대통령의 거대 권력이 어쩌구 하는 것도 사실 2/3 앞에서는 다 헛소리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전에 1, 3, 4 공화국 시절에 혼자 계속 해먹으려다 쫄딱 망하는 모습들을 보고 뭔가 배운거다. 다 같이 힘을 합쳐 늘리면 독박 쓸 사람도 없고, 누가 누군지 눈에도 잘 안띄고, 바보짓이나 하네 하고 혀를 끌끌차는 어린 중생들도 잔뜩 있는데 이 얼마나 좋은가.

이 모든 문제는 사실, 선거가 거대 이권 사업이 되버리는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뭔가 굴러나오는건 너무나 많고, 감시의 눈길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마이클 잭슨이 성희롱 했다고 고소해서 먹고 살다가, 죽고 나니까 그건 뻥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도 있듯이, 누구는 많게, 누구는 조금, 심지어 어떤 이는 댓글 알바로 시간제 푼돈을 챙겨가면서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이 나무통에 여기저기 달라붙어 기생하고 있다.

쌍용 자동차 문제 같이 권력자와 식자들이 멋대로 일 벌려 놓고나서 나몰라라 하고 앉아, 애꿎은 노동자만 나가라고 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이 와중에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어요,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처럼 허망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다. 경제적 유인, 권력적 유인이라는 달콤한 열매들에 맞설 수 있는 민중적 연대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고(누군가 각박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와중에 이런 경구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우리'들에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20090708

약간의 뉴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0707134258

프레시안이 딥 링크를 허용하는지 여부를 잘 모르겠는데(검색에 실패 -_-) 일단 이렇게 달아본다. 그건 그렇고 프레시안은 저 기사 가운데 덜컥 나오는 플래시 광고 좀 어떻게 할 생각 없나…

생각보다 지역이 넓다. 그리고 천연가스 등 자원도 잔뜩 있다고 하고, 중동과 인도,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긴 크지만)이고 이슬람이다.

중국이 이런 식의 소수 민족 통치 방식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위구르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

http://en.wikipedia.org/wiki/Uighurs

20090704

세렝게티의 초원

세렝게티나 케냐의 초원은 자연상태 그대로일 때 완벽한 균형상태다. 사자도, 치타도, 침팬지도, 톰슨 가젤도, 전갈도, 이름 모를 풀들도 서로 잡아먹히고, 잡아먹지만 그 어떤 것도 외부 효과에 의하지 않고는 멸종되지 않는다. 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의 한계 효용 극대화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추구하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지만 개체군으로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문제될게 없다. 옆집 살던 친근한 사자는 도태될 수도 있지만 사자 전체는 살아남는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고전학파, 신고전학파, 신자유주의, 통화주의 등등의 이름이 붙은 일련의 자유주의 경제학파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실상 초원의 균형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 전체의 개체군으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생존 방안으로 보고 아마도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법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슨 짓을 해도 초원의 질서다. 파이가 커지면 좋지 않겠냐는 믿음을 철썩같이 가지고 있지만,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다. 큰 파이는 더 큰 파이를 얻어내는 가장 훌륭한 미끼가 되어주는데, 과연 누가 파이를 내놓을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사실은 '합리'적이라는 민망해서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이름과 다르게, 이들이 지극히 비합리적인 가정들을 뿌려놨다는 사실이다.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프리드만이나 루카스의 글을 읽다보면 느끼겠지만 이들이 실제로, 이걸 믿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만약 그들이 가격, 효용, 미래 가치 따위가 합리적 선택을 위한 모든 가용 정보를 구성한다고, 혹은 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처럼 naive한 견해가 또 없다. 그런 일이 정말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의견들이 제어없이 퍼지다 보니 스티븐 랜즈버그처럼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책 한권을 싸질러 놓은 허섭스레기들이 난립한다. 내 소원이 하나 있다면 랜즈버그 씨에게 가죽 팬티나 하나 던져주고 세렝게티에서 진정한 균형을 맛보게 해주는 일이다.

문화, 취향, 경험, 유전자, 상황, 기억,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말하는 합리적 선택을 방해한다. 예컨데 이루어 질 수도, 이루어져도 안되는 일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불, 피타고라스가 숫자, 파르메니데스가 무(無)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그저 이것들이 세상을 설명해보고자 하는 시도나, 순전한 논리적 유희라면 상관할 건 없다. 문제는 이들의 의견이 대의 민주주의와 시민 주권론의 도랑을 따라 올라가 세상을 제어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20090621

변화의 시기

(지나가고 있는) 금융 위기를 놓고 자본주의와 대의 민주주의, 둘 중 어디에 위기가 온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자본주의 그 자체의 모순에 의해 어차피 발생할 일들이 이렇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 대표적으로 http://wsws.org

누군가는 자본주의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민주주의와 윤리의 위기가 온 덕분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번 주 뉴스위크지에 실린 The Capitalist Manifesto. 이에 대한 요약 정리와 번역은 http://blog.periskop.info/187 에서 볼 수 있다.

위 뉴스위크 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조금 있는데. 자유주의, 보수주의 계열에서 사회 구조적 모순의 해법으로 내놓는게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게 자발적인 참여다. 즉 NGO의 활성화를 통해 사회 모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전혀 시스터매틱하지 않은데다가 일반 대중의 '소양'의 측면으로 당면한 문제를 소급시켜 버리는 문제점이 있다. "난 안 할란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넌 왜 그렇게 사냐"라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자본주의 자체로 경쟁을 가속화 시켜놓고 그 혼란의 와중에 남을 돕지 않는건 폴리티컬리 라이트하지 않는 일이다 정도의 규범으로 어떻게 일을 처리해 보려는 것은 무책임하다.

즉 이렇게 자신의 신념을 보호하면서 세상의 모순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려는 전략은, 뉴스위크의 이번 기사도 마찬가지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폭증했다, 왜냐, 부시 때문이다, 누가 뽑았냐, 시민.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다, 왜냐, 현 정부 때문이다, 누가 뽑았냐, 시민.

결국 이렇게 시민의 소양 문제로 소급되기 때문에 현 상태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점의 원인을 찾고, 이를 해결하고, 다음에 이런 일이 없도록 대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월 스트리트의 모럴 해저드를 옹호 했던 사람들은 사실 세상의 매우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바로 저 위의 뉴스위크의 컬럼을 쓴 사람(파리드 자카리아) 같은 자들이다.

자기들의 잘못을 이런 식으로 소급시키며 금융 위기의 원인을 모호하게 만드는 전략은 곤란하다. 인간은 이러든 저러든 구조 속에서 생존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구조에 대해 대부분은 미약한 영향력 밖에 가지지 못하고, 이 부실함을 메꿔주는게 언론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저 언론은 모럴 해저드의 당사자들과 한 팀이 되어 지금까지 여론을 호도하며, 대중에게 감독없는 금융이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거라 설득하던 당사자이다. 아무리 책 팔아먹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상도라는게 있는 법이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자기가 저지른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는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누군가는(나 같은 사람) 자본주의와 대의 민주주의 둘 다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데 그냥 의심만 하고 있다. 이 쪽으로도 나같은 3류 말고 근사한 견해들이 많이 있는데 파생적으로 조금씩 이야기한 것들이 있으니 생략한다.

또 하나가 있는데 현 정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본주의, 대의 민주주의 둘 다 아무 문제가 없다며 철썩같이 믿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70, 80년대 처럼 떠들썩한 정치적 격변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들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따른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해 세계가 숙고하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다. 이 흐름을 제대로 캐치해 내지 못하면 임진왜란이 있던 선조 때 세계사의 움직임을 전혀 캐치해 내지 못하고 그냥 300년을 뒤쳐져 버렸던 것과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낼게 분명하다.

물론 그러든 말든 그 이후 300여년 간 세도 정치는 기승을 부렸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온갖 세금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 졌었다. 문제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된다는 점에 있다. 굳이 우리의 집권층이 하부 계층의 안위를 고려할 모티베이션 자체가 희박하다. 결국 제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언제나 말하지만 solidarity만이 살 길이다.

20090610

6월 항쟁 22주년, 블로거 시국 선언문

 

6월 항쟁 22주년 째다. 알다시피 그때 우리가 했던게 과연 뭐였을까 싶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오늘도 비가 내리는 시청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시국 선언 발표가 있고(언론의 주목은 거의 못받았지만 내 모교에서도 교수들의 시국 선언이 있었다. 선배가 한 명 껴있는게 기쁨이라면 기쁨이다), 블로거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내가 가볍게라도 끄적거리며 써볼까 하다가, 역시 진행되고 있는데 동참하는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선언문이 여럿 있는데 foog.com(링크)에서 본 이정환 닷컴의 선언문(링크)을 여기에 옮긴다.

선언문 작성 과정은 http://docs.google.com/View?id=dtn99t7_3fbhhskd3에 있다.

 

6월항쟁 22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 블로거들은 다시 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고민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고,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사전적·포괄적으로 봉쇄하여 국민의 알 권리와 말할 권리를 모두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고 노동자와 서민, 사회적 약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블로거들은 다음을 요구한다.

1. 정부는 언론 장악 시도를 중단하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2. 정부는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대의절차의 왜곡을 보완하는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3. 정부는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중단하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블로거 macrostar

다시 템플릿을 바꿨다. 딱히 변덕을 부릴 생각이 있는건 아닌데, 이 템플릿에 붙어있는 별이 자꾸 생각나서 ^^

20090529

2009년의 5월이 끝나갈 무렵

5월은, 그러니까 97년 이전에는 매년 되새김질 하듯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참 잔인하고도 우울한 달이다. 서울의 5월 공기는 왜 그렇게 답답하고, 우중충하고, 무더운건지. 90년대 중순 즈음, 5.18 추모식 무렵에, 신촌 로터리에서 멍하니 서서 바라보던 그 답답하고 우중충한 공기를 오래간 만에 다시 느낀다.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건가 싶기도 하고, 다 변하고 변해 결국 돌아온게 여긴 건가 싶기도 하고.

요즘은 이런 식의 제목 밖에 생각이 잘 안난다. 어쨋든 어제 오늘 우리 나라에 꽤 중요한 몇가지 일이 있었다.

삼성 에버랜드 CB 문제가 무죄 판결을 받았고 (대법)

용산 재개발 건물 명도 강제 집행을 했고 (경찰 + 구청)

옥외 집회 신고제에 대한 합헌 판결이 내려졌다 (헌재)

 

이거 말고 몇 개 더 있었던거 같은데… 어쨋든 제도를 스스로 만든 나라가 아니라, 덮어 씌운 나라의 경우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 이건 당연한 일인데 직접 만든게 아니라 운용의 노하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차 대전 이후 독립해 대의 민주주의의 틀을 가져다 씌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권력의 집중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이건 저번에 말했 듯 경제와 행정의 균형에서, 행정이 절대 강점을 보일 수 밖에 없는 피치 못할 이유 같은 것도 연관되어 있다.

권력의 집중 문제가 발생하는건 일단 시민들이 견제를 작동시킬 노하우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간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별로 생각할게 없다. 투표로 왕을 한번씩 뽑는다 말고 별다를게 없다. 그 왕의 권한이 아주 서서히 약해져 가고는 있지만, 그게 사람들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주 서서히 약해져 간다. 또 누군가는 요구를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시민들 간에도 대립과 반목이 발생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 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못했고, 식민지 체제가 끝나고 얼마 있다가 바로 돌입한 고도 성장 덕분에 허위 의식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이런 반목이 더욱 심화된다.

어쨋든 문제는 권력 기관인데 우리나라에는 군, 경찰, 검찰, 국정원 같은 곳들이 있다. 이승만 시절에는 경찰과 공무원이 최고의 사설 권력 기관 역할을 해서 4.19 혁명 나고 바로 만들어진 헌법에 바로 경찰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들어갔었다. 그게 군사 혁명으로 3공이 시작되고, 더구나 군이라는 더 골치아픈 권력 기관의 등장으로 유야 무야 되고 말았었다.

문민 정부때 막무가내 대통령이 정치 군인을 싹 쓸어준 덕분에 군 문제가 한결 가벼워진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저 위에 나열한 권력 기관의 균형을 잡아줄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되어 왔고,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시절 동안은 그래도 중도 보수파 정권이 너무 크게 이용해 먹지는 않았기 때문에 잠잠히 있었는데 다시 옛날  그 양반들이 돌아오자 감춰져 있던 문제들이 다시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들이다.

군은 문민 정부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나머지 모든 기관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와 옛날 세상을 좌지 우지하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의 권력을 다시 한번 맛보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다. 제도에 의한 균형이 아니라, 대통령에 권위에 의한 균형은 이렇듯 모래성 처럼 허무하다. 문민 정부때 군을 정리했듯 이후 두 정권에서 그걸 잘 해결했어야 하는데 못한게 이렇게 큰 짐이 되어 돌아온다.

검찰의 기소 독점제를 폐지, 혹은 불기소 처분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검찰이 되기 위한 경로의 다양화(경력을 쌓은 사법 경찰이나 검찰 공무원들이 검찰이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 자치 경찰제 실시, 지방 경찰 총장 시민 직선제, 대법원장 시민 직선제, 국정원의 국내 정보 분야를 통째로 중앙 경찰로 이관, 검찰/변호사 경력 몇 년차 이상이 되야 법관이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등등이 있을텐데 아주 기나긴 로드맵이 되겠지만 어쨋든 해나가야 할 일들이 아닐까 싶다.

그건 그렇고 잠깐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꽤 많은 투표를 해왔는데 내가 찍은 사람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제쯤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되는거 한 번 보려나 -_-

요즘 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http://www.appleforum.com/mac-column/57290-%EA%B5%AC%EA%B8%80%EB%85%B8%EB%AF%B9%EC%8A%A4%EC%9D%98-%EB%B9%84%EB%B0%80.html

원문은 아래

http://www.wired.com/culture/culturereviews/magazine/17-06/nep_googlenomics

수학이 분명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거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할 배리언이 구글에서 일하고 있을 거라고는, 애즈워드의 기초가 경매 이론일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들 앞으로 뛰쳐 나가고 있으니 난 맨날 처지지 ㅠㅠ

 

더불어 위 기사를 보다가 읽게된

http://www.wired.com/culture/culturereviews/magazine/17-06/nep_newsocialism

이것도 상당히 재밌다. interesting과 exciting 사이의 어디쯤에 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시종일관 비슷한 풍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데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과연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꽤 인기 있는거 같은데…

http://ponyxpress.wordpress.com/2009/05/26/vanessa-beecroft/

http://www.vanessabeecroft.com

20090528

2009년 5월 말 즈음

솔직히 현 정부의 전략이 정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분에 넘치는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새로 찾아온 정부는 싱가폴이나 두바이 식의, 민주주의는 안해도 되니까 잘 살면되지 않느냐하는 방식이었다가 외교 문제가 얽히면서 이스라엘 식으로 턴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라는게 대략적인 느낌이다. 물론 이런 전략이라면 미국의 동조 내지는 아낌없는 지원이 필수적이고 그래서 PSI 전격 참여도 선언한거 아닌가 싶은데 그게 부시 시기에는 잘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스라엘도 오바마 정부를 바라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시기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고, 한국은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공통점은 어쨋든 평화가 찾아오는건 달갑지 않다 라는 점이다.

북한 역시 강경파와 온건파 대립 사이에서 균형이 무너져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나라 역시 관료제의 모순이 극에 달해 있는데다가, 집권 기간의 연장 내지는 정권의 보존 외의 어떠한 정책적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모든 일들이 결국 남쪽에서 벌어진 선거 한 번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에서 대의 민주주의라는게 얼마나 허약한 기반에 기대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남북 모두가 이제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흐름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는 끝자락들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네 역사 발전 단계를 놓고 보면 이 정도 까지 할 수 있는건가 싶다. 청산해야 할 것들을 청산하지 않은 결과가, 그리고 정신적 균형이 담보되지 않은 배금주의의 결과가 이렇게 찾아온다.

저번에 공민왕 이야기에서 잠시 썼던 것처럼 이게 역사가 발전하기 위한 극한 반동의 시기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 이상 낙관적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충 느긋하게 맘 잡고 기다려 보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음모론을 타박하는 사람들이 흔히 펼치는 반론은 음모론의 대상들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모여서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고려한다는게 말이 되냐고들 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루니와 박지성이 골을 넣을때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말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프로훼셔널의 세계의 작전이란 눈빛만 보면 읽을 수 있고, 그에 맞춰 반응해 골을 집어넣는 세계다. 남북 정부 모두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적대적 전략을 쑥쑥 키워가며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결국 영결식 문제에 대해 한치도 양보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서울 광장 개방 요구에 전의경 200 중대 배치로 화답했다. 도대체 내일 저녁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투표로 당선된 정부라지만, 정책을 수긍하는데도 한도가 있는 법인데 시민들이 정말 이대로 수긍하고 말 것인지 궁금하다. 사람 모이는게 싫다 싫다 해도 이 정도인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가 아닌한 정권 유지가 목표인 대립에서 전면전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지전 발생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신선 놀음에 시민들만 피곤하다. 가장 충돌 가능성이 높은 서해안 부근에 근무하는 장병들의 안전을 기원할 뿐이다.

참, 골치아픈 상황이다.

20090510

네X버 카페 이용후기

쓸데없는 검색어 유입을 막기 위해 네X버라고 쓴다. 어쨋든 별로 쓸 일도 없고, 느리고, 파폭이나 크롬에서도 잘 안되는게 많고 그래서 한참 전에 탈퇴했었다. 그런데 조금 난해한 휴대폰을 구입하는 바람에 카페 같은데 가입해야겠다 싶어서 뒤적거려봤는데 거기에만 있길래 할 수 없이 가입했다. 관련한 포럼 사이트들이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WM 중심이 많다보니 한데 모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곳이 필요하긴 했다. 딱히 투덜거리려는 생각은 없고 그냥 오래간만에 가입해 3주째 뒤적거리고 있다보니 드는 생각들이다.

