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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2

이집트 is Free

1380

무바라크가 퇴임을 발표했고 이집트 시민들은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분명 힘든 일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경험이, 그리고 독재자를 물리친 거의 모든 나라의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 비어있는 권력의 자리를 놓고 수많은 떨거지들이 몰려들 것이다.

부디 오늘 자유를 만끽하고 앞으로 닥칠 모든 어려움을 지금처럼 잘 극복해 지금 저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꿈꾸는 이집트를 만들길 기원한다.

축하드립니다.

20100524

라뤼보고관 2

딴지일보에 라뤼보고관의 연세대 강연과 기자회견의 번역본이 올라왔다. 내가 내지르는 천마디 헛소리보다 백배는 가치있는 내용이다.

http://www.ddanzi.com/news/20505.html

 

가만히 읽어보면 일면 교과서적이고 이런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냐 싶은 이야기들 뿐이다. 당연하다. 그런게 인권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인권과 언론, 집회의 자유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 사회에서는 이미 사문화되버린 듯한 교과서 적인 내용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그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다치고, 심지어 죽기 까지 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주어가 없는 그 양반이 전쟁 기념관까지 가서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내뱉고, 지하철 역 마다 두 명씩 짝지은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불심검문과 가방 검사를 받았다는 글이 각종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툭하면 올라오는 2010년 5월이다.

20090806

solidarity는 불가능한가

쌍용차 문제가 결국 강제 진압으로 얼룩졌고, 아마도 청산의 수순으로 나아갈 듯이 보인다. 이런 결정이 경쟁업체 등의 로비에서 나온 것인지, 나중에 혹시 생길지 모를 책임을 회피하려는 복지부동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나온 결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디벨롭핑 국가로서 이례적으로 후방 연관 효과가 저리도 큰 자동차 산업을 청산하는건 과감하기 이를데 없는 정책임은 분명하다. 미국 같은 나라도 GM을 결국 (약간 오묘한 방식이지만) 살릴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경쟁력 없는 업체의 청산, 리버럴리즘, 시장주의 원칙 운운을 계속 되뇌고 있다.

우리나라 노사 대립이 으레 그렇듯 사측은 이번에도 대화를 단절시킨채 시종일관 언론 플레이로 노측을 배수의 진을 칠 수 밖에 없는 궁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여론(혹은 여론이라는 이름을 빌린 다른 어떤 것)의 힘을 등에 업고 진압에 나섰다. (참조 링크) 90년대 이후 노조가 합법화되면서 계속 보이는 전술이다. 넓은 저변을 지닌 노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이 없다는 사실은 이렇게 계속 우리의 입지를 좁게 하고, 패퇴하게 만든다.

사측은 이러한 '대화 단절-무시-언론 플레이' 전술을 통해 '귀족 노조'라느니 '노조 이기주의'라느니 하는 단어를 시민들 머리 속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이나,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뒤통수를 칠 지 모르는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무관심과 (혹은 무관심을 부추키거나 조장하는 언론들과), 이에 반비례해 자신의 복지보다 일련의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GDP 순위의 등락에 더 관심이 많은 '착한'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 경쟁력 없는 업체는 사라져야 한다느니, 노조의 이기주의일 뿐이라느니 해대는데 당해낼 장사가 누가 있을까.

이번 사태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민주 노총이 이런 저런 서포트를 하기는 했지만 총파업 시도 한번 못한채 부족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같은 처지에 언제 놓일지 모르는 동종 업계의 파업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마다 복잡한 계산을 해대느라 연대는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사원들과 협력 업체까지 수 만명이 얽혀있는 회사 하나가 사라지려고 하는데 연대 파업 한 번 없이 모두들 숨죽이고 그저 어떻게 되가나 바라보고만 있었고, 결국 그들은 외로운 투쟁을 계속 했다. 아쉬움을 넘어 이런 졸렬한 연대 의식을 대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구명 튜브 한 번 던져줄 생각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격이다. 발을 동동 구른다고 물에 빠진 사람이 살아 나오지는 못한다.

