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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앰네스티 보고서 / 연대를 기대한다

앰네스티의 무이코 조사관이 촛불 시위와 관련된 국내 인권 상황에 대해 조사하고 돌아갔다. 이에 대한 보고서가 몇 장 엠네스티 홈페이지에 올라와있고, 9월에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1960년, 살라자르의 독재 체제하에 있던 포르투갈에서 두명의 대학생이 술집에서 자유를 위해 건배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영국의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이에 대한 기사를 읽고 1961년 옵서버지에 '잊혀진 수인들'이라는 기고문을 내 정부의 탄압에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행동이 필요함을 밝혔다. 그렇게 앰네스티가 탄생했다.

150여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앰네스티는 사실 행정 집행력이 있는 기관도 아니고 정부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기관도 아니다. 그럼에도 앰네스티가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는 이유는 명확한 보고서와 이에 대한 각 지부국들의 호응이다.

호응을 통해 연대를 만들어내고 그럼으로서 힘을 얻는다. 자기랑 별로 관계없어 보일지 모르는 먼 남의 나라 인권을 위한 조그만 행동들이 모여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권을 공권력으로 부터 보호받고 존중받게 된다. 연대는 이렇게 현실이 되고 실질적인 힘을 얻는다.

 

우리나라 정부는 보고서에 대해 앰네스티가 균형잡힌 시각을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했다. 이건 완전히 잘못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엠네스티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우리나라 공권력이 말하는 인권이라는게 국제 표준, 즉 세계 인권 선언과 여타의 인권 선언에서 밝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고 균형과 정당한 법집행 운운하는건 애초에 말이 안된다.

콩고는 피그미족을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대량 학살했고, 우간다는 우출루 족을 공권력으로 합법적인 이유를 대며 대량 학살했다. 이 둘은 자기네 나라 법으로는 합법적인 행동을 했을지 몰라도 국제 인권 기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거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엄연히 우리의 헌법에, 그것도 허가제를 절대 금지한다고까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부는 집회를 실질적으로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고 더구나 공권력의 무력을 동원해 강제로 해산시켰다. 앰네스티가 말하는 것은 이 국내적인 '합법'의 국제적인 '비합법'이다.

 

어쨋든 9월에 보고서가 발표된다. 아직은 어떤 내용이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검경의 방해로 구속 수감자들과의 면담도 금지되었고 조사관의 스케줄도 계속 공개되어 제대로 된 조사를 방해받기 때문에 좋은 내용의 보고서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우리의 인권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정부와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우리 나라의 인권 탄압이 비록 잠비아, 수단, 앙골라, 르완다, 동남 아시아의 몇개 국가, 북한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이들과 달리 엄연히 세계 주류 시장에 포섭되어 있는 국가고 그러므로 우리같은 나라에서의 인권 탄압을 크게 다루어야 앞으로 소위 선진국에서 나올 수 있는 인권에 대한 탄압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미영독프 같은 주판알 열심히 두드리는 복잡한 나라들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중시한다고 맨날 떠드는 북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시민들이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고 대처하는지 유심히 지켜볼 생각이다. 실질적인 대안을 우리 정부에서 내놓을 때까지 대사를 소환하든, 우리 물품 불매 운동을 벌이든 열렬히 호응해 주겠다. 절대 가만히 있는 것만은 말아달라.

앰네스티를 통한 연대가 있었기에 우리 세계 시민들은 피노체트에 대해 사법적인 단죄를 할 수 있었다. 승리는 기억일 뿐만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미래여야만 한다.

20080703

1999년 시애틀의 교훈

1999년 시애틀의 시위와 2008년 우리나라 시위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일단 1999년 시애틀 이야기부터.

1999년 시위의 목적은 알다시피 시애틀에서 열리는 WTO회의를 무산시키는 것. 이를 위해 목적을 달리하는 여러 단체가 한데 모여서 오직 한가지 목표 회의의 무산을 위해 시위를 시작했다. 외부인이 약 5만명 정도가 시애틀에 모였다. 어쨋든 시위가 시작되었고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회의장을 둘러싸고 회의국의 입장을 막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센터를 경호하던 경찰 병력 일부가 시위대 내부에 고립되버렸다.