가장 큰 문제는 파폭에서 멈칫하는 현상이 있다. 가끔있는게 아니라 항상 있다. 혼자 느려지면 다른데 보면 되니까 상관없는데 주변에 있는 놈들 모조리 붙잡고 물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 이런 곳에서 글을 읽을 때, 리스트를 보면서 읽어봐야겠다 싶은 제목을 새탭으로 하나씩 띄어놓고 읽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눌렀다가 목록 보고, 또 누르고 이런게 귀찮으니까. 뭐 이렇게 하니 게시판 자체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면 괜찮기는 하다.

RSS가 없다. 이건 카페 별로 지원을 할 수 있게 설정하는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는데 여튼 가입한 두개의 카페에 그런게 없다. 무척 귀찮은 방식이다. 다행히 쓴 글에 댓글이 달리거나 하면 카페 메인 화면에 노티스가 뜨기는 한다.

가능한 첨부 파일 용량이 2mb이다. 이거야 뭐, 불법 공유 파일을 막거나 하는 등의 용도가 있으니 그려려니 싶다.

제일 불편한 것 중 하나는 복사를 하면 이상한 글이 잔뜩 덧붙는 다는 거다. 예를 들어 게시물을 읽다가 Hello OX라는 말이 나와서 이게 뭔가 싶으면 보통 hello OX를 마우스로 선택하고 복사, 구글 탭을 띄워 검색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 일단 마우스 오른쪽 클릭이 안되는 경우가 많고(이건 게시자의 설정에 따라 다르다, 아예 마우스로 선택 자체가 안되는 경우도 있고, 오른쪽 클릭이 되는 경우도 있다)

- Ctrl + C를 눌러 복사를 하면(벌써 손을 하나 더 쓰게 되서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 거기다가

Hello OX [출처] Hello OX 인증 받는 방법 아시는 분 계신가요? (어쩌구 사용자 모임) |작성자 누구누구

이런 식으로 복사가 된다. 구글 검색창에 Ctrl + V하면 저게 주르륵 나타나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을 지워줘야 한다. 그것도 무지하게 길기 때문에 어디가 시작인지 찾기도 힘들다. 이건 정말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불펌이 문제면 좀 다른 수를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어차피 불펌할 사람이 저거 안지울까?

웃기는 점은 IE에서 복사하면 저런게 안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뭘까 이게.

대충 이 정도.

위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생각들이고 오래간 만에 카페 가입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 아무도, 혹은 거의 다, 좋게 봐서 대부분의 회원들이 검색 따위는 하지 않는 다는 사실.

20090508

하부구조

마르크스의 이론에 의하면 경제는 하부 구조고 정치는 상부 구조다. 일반적으로 하부 구조에 의해 상부 구조가 결정된다. 즉 경제 발전 단계에 따라 정치 구조가 형성된다. 이렇게도 볼 수 있지만 좀더 단순하게 도식화 시키면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몸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유난히 경제만 발전하거나 정치만 발전한 사회는 있을 수 없다. 그건 단순히,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좋다니까 억지로 입고있는 상태 정도로 볼 수 있다.

학자 앨러비는 이와 연관해 다음과 같이 논의를 발전시켰다. 2차 대전 중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적 기반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제국 주의 국가의 식민 통치 구조라는, 말하자면 고도의 관료제 프레임이 덮어 씌워지게 된다. 물론 이건 식민지 당사국이 원하는 일도 아니었고, 그들 나라의 당시 수준에서 간단히 도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2차 대전이 끝나고 신생 독립국들이 대거 탄생한다. 알다시피 우리도 그런 나라 중에 하나다. 어쨌든 이들 나라는 딱히 뚜렷한 방향이나 목표라는게 있을 수 없는 식민지형 경제 근간 위에, 나름 체계적인 식민지 통치 구조의 유산을 그대로 넘겨받은 상태가 된다. 식민지 기간동안 통치의 기술은 어느 정도 습득할 수 있었지만 경제의 근간이라고 할만한 건 전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행정이 지나치게 과잉된다. 경제와 정치가 한 몸이어야 하는데 서로 다른 곳에서 받아들었고, 인터액션을 하면서 발전되며 만들어진게 아닌 이상 필연적으로 나타날 결과다. 이런 경험을 가진 나라들 중에 이 맞지 않은 옷을 잘 고치거나, 새로 고쳐 입는데 성공하는 곳이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벌써 60여년이 지났는데 다들 갈 곳이 멀게 남은거로만 느껴진다.

20090501

집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2847.html

깝깝한 이야기 하나. 이거 말고 건대에서 노동절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학교가 봉쇄되었다드라-하는 뉴스도 있는데 그건 생략.

 

경찰이 원하는 건 아마 수사권 독립, 수사권 내에서의 권한 강화 같은 것들일테고 이를 얻어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 주의의 폐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래야 경찰이 주요 사건에서 검찰의 심부름꾼이나 들러리격으로 평가절하 되는걸 막을 수 있다. 이를 얻어내기 위한 방법은 간단히 두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권력의 종이 되어 떨어지는 고물을 얻어먹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 경찰에 권한을 강화시키자는 여론을 얻어내는 것이 있다.

전자는 가깝게 보이고, 기한도 짧고, 잘만 되면 확실하게 보이지만 후자는 멀리 보이고, 기간도 오래 걸릴 것이고, 여론이라는게 모호한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민의가 형성이 되어도 큰 전환점 같은게 오지 않는한 반영된다는 확신이 없다. 물론 후자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길이고, 만약 경찰이 짧은 시야를 버린다면, 혹은 우리 사회가, 특히 정치의 권력층이 올바르게 간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길로 갈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짧은 시야를 가지고 있고 우리 사회의 권력층이 올바르게 갈거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검사의 기소 독점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기소 독점권 폐지는 정치인들의 뜻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시민들의 투표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들, 지금의 여권 권력층의 신의를 얻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탁상위에 안건이 오르는 정도의 효용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큰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기소 독점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법을 가까이 하고, 숙지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경찰의 상층부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그들 - 즉 경찰의 최상층부 - 가 어떤 전략을 지금 가지고 있는지 대충은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임기는 길어야 10년 남짓 쯤 남아 있을 것이고 대부분은 현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고 끝나게 될 것이다. 그들도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냥 이런 저런 핑계로 남은 기간 동안 편안히,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 시키고 마무리 지을 길을 찾았을 뿐이다.

결국 아직 임기가 10년 이상 남은 그 아래, 앞으로 경찰의 상층부가 될 사람들은, 지금의 최상층부에게 이용만 당하고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권력층과(저들은 이 전 권력층에게만 충성하던 사람들일 뿐이다), 시민들(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의 타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조직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든지, 아니면 인지하면서도 그걸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없든지 한다는 점이다.

군사 정권 시절에 함께 날뛰던 임관급, 영관급 장교들이 87년 이후 어떻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선배들이 정치권, 공기업 심지어 사기업에까지 맘대로 들어가 정치를 뒤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고, 너희들도 이렇게 될테니 말 잘 들으라는 정치 장교들의 꼬드낌에 자기도 그렇게 될 줄만 알고 덩달아 날뛰기만 했지, 민주화 같은게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와 똑같은 짓을 경찰이 지금 하고 있다. 87년에 새 헌법이 만들어지고 하나회가 없어져 군의 정치색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 때까지 6년의 텀이 있었다. 역사가 후세에 알려주는 교훈들을 이리도 못 듣는 사람들이 있다.

20090429

요즘은 왜 이러는지

1. 날씨가 이상하다. 파란 하늘에 햇빛이 쨍하니 내리 쬐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보면 비가 내리고 있다. 먹구름 몇개가 동실 동실 떠다니며 내키는대로 비를 뿌려댄다. 스마트폰 구입하면 제일 먼저 해보는게 날씨 어플 설치해 구경하는 거라는데 핸디 웨더라는 이 놈은 기상청 보다 더 못난 놈이다.

Screenshot0015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5&sid2=226&oid=008&aid=0002137993 다들 해외 이메일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3. http://maps.google.com/maps/ms?ie=UTF8&hl=en&t=p&msa=0&msid=106484775090296685271.0004681a37b713f6b5950&ll=22.22809,-111.357422&spn=35.796953,63.896484&z=4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돼지 인플루엔자였다가 지금은 SI로 이름이 바뀐 독감도 난리다. 이 병의 특징은 멕시코 인 외에 사망자가 없다는 점, 사망자가 모두 25세 이상의 성인 점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독감을 생각해 보면(보통은 어린 아이와 노인이 취약하다) 이건 인플루엔자가 아니라 뭔가 다른 이상한 놈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니 신경쓰지 말 것). 어쨋든 돼지 고기와는 별 관계 없다고 한다(별 관계가 있다는 생각도 사실 안든다, 무슨 단백질 변형도 아니고 바이러스인데)

4. 할 수 없이 폰 핵(hack)의 세계에 입문했다. KTF에서 Welcome to KTF… 라는 글자를 휴대폰에서 안보이게만 해 줬어도(뭐 자랑이라고 배경 화면에 반드시 보이게 만들어놨다) 이런 귀찮은 짓은 안했을 거다. 회사나 사람이나 쓰잘데 없는 짓을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다.

5. 오늘(4월 29일)은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가 5곳에서 있는 날이다. 내가 사는 곳은 해당 사항 없지만, 해당 지역에서 선거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부디 높은 투표율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치 중심의 사회와 경제 중심의 사회가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중용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6. 방에서 책장 하나와 책상 하나를 내다 버려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 두고 있다. 널부러져 있는 안쓰는, 더구나 막 무너져내린 모습을 보면 깝깝하기는 한데 정말 귀찮아서 손도 못대겠다.



PS 선거 결과가 나왔다. 재보선 선거치고 투표율도 엉망으로 나오지는 않았고, 여당은 한 명도 안되었고 진보신당 후보 한 명이 당선되었다. 생각보다 결과가 좋다. 화이튕!

20090420

미네르바 무죄

미네르바가 무죄를 받았다. 아직 1심이라 갈길이 멀기는 하다. 어쨋든 역사가 증명하듯이 세상에서 제일 못되고, 제일 못난 짓이 사람이 생각하고 그걸 표현하는걸 탄압하는 권력층이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오직 신 뿐이다.

20090410

조바심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날까.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날까. 남태평양 무인도의 뜨겁고 습한 곳에 디비져 누워, 북경 오리 구이 마냥 구워져 모래에 파뭍혀 서사모아 참다랑어의 먹이가 되고 싶구나.

20090408

전환기에 있어서 교육

*어제 우분투를 켜고 이걸 쓰다가 날려먹었다. 구글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자동 저장을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공민왕이 즉위했을 당시 고려는 원(몽고) 지배 하에 있었다. 막강한 원의 세력 덕분에 고려 내에서도 친원 세력과 권문 세가들의 보수 정치의 폐단이 만연해 있었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폐단의 핵심은 토지의 점탈이다.

공민왕은 즉위 후 원의 연호, 관제를 폐지하고 내정 간섭을 하던 사법 기관 이문소를 폐지한다. 그리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을 숙청하고 원의 직속령이었던 쌍성총관부를 탈환한다. 이는 원이 세퇴해 가고 신진 국가인 명나라의 세력이 커지고 있는 당시 세계 정세를 읽은 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의 반발이 있었고 부인인 노국대장 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한 일도 겪는다. 공민왕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신돈을 기용해 개혁을 주도하게 한다. 신돈은 보수 세력이 불법 탈취한 토지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 시키는 등의 개혁을 한다.

그리고 공민왕은 성균관을 다시 부흥시켜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래디컬한 사상이었던 성리학을 공부한 학자들을 무더기로 배출시킨다.

결국 개혁은 실패하는데 신돈의 악행과 공민왕의 실수 등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개혁을 뒷받침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나 신돈 같은 개인이 일사천리로 진행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무슨 개혁이든 적어도 위 아래 모든 계층의 1/3이라도 포섭하는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오직 위에서 아래로의 개혁만이 있었다. 물론 이는 시민 교육을 의도적으로 등한시 시킨 원의 책략도 숨어있다. 우민 정책만큼 효과적인 개혁의 장애물은 없다. 공민왕은 실의에 빠져있다가 결국 시해당한다.

그리고 우왕이 즉위하고 극단적인 반동 보수 정치가 시작된다. 원의 쇠퇴와 함께 친원파 세력이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기존 권문 세력의 횡포는 제어가 불가능했다. 토지 겸병이 자행되고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땅도 없다”는 말이 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 부흥하는 명을 적대시하고 망해가는 원을 가까이하는 시대 역행적인 외교를 펼친다.

이런 극단적인 보수 반동 정치는 공민왕 시절의 개혁 정치가 실패했던 원인 중 한가지인 공통된 마인드 형성에 이바지한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라는 생각이 횡횡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성균관을 나온 개혁 성형의 학자들이다.

이렇게 혁명의 조건은 완벽히 갖춰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민중 혁명은 일어나지 못하는데 성균관을 나오는 부르주아들이 시민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왕조 개창에 성공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성계를 위시로 한 무장 세력의 도움이 컸다.

결국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우왕, 창왕을 차례로 내쫓고 공양왕 시기에 토지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양왕 2년에 옛 토지 대장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공양왕 3년에는 전격적으로 과전법을 실시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 개혁을 실시한다(북한은 광복이후 실시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392년 7월 17일 도평의사사의 인준으로 조선왕조를 개창한다.

 

**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혁명은 어느 정도의 세력 형성이 없으면 실패한다. 이건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보수 세력의 이권을 위한 결집은 대단히 큰데 그에 대항하는 자들이 가질 모티베이션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순이 어지간히 커지지 않으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영미, 유럽권 국가들은 그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런건 전후 50여년이 지나고, 전후 세대가 주도가 되어 그런 모순의 극단화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없는 자들이 신자유주의라는 극단적인 사상을 등장시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개혁에 위아래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건 아주 소소한 이야기에도 응용할 수 있다. 모바일 산업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통신 3사의 담합에 익숙해져있는 대다수의 국내 소비자들은 통신 3사가 제공하는 사고의 틀에 얽메어 있다. 그래서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생산자와 서비스 프로바이더)이 찔끔찔끔 보여주는 기술의 일면에 감탄하도록 인식이 재구성되어진다.

이런건 단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 훨씬 치열해 할 수 없이 여러 기술을 미리 미리 내보내야 하는 영미, 유럽권 국가에서도 소비자들은 통신 요금이라는 벽 때문에 사고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게 무상으로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건 사실 필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치열한 경쟁 상황”이 그나마 소비자들의 편의를 더 좋게 만들어주고 있다.

20090406

약간의 변경

발전소 블로그를 약간 변경해봤다.

일단 템플릿(보통은 스킨이라고 하는데 구글 블로거에는 템플릿이라고 되어 있다)을 밝은 색으로 바꿨다. 좌우 간격이 픽스되어 있지 않은 놈인데 다른 OS나 브라우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템플릿에 대한 큰 상식이 없기 때문에 구글이 주는거 몇 개 중에 골라서 폰트 정도나 조금 건드려본 정도다.

그리고 이름에도 dynamic을 넣었다. 별 의미없는 행동으로 보일지 몰라도 어쨋든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요새 몸과 마음이 모두 디액티베이트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나마 액티베이트의 동기를 마련하고 싶다.

블로그 제목에 사진도 넣었다. 바탕화면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사이트인 interfacelift.com에서 골랐고 너무 커서 약간 잘라냈다. 사진을 넣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는데 선택한 템플릿 자체가 심플한 모습은 맘에 드는데 블로그 제목, 글 내용 등을 거의 구분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내용의 가시성을 좀 높이고 싶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그다지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내용보다는 스타일. 모르겠다.

아마도 눈에 안보일 변화를 말하자면 기존에 널부러져 있던 다른 블로그 두개에 있던 32개의 포스트가 이 안에 섞여 들어갔다. 별거 하는 것도 아닌데 소소하게 매니지먼트 할 수 있는 만큼만 손대기로 했다… 원래 그런 생각은 한참 전 부터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움직였다는게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내 정보 수집 능력 범위 내에서 발전소의 RSS 구독자 수가 현재 4명이다. 혹시나 이 블로그의 모습에 대해 작은 의견이라도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이 전 템플릿보다 나은지도 잘 모르겠고, 둘 다 이상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20090404

Mad bullying disease

Economist 2 April, 2009

북한이 이번 주에 김정일 체제를 비판하고 북한 여성의 탈북을 도우려던 한국 남성 한명을 억류시켰다. 이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더 놀라운 일이 아래쪽 경계 넘어에서 있었다. 한국 검찰은 지난 주에 두번째로 큰 TV 방송국인 문화방송의 프로듀서와 24시간 뉴스 채널인 YTN의 노조원 네명을 체포했다.

전 농림부 장관과 그의 대리인이 2008년 4월 방송이 자신들을 비방했다고 고소했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사 프로그램인 PD 수첩의 이춘근 PD는 감옥에서 48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은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승수 총리는 방송의 잘못된 정보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수많은 거리 시위로 “한국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말했다. 체포 영장은 나머지 다섯명의 PD 수첩 기자들에게도 발부되었다. MBC 사원들 중 일부는 그들의 경찰이 비디오 테잎과 노트들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방송국 로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YTN의 노종면 노조 위원장과 다른 세명은 구본홍 사장의 출근을 막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YTN 노조는 정부가 작년에 임명한 구본홍 사장이 방송의 편집 독립권을 회손시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논쟁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노조 위원장의 구금에 대해 사원의 거의 반 정도가 파업에 참가했다. 앰네스트 인터내셔널은 그의 체포가 “정부가 한국의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늘어나고 있는 시도"들”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작년 다른 네개의 언론 그룹 - 가장 큰 방송국인 국가 소유의 KBS, 한국 방공 광고 공사, 아리랑 TV, Sky Life - 의 사장이 친 정부 인사로 교체되었다고 전했다.

현 여당은 인터넷에 정확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 일을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관리에 대해 조롱했다는 이유로 12월에는 블로거 박대성이 체포되었다. 그는 여전히 감옥에 있다. PD 수첩의 이춘근 PD는 “한국의 모든 언론인들이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 The Economist는 전통적으로 기자 이름도 직함도 쓰여있지 않다. 영국도 인터넷 자유 측면에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요새 듣는다(무슨 법인가가 통과되었든가, 통과된다든가 그렇다). 다들 갑갑한 일들 뿐이군.