귀족 노조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그저 레토릭일 뿐이다. 노사의 대결 구도에서 노측은 언제나 약자일 수 밖에 없는게 자본주의의 구성 원리다. 하지만 산업과 사람을 두고 저울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에, 노조가 산업의 편에 서 있었다거나 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현대 / 기아차가 나중에 노사 갈등이 생기고 총파업을 시도하려고 할 때, 과연 시민들에게 어떤 말로 동의와 협조와 연대를 구하려고 할지 자뭇 궁금하다. 위급한 순간에 사람 편에 서지 않는 노조 따위는 존재 가치가 없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어쩌구 운운하는 이야기를 그때가서 들으면 나같은 사람으로서도 화가 좀 날거 같다.

20090528

2009년 5월 말 즈음

솔직히 현 정부의 전략이 정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분에 넘치는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새로 찾아온 정부는 싱가폴이나 두바이 식의, 민주주의는 안해도 되니까 잘 살면되지 않느냐하는 방식이었다가 외교 문제가 얽히면서 이스라엘 식으로 턴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라는게 대략적인 느낌이다. 물론 이런 전략이라면 미국의 동조 내지는 아낌없는 지원이 필수적이고 그래서 PSI 전격 참여도 선언한거 아닌가 싶은데 그게 부시 시기에는 잘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스라엘도 오바마 정부를 바라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시기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고, 한국은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공통점은 어쨋든 평화가 찾아오는건 달갑지 않다 라는 점이다.

북한 역시 강경파와 온건파 대립 사이에서 균형이 무너져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나라 역시 관료제의 모순이 극에 달해 있는데다가, 집권 기간의 연장 내지는 정권의 보존 외의 어떠한 정책적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모든 일들이 결국 남쪽에서 벌어진 선거 한 번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에서 대의 민주주의라는게 얼마나 허약한 기반에 기대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남북 모두가 이제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흐름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는 끝자락들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네 역사 발전 단계를 놓고 보면 이 정도 까지 할 수 있는건가 싶다. 청산해야 할 것들을 청산하지 않은 결과가, 그리고 정신적 균형이 담보되지 않은 배금주의의 결과가 이렇게 찾아온다.

저번에 공민왕 이야기에서 잠시 썼던 것처럼 이게 역사가 발전하기 위한 극한 반동의 시기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 이상 낙관적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충 느긋하게 맘 잡고 기다려 보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음모론을 타박하는 사람들이 흔히 펼치는 반론은 음모론의 대상들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모여서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고려한다는게 말이 되냐고들 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루니와 박지성이 골을 넣을때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말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프로훼셔널의 세계의 작전이란 눈빛만 보면 읽을 수 있고, 그에 맞춰 반응해 골을 집어넣는 세계다. 남북 정부 모두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적대적 전략을 쑥쑥 키워가며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결국 영결식 문제에 대해 한치도 양보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서울 광장 개방 요구에 전의경 200 중대 배치로 화답했다. 도대체 내일 저녁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투표로 당선된 정부라지만, 정책을 수긍하는데도 한도가 있는 법인데 시민들이 정말 이대로 수긍하고 말 것인지 궁금하다. 사람 모이는게 싫다 싫다 해도 이 정도인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가 아닌한 정권 유지가 목표인 대립에서 전면전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지전 발생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신선 놀음에 시민들만 피곤하다. 가장 충돌 가능성이 높은 서해안 부근에 근무하는 장병들의 안전을 기원할 뿐이다.

참, 골치아픈 상황이다.

20090408

전환기에 있어서 교육

*어제 우분투를 켜고 이걸 쓰다가 날려먹었다. 구글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자동 저장을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공민왕이 즉위했을 당시 고려는 원(몽고) 지배 하에 있었다. 막강한 원의 세력 덕분에 고려 내에서도 친원 세력과 권문 세가들의 보수 정치의 폐단이 만연해 있었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폐단의 핵심은 토지의 점탈이다.

