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9

논쟁

간밤에 트위터에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나우콤 문용식 대표 간에 논쟁이 잠깐 있었나보다. 찾아봤는데 딱히 결이 두터운 논쟁은 아니라 그 자체에서 생각할 만한 거리가 많이 있는 건 아니다. 복지 -> 반말 크리 -> 좌파 크리 -> 조롱 크리 -> 분노 크리 -> 사회가 멍들어요 크리 등등 그냥 되는데로 통통 튀었다.

문용식 대표가 아니라 진짜 SSM이 옆에 들어선 슈퍼 주인이었다면 약간 더 리얼함이 보태졌겠지만 논쟁은 반드시 당사자여야지 성립되는 건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가가 아니었고 마르크스도 노동자가 아니었다.

이 논쟁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불만 투성이이 좌파가 잘나가는 사람에게 틱틱 말을 내뱉었다고 볼 수도 있고, 매판 자본가 혹은 신자유주의자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잠깐 일면을 드러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쨋든 이 둘 사이는 서있는 자리가 다르고, 생각의 기반이 다르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지동설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했듯이 패러다임이 다른 경우 설득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직 개종 만이 가능할 뿐이다. 위 경우도 설득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입장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수도 없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협상과 타협이 가능하기 때문에 논쟁은 필요하다. 위 트위터 논쟁의 경우 양자 간의 편협한 인식은 협상과 타협의 여지도 없다.

다른 이야기. 많은 사람이 예의를 이야기한다. 문대표는 예의 없이 반말 크리를 작렬했다. 미시적인 예의다. 하지만 예의는 사람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대한 태도에도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는 사실 이쪽이 파급력도 훨씬 크다.

지역의 반대가 너무나 귀찮다보니 정부회장네 회사는 몰래 몰래 조용히 개점하고 있다. 피자집이나 동네 슈퍼처럼 중소규모 업자들이 가장 많은, 말하자면 프로 vs 아마츄어의 싸움처럼 너무나 손쉬운 분야들을 속속들이 공략하고 있다. 더구나 사회에 대한 낮은 예의 수준은 미치는 파장력마저 너무 크다.




사실 마트 문제에 대해선 생각할 것들이 많다. 우선은 대기업에 대해 SSM 등 분야에 대한 허가가 난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협상과 타협은 가능한 피하고 눈에 확 보이는 결과 지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대기업에 기대는 손쉬운 길을 가려고 한다. 지금와서 딱히 없애는 것도 그러니 누진세를 강화하면 된다. 이왕이면 지방세로 신설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리고 중소 소매 업장 역시 자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자체 규제가 - 지금까지 보아왔지만 - 거의 불가능하니 지자체의 규제, 규제라는 말이 마음에 안든다면 구속력있는 표준 서비스 매뉴얼이라도 장만하는 방법 정도가 있을거 같다. 사실은 Co-Op이 괜찮은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가야하겠지만 우리 현실에서 갈 길이 아직은 좀 멀어보인다.

20101022

권리 침해 문제

이글루스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
http://coldice.egloos.com/2667054

간단히 요약하면 퀴즈노스 코리아에는 샌드위치의 염분 함유량이 적혀있지 않은데, 그래서 미국 홈페이지에서 염분량을 찾아 결론적으로 참 많이 들었더라라는 포스팅을 했다. 그랬더니 퀴즈노스 코리아에서 이미지 훼손으로 권리 침해를 신고했고, 이글루스를 운영하는 SK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비공개 처리했다.

이런 일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딱히 퀴즈노스 코리아, 이글루스라고 적시할 필요도 별로 없이 앞에 기업 이름, 뒤의 포털/블로그 회사 이름을 바꿔 대입하면 무수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이게 좀 웃긴게 우선 권리 침해 요청이 들어왔을때 삭제 여부는 사이트 운영 주체의 책임이다. 기업과 포스팅한 사람 사이의 일인데 중간에 사이트 운영 주체가 개입되어 있고, 기업은 사이트 운영 주체를 통해 일을 처리한다.

왜 그 사이에 있을 수 있었던 합의나 해명의 절차를 생략해 버렸을까. 굳이 저렇게 하지 않아도 퀴즈노스 코리아도 블로그 하나 쯤은 운영하고 있을테고 뭔가 부당하다고 느껴지는게 있다면 트랙백 하나 걸어 해명을 할 수도 있었을거다.