20090403

4월 3일

제주도 4.3 항쟁이 1948년도 일이니까 벌써 60년이 넘게 지났다. 이 날부터 여수 순천 항쟁 사건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보여준 비극은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 일어났던 일을 단 하나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공산당 소탕’이라는 말로 모든걸 얼버무리며 자신의 죄를 덮기에 급급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4.3 항쟁을 몇 년 전 폭동이라고 보도했던 어떤 신문은 유족들에게 소송을 당했다가 1, 2심에서 패소했지만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20090402

이런 저런 일들에 얽혀서

두가지 생각을 정말 오래전부터 한번 포스팅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선희 복귀와 그에 대한 논란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한번 써본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미룬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정선희와 딱히 관계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그우먼이라는 말 대신 통칭 코미디언으로 쓴다. 코미디와 개그가 뭐가 다른가, 버라이어티와 코미디는 뭐가 다른가. 꽁트는? 만담은? 이런건 생략.

 

1.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굉장한 버라이어티 MC의 농담은 이경실이었다. 한참 전에 이경실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가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첫 방송을 봤었다. 뭐였는지는 생각안나고 상당히 많은 MC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강병규가 있었던건 기억난다.

어쨋든 보는 사람에게도 그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올 정도로 어색한, 다들 뭔가 쭈삣쭈삣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경실이 농담을 던졌는데 대충 내용이 자기가 입원해 있는데 다들 과일 통조림만 사오더라는, 골절에는 칼슘이 필요하지 과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었다. 당연하지만 그 한방에 분위기가 확 풀렸었다.

그때 보면서 프로페셔널 코메디언이란 역시 굉장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그토록 아픈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흘려보내는구나(물론 당사자 말고는 꺼낼 수 없는 이야기지만).

2. 이건 지금하고는 좀 안맞는 이야기지만. 여성 코미디언들이 맹활약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코미디를 볼 때 부러운 점 중 하나는 탄탄한 여성 코미디언 층의 그 두께다.

물론 남성 코미디의 벽은 말도 못하게 두텁고(새로운, 능력있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렇게들 나타나는지 완전 화수분이다), 남/녀 비율이 엉망이지만(대략 9:1정도 아닐까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 자체가 많기 때문에(인구당 코미디언의 비율이 우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활동하는 여성 코미디언의 수도 많다.

이런 생각을 할 당시에는 뚜렷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박경림, 정선희, 김지선, 조혜련 정도였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박경림은 잠시 쉬지만 이외에도 박미선, 송은이, 신봉선, 김신영 등에다 기존의 김원희, 정시아 등 탤런트 출신도 곁들여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좀 시덥잖은 이야기가 되었다.

3. 어쨋든 정선희의 복귀를 기대한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코미디언이다.

20090331

against G20

4월 2일에 열리는 G20을 앞두고 전 세계에 알만한 단체들은 모두들 시위 준비에 한창이다. 우리나라 모 양반도 간다는데 부디 시위라는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더불어 세상 모든 시민들에게 아직 어디엔가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음을 확인시켜줬으면 한다. Solidarity의 시작은 이렇듯 심증의 확인으로부터 온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그곳에 보낸다. 어쨋든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이걸 쓴 다음날 한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근대로의 복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30075734&Section=01

손호철 교수가 프레시안에 올리는 컬럼. 옳으신 말씀이지만 무덤덤하거나 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라기 보다는, 질려버렸다는 표현이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뭐, 어차피 일개 시민으로서 느끼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변명이지만.

이노베이션, 혹은 변동이라는건 시민들의 의식과 공감대가 함께 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걸 다시금 느낀다. 사실 이전 2번의 정부가 보여줬던 일종의 반동적 시도(신자유주의적 시도들)에 대한 진보 계열의 비판에도 마찬가지 잣대가 드리워질 수 있다.

이상은 있었지만 전략은 없었다고나 할까. 조중동을 희화화 할 줄은 알았지만 영향력을 감소시키는데는 실패한 과오를 치루고 있다. 하지만 그런게 역사고, 또 느리지만 한칸 한칸 나아가는게 역사다.

유럽에서는 200년이 걸렸다. 40년 만에 해냈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이제 40년 밖에 못했으니 부족한게 많구나, 할일이 아주 많이 남았구나 라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근대로의 복귀라기 보다는 이제 근대가 된거다.

어쩃든 민주주의라는건 어떤 면에서는 꽤 피곤한 제도이기 때문에(깨어있지 않으면 당한다) 이제 익혀야 할 것은 정신의 부지런함이 아닐까 싶다.

20090328

컴퓨터 크래시

모 블로그에서 지식in에 대한 비판글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별 관련있는 내용은 아니라 트랙백이나 링크는 생략.

일본 코미디 동호회 때문에 네이버에 가입해 있었는데 작년인가에 결국 탈퇴를 했다. 활동을 한 건 아니고 내 느낌과 세간의 평가와의 갭이 존재하는지가 궁금해서 가입했었다.

예전에는 정말 어지간하면 탈퇴같은걸 안했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성격이 (어떤 부분에 있어) 조금씩 더 까칠해 지는지 뭔가 맘에 안들면 굳이 찾아가 탈퇴도 하고, 탈퇴의 변도 남기고는 한다. 뭐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까칠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정이 넘쳐요 덩실덩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거나 뭔가 알고 싶은게 있을때 보통은 구글링을 하던가 하게 되는데(구글링으로 찾아낸 하드웨어 관련 사이트의 글이 문제 해결에는 가장 큰 도움을 준다) 그래도 습관처럼 네이버에서 검색을 누르게 된다.

네이버의 가장 위대한 점 중 하나는 그 자판 배열의 편이성이라고 생각한다. naver이라는 글자는 정말 타이핑하기가 용이하다. 어쨋든 이번에도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습관적으로 네이버에 갔는데 여튼 답은 딱 두가지다. 시스템 복원을 하세요, 아니면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XXX를 설치해서 검사해보세요.

내가 찾은 문제들에는 유독 바이러스 이야기가 많았다. 프로그램 메뉴 부분 글자가 하얗게 나왔다 - 바이러스에요. wininet.dll 오류가 난다 - 바이러스에요. IE가 다운된다 - 바이러스에요. 컴퓨터가 갑자기 꺼진다 - 바이러스에요. 윈도우 라이브 라이터가 구동 안되요 - 바이러스에요.

물론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복사-붙임해서 뭘 물어보든 똑같은 답들이다. 아주 복잡하게, 긴 내용으로 쓰잘데 하나 없는 헛소리를 해 놓은 답변들 천지다. 이거 말고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들이 다 이 모양이다. 이런게 무슨 집단 지성이라고 서로들 좋다고 난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여튼 검색이 좀 어려웠기 때문에 여기다 일단 써 놓으면(그래도 이 포스팅이 뭔가 도움은 좀 되야지) - 아래 문제는 XP의 경우다.

프로그램 메뉴에 파일, 편집 이런게 하얗게 나오는 문제가 생기면 제어판에서 시스템 등록정보 - 고급 탭의 성능(시각 효과) 부분을 클릭해서 나오는 메뉴를 하나씩 눌러보면 된다. 컴퓨터 마다 상황이 다르니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컴퓨터가 갑자기 꺼질때는 일단 제어판 - 관리 도구 - 이벤트 로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서 꺼졌는지 확인해보는게 좋다. 크래시의 원인이 뭔가 패턴이 있는거 같으면서도 파악하기 힘든 모양으로 무척 다양하다면 대부분 램 이상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으니까 멀쩡한 램을 구해다 설치해 확인해 봐야 한다.

윈도우 라이브 라이터(WLW)가 갑자기 구동이 안되는 문제는 윈도우 라이브 디렉토리 안에 Dictionaries라는 폴더가 있는데 거기서 확장자가 LEX인 파일을 지워놓고 구동하면 된다. 사전 파일이다. 그게 없으면 맞춤법 검사가 안되는데 혹시 필요하면 다시 집어넣으면 된다.

20090327

CPU id

cpuid

지금 보면 꽤나 올디스한 기계를 25%씩 오버클럭해서 쓰고 있는데 잘 버텨주고 있다. 블로깅, 인터넷, 메일, 음악 듣기 등 사용 용도를 봐서는 전혀 다른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다만 케이스를 바꾸고, 납작한 모니터(아직 CRT다), 그리고 좋은 스피커 정도 붙이고 싶은 욕심은 있다. 마음은 골드문트지만 오디오엔진 정도만 구입해도 괜찮을거 같은데…

어차피 ‘샘틀’ 이라기 보다는 ‘엔터테이너’라는 느낌이다. 몇 년면 더 버텨주라.

20090325

Design under Constraint

Design under Constraint : How Limits Boost Creativity
- Wired.com

2장의 종이를 묶어 만든 16 X 10.875인치의 직사각형은 174제곱 인치만큼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전설적인 잡지 아트 디렉터이자 펜타그람의 파트너인 D.J.Stout는 이 박스를 채우는 기술과, 문자와 이미지의 예술적인 배치를 “직사각형 위의 variation”이라고 부른다. 지금 보는 이 잡지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잡지들의 주제와 내용들은 다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측면에서는 같은 하얀 빈 박스를 계속 다루고 있을 뿐이다.

Wired에서 디자인 팀은 이런 제한을 매일 아침 먹는 빵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편집상의 페이지들을 위해 우리는 단어와 사진을, 종이와 잉크의 부분적인 제한을 극복해 내기 위해 사용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정보 그래피를 실을 수 없다(아직은). 비디오나 목소리를 포함시킬 수도 없다(아직은). 음향 효과나 음악을 집어넣을 수도 없다(아직은).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일을 이 정적인 매개물에 포함시킬 수 없음에도, 이것의 가능성으로부터 깨달음과 놀라움을 찾아낸다. 이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공유하는 믿음이다. 사실 디자이너들이 듣는 가장 최악의 말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원하는걸 맘대로 해봐”라는 말이다. 디자이너들은 한계의 힘을 이해하고 있다. 제한은 성장과 혁신을 위해 비할 바 없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어린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물과 햇빛에 의해 크고 튼튼하게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이 성장의 초기에 주의 깊은 가지 치기 - 아래에 매달린 가지들을 제거해 주면 - 를 해주면 나무는 더 크고, 튼튼하고, 빠르게 자라난다. 나무는 성장에서 궁극적인 목표에 기여하지 못할 부분을 제외시킬 수 있게 되고 귀중한 양분들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같은 원리가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더 작은 자원이 주어질 수록,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 증거로 지난 세기의 문화적, 기술적 최고점에 대해 생각해 보기만 해도 된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업을 90도 직선과 주요 컬러에 한정시킴으로써 모더니즘의 도래를 알릴 수 있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싱글 코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Kind of Blue 음반을 만들 수 있었다. 더 최근에 지금 마일즈의 대표 앨범을 듣고 있을 아이폰은 구속 내에서 이상을 향한 추구의 최고의 예다. 최초 화면이 28개의 단어로 제한되어 있는 지루하도록 단순한 구글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제한 내에서 작업하는 아이디어는 특히 더 작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드는 요즘 시대에 실제적으로도 중요하다. 월 스트리트, 디트로이트, 워싱턴 D.C에서의 한계의 부재는 잘못된 자유였음이 밝혀졌다.

이 모든 경제적 침체 안에서 미국의 개척이 평창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에 대해 당신은 비난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지금이 기회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다음 페이지에서 우리가 선호하는 제한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제한을 강요하는 것이 창조성을 억제하지 않을 수 있다. - 사실 오히려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 바로 위에서 말한 ‘이 다음 페이지’라는 곳에 아주 긴 기사가 실려서 해석은 생략한다. 그 기사에서 Wired는 세가지 Manifesto를 제안한다.

1) Set the Data Free

오늘날 모든 공개 회사와 금융 기관들은 숫자와 통계가 가득 차 있는 끝도 없는 문서들 속에 그들의 활동을 공개하고 있다. 이 대신에 데이터에 쉽게 접근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태그(XBRL) 사용을 의무화시켜야 한다.

2) Empower all Investor

모든 회사의 데이터에 식별 태그가 붙는다면 누구든 실적 비교를 위해 숫자들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금융 기관들을, 단지 대차 대조표와 순익 계산서로 보는 것을 넘어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3) Create an army of Citizen Regulator

모두에게 데이터 접근권을 줌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자동적인 조절과 시장 상황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의 빗장을 풀어 낼 수 있게 될 것이고 일반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여기까지가 해석. 이제 내 이야기.

기본적으로 룰 안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좋아한다. 멋대로 입고와 이런 것보다는 프레피 룩이 유행이라는데 그 룰을 지키면서 어떻게 튀어볼까 생각하는게 훨씬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을 보고 혹해서 해석해 봤는데 내용이 약간 다르게 뻗어나간다. 전반적으로 내용이 부실하고 이상적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아주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여기에 올리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해 무제한 적인 창조성은 온연히 신의 영역이다. 제한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제한을 대하는 태도를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위의 기사대로 제한 내에서 머리를 굴려 극복해 내는 방안을 찾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제한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는 방법이다.

전자는 디자이너를 비롯해 대부분의 창조적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예를 들자면 대기업, 금융 회사들이 시도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언제나 규제를 없애자고 말한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의 역사 과정이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합이라는, mentally한 progress의 확신은 별로 없다. 발전을 재는 척도는 너무나 임의적이라 그다지 신용할 만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반-정-반 왔다갔다하는 시계추 정도가 더 신뢰가 간다. 민주성과 경제성 사이에 무슨 합 따위가 있을거라고는 생각이 안든다. 발전은 커녕 조화시킬 능력조차 없는게 인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더욱 확신에 차고 있다. 인간에게 존경할 만한 구석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은 이성과 발전이 아니라 임기 응변의 능력과 그 가열찬 생존력이라고 믿는다.

 

다시 경제 이야기를 좀 하면.

당연하지만 규제라는건 보호의 측면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대변하는 WTO나 IMF, World Bank에서도 규제를 없애는걸 제한한다. 나 역시 쓸데 없는 규제는 나라의 힘을 과대화 시키기 때문에 없애는 걸 찬성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렇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규제가 있는 경우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규제가 없어지면 상황이 다르다. 규제를 풀고자 했었던 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규제를 풀고자 하는 자들이 책임을 지면 그들과 별 상관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책임을 지게 하고 뜻하지 않은 불이익을 받은 이들은 나라에서 구제해 주는게 최선의 해결 방안이다.

하지만 한국이 삼성 없으면 나라 망할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미국도 별 다를게 없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와 완전 같은 방향은 아니겠지만 결국 향하고 있는 방향은 비슷하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망하게 두고, 정말 망하는지 두고 보면서(물론 나같은 경우 절대 안망한다고 믿는다, 인간과 사회라는게 뭐 하나 없다고 다 망하고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제 할일 열심히 해 극복해 내는게 옳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니(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1+1=3이라고 생각하면 3이어야 하는게 옳다) 그 단계에서 우리는 또 해결책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어쨋든 지금 필요한 건 이런 저런 규제니 뭐니 하는게 아니라 전향적인 투명성의 확보다. 이건 분명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20090310

교육감 선거

교육감 선거가 끝나면서 부터 개인적으로 상당히 지치기도 하고, 일말의 패배주의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포스트를 꽤 많이 올렸었다. 대표적인게 다음의 포스팅이다.

http://macsmics.blogspot.com/2009/01/blog-post_31.html

그러고보니 여기 블로그가 아니라 딴데네. 발전소에 써놓은 건줄 알고 여기에 쓰기 시작한건데. 왜 이렇게 딴데가 많은건지 -_-

* 이에 대해 잠깐 덧붙이자면 블로그가 여기저기 널리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스킨의 문제. 그리고 방문자 수라든가 애드센스의 문제. 이 문제 때문에 나 자신도 골치아파서 좀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 그러고 보니 이것도 딴데다.

http://macsmics.blogspot.com/2009/02/blog-post_22.html

왜 이렇게 문어발인거냐 대관절. 그냥 이글루스와 발전소 정도에 몽땅 통합해 버려야겠다. 이거 원 뭐하는건지.

어쨋든 공 교육감이 오늘 법원에서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돈 받은거 때문에 벌금형이 150만원이 나왔는데 그 액수면 당선 무효가 된다. 1심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살짝 기쁘다 이건.

20090308

지리멸렬

원래 여기에 '힘들다'라는 포스팅이 있었는데 너무 직설적이라 거슬려서 이걸로 바꾼다. 원래 RSS 리더에 올블로그 베스트글과 이글루스의 이오공감을 등록해 놨었는데 며칠 전에 다 빼버렸다. MB 취임 이후 하도 헉-하는 뉴스들이 많아서 이제는 질려버린 감이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수많은 논쟁들이 파생되어 벌어지고 있다. 근 몇 달간을 그러고 있는거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넷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별 볼일 없기는 하다. 왜냐하면 지금 정권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알바를 제외하고는 인터넷을 안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블로그에서의 담합, 혹은 논쟁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회합, 또는 알바와의 소모적 논쟁이 대다수를 이룬다. 물론 사고의 끝 지점에서 결정을 위해 조금 더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논쟁은 생산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닌 경우가 너무 많다. 

이 정도의 물가 상승과 실업난, 그리고 신입 사원 임금 삭감같은 말도 안되는 정책에 폭동이 나도 시원찮을 형편인데, 현 정부가 경제 상황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면서(딱히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믿지만) 폭동을 일으키러 나갈 힘조차 빼놓고 있다. 

안타깝지만 자인하건데 지쳤다. 전형적인 현실 도피의 증세다. 예전에 봉준호가 감독 데뷔 하기 전에 '지리멸렬'이라는 독립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는 검사, 신문사 논설 위원, 교수라는 사회 주요층의 지리멸렬하고도 3류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대비시켰는데 지금은 딱 내 꼴이 지리멸렬이다. 

이러다 보니 민감한 뉴스를 보는걸 피하게 되고 민감한 논쟁에 끼어드는 것도 피하게 된다. 대체 현 정부가 뭘 노리고 있는 건지 완벽하게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분명 무슨 로드맵이 있는데, 그 로드맵이라는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통으로 말아먹는 로드맵이다. 설마 그려랴하는 일말의 의심이 결론을 허공에 떠돌게 한다. 물론 남미식 토호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은 자들에게 무척이나 유리하다는건 분명한 팩트다. 정말 이들은 그걸 원하는 걸까?