공민왕은 즉위 후 원의 연호, 관제를 폐지하고 내정 간섭을 하던 사법 기관 이문소를 폐지한다. 그리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을 숙청하고 원의 직속령이었던 쌍성총관부를 탈환한다. 이는 원이 세퇴해 가고 신진 국가인 명나라의 세력이 커지고 있는 당시 세계 정세를 읽은 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의 반발이 있었고 부인인 노국대장 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한 일도 겪는다. 공민왕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신돈을 기용해 개혁을 주도하게 한다. 신돈은 보수 세력이 불법 탈취한 토지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 시키는 등의 개혁을 한다.

그리고 공민왕은 성균관을 다시 부흥시켜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래디컬한 사상이었던 성리학을 공부한 학자들을 무더기로 배출시킨다.

결국 개혁은 실패하는데 신돈의 악행과 공민왕의 실수 등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개혁을 뒷받침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나 신돈 같은 개인이 일사천리로 진행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무슨 개혁이든 적어도 위 아래 모든 계층의 1/3이라도 포섭하는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오직 위에서 아래로의 개혁만이 있었다. 물론 이는 시민 교육을 의도적으로 등한시 시킨 원의 책략도 숨어있다. 우민 정책만큼 효과적인 개혁의 장애물은 없다. 공민왕은 실의에 빠져있다가 결국 시해당한다.

그리고 우왕이 즉위하고 극단적인 반동 보수 정치가 시작된다. 원의 쇠퇴와 함께 친원파 세력이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기존 권문 세력의 횡포는 제어가 불가능했다. 토지 겸병이 자행되고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땅도 없다”는 말이 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 부흥하는 명을 적대시하고 망해가는 원을 가까이하는 시대 역행적인 외교를 펼친다.

이런 극단적인 보수 반동 정치는 공민왕 시절의 개혁 정치가 실패했던 원인 중 한가지인 공통된 마인드 형성에 이바지한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라는 생각이 횡횡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성균관을 나온 개혁 성형의 학자들이다.

이렇게 혁명의 조건은 완벽히 갖춰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민중 혁명은 일어나지 못하는데 성균관을 나오는 부르주아들이 시민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왕조 개창에 성공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성계를 위시로 한 무장 세력의 도움이 컸다.

결국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우왕, 창왕을 차례로 내쫓고 공양왕 시기에 토지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양왕 2년에 옛 토지 대장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공양왕 3년에는 전격적으로 과전법을 실시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 개혁을 실시한다(북한은 광복이후 실시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392년 7월 17일 도평의사사의 인준으로 조선왕조를 개창한다.

 

**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혁명은 어느 정도의 세력 형성이 없으면 실패한다. 이건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보수 세력의 이권을 위한 결집은 대단히 큰데 그에 대항하는 자들이 가질 모티베이션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순이 어지간히 커지지 않으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영미, 유럽권 국가들은 그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런건 전후 50여년이 지나고, 전후 세대가 주도가 되어 그런 모순의 극단화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없는 자들이 신자유주의라는 극단적인 사상을 등장시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개혁에 위아래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건 아주 소소한 이야기에도 응용할 수 있다. 모바일 산업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통신 3사의 담합에 익숙해져있는 대다수의 국내 소비자들은 통신 3사가 제공하는 사고의 틀에 얽메어 있다. 그래서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생산자와 서비스 프로바이더)이 찔끔찔끔 보여주는 기술의 일면에 감탄하도록 인식이 재구성되어진다.

이런건 단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 훨씬 치열해 할 수 없이 여러 기술을 미리 미리 내보내야 하는 영미, 유럽권 국가에서도 소비자들은 통신 요금이라는 벽 때문에 사고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게 무상으로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건 사실 필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치열한 경쟁 상황”이 그나마 소비자들의 편의를 더 좋게 만들어주고 있다.