하지만 퀴즈노스도 그렇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런 절차 없이 곧바로 사이트 운영 주체에게 블라인드 처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사이트 운영자는 거의 예외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형법을 제외하고 법의 규율이라는건 어디까지나 사적 자치가 우선이고 그런 합의에 실패하거나 불가능해 보일때 찾아가는 수단이다. 하지만 법의 규율은 엄격하고, 그것보다 상당히 귀찮기 때문에 그런 귀찮음의 힘에 기대어 기업들은 손쉬운 수단을 택한다.

이건 기존 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서,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가능한 이런 손쉬운 길을 선택할 수 없게, 또는 어렵게 만들어놨어야 한다. 그런 규율이 없다고 해도 손쉽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마인드는 소비재 사업자의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블로거 한 명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무슨 소비자 만족을 운운하나.



또 하나는 소명 절차다. 보통 개인과 기업 간의 법적 다툼에는 입증 책임의 전환이라는 논리가 적용된다. 환경 문제라든가, 이런 소비자 권리 문제 등에서 특히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어떤 공장 옆에 있는 강에서 카드뮴이 나왔어요 하면, 그 카드뮴이 공장에서 나온거라는 증명을 신고하는 사람이 하는게 아니라, 공장에서 우리는 카드뮴을 낸 적이 없어요라고 증명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누군가 문제 제기를 하면 문제를 받은 사람이 그걸 증명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위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문제 제기 - 블라인드 처리 - 문제 제기한 사람이 증명해라 순서로 되어 있다. 문제 제기 - 해명 - 블라인드 처리가 더 맞는 순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거보다 더한 예는 지금 우리 나라가 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발생 - 어, 이거 좀 이상한데 해명 좀 해주라 - 너 북한 편이냐" 이런 수준의 논쟁이 오고가고 있다. 바로 어제 국감에서도 거의 비슷한 순서의 질답이 있었다. 뭔가 아주 구석구석까지 해괴해 지고 있다.

20101017

그냥 이야기

퍼스널한 이야기는 안쓴다고 했는데 바로 배반. 그런게 인생. 깝깝한 이야기 뿐이라 밝게 살고자 하시는 분은 안읽는게 정석.


뭔가 좀 그럴 듯 하게, 추상적으로 쓰고 싶은데 - 예를 들어 "어둡다, 대낮이다. 이봐, 힘을 아껴봐. 난 벌써 잉크가 떨어지고 있다"(기형도)라든가, "내 소원은 매독에 걸려 죽는 것"(장정일 - 뭔가 좀 더 길었던거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이라든가, 아니면 "실존이란 비실존에 젖어 있으며, 우표의 점선이 우표 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비실존 역시 실존에게는 불가분"(장 그르니에) 같은 문장들 - 그러면 나와 글자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투박하게 상세히 뭔가 적고 있는 건 수레바퀴 밑에서 따위(폄하의 의미 없음)를 읽고 있는 사춘기 소년같다. 결국은 글자들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선을 걷게 되고, 의미가 사라진다. 아니, 사실 의미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 자체에 있다. 그것말고 지금 내 행위의 어떤 부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관이나 쥐덫이 아닌 이상 어딘가로 들어가면 다시 나와야 하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는 게시하기라는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완성된다. 별 쓸데 없는 이야기들로 인터넷 세상이 채워져도, 할 수 없다. 낭비는 숙명이다.

둔탁하다. 머리가 둔탁하다. 뇌 속이 스폰지같은 걸로 차오르는 거 같다. 산뜻한 기분을 느낀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스폰지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오마메(하루키)가 자기 뱃속에 들어있는 존재를 갑자기 느꼈듯이, 무한도전에서 텔레파시를 받은 정형돈이 갑자기 고양시 체육관?을 되뇌였듯이. 하지만 나는 감과 상상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꽤 긴 시간을 둘을 섞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뭔가 막 쓰고 있으면, 그 순간 만큼은 다 잊어버린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망각. 누군가 멀리서 문을 쿵쿵 두드린다. 차가 지나간다. 고등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한다.