며칠 전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요지는 지금 러시아의 경제 위기는 세계 경제 위기 탓이 아니다. 우리가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물론 이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내용이 깔려있다. 푸틴이 영구 집권 금지 때문에 앉혀놓은 메드베네프가 어느덧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푸틴의 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초석을 깔려는 시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푸틴의 영구 집권을 돕기 위해 러시아 관료들을 압박하기 위한 초석일 수도 있다. 

매우 모순적인 의견들인데 러시아의 정치는 그들의 외교만큼이나 아주 복잡한 어떤 선을 따라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논란이 확산되자 곧바로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어쨋든 꽤 스마트한 연설이었다. 그냥 저렇게 앞잡이나 하다가 사라질 사람은 아니지 싶다.

어쨋든 인터넷에서 의견을 모으고, 밖에서 움직이는 유비쿼터스의 세상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모든 걸 망쳐놓기에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Solidarity는 분명히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 


또 하나 : 좌파의, 혹은 반 보수주의 노선의 결정적인 약점은 도덕론에 메달리느라 목표를 자꾸만 놓친다는 점이다. 전투 방식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왜냐하면 전투는 이겨야 하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헌법 기관들의 좌우 균형은 시민들에 의해 결정되게 되어 있고, 그건 우연이 아니라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 분립에 기반한 민주주의는 매우 능동적인 시민을 요구한다. 가만히 앉아서 떡이나 먹으면 저절로 균형이 이루어지고 서로 견제해 시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진 제도가 애초에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매한 민중이 폴리스를 망칠 수 있다는 염려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같은 사람들은 민주정에 반대했었다. 지금은 경제적 식견이 정치적 우매를 만들어 고대의 철학자들이 염려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실, 이 모양 이 꼴이 되어도 할 말이 없는게 사실이다. 결국은 시민들이 만들어 놓은게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저 흘러가는대로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의지를 지닐 때이다. 목표는 균형이다.

20090307

블로그 가져오기

예정했던 개편을 대충 마무리했다. 사실 이 곳 블로그 ‘walk alone…’ 말고 ‘하루하루’라는 거의 일기장 비슷하게 활용했었던(과거형) 구글 블로그가 하나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할지 약간 고민이었다. 뭐, 별 내용있는건 아니지만 일기장 블로그라는게 몇 년 지난 다음에 보면 아, 그랬지 하는 재미가 또 있기 때문에 그냥 지워버리기도 그렇고 해서.

구글 블로그는 아주 간단하게 블로그 내보내기, 가져오기를 지원한다. 정말 간단해서 ‘하루하루’ 블로그에서 내보내기를 해 파일로 저장하고 ‘walk alone…’에서 블로그 가져오기를 하면 날짜순으로 게시가 된다. 나같이 중구난방으로 일 벌려놓고 수습하느라 골치 썩는 사용자들에게 이런 건 매우 훌륭하고 요긴한 툴이다. 다른 블로그에서도 표준화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서 스킨도 바꿨다. 이것 역시 ‘하루하루’에 썼던 스킨으로 구글 블로그 기본 스킨 중에 jellyfish인가 하는 것이다. 스킨에 대한 조예가 별로 없어서 개인적으로 고쳐서 쓴다던가 하는 재주는 없지만 이건 좀 단호하게 보이면서도 더불어 난삽한 패러독스가 맘에 든다. 한글로 썼을 때 유난히 거칠게 보인다. 약간 안타까운건 IE6로 보면 크롬이나 FF같은 다른 브라우저로 봤을 때만큼 거칠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블로그 정리를 한다고 말만 해놓고 생각하고 좀 다르게 간 감이 있는데 티스토리에 있던 블로그를 없애겠다고 마음 잡아놓고 엉뚱하게 더 공을 들이는 결과가 생겼다. 뭐 사는게 다 그렇듯 어떻게든 잘 풀려가겠지.

낙관은 새로운 낙관을 만들고 비관은 새로운 비관을 만든다는 사실을 믿는다. 물론 이에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의 냉정한 분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비록 낙관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내가 따라가고자 하는 방식은 아니다.

20090306

2005년의 강원도 여행 (묵호)

2005년 10월 경에 돌아다닌 이 여행은 두개가 겹쳐있다. 하나는 낚시나 한번 해 볼까 하고 서천에 다녀온 것. 후배가 전어를 잡아보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전어는 부둣가에서 낚시 드리워서 잡는 물고기가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배타고 한참 나가야 한단다.

그냥 가기도 그래서 결국 파도가 산처럼 치는 부두에서 낚시를 드리웠는데 손바닥 길이만한 꽁치랑 손가락 길이만한 좀 입체적으로 생긴 물고기(우럭 새끼라고 한다)는 몇마리 잡았다. 옆에 꽁치 구워가며 소주 마시는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관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담도 휴게소에 가면 카페테리아 식의 식당이 있는데 약간 비싸긴 하지만 계란찜이 꽤 맛있다.

다음 날에 또 다른 후배 한 명이 회사를 그만뒀다고(예정되어 있었다) 근처나 한바퀴 돌고 오자고 해서 마침 단풍철이라 산 구경하다가 오대산까지 갔다. 그리고 주문진, 묵호항을 돌아 설악산 한화 콘도에서 자고 한계령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설악산에서 케이블카 타려고 갔는데 단풍철이라 그런지 꽤 서둘렀는데도 엄청나게 사람이 많아서 포기.

자판기 커피도 500원이나 해서(자판기가 500원이면 뭔가 억울하다) 역시 그만두고 한계령 휴게소에 갔다. 구름이 계속 지나가고 바로 앞차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도 머릿 속에 한계령 하면 그 뿌연 광경이 떠오른다. 멋졌다.

c0032553_16375237

묵호 해수욕장에서 밤에 달이 떠있길래 모래밭 위에 사진기 올려놓고 찍은 한장. 수평선 부분에 밝게 보이는 건 오징어 잡이 배들이다.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묵호항은 다시 가보고 싶다.

2005년의 강원도 여행 (묵호)

2005년 10월 경에 돌아다닌 이 여행은 두개가 겹쳐있다. 하나는 낚시나 한번 해 볼까 하고 서천에 다녀온 것. 후배가 전어를 잡아보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전어는 부둣가에서 낚시 드리워서 잡는 물고기가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배타고 한참 나가야 한단다.

그냥 가기도 그래서 결국 파도가 산처럼 치는 부두에서 낚시를 드리웠는데 손바닥 길이만한 꽁치랑 손가락 길이만한 좀 입체적으로 생긴 물고기(우럭 새끼라고 한다)는 몇마리 잡았다. 옆에 꽁치 구워가며 소주 마시는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관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담도 휴게소에 가면 카페테리아 식의 식당이 있는데 약간 비싸긴 하지만 계란찜이 꽤 맛있다.

다음 날에 또 다른 후배 한 명이 회사를 그만뒀다고(예정되어 있었다) 근처나 한바퀴 돌고 오자고 해서 마침 단풍철이라 산 구경하다가 오대산까지 갔다. 그리고 주문진, 묵호항을 돌아 설악산 한화 콘도에서 자고 한계령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설악산에서 케이블카 타려고 갔는데 단풍철이라 그런지 꽤 서둘렀는데도 엄청나게 사람이 많아서 포기.

자판기 커피도 500원이나 해서(자판기가 500원이면 뭔가 억울하다) 역시 그만두고 한계령 휴게소에 갔다. 구름이 계속 지나가고 바로 앞차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도 머릿 속에 한계령 하면 그 뿌연 광경이 떠오른다. 멋졌다.

c0032553_16375237

묵호 해수욕장에서 밤에 달이 떠있길래 모래밭 위에 사진기 올려놓고 찍은 한장. 수평선 부분에 밝게 보이는 건 오징어 잡이 배들이다.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묵호항은 다시 가보고 싶다.

게이 프렌들리

아래 글에 관련되어 Amherst 칼리지에서 조사한 게 있다.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 180개의 LGBT 프렌들리 비지니스(바, 클럽, 디스코, 커피숍, 레스토랑, 호텔, 서점, 사우나, 레더 클럽 등)와 단체들(게이 센터, 게이 평등도, 헬스 서비스, 라디오 방송국 등)의 수를 다 더해 인구로 나눈 지표다. 즉 1인당 LGBT 프렌들리 기관수 정도 되겠다.

여기에는 범죄에 대한 혐오도, 경찰, 직장 차별, 소득 격차, 주거 상황 등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건 제외하고 일단 손으로 셀 수 있는 것들을 기준으로 한 듯 하다. PDF 파일 전문은 아래 링크를 다운로드 받으면 읽을 수 있다.

https://www.amherst.edu/media/view/95641/original/Corrales%2BGay%2BFriendliness%2BIndex.pdf

이 기준에 의하면 게이 프렌들리 도시 1위는 로마다. 북유럽 국가 중 하나가 1위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이태리였다. 두가지 항목을 인구로 나눈 점수가 61점이 나왔다. 10위까지를 차례대로 보면 암스테르담, 프라하, 안트워프, 취리히, 베를린, 브뤼셀, 몬트리올, 바르셀로나, 코펜하겐이다. 비유럽권 도시로 유일하게 캐나다의 몬트리올이 올라와있다.

뉴욕이 62위로 생각보다 낮았다. 아시아권 도시 중에서는 방콕이 26위로 단연 높다. 한국의 순위는 낮을 것으로 당연히 예상했는데 부산이 111위로 가장 높았다. 위의 점수로 2.237점이다. 대구가 119위, 서울이 131위다. 일본도 고만고만해서 도쿄가 128위, 오사카가 134위, 나고야가 143위다.

게이 인 라틴 아메리카

[Foreign Policy 홈페이지에 2009년 2월에 올라온 이야기다. FP 한글판도 있기 때문에 번역을 올리기가 애매하기는 한데 이야기가 좀 재미있어서 해봤다. 문제가 생길 시에는 삭제할 예정이다. 이 글이 한글판에 실릴 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나온다면 나처럼 발로 한 번역 말고 제대로 된 글을 한 번 읽어보는 게 나을 것이다. 

closet을 뭐라고 해야할 지 잘 몰라서 그냥 closet 이라고 해놨다. 원래 이 글의 부재는 Is the Closet Half Empty? 이다. 남미의 LGBT는 내가 생각했던 평범한 방향하고는 상당히 다르게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듯] 


많은 분석가들이 놓치고 있지만, 메이저한 사회 혁명은 남미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이 Gayer가 되어가고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남미에 더 많이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이걸 누가 알겠냐). 이 지역들은 점점 더 게이-친화적이 되어가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남미는 closet의 땅이고 마쵸의 고향이었다. 오늘날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합쳐서 LGBT)의 권리를 위한 무브먼트는 이 지역들의 세계화, 개방형 제도라는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정당한 이유들을 스마트하게 메인 스트림 정치인들과 경제 협회들에게 알리고 있다. closet과 마쵸는 여전히 여기저기에 남아있지만, 남미는 이제 개발 도상국들 중에 가장 게이 친화적인 제도를 지니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게이의 권리의 확장은 민주화된 서구 유럽에서 1960년대에, 그리고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민주화되어 있고, 일종의 서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남미는 뒤로 쳐졌다. 그리고 1990년대 말, 제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1998년 에콰도르는 성적 성향에 따른 차별대우를 금지하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켰다. 1999년 칠레는 동성간의 성행위를 비범죄화했다. 리오 데 자네이로 주 법은 2000년에 공사 기관의 성적 성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시켰다. 2002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커플들의 결혼 등록을 보장했다.

정책의 변화는 계속되었다. 2003년 멕시코는 성적 성향을 포함한 차별 대우 금지 연방 법안을 통과시켰다. 1년 후 브라질 정부는 “Brasil sem homopfobia”(동성애 혐오증 없는 브라질)라는 비정부 기관들의 성에 관한 사회적 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06년에 멕시코 시티는 남성과 여성관의 관습법적인 권리와 일치하는 권리를 동성 간에도 보장하는 Societal Cohabitation 법을 인가했다. 우루과이는 2007년 성별 관계없이 같이 5년 이상 함께 산 커플이라면 건강 보조금, 유산, 육아, 연금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2008년 니카라과는 동성간의 관계를 범죄시하는 형법 법전을 재정비했다. 심지어 쿠바의 새로운 대통령 Raul Casto조차 자격있는 시민들의 성 전환 수술을 허가했다.

변화는 종이 위에서만 온게 아니다. 남미 도시들의 게이 프렌들리한 성향은 늘어나고 있다. 게이가 소유한, 또는 게이 프렌들리한 시설들(예를 들어 바, 서포트 그룹, 서비스 등)의 1인당 숫자는 증가 중이고 심지어 자유로운 서유럽의 도시들보다 높은 곳들도 있다. 이제 아무도 이 지역이 게이들의 황무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적으로, 그리고 도심 지역에서는 수많은 커밍 아웃의 증거들이 등장하고 있다.

무엇이 남미가 깨어나고 있는걸 설명할 수 있을까? 확실한 대답은 정부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더 이상 독재 국가가 아니다. 독재 상황에서는 대부분 게이들의 권리가 신장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 지역들이 도시화 되어가고 있고 남미의 도시들이 세계화 되어가고 부유해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준다. 게이 라이프는 부유하고 코스모폴리탄한 도시들에서 살아남는다. 아랍이나 앵글로 캐리비안 도시들이 열악한 게이 프렌들리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인 무슬림이나 현저한 프로테스탄트 지역이 아니라는 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급류가 찾아온 더 놀라운 이유는 이 지역 LGBT 운동의 예상하지 못한 큰 영향력에 있다. 이 무브먼트는 일부 국가에서는 197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수도 없는 프리 라이딩 문제때문에 언제나 소규모이고, 작고, 골치거리들이었다. 그래서 강력한 국가 레벨의 리더들에게는 무시당해 왔다. 이런 경우 영향력은 전혀 없다.

대신에 남비의 LGBT 무브먼트는 스마트한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핸디캡을 극복해나갔다. 래디칼하고 필사적으로 변신해 가는 대신 그들은 더 거대하고, 더 영향력있는 사회 무브먼트들과 실용적인 협력 관계를 가졌다. 예를 들어 에콰도르에서 헌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들은 더 강력한 페미니스트 무브먼트에 의존했다. 브라질에서는 건강 캠페인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걸 증명하면서 정부 관리들과 협력했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에서는 게이 마켓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지역 경제 업체들과 함께 움직였다.

LGBT는 또한 세계화가 만들어 낸 수단들을 영리하게 사용했다. 그들은 게이 투어리즘을 시작했고, 문화적 취향을 변화시키기 위해 미디어와 함께 일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변화를 확장시킬 전술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과 아카데믹 포럼을 활용했다. 남미의 게이 옹호 그룹들은 급진적이지 않고, 반자본주의자도 아니고, 반세계화주의자들도 아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왔다. Given the antiglobalization tack of many progressive social movements, Latin American LGBT advocates are minoritues in more ways than just their sexuality.

물론 완전한 변화를 위해선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게이들의 권리는 도시를 벗어난 거대한 이 지역의 많은 부분들에서 여전히 아직 부족하다. 가장 명백한 이유는 우물쭈물하는 동성애 혐오증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게이-권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브라질에서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동성애는 신의 법칙에 반하는 범죄다”라는 말에 58%가 동의했고, “동성애는 치료받아야 할 병이다”라는 문장에는 41%가 동의했다. 이는 성장하고 있는 게이 권리의 모순을 보여준다. 이와 거의 같은 이유가 게이 권리의 성장을 만들어냈다. 더 높은 가시성과 영리한 로비 전술은 동성애 혐오 의견을 선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뛰어난 정치적 전술들에도 불구하고, LGBT 무브먼트는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좌파 정당들의 뚜렷한 지원을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정당의 도움이 거의 없는 건 LGBT 무브먼트가 받아들인 후기 유물론적 가치와 세계화에 대한 사회주의 좌파의 전통적인 경멸에서 유래할 것이다. 이건 아마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또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타고난 보수주의로부터 내려오는 정치에 대한 마초적 접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같은 유일한 예외를 제외하고 좌파 대통령들은 게이 그룹들이 원하는 것보다 소심한 게이 제도들을 서포트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작년에 좌파 대통령인 라페엘 코레는 다른 수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조항들에 섞어놓았음에도 개인적으로 동성간의 결혼을 새로운 헌법에 법제화하는걸 막으려고 했다. LGBT 사람들이 정당 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게 사실이라고 해도, 남미에서 그들이 언제나 언제나 원하는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에서 LGBT 무브먼트가 분명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하기는 무척 어렵다. 게이 라이트와 편안한 지역들은 이제 되돌릴 수 없을 물결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 법규와 이웃의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출발이지만 동성애 혐오라는 반대 방향의 물결과 통치하는 정당과의 연합이라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 The closet may be opening, but the jury is still out.

20090303

2002년의 정선

2002년에 정선에 처음 갔다. 요즘 꽃보다 남자에서 구혜선의 아빠 역을 맡고 있는 안석환 씨가 정선에 다녀온 다큐멘터리를 당시에 KBS에서 방영한 적 있는데, 그 화면에 나오는 산과 강을 보고 완전히 마음을 뺏겨 정선행을 결심했다.

7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증산에서 출발하는 정선선은 지금은 정선역과 구절리 역 밖에 서질 않는데 당시에는 역이 6개인가 있었다. 함께 갔던 후배와 내렸던 역도 나전역이었다. 요즘은 꽤 인기 좋은 레일 바이크 같은 것도 물론 없었다.

51610013

기차를 타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 했던 여행이었지만 강원도 쪽이 그렇듯(강원도 뿐만 아니라 대도시가 아닌 곳들은 거의 다 그렇다) 대중 교통 시스템이 로컬 주민들이 아니면 이용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한시간에 한 대, 하루에 네 대 뭐 그렇다) 그저 젊은거 하나 믿고 죽자고 걸어다녔던 기억 밖에 없다.

2008년에 차를 이용해 다시 정선을 찾은 적 있는데 2004년인가 있었던 수해에 길이 바뀐 곳도 있고, 당시 찍었던 사진하고도 다른 모습들이 꽤 있었는데도 지나갔던 곳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역시 걸어다녔던 곳과, 차로 지나다녔던 곳은 다른가 보다.

