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시애틀의 시위와 2008년 우리나라 시위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일단 1999년 시애틀 이야기부터.
1999년 시위의 목적은 알다시피 시애틀에서 열리는 WTO회의를 무산시키는 것. 이를 위해 목적을 달리하는 여러 단체가 한데 모여서 오직 한가지 목표 회의의 무산을 위해 시위를 시작했다. 외부인이 약 5만명 정도가 시애틀에 모였다. 어쨋든 시위가 시작되었고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회의장을 둘러싸고 회의국의 입장을 막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센터를 경호하던 경찰 병력 일부가 시위대 내부에 고립되버렸다.
결국 시애틀 경찰은 고립된 경찰 병력을 구하고 회담장 안에 이미 들어가있던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강경 진압을 선택한다. 최류탄, 고무탄 등이 사용된 강경 진압과 체포는 하지만 시위를 더욱 격화시켜버린다. 특히 요새 국제 규모의 시위에 항상 등장하는 무정부주의 단체 블랙 블록이 방화 등의 과격 시위를 시도하는데 그렇다해도 이 시위 역시 비폭력(자기 방어를 위한 바리케이트, 물리적 저항 수준의) 기반이라 시위대에서의 자체 제어에 나름 성공한다.
비록 야간 통행 금지와 도시 전역에 비상 경계령이 선포되고 시위 금지 구역이 설정되었지만 밤사이에 과격한 충돌은 자제되었다. 어쨋든 이런 시위를 통해 WTO 회의를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진압의 결과로 경찰 서장은 해임되고 다음해 시애틀 시장도 낙선한다. 그리고 법정 투쟁에 들어가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위 금지 구역 바깥에서 체포된 157명에게는 불법 체포를 이유로 25만불을 배상해준다. 그리고 2007년 시위 금지 구역 내의 (바깥이 아니라 금지 구역 안이다) 공원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연좌 농성을 벌이다 체포된 175명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나 확실한 증거 없는 불법 체포였다는 이유로 100만불을 배상하고 체포 기록도 삭제되었다. 뒤의 판례는 법원에서 경찰의 진압 자체가 수정 헌법 4조의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는데 사실 100만불 배상은 시애틀 정부가 가입한 보험 회사와 시위대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시애틀 정부는 항소를 포기한다.
가끔 미국은 폴리스 라인 설정해 놓고 넘어오면 다 때려 잡는다느니 발포해 버린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때에 따라서다. 그게 가능하려면 현실된 위협의 존재와 그걸 증명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가난한 시위대나 반항자(특히 흑인이나 히스패닉, 그리고 아시안)들이 별 이유 없이 총 맞고, 그러고도 경찰에게 무죄가 나와버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어설픈 변호사와 부족한 증거 확보라는 점도 있다. 시애틀 정부도 물론 이런 서류 작업의 미비 때문에 패배했고, 그걸 아쉬워했다.
결국 시위대와 경찰 및 정부 양쪽 다 증거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경찰 중대장이 횡단 보도 막고 '내 맘이다' 따위의 대답을 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어쨋든 이외에도 다른 몇차례 소송에서 시애틀 정부는 80만불 정도를 더 배상했다.
미국이 개인의 권리를 소송에 의해 보장하며 유지하고 있는 나라라는건 확실해 보인다. 돈이면 하여튼 다 되는걸 보면(변호사 마련도, 증거 확보도 다 돈이다) 웃기는 나라인거 같기도 하고, 적어도 그 시스템 안에서는 돈만 있다면야 완벽한 나라인거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소고기 반대 시위 역시 소고기 재협상이라는 단일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 나가고 있다. 정치적 관심이 덜한(즉 뚜렷한 노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민들이 주도한 덕분에 반 FTA나, 반 신자유주의 등의 문제로 확대시키지 않을 수 있었고 한국내 우파 중 소수와 좌파 단체들이 참여하면서 확대 일로를 걷게 되었다. 참여한 단체가 천개가 넘는데 사실 주도하고 있는건 정치적 단체들은 아니고 무소속자 또는 생활 관련 단체들이다.
시위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 조직에서는 비조직 노동자라고 지칭했던데 이건 좀 이상한 이야기다. 물론 허위 의식이라고 설명하면 비조직 노동자가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편하고 손쉬운 설명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측면이고 현 시점을 전혀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지금에 와서 논의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노동자 관점에서 깨닫고 시작한 시위가 아니다.
만약 비조직 노동자가 맞다면 기륭 전자나 이랜드, KTX 노조에 대한 무관심(아주 약간 관심이 늘고는 있다)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아무리 의식 수준이 낮다고 해도 3달이 지나는 동안 관심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건 이상하지 않나.
기존 좌파(서구에서는 신좌파의 등장으로 구좌파로 불리는) 쪽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제도에 속하는 자들의 당위로서 참여할 지는 몰라도 정치적 확대의 측면에서는 전혀 지지를 못 얻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진보 신당은 대환영을 받지만 여전히 지지율은 10%에 못미친다. 노회찬 말대로 이건 서포터로 인식하고는 있지만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는 증거다.