결국 시애틀 경찰은 고립된 경찰 병력을 구하고 회담장 안에 이미 들어가있던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강경 진압을 선택한다. 최류탄, 고무탄 등이 사용된 강경 진압과 체포는 하지만 시위를 더욱 격화시켜버린다. 특히 요새 국제 규모의 시위에 항상 등장하는 무정부주의 단체 블랙 블록이 방화 등의 과격 시위를 시도하는데 그렇다해도 이 시위 역시 비폭력(자기 방어를 위한 바리케이트, 물리적 저항 수준의) 기반이라 시위대에서의 자체 제어에 나름 성공한다.

비록 야간 통행 금지와 도시 전역에 비상 경계령이 선포되고 시위 금지 구역이 설정되었지만 밤사이에 과격한 충돌은 자제되었다. 어쨋든 이런 시위를 통해 WTO 회의를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진압의 결과로 경찰 서장은 해임되고 다음해 시애틀 시장도 낙선한다. 그리고 법정 투쟁에 들어가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위 금지 구역 바깥에서 체포된 157명에게는 불법 체포를 이유로 25만불을 배상해준다. 그리고 2007년 시위 금지 구역 내의 (바깥이 아니라 금지 구역 안이다) 공원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연좌 농성을 벌이다 체포된 175명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나 확실한 증거 없는 불법 체포였다는 이유로 100만불을 배상하고 체포 기록도 삭제되었다. 뒤의 판례는 법원에서 경찰의 진압 자체가 수정 헌법 4조의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는데 사실 100만불 배상은 시애틀 정부가 가입한 보험 회사와 시위대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시애틀 정부는 항소를 포기한다.

가끔 미국은 폴리스 라인 설정해 놓고 넘어오면 다 때려 잡는다느니 발포해 버린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때에 따라서다. 그게 가능하려면 현실된 위협의 존재와 그걸 증명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가난한 시위대나 반항자(특히 흑인이나 히스패닉, 그리고 아시안)들이 별 이유 없이 총 맞고, 그러고도 경찰에게 무죄가 나와버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어설픈 변호사와 부족한 증거 확보라는 점도 있다. 시애틀 정부도 물론 이런 서류 작업의 미비 때문에 패배했고, 그걸 아쉬워했다.

결국 시위대와 경찰 및 정부 양쪽 다 증거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경찰 중대장이 횡단 보도 막고 '내 맘이다' 따위의 대답을 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어쨋든 이외에도 다른 몇차례 소송에서 시애틀 정부는 80만불 정도를 더 배상했다.

미국이 개인의 권리를 소송에 의해 보장하며 유지하고 있는 나라라는건 확실해 보인다. 돈이면 하여튼 다 되는걸 보면(변호사 마련도, 증거 확보도 다 돈이다) 웃기는 나라인거 같기도 하고, 적어도 그 시스템 안에서는 돈만 있다면야 완벽한 나라인거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소고기 반대 시위 역시 소고기 재협상이라는 단일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 나가고 있다. 정치적 관심이 덜한(즉 뚜렷한 노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민들이 주도한 덕분에 반 FTA나, 반 신자유주의 등의 문제로 확대시키지 않을 수 있었고 한국내 우파 중 소수와 좌파 단체들이 참여하면서 확대 일로를 걷게 되었다. 참여한 단체가 천개가 넘는데 사실 주도하고 있는건 정치적 단체들은 아니고 무소속자 또는 생활 관련 단체들이다.

시위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 조직에서는 비조직 노동자라고 지칭했던데 이건 좀 이상한 이야기다. 물론 허위 의식이라고 설명하면 비조직 노동자가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편하고 손쉬운 설명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측면이고 현 시점을 전혀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지금에 와서 논의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노동자 관점에서 깨닫고 시작한 시위가 아니다.

만약 비조직 노동자가 맞다면 기륭 전자나 이랜드, KTX 노조에 대한 무관심(아주 약간 관심이 늘고는 있다)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아무리 의식 수준이 낮다고 해도 3달이 지나는 동안 관심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건 이상하지 않나.