2002년의 정선

2002년에 정선에 처음 갔다. 요즘 꽃보다 남자에서 구혜선의 아빠 역을 맡고 있는 안석환 씨가 정선에 다녀온 다큐멘터리를 당시에 KBS에서 방영한 적 있는데, 그 화면에 나오는 산과 강을 보고 완전히 마음을 뺏겨 정선행을 결심했다.

7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증산에서 출발하는 정선선은 지금은 정선역과 구절리 역 밖에 서질 않는데 당시에는 역이 6개인가 있었다. 함께 갔던 후배와 내렸던 역도 나전역이었다. 요즘은 꽤 인기 좋은 레일 바이크 같은 것도 물론 없었다.

51610013

기차를 타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 했던 여행이었지만 강원도 쪽이 그렇듯(강원도 뿐만 아니라 대도시가 아닌 곳들은 거의 다 그렇다) 대중 교통 시스템이 로컬 주민들이 아니면 이용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한시간에 한 대, 하루에 네 대 뭐 그렇다) 그저 젊은거 하나 믿고 죽자고 걸어다녔던 기억 밖에 없다.

2008년에 차를 이용해 다시 정선을 찾은 적 있는데 2004년인가 있었던 수해에 길이 바뀐 곳도 있고, 당시 찍었던 사진하고도 다른 모습들이 꽤 있었는데도 지나갔던 곳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역시 걸어다녔던 곳과, 차로 지나다녔던 곳은 다른가 보다.

20090228

짧은 여행의 기록

아직 어떤 식으로 여행 기록을 남길지 잘 모르겠다. 제대로 남겨놓은 사진은 2002년 9월 정선 여행부터 남아있고, 제대로 기록해 놓은 여행 일지는 역시 정선에 다녀온 2008년 10월 여행부터 남아있다. 정선 여행은 항상 뭔가의 전기가 되어주는 기분이다.

지금 생각은 사진은 가능한 배제하고 주르륵 주르륵 글만 남기는 블로그를 만드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행 같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쓸 만한 재주가 나에게는 별로 없다. 재미있게 쓸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마음이 서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애드센스는 붙여놓는다.

여하튼 좋은 내용으로 잘 가꿔나가고 싶다.

짧은 여행의 기록

아직 어떤 식으로 여행 기록을 남길지 잘 모르겠다. 제대로 남겨놓은 사진은 2002년 9월 정선 여행부터 남아있고, 제대로 기록해 놓은 여행 일지는 역시 정선에 다녀온 2008년 10월 여행부터 남아있다. 정선 여행은 항상 뭔가의 전기가 되어주는 기분이다.

지금 생각은 사진은 가능한 배제하고 주르륵 주르륵 글만 남기는 블로그를 만드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행 같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쓸 만한 재주가 나에게는 별로 없다. 재미있게 쓸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마음이 서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애드센스는 붙여놓는다.

여하튼 좋은 내용으로 잘 가꿔나가고 싶다.

20090227

아프다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계획했던 일들이 뒤로 밀리고 있다. 어제는 자장면을 먹으러 갔는데 그 잘먹던 음식을 단 한 젓가락 먹고 내려놨다. 원래 이런 냄새가 났었던가 싶다. 

몸이 아프다. 배가 좀 아프고, 두통이 심하고, 숨이 차고, 눈이 침침하다. 그리고 너무 너무 춥다. 19만원이나 나온 가스 가격에 아랑곳 하지 않고 보일러를 펑펑 틀어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딱 달라 붙어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땀이 나는데도 춥다.

정신도 멀쩡하지 않다. 이제 만성이 된, 수도 없는 실패의 경험들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사실은 내가 제발로 가고 있는) 있다. 갈 곳을 잘 모르겠고 요행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부상조하며 가속도가 붙는다. 헛헛헛 웃으며, 어디선가는 손을 털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쥘 것은 쥐고 가자. 

20090222

블로그 개편

괜시리 방만하게, 더불어 문어발로 운영되고 있는 블로그들을 대충 정리를 좀 하기로 했다. 한국 대기업도 아닌 주제에 문어발은 무슨. 어쨋든 문어발은 대체적으로 불황을 아비트리지 해주기는 하지만 효율성이나 효과성의 관점에서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간단하게 말해서 블로그의 소비자가 한쪽으로 크게 몰리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총합은 유지되더라 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복잡하니까 관두자.

대충 봐서

이글루스 -> 패션, 기계, 일상 (73스토리지를 없애자)
walk -> 이게 좀 애매한데 우중충한 일상 (하루하루, 티스토리를 없애자)
발전소 -> 약간 발전적인 것들(번역 등),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들(정치/경제)

이게 핵심인데 아키텍트는 없애고 그걸 여행 블로그로 바꿀 생각이다. 이만큼 돌아다니면서 뭐 하나 남겨놓은게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그리고 뭔가 약간은 전문적인 블로그를 하나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다 없앨 생각이다. 이글루가 사람이 제일 많이 오기는 하지만, 아는 사람도 많이 오고 그래서 너무 퍼스널한 이야기는 잘 못 올리겠다. 

어쨋든 소소한 + 개인적인 이라는 관점에서 walk, 이곳이 말하자면 지주 블로그 같은 곳이다. 방만한 인생도, 방만한 블로그, 방만한 방도 다 정리하고 2009년 2월 말을 기점으로 약간은 새 사람이 되야지. 밝은 생각이 밝은 결과를 만든다. 핫핫핫.

SAAB의 파산 보호 신청

Saab가 스웨덴 정부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GM의 계열사인 사브는 GM이 미국 정부에 160억 달러의 추가 지원 자금을 요청하면서 사브의 청산을 시사했고, 이에 사브는 자구책으로 스웨덴 정부에 긴급 자금 지원 요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사브의 스웨덴에서의 고용인원은 2만 5천에서 3만 명 정도라고 한다. 얼마 살진 않았지만 그동안 살면서 사브의 흥망성쇠를 거의 다 본거 같다. 스웨덴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 팔리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 했는데, 이제 청산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별 일이 다 있는게 세상이다 정말.

20090217

부랑자냄새

여기는 천지인 키패드로 열악하게 타이핑하는 곳이 되버려서 일단 가능한 한 문장부호는 생략. 점점 문자 메세지풍이 되가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가 나름 꾸준히 뭔가 올리는 블로그가 세곳이나 되버렸다 이글루는 패션과 일상의 잡념들을 올리는 말하자면 주력이다. 발전소는 뭔가 발전적인 조언을 옮기거나 정치/경제, 그리고 이곳 워크는 소 콜드 가장 찌질한 곳이 되가고 있다. 어쨋든 셋다 초 마이너지만 이글루는 나름 분투하고 있어 야후 블로그 랭킹 천등안에도 들었다. 히~

저번에 후배놈이랑 여행갈때 츄리닝을 안가져가서 그놈 집에 하나 있는걸 빌렸었다. 롯데 신입 연수할때 받은거라는데 이게 생긴건 좀 그래도 꽤 따뜻하다. 어쨋든 그걸 돌려줄 타이밍을 못잡고 종종 쓰고 있다. 그간 몇 번을 끙끙 앓았는데 그때마다 그 츄리닝을 입고 보일러 틀어놓고 두꺼운 이불덮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을 잤다. 그러고 한번도 안빨았다. -_- 어제 어쩌다 그 츄리닝을 입고 밖에 나와 지하철을 탔는데 어디선가 서울역 지하에서 나는 바로 그 냄새가 난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나한테 나는 냄새 ㅠㅠ

어느새 이렇게 한칸 앞까지 와있는거 아닌가 하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솔솔 피어오른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ㅠㅠ 발렌타인 초콜렛도 받았는데. ㅠㅠ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버리는 거냐. 이렇듯 어느날 갑자기 훅 쳐지진 않을까 싶은 포비아가 있다. 모두들 모른척 하겠지. ㅠㅠ 나는 열라 아는 척 해야지.

이거 말고 다른 포비이도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거 휴대폰 메일로 보내서 올리기 하니까 엉망 진창이구나. 역시 휴대폰으로는 미투데이 정도인건가. 나도 쿼티 자판 와이파이 기기 가지고 싶다. ㅠㅠ

20090215

나오미 클라인의 유토피아

벌써 8개월이나 전에 http://macrostar.egloos.com/4417640 이런 이야기를 쓴 적 있다. 글쎄 지금 상황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포지셔닝을 하고 있지만 어쨋든 마음을 뒤흔드는 '상황'은 존재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촤르르르 돌아가는 필름 소리에  마음을 뺏긴다.

나오미 클라인은 나와는 무천도사와 베지타 만큼 정도 전투력 차이가 나는 사람이지만 어쨋든 그에 대한 글을 읽다가(이 전 포스팅에서 조만간 번역을 올린다고 했지만 아직도 한참 남은 바로 그 아티클 - 뉴요커 지의 2008년 12월 8일 업로드 기사 Outside Agitator) 만난 흥미진진한 구절 한토막. 

이 글을 읽어보면 역시 세상의 레프티스트들은 비슷한 열망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짠한 감정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그가 비록 각종 무브먼트 전선의 최전방에 있지만, 특히 비유로권 문제에 대해서 역시 제3자적 처지일 뿐이라는 사실 역시 느낄 수 있다. 어쨋든 그는 콜롬비아에 새 정권을 만들고자 하는 반군은, 전두환에 맞서 싸운 투사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동남아시아 농민 자신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저런 경험이 드물다는 이야기를 하겠지. 

개인적으로 '그녀'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로 통일. 이건 좀 더 생각해 보고 나서.



"저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게 훨씬 더 편하다고 느낍니다" 

그(나오미 클라인)가 유토피아가 이런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문득 했던 유일한 순간은 2002년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그와 루이스(남편)이 영화 "The Take"를 찍기 위해 가 있던 그때 아르헨티나의 정치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그 순간 진공 상태가 완전히 열려버린 아르헨티나에 기적적인 시간이 찾아왔었어요. 사람들은 2주일 동안 네명의 대통령을 쫓아 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모든 기관들이 위기에 빠져있었죠. 정치인들은 집안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아주머니들이 빗자루를 들고 그들을 때렸어요. 

그리고, 밤 중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 나서면 거의 모든 거리의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 대외 부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100명에서 500명 정도 사람들이 한 그룹을 이루고 있었죠. 약간이라도 더 싼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함께 식료품을 구입했고, 화폐가 거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물물교환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본 것들 중 가장 고무되는 모습이었어요"

20090213

쉬어가는 타이밍

번역을 몇개 올렸더니 구글 어낼리틱스에 나오는 방문수 통계가 마이너스 24.18%'다. ㅠㅠ

나오미(노 로고를 쓴)와 루이스(남편, 액티비스트) 가족 이야기가 꽤 재밌어서 그거하고 뉴요커에 실린 존 업다이크에 대한 간단한 추모글이 있어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게 꽤 어렵다.

참고로 레이먼드 커버의 소설과 존 업다이크 소설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뉘앙스를 잠시 비교해 보자면 (퓨어한 개인적인 관점) :

커버는 단어 뜻이 다양한, 그러니까 사전 찾아보면 1, 2, 3 나와있는 단어들을 - 예를 들어 slip, stroke, gall, clam, holler, etc - 무척 많이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아주 쉽고 간단한 단어들을 사용해 소설을 쓰기 때문에 읽기가 쉬운 편인데 뭔가 다른 뉘앙스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읽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뭔가 있는거 같기는 한데 캐치하기가 쉽지는 않다.

업다이크는 굉장히 낯선 단어인데 찾아보면 쉬운 대체 단어가 있는 것들을 많이 쓴다. 아주 명확하게 자신의 의도에 맞는 한가지 단어를 찾다가 그리 된게 아닐까 싶다. 뉴요커지의 추모 기사에서 본 바에 의하면 일주일에 5일, 하루에 딱 세 페이지씩 꾸준하게 썼다고 한다. 

나인 투 파이브 워커 풍의 작업인데 세 페이지를 8시간 동안 일해서 썼다고 하면 단순화 시켜서 생각했을 때 한 페이지에 2시간 40분 가량이다. 프로페셔널한 작가로서 충분히 이것 저것 고려할 수 있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좀 다른 이야기.

1. 금 가격이 꽤 오르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300불대였던 금 가격은 2005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2008년 1000불까지 찍었다가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서 2008년 11월에 700불까지 떨어졌었다. 지금 2009년 2월 현재 940불 가량이다.

금이라는건 사실 실질 수요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거의 고정되어 있고, 요즘처럼 각종 기계 장비 등의 수요가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는 같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수요가 투기 자본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뜻이고 증권 등으로 떨어진 수익을 보충할 목적이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좀 더 올라가면 그러한 수요자들은 시세 차익을 보고 나가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각종 투자 회사들이 금 구입을 부추키는 것도 영 수상하다. 어쨋든 이건 개인적인 예상이므로 과연 맞는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일.

2. 이건 정말 그냥 해보는 것.

라니냐 현상으로 우리나라도 가뭄이 상당히 극심한데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이번 겨울 내내 여기저기에서 이상 기온 - 가뭄이라든가 홍수라든가 등등 - 발생하고 있다. 기상 이변이 생기면 무슨 일이 생겼던가 곰곰히 되돌아보면.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엘리뇨 현상은 1991-1992, 1993, 1994, 1997-1998, 2002-2003, 2004-2005 and 2006-2007에 나타났다. 이중에서 꽤 강력해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은 1997-1998 정도다.

라니냐 현상이 발생한 해는 1988-1989, 1995, 1999-2000, 2007중반, 2008년 말이다. 이중 강력했던 것은 1988-1989다.

옥수수






아무래도 농산물 가격이 제일 관련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뭔가 관련이 있기는 한건가... 귀찮다. 나중에 찬찬히 봐야지. 딱봐서는 별로 없는거 같은데. 1996년도 그렇지만 2008년은 확실히 난리였군.

20090211

관계의 지속

꽤 친했던 형하고 한 3년 전쯤 연락이 끊겼는데 문득 전화가 왔다. 뭐 별일 있어서 다시는 안본다 이런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안보게 된 이후 꽤나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한 일주일 전쯤 봤던거랑 비슷하게 떠들다 왔다. 사실 벌써 한 3주 쯤 전 일이다.

학교 다닐때야 매일 같이 봤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한 3, 4개월에 한 번씩은 보고 시덥잖은 이야기도 하고는 했는데 나름 양측의 심각한 꼴도 좀 보고 여행도 가고 했는데, 그러니까 3년 전에 전화를 한 번 해보고, 안 받길래 일주일 있다가 해보고 그 이후로 연락을 안했다. 이 험난한 세상, 새로 맘 통하는 편한 사람 한 명 만나기도 사실 어려우므로, 영 나쁜 놈 아니면 사실 나도 노력도 좀 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런 면에서는 매우 소심하다. 전화 두 번, 혹은 세 번 까지가 맥시멈인거 같다. 그게 넘어가면 그때까지 연락이 없다면 무슨 생각이 있는거 같은데 좀 폐끼치는 기분이 든다. 적어도 나는 안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건데 바쁘면 또 그렇지 못하는거 아는데도 잘 안된다 그게.

어쨋든 혹시 얇은 관계의 실이나마 이제 끊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치근덕대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 엠씨 몽 말대로 보고 싶겠지, 그리울 때도 있겠지, 그래도 못살지는 않을테니까.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 자주 생각나기는 한데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다. 물론 이렇게 내 맘대로 하다가 나중에 서운했다는 소리 듣기도 하고, 아마 그러지 않았어야 할 사람과 다시는 연락을 못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뉘앙스의 묘한 차이를 아직 잘 모르겠다. 인식론을 열심히 공부했음에도(이거랑 별로 관계없기는 하지만) 사람 마음 인식에는 영 잼병이다. 또 뉘앙스와 톤에 매우 민감한 내 테이스트의 영향도 있다.

어쨋든 이런 식으로 연락 안하는 사람이 꽤 되는거 같다. 그러다 이렇게 문득 전화오면 또 반갑고 그렇다. 세상 만사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습관도 버리고, 관계에서도 좀 용감해져야 한다는게 맞는 듯 싶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들인데 이게 그렇게 맘대로 안되니까 문제지. 용기가 필요해 ㅠㅠ

20090210

관계

이 나이 먹어서 툭하면 우중충해지는게 무척이나 싫다. 예전에 무슨 책에선가 나이 먹으면 그만큼 무던해져서 살기가 편해진다는 이야기를 보고 아, 정말 그렇게 되려나 했는데 개뿔.

20090204

힌트 매거진 인터뷰 : Hussein Chalayan

[케인즈 이야기가 하나 남아있는데 지겨워 하던 중 뭐 재미있는거 없나 번역해봤음. Haidee Findlay-Levin이 인터뷰했다. 디자이너와의 인터뷰가 그렇듯이 딱히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전문 용어나 트렌드한 단어가 많아 내 실력으로 완벽하게 번역하긴 어려운데 그래도 나름 좋아하는 사람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 완전 의역이기 때문에 후세인의 말투가 궁금하시다면 맨 아래 있는 링크를 클릭]


지적인 엄격함은 소수의 디자이너들만이 지니고 있다. 터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받은 후세인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두번이나 브리티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받고, 최근 퓨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명된 후세인은 그의 미래적인 레이저 드레스처럼 패션계의 선두에서 경쾌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런던 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1. 22~5.17, 2009년), 아마도 그의 작업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영국에서의 첫번째 전시에서 그가 "복고적인"이라는 단어 사용을 거부했다는 거에는 약간 의문이 있다. 지난 15년간을 돌아보며 전시회는 살라얀의 대표적인 주제들 - 문화적 아이덴터티, 포터블한 건축물, 메카닉, aviation과 migration, 그가 감독한 단편 영화들과 아트 프로젝트 등을 보여준다. 이것들은 모두 wearability와 테크놀로지라는 단일한 미래를 향하고 있다. 전시회가 시작된 날 오후, 나는 나의 오랜 친구를 한때 그가 잘 가던 곳인 Covent 가든에서 만나 후세인 살라얀을 만들어낸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by Haidee Findlay-Levin

하이디 : 얼마전에 뉴욕 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당신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죠. "후세인"이라는 이름이 그곳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진 않을지 물어봤었는데요.