노조 역시 노동자 의식을 투철히 쌓아나가는데 설령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연대에 의해 쟁취되는 민주주의 의식을 투철히 쌓아나가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침묵 상황은 앞으로 노조에게도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2달을 이어온 촛불 시위에 대한 응답이 2시간 파업이라니, 이에 과연 누가 환호와 지지를 보낼 것인가. 평범한 시민들은 임금 몇퍼센트, 복지 수당 몇퍼센트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투쟁을 했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애초에, 자신들의 활동의 정당성과 지지를 부여받을 수 있는(뭐 역사적 이론적 정당성 운운하면 할 말 없지만) 이런 기회를 날려먹는건 전혀 전략적이지 못하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별다른 지지 없이도 잘만 성공해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위험한 발상이다. 부메랑은 언제나 뱅뱅 돌며 날아다니고 있고, 다음엔 누구의 목을 치기 위해 날아올지 모른다.
임금 투쟁은 너무 현실적이라 시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고, 여전히 남아있는 노동자의 세상 운운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시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좌파 입장에서는 이 시위에 대해 별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가질 수 있는 저력도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게 좀 안타깝다.
어쨋든 이런 주체와 참여자라는 점에서 국내적 연대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국제적 연대와 관심을 얻는데에는 실패했다(기 보다는 시도도 안하고 있다, 이게 반 FTA로도 잘 안 나간다).
이건 우리 관점으로는 절차의 문제, 정부의 기망 문제, 국내 민주주의 문제, 크게는 대의 민주주의의 미래 등등이 섞여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이슈다. 하지만 소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몇십 만명이 모여 시위를 하고, 또 저렇게 강경하게 진압을 한다는건 외국인들에게는 거의 해프닝으로 보이기 쉽다. 물론, 이건 이 시위를 소고기 수입 반대로 한정시켜서 보도하고 있는 외신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들이 한국 사회를 그렇게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순 없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하기는 조금 난감한 문제다.
어쨋든 시애틀과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도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시위도 강경한 노선으로 흐르던 와중이었는데 사제단 등 종교계의 개입으로 일단 현재 관점에서 진정된 상태다.
그러나 이 시위가 계속된지 3개월째인데 6개월 전의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해보자. 결론적으로 소고기의 검역권은 더 약화되었고, 그때도 대운하는 보류였는데 지금은 약간 더 강한 의미에서 보류 상태다. 정부 말로는 수도, 전기 민영화 계획은 없었고 다른 공기업 민영화 계획만 있었다고 하니 그것도 바뀐건 없다. 결국 3개월의 시위 동안 얻은건 거의 없는 상태다. 청와대 비서진들 교체가 유일한 성과지만 그게 그거인 상태에서 별 의미도 없다.
이 다음부터가 문제다. 과연 정부가 말을 들을까? 만약 안듣는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단은 위 시애틀의 예처럼 경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이나 절차법 위반 사항에 대한 고소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경찰 간부급의 불법 행위를 처벌할 수 있어야 시민들이 불법적으로 당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이 과연 들어줄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권양숙 사건 에서도 87년 시위가 시민들의 잠정적 승리로 끝나고 나서야 재정 신청을 받아준 놈들이다) 그래도 일단 제도권 내에서 중요한 루트다.
정치적으로가 문제인데 선거는 너무 멀리있고 소환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탄핵 제도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의석수 상 국회에서 통과될 리가 없다. 헌법이 대통령과 국회 의원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물론 이거엔 법적인 논란이 있겠지만) 국회 의원을 소환시키는 법이라도 만들면 좋겠지만 역시 발안권도 없다.
헌법을 개정시키면 가능하겠지만 이게 또 국회 다수(그것도 아주 많이)를 한나라당이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려운 일이다. 헌법 개정안 발안권도 시민들에겐 없다. 그리고 시민들이 원하는 헌법 개정안이 마련되지 않을 것이고, 한나라당이 원하는 헌법 개정안은 시민들이 통과시켜주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야 할 수 없다 쳐도 여당과 (합체할 가능성이 있는) 그 비슷한 당을 국회에 너무 많이 뽑아준 결과가 역시 나타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니 어쩌니 하는데 사실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없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이 있는 우리 헌법은 국회 2/3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 폭주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전혀 마련되어있지 않다.
지자체장들을 소환시켜 간접적으로 국회와 행정부를 압박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건 너무나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가 이루기도 어렵다.
과연 어떤 방법이 있을까. 목표는 시애틀처럼 간단 명료한데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이 뚜렷하지가 못하다.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과 지식이 높아지고 연대에 대한 확신이 높아지는 것들 다 좋다. 하지만 결과를 꼭 얻고 싶다. 특히 절차상의 문제를 이렇게 지나쳐 버리면 이건 5년 내내 반복될 거다. 현 정부가 조금이라도 의견을 듣고 협상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전혀 안 들을거 같다는게 문제를 참으로 어렵게 만든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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