기존 좌파(서구에서는 신좌파의 등장으로 구좌파로 불리는) 쪽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제도에 속하는 자들의 당위로서 참여할 지는 몰라도 정치적 확대의 측면에서는 전혀 지지를 못 얻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진보 신당은 대환영을 받지만 여전히 지지율은 10%에 못미친다. 노회찬 말대로 이건 서포터로 인식하고는 있지만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는 증거다.

노조 역시 노동자 의식을 투철히 쌓아나가는데 설령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연대에 의해 쟁취되는 민주주의 의식을 투철히 쌓아나가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침묵 상황은 앞으로 노조에게도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2달을 이어온 촛불 시위에 대한 응답이 2시간 파업이라니, 이에 과연 누가 환호와 지지를 보낼 것인가. 평범한 시민들은 임금 몇퍼센트, 복지 수당 몇퍼센트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투쟁을 했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애초에, 자신들의 활동의 정당성과 지지를 부여받을 수 있는(뭐 역사적 이론적 정당성 운운하면 할 말 없지만) 이런 기회를 날려먹는건 전혀 전략적이지 못하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별다른 지지 없이도 잘만 성공해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위험한 발상이다. 부메랑은 언제나 뱅뱅 돌며 날아다니고 있고, 다음엔 누구의 목을 치기 위해 날아올지 모른다.

임금 투쟁은 너무 현실적이라 시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고, 여전히 남아있는 노동자의 세상 운운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시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좌파 입장에서는 이 시위에 대해 별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가질 수 있는 저력도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게 좀 안타깝다.

어쨋든 이런 주체와 참여자라는 점에서 국내적 연대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국제적 연대와 관심을 얻는데에는 실패했다(기 보다는 시도도 안하고 있다, 이게 반 FTA로도 잘 안 나간다).

이건 우리 관점으로는 절차의 문제, 정부의 기망 문제, 국내 민주주의 문제, 크게는 대의 민주주의의 미래 등등이 섞여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이슈다. 하지만 소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몇십 만명이 모여 시위를 하고, 또 저렇게 강경하게 진압을 한다는건 외국인들에게는 거의 해프닝으로 보이기 쉽다. 물론, 이건 이 시위를 소고기 수입 반대로 한정시켜서 보도하고 있는 외신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들이 한국 사회를 그렇게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순 없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하기는 조금 난감한 문제다.

어쨋든 시애틀과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도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시위도 강경한 노선으로 흐르던 와중이었는데 사제단 등 종교계의 개입으로 일단 현재 관점에서 진정된 상태다.

그러나 이 시위가 계속된지 3개월째인데 6개월 전의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해보자. 결론적으로 소고기의 검역권은 더 약화되었고, 그때도 대운하는 보류였는데 지금은 약간 더 강한 의미에서 보류 상태다. 정부 말로는 수도, 전기 민영화 계획은 없었고 다른 공기업 민영화 계획만 있었다고 하니 그것도 바뀐건 없다. 결국 3개월의 시위 동안 얻은건 거의 없는 상태다. 청와대 비서진들 교체가 유일한 성과지만 그게 그거인 상태에서 별 의미도 없다.

이 다음부터가 문제다. 과연 정부가 말을 들을까? 만약 안듣는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단은 위 시애틀의 예처럼 경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이나 절차법 위반 사항에 대한 고소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경찰 간부급의 불법 행위를 처벌할 수 있어야 시민들이 불법적으로 당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이 과연 들어줄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권양숙 사건 에서도 87년 시위가 시민들의 잠정적 승리로 끝나고 나서야 재정 신청을 받아준 놈들이다) 그래도 일단 제도권 내에서 중요한 루트다.

정치적으로가 문제인데 선거는 너무 멀리있고 소환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탄핵 제도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의석수 상 국회에서 통과될 리가 없다. 헌법이 대통령과 국회 의원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물론 이거엔 법적인 논란이 있겠지만) 국회 의원을 소환시키는 법이라도 만들면 좋겠지만 역시 발안권도 없다.