후세인 : 맞아요. 좀 줄여볼까 해서 제 이름의 한 부분에 대해 생각을 했었죠.

하이디 :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당신과 같은 이름을 쓰고 있죠. 어떤 느낌이죠?

후세인 : 그게 어떤 의미이든 그저 이슬람의 이름이죠. 저는 이름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믿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 이름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몇몇 매장들이 있었죠. 그것 때문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이름을 바꿔야 되나 생각을 좀 했습니다. 그리고 제 경우에 이름의 길이와도 관계가 좀 있어요. 그냥 터키식 이름인 Chalayan으로 부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으로는 읽을게 줄어드니까 그게 더 나을 거 같기는 합니다.

하이디 : 정치적으로, 우리는 지금 전환점을 보고 있는데...

후세인 : 사담 후세인이 사형을 당하고, 또 그 다음에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걸 보는 건 좀 아이러닉 합니다. 이건 미국의 위대한 점이에요.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죠. 미국은 이런 리버럴한 제도에요, 만약 잘 사용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모던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바마의 경우에 저는 그가 새롭게 시작할 진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저같은 디자이너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점이 있는지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 옷을 사는 사람들이 제 이름을 안보기를 바랄 뿐이죠. 그렇지만 캘빈 클라인의 이름이 랍비 아인슈타인 같은 거였다면, 그가 옷을 파는데 있어 지금하고는 상황이 상당히 달랐을거라고 확신합니다.

(레이저 드레스, 08 SS)

하이디 : 당신의 이번 전시회나, 평상시 작업들을 보면서 제게 떠오르는 가장 주된 주제는 아이덴터티와 이주, 그리고 displacement 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후세인 : 저는 그런 혼합된 지역에서 왔습니다. 정말 수프같은 곳이에요. 제 유전적 풀은 수많은 다른 문화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국가라는건 언제나 단일 문화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 속에서 우리가 진짜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건지 찾아내는데 언제나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터키의 키프로스 또는 그리스의 키프로스에 대해 알죠. 하지만 사실 그 섬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정복 당했었습니다. 그게 이 질문을 만들어냈죠.

하이디 : 그리고 영국으로 왔죠.

후세인 : 맞아요. 키프로스라는 멀티-에스닉한 장소에서 영국이라는 또다른 멀티-문화로 옮겨왔죠. 여기에는 최근 이주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키프로스에서 이주는 아주 긴 시간 속에서 발생합니다. 우리는 오스만 투르크 왕조의 진짜 후손입니다. 아주 하이브리드한 왕국이었죠. 술탄은 러시아, 이태리, 폴란드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할렘에는 터키인이 아닌 여자들만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이미 하이브리드 문화가 존재했죠. 영국도 수백년간 마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이디 : 그런 것들이 당신 작업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저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패션쇼를 보는 것은 매우 감정적인 경험인데요.

후세인 : 맞아요. 저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하이디 : 하지만 그것들은 매우 테크니컬하고 테크놀로지컬합니다. 감정과 테크놀로지를 어떤 식으로 조화시키죠? 처음에요.

후세인 : 저는 감정적이면서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정말 이 둘 사이에 있어요. 감정적인 생각으로 컬렉션을 시작하고 바로 제 이성이 이걸 가능하게 만듭니다. 저에겐 스토리텔링이나 시적인 부분이 있고 이런 아이디어들을 기능적인 부분들이 제 팀과 함께 물리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건 제 어머니의 가족으로부터 왔어요. 사물을 바라보고, 읽어내죠. 이건 Coffee-Cup 리딩(커피 자국을 보고 점치는 터키식 사주) 같은 거에요. 어떤 것을 바라보고, 여기에 다른 해석을 부여하는건 제가 타고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해보는 것은 영국 교육을 통해 배웠죠.

하이디 : 아주 어렸을 때 런던에 왔죠. 거의 런던에서 교육받았나요?

후세인 : 오락가락했어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저는 사실 런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5살 부터 12살, 그리고 또 16살부터 18살까지를 키프로스와 터키에서 교육받았죠. 단지 9년간 살았을 뿐이지만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이디 : 키프로스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후세인 : 키프로스는 아주 작은 섬이에요. 바다가 있고, 날씨도 좋고, 음식도 맛있죠. 거기에 디자인 문화는 없습니다. 그곳은 제게 관능과 역사적인 호기심을 주었지만, 런던에 와서야 패션 디자인에 대한 추구가 생겨났습니다.

하이디 : 만약 당신이 다른 곳에 살았더라도 지금같은 독특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후세인 : 아니죠. 런던에는 독특한 앵글로 색슨이 있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진보적이면서도 관용적입니다. 뉴욕이 그나마 좀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첫번째로, 유럽의 다른 장소와 비교할 때 여기에는 아주 오래된 이주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관용이 존재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날씨에요. 날씨가 안좋으면 당신은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뭔가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됩니다. 더운 나라에서는 밖에 나가면 재밌는게 많아요. 이건 진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주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디 : 따뜻한 해안가 같은 환경에서도 여러 beach 문화 같은게 있습니다만...

후세인 : 멋지게 보이는 것과 섹스하고자 하는 거죠. 물론 여기에도 엄청나게 섹스가 있습니다. Sex Galore! 하지만 런던을 독특하게 만드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른 어딘가에서 왔다는 점입니다. 개방성은 과거 행동들의 결과물이죠. 제국주의의 악행들이 그런 나라로부터의 이주를 감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퍼니쳐 드레스, 00 FW)

하이디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죠. 뒷마당에 드레스를 묻고 나중에 그걸 파냈는데요.

후세인 : 사람들은 땅이라든가, 시골과 관련된 것이 있으면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땅에 묻은 드레스가 LED 드레스만큼 진보적이고 현대적이라는걸 발견했어요.

하이디 : 동의합니다. 그것은 급진적이기도 했고, 시간과 무관하게 남죠.

후세인 : 바로 그거에요. 당신은 저를 오랫동안 알고 있었습니다. 땅에 묻은 드레스처럼 제 올리브 밭도 테크놀로지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때때로 테크놀로지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만, 아닐 때도 있습니다.

하이디 : 세인트 마틴에서의 생활에 대해 알려주시죠.

후세인 : 세인트 마틴은 잘 조화된 대학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물화 포트폴리오로 입학했고, 또 어떤 사람은 완전히 패션 빅팀이라서, 또는 건축적 배경이 있어서 입학이 허가됩니다. 그런 컬러풀한 곳이에요. 영화 Fame처럼 말이죠.

하이디 : 그런게 런던이 다양한 인적 자원이 있다고 알려진 이유일까요?

후세인 : 사실 더 큰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에요. 아마 금융 시장에는 돈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패션 쪽에는 없어요. 돈이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좀 더 창조적이고 열정에 가득 차게 만들어냅니다.

하이디 : 그래요, 열정에 가득 차있죠. 당신은 항상 테크놀로지, 예술, 건축, 영화 그리고 인류학 등에 대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뭘 해도 잘 할 것 같은데 왜 패션을 선택했죠?

후세인 : 저는 어디서도 성공 못할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있어서 관심의 초점은 저는 패션을 선택했고, 패션에 대한 제 방식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게 언제나 저의 목표에요. 저는 옷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만들어냅니다. 만약 영화를 찍는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었을겁니다. 여기에 세계들의 통합 같은건 없어요.

하이디 : 하지만 왜 옷이죠?

후세인 : 저는 부모님이 헤어진 이후 여자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아주 강인하지만, 또한 상처받기 쉬운 분들이죠. 저는 그래서 언제나 여성들에게 힘을 부여하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한 몸에 매혹당했어요. 인간으로서 만들어내는게 무엇이든, 예를 들자면 건물이나 자전거, 시스템들 말이죠, 그것은 몸의 확장입니다. 저는 언제나 몸을 찬양하고 싶고 제가 하는 모든 일들에 그것을 집어넣고 싶습니다. 제 부모님은 저를 건축가로 키울려고 했었죠,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몸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패션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99 FW)

하이디 : 하지만 건축도 상당히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데요.

후세인 : 제 생각엔 패션이 몸과 훨씬 더 가깝습니다. form 뿐만 아니라 movement에서도요.

하이디 : 이번 전시회를 보면, 마네킹들이 뭔가 이것저것 하고 있는거 같은데 뭘 하고 있는거죠? 그리고 이 마네킹은 특정한 사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건가요?

후세인 : 뉴욕의 Sarah Ziff라는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모델일을 하지는 않아요. 저는 언제나 그녀가 고져스하고 매우 애정이 넘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네킹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마네킹들은 올리브 밭에 물을 주거나, 벽에 페인트 칠을 하거나, 유리를 닦거나, 벽에 뭔가 쓰거나 하고 있어요. 이건 공간을 정화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쇼에 사용된 반은 4년 전에 네덜란드에 있는 Groninger 박물관에서 있었던 쇼에 사용했던 겁니다. 반은 새로 제작했고요. 마네킹이 어디에 있던지, 그 새로운 장소와 독특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 새로운 작업을 담은 새로운 버전의 마네킹들도 있습니다. 윈드 드레스나 (아래 사진) 낙하산 드레스 그리고 레이저나 LED 드레스 같은 것들이죠.

하이디 : 여러 디자인 상을 받았고, 5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Tilda Swinton과의 공동작업으로 터키를 대표해서 나가기도 했고, 영국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Memb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MBE)를 받기도 했는데, 당신은 여전히 자신을 가혹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후세인 : 저는 여왕에 의해 뭔가 시작될 필요는 없어요. 그런건 엄마나 할머니가 시켜서 하는거 같은 거죠. 그런 기반에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의미가 없는 종류이긴 하지만 다른 면에서 그렇지 않겠죠.

하이디 : 당신은 그 영예 위에서 쉬겠다고 멈추진 않겠죠. 당신이 적어도 상당히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나요?

후세인 : 작업은 끝나지 않아요. 저는 놀라운 일들이 있다는걸 느낍니다. 하지만 제 작업들은 더 발전하기 위한 프로토타입 같은 것들이죠. 저는 LED 패브릭을 좀 더 발전된, 하지만 프로토타입은 아닌 것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쉐이프를 바꿀 수 있어서 패브릭 자체에 변화가 내재된 것 같은 드레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의 진보는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02 FW)

하이디 : 퓨마와의 작업 진행은 어떻죠? 당신 자신만의 세계를 얼마나 집어넣을 생각입니까?

후세인 :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집어넣을 것입니다. 또한 제 세계와 별로 관계없는 견해들도 집어넣어야겠죠. 저는 퓨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입니다. 디자이너가 아니에요. 저는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합니다. 퓨마는 신발 회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옷이 아니라 신발을 통해서 아이덴터티를 만들어내죠. 저는 옷을 가지고도 그들의 아이덴터티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스포츠웨어-라이프스타일 회사들은 패션 레이블보다 테크놀로지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합니다. 매우 흥분되는 일이죠. 제 자신의 라인들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은, 예를 들어 지방시 같은 회사와는 파트너십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하이디 : 당신은 매우 많은 혁명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 중 일부는 실현되었지만 일부는 예산 제한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퓨마와 작업하게 된게 당신의 좀더 큰 야망을 실현시키는데 도움이 될까요?

후세인 : 퓨마와의 파트너십은 우리에게 일어날 최선의 일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제 브랜드를 확장시킬 기회를 주고,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만들고, 매장을 열도록 해 줄 것입니다. not in a big way, but in some capacity.

하이디 : 당신의 비전에 대한 쇼케이스가 있어야 할텐데....

후세인 : 여성들이 옷을 입어보고, 그것을 그들의 삶과 함께 통합시킬 수 있는 그런 랩을 창조할 매장이 필요합니다. 캣워크나 박물관에서 단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요. 우리는 매우 훌륭한 매장에서 국제적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배타적입니다. 랩 같은 것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실험적인 작업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데에는 문제될게 아무 것도 없어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꼭 상업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 commercial이라는 단어는 잘못 사용되고 있어요. 당신 옷이 웨어러블하다면, 그게 상업적인 겁니다. 꼼데가르송이나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해 놓은 일을 보세요. 그들은 패션 주류의 논의와 무관하게 그들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들을 보면서 급작스러운 유행과 무관하게 당신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런 걸 만들어내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박물관에서의 쇼는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제 자신의 전체를 보여줄 수 있죠. 어떤 방에는 하나의 옷이 있고, 다른 방에는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있죠.

하이디 : 많은 당신의 아이디어들이 상당히 중요한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그런건 많이 알려져있지 않죠. 당신은 그 영향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텐데요.

후세인 : 저희들의 잘 알려져 있는 작업들 말고, 덜 알려진 작업들을 참조한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알려지지 않죠. 만약에 디자인이 카피된다면 그것은 아첨같은 겁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접근 방식이 카피된다면 그건 무서운 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 머리 속에 들어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는 건 정말 무섭고 혼란스러운 일이죠. 예를 들어 다른 디자이너가 튈(얇은 망사)를 가지고 에어로다이나믹 쉐이프를 만들어낼 생각을 한다던가, 오가닉과 메카니컬을 합쳐볼 생각을 한다던가, 제가 언제나 해왔던 방식으로 그들 작업에 메카니컬한 부분을 포함시킨다던가 한다면, 그건 혼란스러운 일이죠.

하이디 : 당신의 작업들을 통해 상당히 많은 유머와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쇼 끝난 후의 파티에서 당신 아버지를 본 적 있는데 댄스 플로어를 돌아다니며 모든 여자들과 춤을 추시더군요. 그분으로부터 그런 성향이 온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요.

후세인 : 저는 애정과 웃음이 넘치는 지중해 문화로부터 왔습니다. 우리는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우둔한 데가 많죠. 저는 제 자신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업은 시각하게 하죠. 이건 다른 거에요. 그리고 또한 제 작업에 유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가 매우 심각할 때, 때때로 그것들은 웃기는게 되죠. Yashmak이나 Living Room 같은 시리즈들 조차도 말이죠. 때때로 심각함과 유머가 결합될 때 우스운 종류의 어떤 것이 생기기도 합니다. 너무 뜨거우면 차갑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제 작품들이 심각하게 웃기는(serious fun)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90203

구글 리더에서 계속 오류가 발생한다

구글 리더 별표 항목(Starred Items)에서 며칠째 에러가 난다.

별표 항목을 공개로 해놓고 공개된 항목 보기 하면 보이긴 한다. 그렇지만 별표 항목을 자주 쓰는데 안되니까 너무 불편하다. 뭐가 잘못된 건지는 나로서는 도대체 알 수 없고. 구글 도움말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여기에다가. 좀 보고 와서 고쳐줘요. ㅠㅠ

20090202

사진을 찍으러

하루종일 우중충하다가 사진이나 찍자 싶어서 길을 나섰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밤에 W호텔과 쉐라톤 워커힐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꽤 괜찮았던게 생각나서 5시 반 쯤에 광나루 역에 도착 호텔 셔틀 버스를 탔다. 금방 도착은 했는데 아직 해가 떠있어서 시큰둥.





나무 계단에서 아직 얼음이 있는 한강을 바라보다가 해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싶어 잠깐 돌아다녔더니 금새 다리 끝이 아파온다(요새 좀 아프다, 거의 다 낫긴 했는데 괜히 무리할 타이밍은 아니다). 워커힐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옆에 젊은 중국인 세명이 떠드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할 게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번뜩 들어 달랑 사진 두 장 찍은거만 들고 다시 셔틀 버스 타고 내려왔다. 강변역까지 타고 와서 테크노마트 푸드 코트에서 살다 살다 최고로 맛없는 마파두부 덮밥을 먹고 무인양품 매장을 어슬렁거리다 귀가. LABO 세일을 하고 있는걸 그냥 지나친게 조금 아깝다. 폭신폭신한 스웨터가 무척 맘에 들었다. 이런 시기에 만나다니 내 팔자가 아닌 거겠지.

그래도 밤에 온 전화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다. 일희일비 하는 자신이 밉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타이밍도 있는게 인생이다.

20090131

보편적인 노래

이제 와서 통속적인 가사와 분위기의 노래를 듣고 우울해지는 내 자신을 보면 한심하기도 한데 어쨋든 이런 습성은 끝이 나지 않는다. 요즘에 거의 매일 같이 브로콜리의 보편송을 듣는다. 딱히 엄청 좋아서라기 보다 아이팟 미니 4G에 들어가 있는 곡들을 고르다 고르다 보면 옷장에 옷들이 가득차 있어도 입을 건 없듯이, 들을 게 없기 때문이다. 충전을 집에 들어가자마자 하는 것도 용한데 매일 매일 안에 들어있는 곡을 교체하는건 말도 안되게 귀찮고.

그러든 저러든 보편송은 남자가 보컬 메인인데 부르다가 여자가 확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다(둘 다 이름은 모르겠다). 그 부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은
이젠 지키지 못할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 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이 부분이 튀어 나올때마다 왠지 눈물이 핑돈다.

방점을 찍고 가다

정치와 경제같은 거시적 문제들에 대해서만.

1992년 이후 그런 부분에 꽤나 관심이 많은 내가 요새는 그다지 의욕이 안난다. 얼마전 용산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는데 관련해서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담은 블로그 포스팅 몇개 끄적거린게 전부다. 작년만 같았어도 추모 현장같은데서 어물쩍 거리기라도 했을텐데 잘 안된다.

살면서 지금까지 꽤나 많은 투표를 했는데 솔직히 말해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맞다고 생각한게 그토록 잘못된 거라고는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왜 그럴까 하는 점은 고민해 보고는 한다. 잘 모르겠다. 무슨 거대한 변수가 따로 존재하는지 몰라도 나와 (계급적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뽑은 사람 안 뽑아서 좋은 일 생기는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다들 계속 그런다. 우리나라 사회의 중대한 비밀 몇 개를 내가 놓치고 있는건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생각이 난 김에 심시티나 해보면서 도시를 경영하는 사람 입장이 한 번 되볼까 했다. 그러면 뭔가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예전에 캐피털리즘 게임을 해본 적 있는데 그때 알아낸 건 자본주의는 오직 독점이 승리한다는 사실이었다. 영 이상한 시점으로만 바라보는거 같지만 여튼 그 게임에서 독점은 위대하다. 심시티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그런데 컴퓨터 사양이 안된단다. 업그레이드 하려고 봤더니 CPU 핀 수 마저 달라져서(내껀 478, 요새 나오는건 775) 메인보드, 램 등 거의 몽땅 바꿔야 된다. 인텔의 수작에 나같은 사람은 꼼짝도 못한다.