20101014

금리 동결

한국은행이 3개월째 금리를 동결했다. 물가 인상 압박이 넘실대고, 전세계가 환율 경쟁이라는 격전의 코앞에 와있는데 한국은행은 여전히 주춤거리며 정부 눈치만 보고있다. 경제를 보는 눈은 여러가지가 있고, 어떤 정책이든 일장일단이 있는법이고, 이미 벌어진 일이니 지금 이 시점에서 금리를 고정시키는게 과연 최선인가에 대해 갑론을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중앙은행의 정책이라는건 '원래부터 주어진 것'과 비슷하게 작동해야한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자진해서 자신의 자율성을 훼손시키며 시장의 신뢰대신 정부의 꼬붕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정책을 헌법 레벨로 높여 독립성을 보장하자던 그간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간곳이 없다. 대기업 몇푼 더벌게하기 위해 나머지 모두를 희생시키는 거라고 밖엔 이 상황을 바라볼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거대한 경제 위기 뒤에 안정을 향해 돌진하는 과정에 각 나라의 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이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무슨 플랜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계속 금리를 동결시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20101013

사소설풍 잡담

원래 정치, 경제, 완결되지않은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곳인데 어쩌다보니 블로그 포스팅이 하나같이 사소설풍이다.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문장도 너무 많고 "개인적으로, 솔직히, 여하튼, 물론" 등등의 반복되는 단어도 너무 많다. 좀더 정교하고 걸러져아한다.

휴대폰으로 써서 이메일로 보내고 그걸 데스크톱에서 완성하고 포스팅한 다음에 휴대폰으로 읽으면서 고치는데 퇴고를 일단 글을 올려놓고 하니 수정이 어렵다. 후회할 일을 만들어놓고 후회하는 버릇은 좋지않다. 어쨋든 사소설풍은 이제 지양하자.

반복되는 루틴

아이디어가 고갈되어간다고 느껴질 때, 계속 루틴만 반복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 머리 속이 아침 산정호수에 짙게 낀 안개 속을 헤매거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처럼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도로를 쉬지않고 달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건 체하는 것하고 비슷해 손 써야할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뭔가 이상한데라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바야흐로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심각한 상황에 도달해 있다. 이런 멍청한 짓을 계속 반복하는게 인생이라면 인생이다.

이럴때 개과천선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여행이나 산행 같은건 그다지 효과가 좋지 않다. 이런건 머리를 비우거나 기분을 전환시키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생각의 전환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크리에이티브한 느낌의 건물 같은걸 만지고, 보고 오는건 나름 효과가 있었지만 서울 안에 그런 건물들 중 개인 주택이라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 빼고는 한번 쯤씩 다 돌아본거 같다. 가끔 승효상의 건물 같은걸 다시 보러 가기는 하는데 건물은 역시 살아봐야 더 느껴지는거라 한계가 있기는 하다.

인터넷 같은 경우에는 정보의 보고답게 참으로 다양한 자극들을 얻을 수 있지만 모니터라는 평면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들다. 나는 촉감에 의한 자극에 민감한지 그런게 없으면 김이 빠진다. 물론 평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럭저럭 자극을 얻지만, 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렸을 때는 그저 하나의 루틴한 일과에 머무르게 된다.

물론 가끔 즐겨찾기 해놓은 하시시 팍 등등의 새로운 느낌의 사진가의 사진들을 하나씩 다시 보거나, HHstyle 사이트에서 가구들 사진을 뒤적거리거나, 평소 보던 남의 블로그를 유심히 다시 읽어보면서 뭔가 번뜩이는게 없을까 찾아보려고 할 때도 있다(헬무트랑 코뮤니티할때 하시시가 회원이었는데 인사를 못한 건 조금 아쉽다).

한때는 거의 매년, 어떨 땐 시즌마다, 야간 개장 같은 것도 챙겨가며 서울대공원에 갔었는데 그게 하도 자주 가니까 동물들을 다 알아버려서 재미가 좀 떨어졌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는데 커가는 모습을 봐버리니 시큰둥하다. 야간 개장은 조금 재미있었다. 얼마전 대대적인 리뉴얼이 있었는데 예전의 거친 환경이(하나같이 생 시멘트 바닥이었다) 조금 부드러워진 건 마음에 든다.

 

 

경험에 의하면 이럴 때 제일 좋은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거다. 아주 크리에이티브한, 말 몇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며 머리 속이 청량해지는 기분 좋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사람이란건 다 다르고 언제나 새로운 뷰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형편없는 인간(특히 편협한 종류의)을 만나는게 아니라면 가치있다.