헌법을 개정시키면 가능하겠지만 이게 또 국회 다수(그것도 아주 많이)를 한나라당이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려운 일이다. 헌법 개정안 발안권도 시민들에겐 없다. 그리고 시민들이 원하는 헌법 개정안이 마련되지 않을 것이고, 한나라당이 원하는 헌법 개정안은 시민들이 통과시켜주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야 할 수 없다 쳐도 여당과 (합체할 가능성이 있는) 그 비슷한 당을 국회에 너무 많이 뽑아준 결과가 역시 나타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니 어쩌니 하는데 사실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없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이 있는 우리 헌법은 국회 2/3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 폭주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전혀 마련되어있지 않다.

지자체장들을 소환시켜 간접적으로 국회와 행정부를 압박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건 너무나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가 이루기도 어렵다.

과연 어떤 방법이 있을까. 목표는 시애틀처럼 간단 명료한데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이 뚜렷하지가 못하다.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과 지식이 높아지고 연대에 대한 확신이 높아지는 것들 다 좋다. 하지만 결과를 꼭 얻고 싶다. 특히 절차상의 문제를 이렇게 지나쳐 버리면 이건 5년 내내 반복될 거다. 현 정부가 조금이라도 의견을 듣고 협상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전혀 안 들을거 같다는게 문제를 참으로 어렵게 만든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과연.

20080619

2008년 6월 19일

마음이 복잡한데 정리가 좀 안되고 있다.

1. 강남역, 코엑스, 테헤란로 등지에서 요새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아주 예전에 왜 시위를 신촌, 명동, 시청에서만 하냐고, 압구정동이나 강남역 같은데서 하면 안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은 거기 다 있지 않냐고.

뭐, 반응이 영 안좋고 결론적으로 말이 씨알도 안먹힐 곳에서 하면 뭐하냐는 충고만 듣고 말았었다. 2008년 드디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참 기쁘다.

인원이 좀 많고, 콘트롤 할 수 있으면 서울 곳곳에서 한 천명씩 횡단 보도를 막고 10분 정도 구호를 외친다던가 하는 게릴라 시위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저번에 논란이 되었던 북파 공작원 단체에 이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욕 조금 먹는다치고 추진할 거 같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 대체 어쩌려고들 그러는건지. 이거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은데 생각이 좀 더 정리되고 나면.

3. KBS 노조가 원하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성명서를 대충 요약해보면 어쨋든 더 거대한 세력에 붙어서 언론의 사명이고 나발이고 편하고 즐겁게 살리라 정도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를 시민 편으로 놔두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깝다.

-PS : KBS는 복수 노조인것으로 확인되었다. 공정방송노조가 있고, KBS 노조가 있다. 공정방송노조는 위원장이 윤명식이고 KBS 노조가 언론 노조 산하 조직이다. 성명서 발표는 물론 공정방송노조.

4. 내키는 데로 쓰니까 퀄러티가 너무 떨어지는구나.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뭔가 쓰게 되면 이 글은 지울 예정.

20080613

6월 10일 이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박이 촛불 시위대의 말을 들을 것인가. 글쎄, 아마 안들을 것 같다. 특히 이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비폭력'에 머무른다면 아마 절대 안들을거다. '비폭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경찰의 무장 해제 정도는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이런데는 사람들이 흥미가 없는거 같다. 모두들 자신이 만든 룰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형세다. 대체 뭐가 비폭력인거야.

사람들이 조중동을 쓰레기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무서워한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면 우리는 필패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적과 싸워야 하는데 이미 적을 무서워하고 있으니 게임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조중동을 완전히 청산시키기위해 나서야한다. 이런 기회는 금방 금방 찾아오지 않는다.

앞에서 아무리 재잘재잘 떠들어도 어이쿠 그렇구나 하고 물러나는 일은, 절대 없다. 100만명이 모여 앉아있어도 그들을 물러나게 할 전략이 없고 전술이 없으면, 그냥 야구장에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과 똑같다. 그냥 관객이 좀 많은 것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잔뜩 들어찬 시민들의 행렬을 보면 서 자꾸 월드컵이 떠오른다. 이게 기우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물론 이 시위가 확대 재생산 되기 위해선 논의와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그 과정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한 진실이다. 임계점에 닿았다 싶으면 내달리는게 정석이다.