지금껏 소위 잘못된 투표를 해오면서 그다지 실망한 적은 없다. 그저 허위 의식이라든가 소외라든가 하는 이론적인 문제들을 나름대로는 검증하는 기회였다고 말하면 그나마 조금은 긍정적이다. 이렇게 의욕이 없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던 거 같다. 굉장히 많은 시위들이 있었고, 시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그나마 형성되어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적어도 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졌다.

아무 것도 믿지 않고, 넓은 시야를 지니되 옳다고 믿는 걸 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그때는 너무 믿었나보다. 믿은 만큼 실망도 컸다. 잘 이해가 안가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세상은 그런 현실을 꼭 붙잡고 뚜벅뚜벅 쉬지 않고 걷고 있는 자들의 편이다. 이익이 달린 일에는 누군가 움직여 주지만, 믿음 따위로는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레프티스트들은 언제나 소수고 혁명가들은 대세가 결정되는 순간 다수로 바뀐다. 이익이 걸리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와 로자 룩셈베르크는 그래서 실패했다. 사람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피해를 감수해 가며 소비에트 연방을 만든 사람들도 그래서 실패했다. 한반도 북쪽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움직인 사람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제거되고 마는게 역사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나가는데 어쨋든 그 이후 뭐가 어떻게 되가는건지 잘 이해가 안가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 경제 같은 거시적 부분 말고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여러 부분에 실패해 버린 작년 한해의 기억들도 끼어있다.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내가 뭘 그리 잘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뭔가 벌 비슷한 걸 받고 있는건 분명하게 보인다.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별로 없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골치 아픈 일만 더 쌓이니까 아예 안보고 만다. 당장은 해결할 방법도 없고.

그래서 방황을 하고 있다. 울면서도 희망을 꿈꿔야 사람 사는거라고 믿으며 살았다고 나름은 자부했는데, 이젠 그것마저 잘 안 되는 걸 보면 좀 한심하긴 하다. 이런 인생이 다 있냐 싶기도 하고. 그러나 저러나 어쨋든 난 해보고 싶은 것도 아직 많고 못 본 것도 많으니, 죽거나 어디 산 속에 쳐박혀 은거하거나 하지는 않을거다. 그렇다고 다음 선거까지는 멍하니 있을 수가 없는게, 아직 너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요새 기분으로는 그때 가서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 쓸데 없는 믿음 따위는 안가지는게 낫다.

그러니 무슨 계기라도 붙잡아 다시금 스티뮬레이팅 하고 싶은 욕망에 쌓여있는게 현재 상태다. 조금 무리해 여행도 가고 했는데 아직은 그냥 그렇다. 무엇보다도 "의욕이 없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게 문제다. 정신적 자극을 줄만한 어떤 것을 주변 몇 명에 요청해 봤는데 그들 역시 삶에 치어 있어 나까지 돌 볼 겨를이 없다. 좀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래도 서로 잠시나마 걱정이라도 해주는게 어디냐 싶다. 왠지 힘들다. 계기를 꼭 찾아야 하는 나 자신의 유약함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아무나 던져주는 지푸라기라도 일단은 붙잡고 싶다.

20090129

우중충

요새는 우중충하다. 세상 만사 잡스러운 일들이 모두다 몰려들어 내 발목을 꼭 붙잡고 안놔주는 느낌이다. 이게 다 지나가면 이제 안붙잡을려나. 기대하는 것은 그것 뿐. 이글루스에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덕분에 잡스러운 이야기들은 여기에 끄적거리게 된다. 그나마 요새는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별 이야기도 못하고 있다만.

오늘 찍은 사진이나 한 장.

Getting bang for the buck

[두번째도 경제 관련 글이고 역시 케인지 학파의 논의다. 케인지언 캠프發로 3가지 아티클을 읽었는데 그 중 두번째. 첫번째 번역했던 케인즈에 비해 확실히 요즘 말이라는 느낌이 나고 내용도 스피디하다. 돌려 말하는 것도, 고풍스럽게 - 괜히 복잡하게라는 뜻이다 - 꾸미지도 않는다. 알아듣기는 하겠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뭔가 이상한게 있어 그냥 원문으로 남겼다. 혹시 그 부분에 대한 번역 아이디어가 있다면 남겨주시면 고맙겠다]

가디언, 2008년 12월 5일.
by 조세프 스티글리츠



우리는 현재 모두 케인지언이다. 미국의 우파조차도 해방된 열정을 가지고 케인지언 캠프에 합류했다. 한때는 진정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자신을 케인지언 전통과 어떤 연결선 상에 있다고 언제나 주장했던 우리같은 사람들은 근 30여년간을 황무지에 버려졌고, 거의 잊혀졌었지만 지금은 승리의 순간이다. 어떤 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이데올로기와 이익에 대한 이성과 증거의 승리를 뜻한다.

경제 이론은 오랫동안 왜 족쇄가 풀린 시장의 자동 조절되지 않는지, 왜 규제가 필요한지, 왜 경제안에 정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특히 금융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시장 근본주의"의 일종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팀의 멤버다. 잘못 인도된 정책들이 개발 도상국에 거대한 비용 부담을 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런 정책의 비용이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에도 주어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계몽의 순간은 찾아왔다.

케인즈는 시장이 자동 조절되지 않는다는 주장 뿐만 아니라 심각한 하강 국면에서 통화 정책은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재정 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재정 정책이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계 부채와 높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금 감면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1990년대에 일본에서 그랬다). 작년 2월달의 세금 감면액들은 다는 아니겠지만 거의 대부분 저축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부시 행정부 기간이 남겨놓은 거대한 부채 덕분에 모든 달러의 사용에 미국은 가장 거대하고도 실현 가능한 자극을 유발해야 한다. 기술 분야와 인프라, 특히 신선한 종류에 대한에 대한 저투자와 부자와 빈자의 간극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단기 지출과 장기 전망의 일치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세금과 지출 프로그램 양자 모두의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된다. 가난한 자들의 세금을 감면하고 실업 보조금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는 것은 경제에 자극을 줄 것이고 적자를 줄이고 불평등을 완화시키게 된다. 이라크 전쟁에의 지출을 깎고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단기와 장기 산출을 동시에 늘려줄 것이고 적자를 줄여 줄 것이다.

케인즈는 경제 활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통화 당국의 화폐 공급이 효과가 없는 상태인 유동성 함정에 대해 걱정했다. 미국 연방 준비제도의 의장 벤 버냉키는 대공황 때 화폐 공급을 축소시키고 은행을 도산시켜 경제 불황을 심화시켰던 Fed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역사와 이론을 신중하게 읽고 있다 : 금융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단지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이다. 신용의 흐름은 무척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공황 시기에 은행이 실패한 이유는 신용할 수 있는 것들을 결정하는게 무엇인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들은 신용의 흐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 제도는 1930년대 이후 극적으로 변했다. 많은 미국의 거대 은행들은 "빌려주는" 사업에서 "움직이는 사업"으로 변신했다. 그들은 자산을 사들이는데 초점을 두었고 그것들에 대한 위험 측정과 신용할 수 있는 것인지 걸러내는 일이 불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다시 포장해 팔았다. 수조 달러가 이러한 기능 장애 기관들을 유지시키는데 사용되었다. 단기적 시야의 행동을 부추키고 과도한 위험을 떠안게 만드는 그들의 삐뚤어진 인센티브 구조를 포함해 거의 아무 것도 알려진게 없다. 개인적 보상이 사회적 이익으로 부터 크게 멀어지게 되면서 개인적 이익 추구가 이런 사회 파괴의 결과를 만들어내는건 놀랄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 회사 주주의 이익조차 제대로 보상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돈을 빌려주고, 신용을 산정하는 사실 은행이 해야 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연방 정부는 수조 달러의 부채와 위험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금융 제도를 구해내기 위해서 재정 정책 못지 않게 "본전을 찾을 만한 가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8년간 두배가 되버린 재정 적자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치솟게 된다.

9월에 정부가 이자와 함께 돈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구제 조치가 시작되자 지난 몇 년간 그들이 계속 해온 금융 시장의 위험에 대한 잘못된 평가의 또 다른 예들의 분명한 점들이 증가했다. 버냉키와 폴슨의 구제 조치라는 개념은 세금 납부자들에게 불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본업인 대출의 증가에 불도 거의 못 붙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규제 완화가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금융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의 자유화에 잘 적응해 나갔다. 미국이 위험한 금융 상품들을 팔 수 있게 해주었고,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커다른 비용을 부과하는데도 거의 모든 다른 나라가 이 회사들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일조하도록 만들었다.

Today, the risk is that the new Keynesian doctrines will be used and abused to serve some of the same interests. 10년 전에 규제 완화를 주장했던 자들은 교훈을 얻었을까? 아니면 그저 적어도 몇 조 달러의 구제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눈속임의 혁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에 바뀐 게 있을까, 아니면 그저 전략이 바뀐 것일까?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정황으로 보건데 케인지언 정책의 추구가 시장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이익이 나는 것으로 보이는건 아닐까?

십여년 전 아시아에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제 금융 구조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 별로 한 건 없다. 우리가 좀 더 안정적이고 번영하고 공정한 국제 경제를 만들 생각이 있다면 지금의 위기에 대해 적당히 대답하면 안되고, 장기적 혁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20090128

Spend, Spend, Spend

[처음은 경제 고전, 좀 어려워서 해석 못한 부분도 많다. 대괄호 안은 나의 코멘트, 영향력의 측면에서 그때도 그렇고 또 요즘같은 시기에 한번 되돌아볼 만한 중요한 글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의역과 오역이 난무하므로 공식적으로 활용 불가, 원문 링크는 귀찮아서 생략. 약간 궁금한 점은 케인즈가 자국인 영국의 경제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단지 미국에 대한 염려와 충고라는 선의의 편지를 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뉴욕 타임즈, 1933년 12월 31일자.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by 존 M. 케인즈

대통령에게

당신은 현존하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의 합당한 실험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현재 우리 상황의 나쁜 부분들을 고치고자 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실패한다면 싸워서 해결해 나가야할 독단론과 혁명들만을 남겨 놓은채 합리적인 변화는 크게 적대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성공한다면 새롭고 대담한 방식들이 전세계에서 시도될 것이고 당신이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을 새로운 경제 시대가 시작되는 첫번째 순간으로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있고 부분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가 저의 견해를 당신 앞에 보이고자 하는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 안에 있는 당신의 지지자들은 현재 신경이 곤두서있고 때때로 낙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위급함의 순서가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건지 의심스러워 하고 있으며, 목표에 혼동이 있는건 아닌지, 또 당신이 들은 충고들 중에 멍청하고 이상한 것들이 섞여있는건 아닌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지켜주는데 있어 우리가 당황스러워 하는게 있다면 이건 부분적으로 런던의 현재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대단히 왜곡된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평범한 런던 시민들은 believes that you are engaged on a hare-brained expedition in face of competent advice, that the best hope lies in your ridding yourself of your present advisers to return to the old ways, and that otherwise the United States is heading for some ghastly breakdown. That is what they say they smell. 이건 머리보다 코가 더 훌륭한 기관이라고 믿는 자들에 의한 wise head-waging의 재현입니다. 런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리가 보게 될 것을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 말을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슬럼프로부터 벗어나고 비즈니스의 통로를 다시 만들어내는 회복과 지금껏 미뤄왔던 사회적 재건이라는 두가지 문제에 얽혀있습니다. 첫번째로 속도와 빠른 결과는 필수적입니다. 두번째 역시 위급한 일입니다. 하지만 서두름은 치명적이 될 수 있고, 장기적인 목적의 지혜는 신속한 성과보다 더욱 필수적인 것입니다. 단기적 회복의 성공은 미국 행정부의 위상을 높일 것이고 그것이 장기적 재건을 달성시킬 추진력이 되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혜롭고 필요한 재건이라고 해도 어떤 측면에서는 회복을 방해하고 복잡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들의 자리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기 전에, 이것이 기업들의 확신을 감소시킬 것이고 행동하고자 하는 동기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개인주의와 이제는 크게 남아있지는 않은 오래된 엽관주의를 지닌 미국 행정부가 처리하기에 넘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미국 행정부가 목표와 사고에 있어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다가 뒤죽박죽이 되버릴 것입니다.

제 두번째 견해는 재건의 테크닉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재건의 목표는 국가 생산을 높이고 사람들을 일하게 만드는데 있습니다. 현대 세계의 경제 시스템에서 생산은 우선적으로 판매를 위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생산의 양은 생산물의 최초 가격보다는 시장에서 나타나게 될 구매력의 양에 의해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말해 하나 또는 나머지 세 요소의 작용이 아니라면 생산의 증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개인들은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득으로부터 돈을 쓸 생각이 유발되어야 합니다. 또 기업들은 경제 전망에 대한 확신이 증가하거나 이자율이 낮아질 경우에야 현재 고용되어 있는 직원들을 가지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생산을 증가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건 국가의 고정 자본이나 노동력이 증가할 경우에만 발생합니다. 그리고 공공 당국은 빌리든 돈을 찍어내든 그것을 소비해야만 새로운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안좋은 시기에 첫번째 요소인 개인이 만족할 만한 규모로 일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The second factor will come in as the second wave of attack on the slump after the tide has been turned by the expenditure of public authority. [PA의 소비가 있어야 두번째 요소인 기업이 공격적인 두번째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뭐 그런 이야기인 듯]그러므로 오직 세번째 요소인 공공 당국만이 초기의 강력한 충격을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두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첫번째는 물가를 올려 재건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물가가 올라가는건 산출이 늘어나고 고용이 증가할 신호이기 때문에 때때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더 많은 구매력이 만들어진다면 물가가 오르는 것을 보고 산출이 늘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물가가 올라지 않으면 산출이 증가할 수 없기 때문에, 통화 회전율을 증가시키기 위한 부족한 양의 통화 공급에 의해 재건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산출의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물가를 올리는 부분에 대해서 말들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채무자들은 도움을 받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국가 재건은 더디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원가를 올린다든가 산출을 제한함으로써 물가를 올리는 일은 국가의 구매력이 증가해 그 결과로 물가가 오르는 것에 비해 무척 안좋은 생각입니다.

이번 가을에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퇴보는 미국 행정부가 첫 6달 동안 새로운 대부 지출을 괄목할 만한게 증가시키는데 실패한 결과로서 예상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6개월 간의 포지션은 완전히 당신이 가까운 미래에 거대한 지출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별 지출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놀라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짧은 시간동안 쓸만한 대부 지출을 늘리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줬습니다. 여기에는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잘못한다면 비효용과 타락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미국 내에서 광대한 공공 업무를 급히 시행하는걸 어렵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천천히 해서 발생하는 위험은 급하게 해서 만들어 내는 위험보다 훨씬 큽니다.

또 다른 잘못된 생각은 통화 수량 이론이라는 조악한 경제 이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저는 이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산출을 올리고 수입을 늘리는데 있어 화폐량이 고정되어 있다면 조만간 경제 퇴보로 고통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로부터 산출과 수입이 화폐의 수를 늘림으로써 증가시킬 수 있다고 추론합니다. 하지만 이건 살찌기 위해 커다란 벨트를 메는 것과 똑같은 행동입니다. 화폐 수량은 조절할 수 있는 요소인 재정 지출에 비해 제한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늘리자는 것은 가장 잘못된 생각입니다.

또한 금 값과 다른 가격간에 수학적 상관 관계가 있다는 믿음 역시 바보같은 생각입니다. 무역에 의해 생겨나는 외환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에 의해 이런 것들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달러화에 대한 고평가는 국내의 물가 상승 정책의 자유와 외국과의 무역 균형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가치 하락을 시키려는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무역에서의 달러화 가치하락은 성공적인 물가 상승 전략의 자연적인 결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의적으로 이 가치의 정당성을 방해하려 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살 위에 벨트를 차려하는 시도의 또다른 예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제가 유동성을 조절하거나 안정적인 무역보다 안정적인 가격을 선호하는 제 견해를 약화시키려는 건 아닙니다. 유동성과 한 나라의 무역 정책은 산출을 늘리고 고용률을 적당한 수준으로 만들어 내는 목표에 완전히 이바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근래의 달러화의 회전은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유동성 관리라기 보다는 몹시 취한 금본위제처럼 보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비판이 저의 연민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훨씬 명백하다는 점을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정부의 일에 대한 일반적인 전망과 태도라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연민에 가득찬 지도자로 보입니다. 당신은 법칙의 심오한 변화의 필요성을 바라보고 편협이나 파괴, 독재없이 이를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당신이 개개의 테크닉의 디테일한 점들을 편협하지 않게 몸소 가야할 길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느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의하면 영국에서 당신의 위치는 비평이나 다른 것들에 의해 건들여지지 않는 존재로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희망과 믿음은 더 넓은 심사 숙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가까운 미래에 좀 더 확실한 개념들을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국내적인 정책의 부분에 있어서 저는 위에서 말한 이유에 의해, 맨 앞에다 정부 후원하의 커다란 재정 지출을 제안하겠습니다. 어떤 부분에 재정 지출을 할 것인가는 제 견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로 빠르게 완성될 수 있는 것들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철로의 정비와 재건설같은 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목표는 볼을 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약 6개월 안에 좋고 강력한 시도가 주어진다면 미국은 번영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싸고 풍부한 신용의 지속과 장기 이자율을 내리는 것을 들겠습니다. 영국에서 흐름이 바뀐 건 전쟁 대출을 전환시킨 후에 장기 이자율이 내려간게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영국 은행의 공개 시장 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FRB가 현재 가지고 있는 단기 채권들을 장기 채권을 구입해 바꾸기만 하면 되는데 저는 왜 당신이 모든 채권 시장에 대한 반향으로 장기 미국 국채의 이자율을 2.5%나 그 이하로 내리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정책은 몇 달 내에 효과를 보이기 시작할 것인데 이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정책들의 확장이나 적용과 더불어 저는 큰 확신을 가지고 성공적인 산출을 기대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물질적 번영 뿐만 아니라 지혜와 정부의 힘에 대한 인간의 믿음을 회복시키려는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With great respect,
Your obedient servant

JM Keynes


20090121

권리 그리고 과격

무허가 건물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재산권을 인정받았나

1980년대 초반 목동에는 안양천 변을 따라 긴 뚝방촌이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가구주 2500세대, 세입자 5200세대로 합쳐서 300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1960년대 후반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가 개발되면서 그곳 일대의 판자촌이 강제 철거되자 옮겨온 사람들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안양천 주변으로 주민들을 옮기며 이들에게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영화 방식으로 서민 주택을 싼 값에 대량으로 공급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도시 미화 사업을 시작했는데 1983년에 서울시는 강서구 목동과 신정동 지역에 신시가지 140만평을 조성한다고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서민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취소하고 20~60여평 대의 아파트를 짓겠다고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안양천 변 주민들에게는 이주비 50만원과 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아파트 분양가격은 최소 평형인 20평짜리가 2100만원. 1983년에 2100만원이 있었다면 사실 그들이 안양천 옆 뚝방촌에 살 이유가 없다. 알다시피 무허가 주거지에도 세금이 나온다. 근 20여년간 취득세, 재산세 , 건물분 토지사용료를 내며 지내온 주민들은 이제 꼼짝없이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목동 주민들의 철거 반대 투쟁이 시작된다. 주민들은 조직 체계를 만들고 공권력에 맞서 철야 경비조와 지역 대기조를 운영하였다. 500여명 단위로 신민당과 KBS, 영등포 로터리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고 국회의원 선거때는 민정당 후보 낙선 운동을 전개했다. 경인 고속도로를 4번이나 차단했고 서울 시청을 향한 진격 투쟁을 15회 전개했다. 구속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위원회를 만들어 대학 등 집회가 있는 곳마다 찾아가 목동 주민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는지를 알렸다. 또 주민 총회를 통해 자녀들의 등교 거부 투쟁도 벌였다. 이런 시위가 100회 이상 3년이 계속 되었다.