보고, 느끼고, 만지고 할 수 있으면 더 좋기 때문에 육체나 정신적 유대 관계가 동반된다면 더욱 좋기 때문에 연애가 더 낫고 그게 안되면 컴패니언도 괜찮다. 강연을 듣거나 하는건 인터액티브가 부족해서 그런지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 그 정도 자극이면 찰라의 경험일지라도 몇 년은 뭔가 끄집어낼 수 있다. 모딜리아니나 잭슨 폴락처럼 그거 하나 믿고 끝까지 돌진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어렵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만난다고 관계가 괜찮게 유지될 지도 미지수다. 나같이 어리보기한 사람은 그나마 괜찮은 상황도 망치기 일수다. 그리고 차칫 잘못된 상황으로 접어 들면 10년은 슬럼프에 빠트릴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사람에 의한 자극은 최고의 경험치를 만들어내고 상호교감이 잘 호응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의지를 가진다고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치명적일 수 있지만 그만큼 값어치가 있으니 본능의 불나방처럼 불 속에 뛰어들 준비를 한 채 잠자코 기다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정신적 자극은 커녕 맘편히 만날 제대로 된 친구 하나 만들기 힘든게 세상이기에 어쨋든 이런건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의지가 개입되기 힘든 일 말고 일단 의지가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 나같은 경우엔 보통 잘 깎여진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나무로 된 가구 같은걸 보러 간다. 작고, 정교하고, 묵직하고, 처음 보는거면 좋다. 신기종의 휴대폰도 좋고, 휘슬러의 주방 기기도 좋다. 개인적으로 의자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삼청동, 가로수길의 큰 상점들, 논현동이나 신당동의 가구거리 같은데를 멍하니 뒤적거리러 간다. 바이킹의 조리 기구나 아크리니아의 싱크대 같은걸 보면 좋겠지만 그런데는 그냥 구경가기엔 눈이 좀 따갑다. 뭐 사러왔냐는 눈초리랑 싸우는 건 좀 귀찮다.

훌륭한 의자가 많은 카페같은데도 좋은데 이런데는 인기가 있는 곳이 많아 혼자가기가 좀 그렇다. 신사동 쪽에 토토(변기 만드는 토토)에서 투자한 카페가 있는데 거기도 좋아한다. 아오야마의 HHStyle 매장처럼 아무 생각없이 여러 의자에 앉아보고, 만지작 거리면서 정말 좋았는데 휘릭 하며 갈 수 있는데가 아니라 슬프다.

 

 

이도 저도 안되면 서점에 간다. 큰 서점. 아무거나 들추고, 끄집어내고, 넘겨보고, 조금 읽어보고, 던져놓고하는 큰 서점. 문방구가 크면 좋다. 책을 사거나 하는건 좋기는 하지만 한권만 열심히 읽게 되서 좀 리버럴하게 이것 저것 생각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안맞는거 같다. 이럴때 괜한 집중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잡지도 좋은데 몇 년전 어떤 사건을 겪은 이후부터 잡지를 사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졌다. 서점에서라도 보면 좋은데 요즘은 다 비닐로 덮여있다. 잡지를 뒤적거리고자 한다면 커피빈이 더 낫다. 여의도에 있는 Zephyr라는 커피 전문점은 잡지 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반짝이는 새 잡지가 잔뜩 있고, 점심 먹고 커피 마시는 직장인 대상으로 돈 버는 곳이라 저녁 시간대에는 손님도 거의 없다. 대신 일찍 닫는다.

요새 교보문고 같은 경우에는 문구점에 잠깐만 머무르면 점원들이 따라 붙으며 제품의 특징 등을 줄줄줄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좀 걸리적거린다. 이런 방침은 좋지 않다. 마음이 불편하다.

 

 

어쨋든 요즘 이런 상태에 빠져있다는걸 깨닫고 오늘 올레스퀘어에 새로운 휴대폰이라도 만지작거릴 생각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아이폰에 올인하고 있는 근래 KT의 입지를 대변하듯 전시되어있는 거의 모든 스마트폰이 아이폰이었고, 나머지 몇개는 넥서스원이었다.