정치적으로 이명박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아니면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5년간 군림하는 왕 뽑는 행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거 같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게 좀 의심스러운데. 뭔가 크게 한몫 잡아보려고 일 벌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몇조에 이르는 세금 환급, 100일 기념 사면, 군보호 지역 해제, 재산 환원 취소. 자기 돈 드는거 하나도 없이 남의 돈으로 어떻게 생색만 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국, 유럽 등지에서도 하도 문제가 많이 생겨 이리 저리 재검토 해보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는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다. 자연 독점 기업, 국가 기간 산업들이 민영화 되면 엄청난 이익이 보장될게 뻔하다. 넓지도 않은 우리나라 그런 기업들을 사들일 수 있는 후보자들 다 그놈이 그놈들이다. 대통령 측근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시민들은 2000억 넘게 쓰게 되겠지만) 국가는 2000억 아끼니 세금 낭비를 줄이는 일 아니냐는 발상이 대체 어떻게 나오게 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괄호는 왜 말 안하는데. 세금 두번만 아끼다간 사람들 초가 삼간 다 태워먹겠다.

시민들 다 거지되도 정부의 재정 적자 해소했다고 업적이랍시고 자랑할 사람이다. FTA하면 누가 제일 이익볼까. 대부분 이명박과 경영인 핫라인으로 연결된 수출 위주의 대기업들이다. 핫라인으로 연결된 철의 커넥션. 참으로 굳건하기도 하여라.


이명박의 오랜 기업인 생활이 증명하듯이 그는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촛불의 상징, 비폭력의 은유 그런거 전혀 못알아 듣는다. 알아 듣고 움직였을 사람이면 예전에 움직였고, 사실 아예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광화문, 효자동, 삼청동 모두 콘테이너로 틀어막고 청와대 처마 끝에 앉아 장마가 대체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할 이야기도 하나 없고, 들을 이야기도 하나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이 직접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 권한은 국회밖에 없다. 천상 국회를 압박해야한다. 여의도 가봐야 개회도 안했고 아무도 없긴 하지만 6월 10일에 명박산성이 세워져있고, 마침 청와대 가면 뭐하냐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회의론 대두도 있길래 난 당연히 행진이 국회로 향할 줄 알았다.

왜 안갔는지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아쉽다. 이명박 뒤에 숨어 상황만 좌시하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너네들을 잊어버린게 아니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기회였는데 그걸 그냥 날려먹었다. 실리주의자에게는 실리를 뺏는걸로 승부를 봐야한다. 100만명이 콘테이너 뒤에서 노래나 부르는 것보다 한나라당 출신 시장 한명 내리는게 정말로 훨씬 더 효과가 클 거다.


내각 사퇴론 이야기까지는 나왔는데 사실 실행되고 있는건 거의 없다. 그리고 또 박근혜 총리론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그게 실행될까 의심스럽기는 하다. 알다시피 이명박은 한국 수구 우파 비주류다. CEO 이미지를 등에 업고 세계 경제가 어려운 타이밍을 잘 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실체를 이토록 못알아본 우리 시민들이 야속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당선된 후 그가 기용한 인사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맥 풀이 턱없이 좁고 그나마 엉망진창이다. 애초에 행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헌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나라를 경영하는게 기업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만 잔뜩 들어차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한국 수구 우파의 메인 스트림이다. 그들은 한 시절 나라를 꾸려나간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훨씬 노련하다. 인맥 풀도 비교가 안된다. 지금처럼 아마츄어 냄새 풀풀 나게 정권을 꾸려갈 뜨내기들이 아니다. 이제 됐다 싶으면 이명박 따위 뒤도 안돌아보고 차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방을 내주는건 자기 자리 찾기도 엄청나게 어려워 질거라는걸 아마 이명박도 알고 있을거다. 그래서 이 카드는 실현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이명박의 카드라고는 버티기 뿐이다. 하지만 촛불 문화제한다고 자유발언 계속해봐야 5년 정도 아마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하면서 실속 다 챙겨먹을거다.