마침내 가옥주들은 무허가 주택의 재산권을 인정 받을 수 있었고 세입자들은 10평 아파트 입주권과 가장 저렴한 비용의 융자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성공에 자극 받아 사당동 지구, 송파 가락 지구, 오금동 지구 등에서도 연대에 의한 철거 반대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역 내에서의 조직화/의식화라는 단계를 거치고 지역간 연대 조직 결성의 형태로 나아갔다. 이렇게 확대 재생산 되가는데는 사실 87년 6월 항쟁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조금만 역사를 뒤적거려보면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주 40 시간 근무라든가, 어린 아이들 과노동 금지같은 지금 보면 적어도 성문법 상으로는 당연히 보장되어 있는 권리들을 획득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고 많은 희생이 따랐는지 찾을 수 있다. 권리는 가만히 있는 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베풀어 지는게 아니다. 자신들이 찾아내고, 그것을 요구하고, 끝내 관철시키는데 성공했을때 권리로써 존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격 시위의 무용성을 지적하고, 노조나 철거민 등의 시위를 보며 그저 돈 좀 더 얻을라고 저리 소란스럽고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오랜 시절동안 중산층에게 상당히 많은 권리를 보장했고 결국 계급간 분화에 성공했었다. 중산층들은 빈민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그것은 내일이 아니며/오히려 방해가 된다라고 생각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자유주의 개혁은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고 덕분에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나의 권리를 보장받는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상류층과 하류층만 존재하던 시절에 비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후 제도권 국가에서 시도된 중산층 포섭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식민지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이러한 허위 의식에 기반한 계급간 갈등 유발 정책은 정말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순수하게 대결 국면에서의 전략적 측면에서 본다면 감탄이 나온다.

시민들의 총합으로써 나라가 만들어진 것 임에도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할 때 '어떤' 시민들의 의견을 경시한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마도 국가의 내가 결국은 옳다라는 선민 의식이거나, 선도하고 싶어하는 욕구의 표출일 것이다.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결국은 선생질을 하고 싶은 것이다. 도시 미화도 아파트 건설도 나쁠 것 없다. 

그리고 만약 지가 상승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거쳐 새로운 재산이 창출된다면 그것도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보호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들도 저들도 시민이고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고 같은 정도로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낭비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

20090120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자 해도

이 막장 나라는 사람을 내비두지 않는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090120145814122&p=yonhap

예전에 쓴 이야기 중 중간에 나오는 철거민 연합 시위의 주체가 전철연이었다. 나는 명동 거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80년대 목동, 사당동에서의 철거민 투쟁을 거치고 87년 6월 항쟁을 경험하면서 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서울 철거민 협의회가 87년에 만들어지고 94년에 전철연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 짧은 문장에는 너무 많은 역사가 담겨있고 그 안에 드리워져있는 갈등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만 명시해 둔다.

60, 70년대의 잠실과 강남 개발, 88년 올림픽 때문에 철거민들이 대량 양산된 나라라(예전에 읽은 슬럼이라는 책에도 한국의 철거민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가 무척 길다.
http://macrostars.blogspot.com/2008/06/blog-post_05.html

개인적인 견해로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 정책에 왜 그곳 거주민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동의를 해야하는지, 왜 나라의 토지보상법(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을텐데 생각이 안난다)은 주민 50%의 동의만 있다면 강압적 철거가 가능하게 명시되어 있는지, 왜 또 그런 허섭한 법들이 군사 독재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널부러져있는데 사람들이 용인하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돈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잔인하다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말하면 길어지니까 이쯤에서 관두자.

예전에 다른 블로그에 썼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http://macrostar.egloos.com/4552037
6번 내용. 그게 인상적인 사람들이 역시나 많았었나보다. 이번 일도 용산구에서 생긴 일이다. 공직은 벼슬이 아니다. 니들이 대우를 하든 말든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민주 시민이다. 저딴 말이나 써놓으니까 민주 공권력 대접을 못받지.

20090119

추운 겨울을 지내는 힘

1단계

2단계

방이 점점 몽골인 텐트, 혹은 이글루처럼 되간다. 마음 같아서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처럼 순록 가죽같은 걸로 덮어놓고 싶지만 그런거 없다. 환기용 구멍을 남겨 놓기는 했지만(커텐 부분) 방이 점점 어두워 지고 있다는게 문제. 이게 밤인지, 이게 낮인지, 난 누군지, 또 여긴 어딘지. 

온도는 조금 올랐는데 (현재 무려 20도라는 기적의 온도) 강추위가 지나간 다음에 담요를 친 거라 설날에 추위가 또 온다는데 어떨까 여전히 걱정. 좀 구질구질하면 어때. 일단은 사람이 살고 봐야지!

20090118

번역은 아직


번역이 너무 길고 어려운 걸로 시작하는 바람에 캐고생중. 현재 진행중 ㅠㅠ 
그건 그렇고 무한도전 방영중에 나온거라는데 왠지 절묘하구나. 사진은 퍼왔음. 그나저나 다음은 더 한 사람이라던데 ㅠㅠ 
그런데 블로거는 gif가 왜 안움직이는거야 ㅠㅠ
왜 맨날 울어 ㅠㅠ

20090115

단절

집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선다. 배가 고프다. 탄수화물은 싫은데, 탄수화물은 싫은데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결국 김밥 헤븐에 들어가 떡라면을 시킨다. 탄수화물과 조미료가 만들어내는 이 포만감이 무척이나 싫지만, 뱃 속이 텅 빈 듯한 허함은 더더욱 싫다. 역으로 걸어가다가 한 정거장만 걷기로 한다. 그다지 춥지는 않다. 작년에 공사가 끝난 둥글둥글하게 생긴 두 개짜리 주상 복합 아파트에서 나오는 불빛이 눈에 거슬린다. 가까이 지나가다 보니 비어있는 거대한 일층 사무실에 억지로 불을 켜놨다. 그러고 보니 위에 주르륵 들어온 등불들도 같은 색이다. 괜시리 저리 켜놓는건가... 난들 알게 뭐냐.

지하철 역 의자에 앉는다. 아이팟이 갑자기 꺼진다.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여하튼 배터리 교체하고 처음이다. 이 불길한 암시가 맘에 걸린다. 아이팟 미니가 난데 없이 꺼졌을 경우 조금 기다렸다 다시켜면 배터리 마크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어제 자면서 충전해 놨으니 벌써 다 떨어졌을리는 없다. 플레이 버튼을 다시 누른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케미컬 브라더스, 에픽 하이, 브로컬리 너마저, 그루브 아르마다, 백현진의 음악이 차례대로 나온다. 지루한 것들, 지겨운 것들.

지하철이 5대 쯤 지나간다. 일어나기 싫다. 뭔가 허하고, 뭔가 우중충하다. 안에다 억지로 껴입은 오리털 잠바 팔 끝에 기름 때가 묻어있다. 언제쯤 세탁을 했더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외투도 구석구석 더럽다. 지겹구나. 왜 다 이모양이지.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다가 지하철을 타러 간다. 아저씨, 아줌마, 교복, 직장인, 화내는 사람, 웃는 사람, 술취한 사람. 날씨가 좀 더 따뜻했으면 어디든 돌아다닐텐데 하고 생각한다. 문래동에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아휴, 지금껏 몇 년을 돌아다녔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아. 나쁜 일만 계속 쌓이잖아. 됐다. 하릴없이 칼로리를 낭비하는 일 좀 그만하자. 낮에 찍은 하늘 사진을 본다. 휴대폰으로 잠깐 게임을 한다. 손이 떨린다. 그만 두자. 그만 두자.

투덜투덜도 지겹다

이름은 발전소인데 전기는 안 만들고(덴키 그루브 요새도 활동하나) 맨 남 탓만 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요새 영어 공부한다고 이런 저런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 그거 번역이나 좀 올려보면서 평화와 안정을 좀 얻어볼까 생각 중이다.

20090109

미네르바가 잡혀갔단다

미네르바 이야기는 한 번도 쓴 적 없는데 나도 껴본다. 미네르바가 잡혀갔다. 인터넷 보도의 첫 머리는 전문대 출신 30대 무직 남성이다. 눈에 확 띄는 단어는 '전문대'와 '무직'이다. 전문대 졸업이라는 학력과 지금 직장이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가 했던 말을 평가하려고 하고 있다. 대체 글의 진위라든가 내용의 함의와 저 둘간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과연 어제 잡힌 사람이 미네르바가 맞는거냐 라는 논란도 있기는 하지만 만약 맞다 하더라도 야, 전공도 아닌데 저만큼 공부했다니 열심히 했구나 대단하네, 고생했다가 맞는 대답 아닌가. 또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게 있다면 이건 이러이러하니 잘못 생각한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토론해 가는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자세지 전문대에 무직이라니까 '전 국민 우롱한 금융 사기극'이라니 그건 또 뭐하는 헛소리냐. C 일보는 다들 대학 나와서 신문이 그리도 잘난 이야기들만 가득 차 있는건가?

어떻게 되었든 정말 문제는 미네르바 같은 소리를 하면 잡혀간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목격한걸 목격했다고 말했다고 (설령 잘못 봤을수도 있겠지만) 잡혀간 또랑님에 이어 두번째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 나라가 정말 민주주의 국가가 맞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다 쪽에 많이 기울어 있는게 정답인 듯 하다.

비상경제시국이라고 지하 벙커까지 들어가서 쇼하는 양반도 있는데 정말 게엄령 쯤 선포한 걸로 착각하고 있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현 재경부 장관이 IMF때 우리나라 펀더멘틀도 튼튼하고 외환도 잔뜩 있다고 뻥 친건 기억이나 하고 계시는지들 몰라.

결론적으로, 어떤 경우든 경제 전망에 대한 평가는 시장이 한다. 누군가 옳은 전망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그가 틀리기 시작하는 순간 떠나간다. 루비니의 말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지금은 모두들 귀를 쫑긋 새우고 있다. 그의 조언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위기의 끝을 전망하는데 실패한다면 그는 단지 21세기 초반 찾아온 세계적 경제 불황 대처에 기여한 학자 중 한명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게 전망가들의 생애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미네르바도 가만히 두면 잊혀진다. 뭐하러 들쑤고 다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20090108

우파가 폭주하는 경우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8276
박노자 교수의 이스라엘에 대한 글. 가만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좌우(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 표현하든지) 이념간 어떤 균형이 있었는데 한쪽 편이 나라 설립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그 결과물이 벌이는 일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런 식의 균형이 무너져버린 사회는 여러 곳이 있는데 예를 들어 소비에트 연방이 그랬다. 정치적 토론, 경제적 이념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로 나라가 만들어졌고 결국 사라졌다. 미국같은 경우는 대안 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게 만들어져서 상당히 자주 믿을 수 없을 짓들을 저지른다. 세계의 안전이니 뭐니 외치지만 당연히 다 뻘소리다. 

사실 멀리 뒤지고 다닐 것도 없이 바로 여기에 좋은 예가 있다. 눈치 챘겠지만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이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균형을 이루어야 할 사상이 각각 따로 나라를 만들었다. 그 결과물은 상당히 골때린다. 한동안 우파 폭주 상황이 있었는데 10년간 약한 우파들이 살짝씩 폭주를 했다. 그에 만족하지 못한 시민들은 다시 폭주하는 우파를 선택했다. 

그 결과물들이 오늘도 뉴스에 나와 밀어붙인 법들이 통과하지 못한 걸 아쉬워한다. 꼴보기 싫든 말든 시민 다수가 선택했으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찌가 다수에 의해 선택되어 저지른 일을 보고 방어적 민주주의 이념이 등장한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절차 민주주의는 왜 하고 있는 걸까. 해야할 당연한 것들을 안 하면서 경제가 시급하다느니 하며 뻘소리만 해대니 웃지도 못할 노릇이다. 

팔레스타인의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그리고 남쪽과 북쪽의 답답하기 그지없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귀신은 뭐하나 몰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북쪽도 뻘짓하고 있긴 매 한가지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견제가 없으면 바보가 된다.

20090107

walk alone, listen from the ambience

제목을 바꿨다. 소문자로 표시되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하지만 지금 블로거 자체 글쓰기 모드 위로 보이는 화면에는 특유의 터무니 없이 귀여운 폰트로 선명히 새겨져있다. 이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누구 보라고 쓰는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떠냐. 이건 삶의 테제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숲 속을 생각했다. 깊은 숲 속을 바스락거리며 걷다 가만히 멈춰 귀를 기울이는 모습. 예전에 소요산에서 그런 적이 있다. 산 입구부터 시작해 정상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동안 단 한명도 보질 못했다. 뭔가 등산 간 나 빼놓고 세상이 멸망해 버린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길을 걷다가 멈추면 귀에 압력이 느껴질 정도로 침묵이 파고든다. 가끔 하늘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었다. 설마하니, 내가 죽는걸 기다리고 있는 거냐.

하지만 여기서는 저 문장이 그렇게 심각하거나, 한계적이거나, 혹은 토속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앰비언스에는 약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사실은 그것보다 음악 장르 앰비언트의 느낌을 살리고 싶다. 어쨋든 약간 고급스럽고 깔끔하게 들렸으면 좋겠는데 네이티브가 아니라서 뉘앙스까지는 잘 모르겠다. 한글로 쓸 수도 있는데... '혼자 걷다,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라서 좀 이상하다. 앰비언스가 죽어버린다. 그냥 로로스의 음반을 듣다가 저 문장이 문득 생각났을 뿐이다. 

8년. 그렇다 8년이다. 그쯤을 방황을 했다. 원하는 거였든, 원하지 않는 거였든, 운명이 었든, 혹은 게으름에 불과한 것이었든 이미 지나가 버린 시절이다. 그동안 얻은게 뭐가 있나 뒤돌아봐도 별로 잡히는게 없다. 마땅한 커리어도 없고 득도를 한 것도 아니다. 물론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한다. 버려지듯 내팽개쳐진 8년 동안, 그들이 날 버리든 말든 상관없이 꼭 붙잡고 절대 놓지 않을 작정인 사람들이 몇 명있다.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왠지 불쌍하군.

잃은건 꽤 된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피지컬리하게만 바라봐도 치아가 한개 반이 썪어 문드러져 떨어져나갔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아픈 위가 생겼고, 손바닥에 안없어지는 손톱만한 굳은살 비슷한게 하나 생겼다. 코에 점이 하나 더 생겼고, 여드름은 어렸을 적보다 더 많이 난다. 얼굴은 더더욱 칙칙해졌고, 보기 싫은 군살이 여기저기 붙었다. 군대 3년의 정신적 충격을 매듭짓는데 이리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라고 변명한다. 누구는 멀쩡히 살아가지만 다시 사회에 복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8년이 걸렸을 뿐이다라고, 이 정도면 잘 한거 아니냐라고 별 쓸데도 없는 변명도 해본다. 어쨋든 변명 거리는 하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어쨋든 다시 돌아보건대 지난 8년간 나는 그토록 증오하던 인습의 벽에 더 굳건하게 휩싸여 있다. 깃털처럼 가벼워져 훨훨 날겠다는 애시당초의 꿈은 온데 간데도 없다. 삶은 더 팍팍해 지기만 하고 생각은 구석구석까지 정치적이 되어간다. 빙빙 돌아다니다 길을 잊어먹었나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난 반환점을 턴했다. 지금 온 만큼 앞으로 더 갈 수 있을지 이제는 확신이 없다. 남들은 정리를 해야할 시간에 나는 다시 출발을 해야 한다. 하긴. 아무렴 어떠냐. 언제나 출발하면서 죽을 때까지 살면 안될건 또 뭐 있으랴 싶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숲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나무가 살짝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간다. 발자국 소리 따위는 없다. 그렇다. 여기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추위, 오구오구, 훈련

1. 너무 춥다. 집에 오는 길에 날씨를 보니 기온은 0도, 바람이 좀 불어서 체감 온도는 영하 3도 쯤이다. 옷은 작년 한 겨울 쯤 입은 것과 거의 같았는데 셔츠에 플리스, 오리털 파카, 청바지에 운동화였다. 여기에 머플러, 더 추우면 히트텍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