예전에 갔을 때는 옵티머스도 있고 피쳐폰도 몇가지 있고 그랬는데 다 사라졌다. 아이패드가 4대 있었지만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 네명이 달라 붙어 쉬지도 않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올레패드가 있었지만 내가 건드리자 마자 도난 경보가 울려 직원이 찾아와 경보를 껐다. 잠깐 건드려 본 올레패드는 어딘가 답답했다.

괜히 우중충해져 인사동 맥도날드까지 걸어가 더블 치즈 버거 세트를 먹고 배탈이 나서 가만히 쉬다 이런거나 써본다. 조만간 논현동이나 청담동이라도 가볼까. 논현동 주택가의 배타적이고 을씨년스러운 담장 분위기 좀 좋아하기는 하는데.

20101011

무제 또는 자개증, 길어지다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잔뜩 쓰다가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또 쓸데없는 소리를 잔뜩 지껄인다. 이런 이야기를 써놓고 아까워하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잘 안된다. 그건 일종의 자개증(자폐증의 반대)가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든다.

어쨋든 이 버릇과 마찬가지로 이메일, 문자메시지, 대화에서도 자꾸 그런다. 설레발을 치고, 말을 내려놓고 타이밍이 안맞아 후회하는 일도 많다. 영문도 모른채 그르쳐버린 관계도 몇 개 있다.

그래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내뱉는 성격은 아니라는게 조그만 자랑이다. 누군가에게 힘좀 내라고 말하면 그건 정말 그 순간 그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소리고, 누군가에게 좋은 꿈꾸고 잘자라고 말하면 그건 정말 좋은 꿈을 꿨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한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 마음가짐으로 듣는다.

하지만 이렇게 곧이 곧대로 들으니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 경우도 꽤 생긴다. 열심히 듣거나 읽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가는지 않는다.

이런 성격으로 좋은 일이라도 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내내 복잡해지기만 한다. 이런 설레발로 꼬여버린 관계도 많고, 마음에 없는 소리한다고 오해도 받는다. 그런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런 테크닉은 너무 부족하다. 이게 다 눈치가 너무 부족한 탓이다. 후회가 많지만 돌이킬 방법도 없다. 그리고 왜 사람들은 의심을 하는걸까 고심한다. 참 어려운게 인생이다.

 

기형도의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구는 크고 넓었다. 밝고 우글거렸다. 장정일은 대구는 부산의 절반도 안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 고통의 윤곽을 조금 말해 주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만 마시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이제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지만 이 부분이 항상 머리에 떠돌고 이 문장을 생각할 때 가장 슬프다. 길을 걷다가도, 잠을 자려고 누워있다가도 뜬금없는 순간에 이 구절이 떠오른다. 기형도의 휴가가 시작된게 88년 8월 2일, 대구행 버스를 타고 내려가 밤에 장정일을 만났다. 그리고 89년 3월 7일에 파고다 극장에서 숨졌다.

이 사이의 텀은 7개월이다. 고통의 윤곽. 8월 2일에 말했던 고통의 윤곽이 그를 죽게 만들었을까. 만약 장정일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지 않았다면 그 죽음은 더 가까워졌을까, 아니면 더 멀어졌을까. 말을 알아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런걸 바라는게 지나친 일인가 생각을 계속하면 마음만 아프다.

 

몇 달 전부터 가족끼리 어디 바람이나 쐬자라는 말이 오고 갔는데 드디어 다녀왔다. 그리고 동생의 남자 친구가 동행했다. 우연히도 내 대학 1년 후배라고 한다. 동생의 남자 친구가 운전을 했는데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만약 나라면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더구나 찾아간 장흥이라는 곳은 뭐하나 번듯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결국 아주 매운, 조금 특이한 닭도리탕을 먹고 괴상한 공원(장흥 조각공원)에 들어가 차길을 막고 있는 담 바로 옆 잔디 밭에 앉아 과일을 먹었다. 참 어색한 마뜩잖은 자리일텐데 잘 대처하드라. 어쨋든 잘 지냈으면 좋겠다.

참고 1) 그렇게 매운 닭도리탕은 처음 먹어봤는데 사실 좀 맛있었다. 하지만 옆 자리에서 나는 청국장때문에 내심 괴로웠다. 개인적으로 청국장이 메뉴에 있는 집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안들어간다. 물론 오늘은 특별한이었으니 참았다.