정말로 후딱후딱 해치워 버려야한다. 느긋하게 앉아 우리 참 잘하지, 민주주의 만세 하면서 좋아하고 있을때가 아니다.

20080608

이 시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반신반의하며 방점을 찍어보겠다고 적었던 이 전의 글이 내 자신도 놀랄 정도로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굉장히 차분하게 이 촛불 시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6월 6일과 6월 7일, 예고한대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찾아간 이틀간의 경험은 지금 상황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고, 상당히 아프다는걸 다시금 확인해주고있다.

자, 이제 의문은 맨 처음으로 다시 향한다. 시청 광장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었던 2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있다. 과연 이 시위로 얻고자 하는건 무엇일까.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이 한 반쯤은 사라졌었다. 가능성이 높은 후보, 될지도 모르는 후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말이 들릴때는 몰랐지만 막상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자 머리 속에서 퍼지는 반향의 차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 그런거구나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와 시민들이 말하는 경제. 같은 단어에 함축된 소름끼칠 정도로 드넓은 의미의 차이를 시민들이 결국 납득할거라고는 (여론조사와 신문보도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얇디얇은 우리나라 지도자의 층을 눈앞에서 확인하는것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체념 반, 포기 반의 시간이 지나고 예상되었던, 정확히 말하면 그의 공약집에 써있었던 정책들이 밀고 나가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 문화제가 조율되고 실행되는 과정은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렇게 실행되어갔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의지는 그렇게 문화제에 녹아들어갔다. 이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건 실망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어떤'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정부의 천박한 대응과 강경한 탄압이 있었다. 의견 수렴이 무시되면서 촛불 문화제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시위가 되었다. 아직도 수입 재협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명박 퇴진, MB OUT의 구호가 훨씬 더 크게 울린다. 바야흐로 촛불 문화제는 반정부 투쟁이 되었다. 반정부 투쟁. 이 섬뜩할 수도 있는 이름이 전혀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연 대책위는 MB를 OUT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가?


안국동 로터리에 배치된 전경 버스를 빼내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이고 밧줄이 준비되었다. 몇번의 시도가 있고난 후 갑자기 누군가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립되어있는건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진압을 시작한다고 한다, 안전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기자. 의견이 충돌하지만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하고 시위대는 분열된다.

이런 일은 새벽에 새문안 교회 옆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고, 골목이라 혹시나 포위되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은 대로에 수도없이 모여있는 사람들이 막아주고 있다. 한참의 대치가 있었고 마치 만화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는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진압이 시작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정말 마술같이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꽉차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길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2시간 후쯤 다시 한번 찾아간 그 곳에는 오직 적막 밖에 없다.

그리고 새문안 교회 안쪽 주차장 옆 좁은 골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하다길래 사다 날라주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그 좁은 골목 안에서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남는건 여러분들 맘이지만 이곳은 위험하다. 빨리 나가라. 빨리 나가라.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남 걱정 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비질비질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동안 그것 참 우연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디에 전경이 온다더라. 가본다.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서 진압이 시작된다더라. 가본다. 아무일도 없다. 다리만 아프다. 유자드웹을 쓸 수 있으니 아고라와 오마이뉴스등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거기도 똑같다.

결국 아무 말도 믿지 않게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판단도 불가능하다. 시야는 좁고 거리는 너무 넓다. 아고라 회원들의 토론이 벌어지지만 5개가 넘는 아고라 깃발들은 다들 가는 길이 다르다. 제어되지 않은 시민의 의견은 이토록 간단히 움직인다. 토론, 민주주의라 이야기하지만 들어오는 정보는 너무 작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들 목표가 다르다.


버스속에서 지하철 속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어제 시위의 무용담을 나눈다. 전경 새끼들, 프락치 새끼들, 어제 한 인터뷰 이야기, 어제 어떤 기자에게 사진 찍힌 팜플렛 자랑.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서로 서로의 무용담에 자위를 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한다.

