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11

돈당 ; 전당 그리고 광당

기존의 좌우파 이론에 기대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당의 지형도는 다음과 같다. 물론 이건 간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반증이 나오면 바로 철회하고 조금씩 조금씩 파인 튜닝해가는 임시 거점 가설이다.

더구나 정치란건 재선과 의회 안에 자기 자리 넓히기를 두고 여러 수싸움들과 냉정한 이익 쫓기가 섞여있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고 있다. 그러므로 간판과 메인 스트림에 대한 대체적인 소속 의원과 당원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좀 다른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만 보면 알겠지만 거기가 뭐하는데인지도 모르고 의원된다니까 얼씨구나 껴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일단 가장 우파로는 이회창 당이 아닐까 싶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일단 안보와 성장률에 최우선을 두고 있고 지금의 여당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상식적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같은) 터무니 없는 짓은 안하지 않을까라는게 지금의 생각, 또는 기대다.

그리고 중도 우파로는 이전 여당이었던 열우당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반 재벌적이고 시장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친시장주의 노선이다. 복지 정책에 있어서도 시장 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들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부안과 새만금을 보면 생각보다 더 국가주의적이지 않나 싶기는 한데 평균내면 대충 이 정도 아닐까 생각한다.

중도 좌파로는 민노당. 노조뿐만 아니라 농민, 환경, 인권 운동 등의 한두 계열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어서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기는 하다. 어느 부분에서는 굉장히 우파스러운 면이 있기도 하고(특히 다양성의 포섭이라는 측면에서), 엄연히 노조를 중심으로 엮여진 당이라 이익 집단적인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역시 이런 저런 거 다 모아 평균 내보면 이쯤이 아닐까 싶다.

좀 더 좌파로는 진보신당, 그리고 이와 겹치기도 하고 좀더 좌파적이기도 한 사회당도 있는데 선거때 너무 죽을 써놔서 정당으로서 활동 중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다.

어쨋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여러 사건이 닥칠때마다 당의 입장과 소속 의원들의 언급을 보면서 머리 속에 조금씩 미세한 부분들을 튜닝해가며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여당은 뭐냐 하면 내 생각에는 그냥 돈당이다. 돈당. 풀어 쓰자면 錢당 혹은 狂당인데 중의적 의미를 살리기 좋으니 돈당이라고 하자. 문제는 과연 왜 이런 당이 생기게 되었을까(더구나 멤버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 광복 이래 거의 모든 시절을 다수당으로 있었다) 하는 점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일단 현대사가 잘못 시작했다는 점이 크다. 정치적 경륜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있던 사람들은 미국을 등에 업은 친일 세력에 눌려버렸고)... 이건 상당히 길고 복잡한데다 다들 대충은 아는 내용이니까 생략하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나라에서는 로비스트를 해야 할 것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버렸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정치라는건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거대한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사용자와 노동자들이 로비스트로 참여해 각종 정책안을 제안하면 정치적 경륜, 정치적 학식, 혹은 정치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조율을 해 서로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정도의 선에서 균형을 맞춰간다. 선거 결과에 따라 조금씩 좌우로 출렁출렁 거리긴 하지만 어쨋든 한 두번 걸러주기 때문에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건 막아준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로비스트를 해야 될 사람들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어버리는 바람에 아무 꺼리낌없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정책들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정치적 조율도 없고, 계층적 조화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고려도 되지 않는다. 원래 로비스트들은 그런 식으로 밀어 붙여야 그나마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정치판에서 채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로비스트들의 극단적인 제안들이 여과없이 정책으로 반영되버리니 펼치는 정책마다 엉망진창이 될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하다. 뭐 밑도 끝도 없이 돈이면 다 되는 노선이라 정치적 스펙트럼이니 이런거 아무 소용도 없다.

더구나 돈당은 주요 노선이 돈이라 세금을 걷어다 생긴 돈을 한 곳에 뭉텅으로 뿌려 개발 이익을 부풀리는 정책을 자주 추진한다. 박정희때 만들어진 이 묘안은 제대로 작동했고 나날이 정교하게 완성되어갔다. 우리나라에선 이거 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고 더구나 세금으로 걷은 남의 돈으로 자기들끼리 잔치하자는 일인데 왜 마다하랴. 니들은 번지르르 펼쳐진 아파트와 도로, 가로수를 보며 선진 조국에 사는거에 감탄이라 하라고.

이 와중에 누군가 눈치 빠른 몇 명은 같이 껴서 이익을 나눠 가지게 된다. 이런 찬란한 투기의 이익史는 신화가 되고, 다음번에는 혹시 나에게.. 라는 기대를 사람들에게 부풀게 만든다. 이렇게 혹시나 하고 달라 붙어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존재하기 마련이라 이 당은 일단 정권을 잡기만 하면 지지자 재생산에는 문제가 없다. 선진 조국 완성을 위해 대규모 개발만 추진하면 돈도 벌고 지지자들도 덩달아 불어나는데 이것만큼 쉽고 좋은게 어딨냐.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아예 발도 못붙이게 하는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어제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을 했는데 주요한 말 중에 하나가 대의 정치가 위협받고 있다는 거였다. 인터넷 때문에 여론이 여과되지 않고 범람한다나 뭐라나 여튼 그렇단다. 말인 즉슨 옳다. 대의 정치는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대의 정치를 훨씬 먼저 시작한 서구 선진국들도 마찬가지고 그것도 한 40년 전부터, 좀더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걸로 따지면 한 20년 전부터 대의 정치는 시종 위기였다.

대의 정치에 위기가 온 이유는 시민들의 의식이 이전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성장했고, 다양한 이익 추구가 등장해 대의 정치로 이 모든 걸 커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대의 정치에 이런 의견들을 반영할 수 있는 직접 민주제 요소를 어떻게 하면 집어넣고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이 나라 수장이라는 분은 대의 정치가 위기니까 대의 정치를 회복(!)하자고 말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어쩌구 하는데, 여당은 한 20년 정도를 통으로 잃어버리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대의 정치 위기에 대한 논의로 나온 것 중에 deliberative democracy라는게 있다. 우리 말로는 보통 심의 민주주의라고 번역하는데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가 투표에 의한 잘못된 집단적 선택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충 말해서 시민들 간의 끊임없는 의사 소통을 통해 개인들이 자기 선호를 계속 변화시켜 가며 합의된 집단적 의사를 형성하려는 루소적 직접 민주주의의 현대판이자 가능하게 만들어 보려는 버전이다. 롤스의 제자였던 코엔 정도부터 시작된 개념인데 2000년 들어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편이다.

심의 민주주의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다 싶은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 촛불 시위 하는 사람들이, 소통 좀 하라고 정부보고 반 년째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해 왔던 이야기다. 굳이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자연스레 시민 의식을 저런 방향으로 가게 만든다. 즉, 적어도 대의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시민들은 2000년대인데 정부는 1980년대라는건 팩트다.

경제적인 측면,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는 점이 많은데 그렇잖아도 너무 길어져서 일단은 생략한다. 다만 어제 정부가 부동산에 대한 규제 완화를 발표했다. 물가의 폭등을 부동산의 거품으로 잡아보겠다는건 옛날 중국이 말했던 오량캐로 오량캐를 잡는다는 이이제이인가. 참내. 정말 기발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는건가. 아, 돈당 대체 누가 뽑은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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