참고 2) 닭도리탕은 잘못된 단어이고 닭볶음탕이 표준어다. 그런데 우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요리는 볶음이 아니다. 그리고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닭은 일본어로 이와토리다. 그리고 새는 토리다. 이런게 좀 합쳐져서 닭 + 도리가 된게 아닌가 싶고 그래서 표준어는 일제 잔재를 배제시키고자 닭도리탕을 비표준어로 규정했다.

하지만 나름의 조사에 의하면 옛날 경상도 사투리에 도리치다라는게 있다. 뭔가 듬성듬성 썰어있는 것에 쓰는 말이다. 만약 어원이 이쪽이라면 닭의 생김새로는 이쪽이 맞다. 어쨋든 닭볶음은 분명 아니다.

그래서 이 요리의 다른 이름이 나오거나 요리의 기원에 대한 추적이 좀 더 이루어질 떄까지 개인적으로 닭도리탕이라는 말을 계속 쓰고 있다. 물론 이게 맞는건 아니니 시험에서 그렇게 적으면 안된다.

그리고 밤에 후배 김군을 만났다. 구렁텅이로 슬렁슬렁 들어가는 동안에 계속 나를 살펴주고 있다. 내 인생에 행운이란게 있다면 그게 참 큰 자리를 차지할거 같다. 참 고맙다.

 

mp3 플레이어를 안가지고 나갔더니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내 앞 7명 의자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5와 여2이 앉아있었다. 다들 KBS 홀에서 열린 어떤 음악회의 팜플렛을 들고 있었다.

분위기상 남녀 공학이고 그들의 다른 동료들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는데(아마도 땡땡이를 치고 PC방에 간듯) 그게 교감과 학생주임에게 걸린 듯 싶다. 보아하니 앞의 7인도 같이 PC방을 간거 같았고, 그걸 감추기 위해 심각한 얼굴로 20분간 쉬지도 않고 함께 입을 맞추며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오른쪽 커플은 (동갑내기 과내 커플, 4학년인듯)

(여) 어제 불꽃 놀이는 왜 한거야 - (남) 세계 불꽃 축제라고 하는거야 - (여) 왜 나한테 가자고 안했어? - (남) ..... - 다른 대화 조금 이어짐 - (여) 벌써 우리 4학년인데 군대는 어떻할거야 - (남) 무슨 대답을 함 - (여) 가족들이 블라블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10년 후에 이 고민이 생각이 날까. 7명의 고등학생은 아마 잊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커플은 둘이 잘되든 안되든 나중에 대화의 자세한 부분은 기억이 안날지 몰라도,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기억은 가지고 갈 가능성이 클 거 같다.

뭐 이렇게 길어졌냐.

20101009

템플릿

오래간만에 발전소의 템플릿을 바꿨다. 2007년에 이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땐 원래 하얀 바탕의 완전 심플한 모습이었다. 곰곰이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 전부터 있기는 했는데 다 지웠다. 그러다 2008년 4월에 발전소라는 이름을 붙이고 어제까지 쓰던 템플릿을 계속 사용했다.

http://macrostars.blogspot.com/2008/04/blog-post.html

 

사실 중간 중간 템플릿을 바꾸기도 했는데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구글에 다른 블로그도 몇 개 있었는데 거의 포스팅을 다운받아 발전소에 업로드해놨다. 이렇게 하면 날짜 순에 맞춰서 중간에 끼어든다. 사실 지금도 몇 개 더 있기는 한데 그냥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다 없애버리고 싶은데 그걸 하는거 자체가 귀찮다. 보잘 것 없는 블로그도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면 역사 비슷한게 생긴다.

올라오는 글도 우중충한데 화면이라도 좀 산뜻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눈치와 삼고초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지금 머리가 좀 아프다. 몇가지 일에 신경을 너무 썼다. 긴장을 너무 잘하는 성격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일본에서 만화가되기인가 하는 만화책을 읽었다. 일본에 가서 만화가가 될 생각이 있는건 아니고 시간을 떼울게 필요했는데 마침 그게 눈에 보였다. 다른건 몰라도 저자가 하여간 긍정적인 사람이다. 본받을 점이 많다.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본받고자 오모 시장 세금 축낸다고 욕만 하지 말고, 이왕 하는건데 나도 불꽃 축제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싶어서 갔는데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사람도 너무 많았고, 위치도 좀 안좋았다. 더구나 혼자 볼만한 쇼도 아니다. 서강대교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메달려있는건 처음 봤다.