광화문은 떠들썩하다. 자유 발언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386쯤의 나이대 사람들 몇명이 둥그렇게 앉아 운동 가요를 끊임없이 부른다. 내 바로 앞에 디씨 무적 김밥 부대인가에서 봉사자가 김밥 두박스와 생수 한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김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그들은 달려들었다.

단 5분만에 종이 박스와 생수가 포장되어있던 비닐 봉지만 남는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건 묘한 경험이다. 버스를 움직이는 행위는 의식이 되어간다. 한밤에 벌어지는 거리의 마츠리다. 영차 영차. 움직임 하나 하나에 사람들이 환호한다.

결국 이 시위는 점점 쇼가 되어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쇼 데몬스트레이션. 고생하고 잡혀가는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까지 시위 군중 속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미약한 힘의 사람들 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목적이 쇠고기 재협상인가? 재협상 하면 그만 둘건가? 나중에 수도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이런 일 있으면 또 반복하면서 나올건가. 나중에 비록 실패했지만 역사적인 시위로 시민의식으로 높였다고 역사에 기록되면 그거나 보며 흐뭇해 할 생각인가?

대책위가 MB OUT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뭐냐. 아웃시킬 생각이 있기는 한건가. 그럼 어떻게 아웃 시킬 생각인가. 알겠지만 광화문 거리 앞에서 자유 발언을 한다고 대통령이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72시간이 아니라 720시간을 텐트를 쳐도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제발로 나갈 작자였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다. 지금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탄핵을 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헌법을 바꿔 하야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아예 새 나라를 만들 생각인가?

아웃 시키고 나면 뭔가 로드맵이라도 있나? 어떤 세상을 만들어볼 생각인가. 그 어떤 세상은 누구의 의견으로 만들어진건가? 시민의 의견? 대책위의 의견? 이에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희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그 이후에 과정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조금씩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은 있나? 그냥 이런것들을 단지 꿈처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쇼를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쇼의 목적은 대체 뭐냐. 사람들이,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것만 가지고도 큰 의미가 있고, 우리 국민의 훌륭한 의식을 보여주는거라 생각하나. 그런 자족을 위해 20만명이나 필요한가. 월드컵때 100만이 넘게 모이는걸 보고 충분히 자족하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포장하지 않았나? 그런 의식이 정말 더 필요한건가?


청와대로 가는 일의 상징성은 무척이나 크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있다. 부화뇌동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광화문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자가 외친다, 지금 안국동에서 전경들과 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함성을 보내줍시다. 와~ 자, 그럼 다음 자유 발언을 들어봅시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시민.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위해 이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앞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간걸까. 그걸 점점 모르겠다. 물론 그 가치를 폄하하진 못한다. 시민의 거대한 움직임에 평가를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 경험은 누군가에겐 민주주의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고, 우리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 20만명이 모일 필요는 없다.

문화제가 조율되고 조직되는 감동적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실망이 큰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기회는 너무 아깝다. 이게 끝나고 나면 뭐가 다가올까.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의 제목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예전 전공투의 구호 중 하나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금 현실에 투사하는건 지나친 일인가.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왜 적군파가 생겨났는지,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하였다. 이게 정말 지나친 생각인가.


광장에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그래 난 살아있으므로 따르겠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갈데가 어딘지 알기는 하나? 아니, 갈데가 있기는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조롱으로 들린다. 이 노래에 실려있는 치열함이 웃음 속에 묻힌다. 그 음악을 제발 틀지마세요 DJ, DJ. 이건 이 노래에 대한 모욕이다.



PS 밤새 우석훈 박사가 상당히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길이 쇼 데몬스트레이션보다 훨씬 빨라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단체장이라는 어감의 차이가 좀 멀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소환제, 대통령 및 관료 소환제가 없다는게 이렇게 일을 힘들게 만든다.
http://retired.tistory.com/150


견제, 더위, 수치

1.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 때 거의 경찰 주도 독재국가였다. 검찰 통제가 있긴 했지만 이승만의 신임 속에서 내무부 치안국, 현 경찰이 가장 큰 권력을 발휘했고 정치 파동, 야당 탄압, 부정 선거, 언론 검열 등을 주도했다. 419 때 총을 쏜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