원래 의도는 슬렁 슬렁 걷다가 아파트 건물 같은거 사이로 불꽃 놀이 모습을 보거나 어디 한적한 곳에 널부러져 저 멀리 불꽃 놀이를 하는구나 정도 기분을 느끼는 거였는데 하여간 여의도 방면으로 하늘만 보이면 다들 돗자리 깔고 누워있었다. 내가 생각한 정도의 긍정 마인드따위로는 어림도 없었다. 대단하다. 좀 더 정진하자.

골목

한때 골목에 꽤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래서 싸이월드에 커뮤니티도 하나 운영했었다.

http://rhfahr.cyworld.com/

블로그 시대가 찾아오면서 아무도 안오고, 나조차 가지않는 폐허가 되버렸다. 어쨋든 골목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아파트/건물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라지게된 첫번째 공간이고 그 바람에 골목 단위의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골목이라는 공간을 공동체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도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오류가 조금 있다. 예를 들어 평창동 윗 동네나 청담동 안쪽에는 여전히 주택 단지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골목이 있지만 거기에 예전 스타일의 맨투맨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진 않는다.

결국 어떤 특정 공간 만으로 시너지가 확보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빈 공터, 빈 골목, 빈 방 다 마찬가지다.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밤하늘의 별처럼 그냥 떠있을 뿐이고, 사람이 있어도 잠시나마 머물 곳이 없다면 그냥 지나가는 길일 뿐이다.

또한 시설 만으로 그런게 확보된 다고 볼 수 없다. 빈 벤치, 빈 회관, 빈 팔각정. 이런건 얼마든지 있다. 주변인들이 의지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예비군 훈련장, 민방위 훈련장에 정교하게 짜여진 커리큘럼이 있지만 참여할 의지도 없고, 비참여자를 제제할 방법도 없으니 결국 엉망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공간이나 도구가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20101005

상식

김구라의 경우, 말하자면 세간의 일반적인 관점, 특히 세속적인 측면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일면 재미있고(차마 말로 못하고 있던걸 표현해 준다는 점에서) 일면 불쾌하다. 물론 그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심한 풍자나 조롱은 자제한다. 어쨋든 김구라는 대한민국이라는 꽤 한정적인 대상만 다룰 수 있는 나라에서, 공중파라는 보다 더 한정적인 대상을 다룰 수 있는 코미디언이다.

하지만 만약 표현의 완전 개방이 가능해졌을때 그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다. 예전에 말했듯이 어덜트 비디오 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걸그룹 아이돌이 굳이 옷을 흘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 환상이 다른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 분야에 있어 제한적인 나라에서 먹히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게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는 우리 관점으로는 얼토당토않아 보이는데 흥분한다. 대중문화라는건 필연적으로 그 사회에 들어 맞는 현상이다. 코미디같은 경우엔 더더욱 그러하다.

종교의 경우, 특히 범세계적인 신자를 가지고 있는 종교의 경우에는 각 나라의 문화와 융화되면서도 독립된 상식이 존재한다. 상식과 보편이 존재하는 유일한 분야가 아마 종교가 아닐까 싶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최종적으로 나오는게 조리고 그것은 바로 일반의 평범한 상식을 말한다. 과연 그런 상식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솔직히 어느 정도 회의적이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가 대량확산되고 일반 대중의 지식 수준이 역사상 전례없이 높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상식은 기득 사실의 보호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 다양성과 유연성이라고 전제할 때 상식은 보존은 해주겠지만 더 나은건 보장못하는 닻이 된다. 닻은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해주지만, 또한 아무대도 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다.결국 선택은 언제 닻을 내리고, 언제 닻을 올릴지 하는 타이밍에 있다.

추위, 오구오구, 훈련

1. 너무 춥다. 집에 오는 길에 날씨를 보니 기온은 0도, 바람이 좀 불어서 체감 온도는 영하 3도 쯤이다. 옷은 작년 한 겨울 쯤 입은 것과 거의 같았는데 셔츠에 플리스, 오리털 파카, 청바지에 운동화였다. 여기에 머플러, 더 추우면 히트텍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