20080709

순진한 상황 인식

약간의 소회 : 이 블로그에 설치되어있는 구글 어낼러틱스가 여기가 얼마나 마이너한 곳인가 증명한다. 거기다 쓰여있는 글까지 가는 곳없이 길어지니 이야 말로 금상 첨화, 한계 구독률이 0으로 수렴한다. 길게, 길게, 아무도 읽을 엄두가 결코 안나도록 재미없게 길게, 길게.

최선의 결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물론 최악의 결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것 역시 바보같기는 매한가지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결과적으로 행동의 준거에 영향을 미친다. 필요없는 실망과 필요없는 환희보다 더 중요한건 앞으로 살아가야할 삶이다. 결국은 두 다리로만 버티며 머리와 손으로 한칸 한칸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삶.

가끔 뉴스에서 부모가 상속한 엄청난 재산을 두고 어처구니 없게 치사한 싸움을 벌이는 형제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본다. 건실해 보이고 자본도 넉넉한 회사가 월급 얼마 주지도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이야기를 본다. 아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그 복잡 다단한 탈세의 방법들을 본다. 더 필요할 것도 없을 거 같은 자산가가 탈세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별의 별 치사한 수단을 동원하는 모습을 본다.

예의도 없고, 인정머리도 없고, 최소한의 상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 인터넷 게시판에 어처구니 없는 댓글을 달고, 반대 시위라며 쇠파이프와 각목을 챙겨오는 사람들. 대한 제국때도 있었고, 자유당때도 있었던 그 사람들. 완장을 채워주니 감격에 겨워 다 쓸어버리자고 의기를 다지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우선 그걸 알아야 한다. 촛불 좀 들고 있으면 세상이 확확 변할거라는 나이브한 인식은 정신을 더 옭아맬 뿐이다. 50만이 모였다. 만족한다. 비폭력을 유지했다. 만족한다. 풍자가 가득한 인기 만점의 팻말을 만들어 들고 나갔다. 만족한다. 글쎄, 이 싸움은 그리 간단하게 풀려나갈 문제가 아니다.

이 시위의 시작은 의식의 환기가 아니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현 시점 그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과정을 지금의 집권자는 '오해가 풀리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을 투표로 뽑았다는게 믿겨지지 않지만 유신 헌법도, 짐바브웨의 무가베도, 히틀러도, 부시도 애초에 투표로 결정된 것들이다.

참여의 주최가 20대 대학생들이었으면 그들은 조직할 수 있는 단위가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제도가 있고, 세상의 불의와 부정에 반박할 수 있는 전통과 정당성이 있으니 이렇게 나아가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압박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는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든지, 더 나은 삶 따위는 RATM의 노래나 프랑스 신문에나 나오는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든지, 아니면 오직 기득권으로 들어가는게 목표지 능력없어서 고생하는 하부 시민들의 인생 따위는 관심없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물론 개인적으로 참가한 수많은 학생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투표에 의해 선출된 학생회의 결정을 따른다는 (만약 학생회가 나가자고 했어도 우르르 나올거라고도 전혀 믿지 않지만) 대의 민주주의가 무얼 말하는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관용에는 폭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전 세계의 현대사는 아픔으로 점철되었고 우파 내에서도 결국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한국 거대 기득권이 60년에 학생들의 힘을 본 후 전두환 정권때부터 근 20년간 줄기차게 시도된 조용하고 순종적인 소시민 양성 계획은 이렇듯 성공적이다.

전공투의 투쟁도 68혁명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 이후 프랑스와 일본의 사회는 매우 다르다.

전공투는 애초에 말이 안되는 투쟁이었다. 학내 문제 등에서 출발해 마르크스, 트로츠키, 마오, 제4인터내셔널, 스탈린, 아나키즘 등의 현란한 문구가 난무했지만 이건 말하자면 홍대 클럽 안에 붙어있는 체 게바라의 포스터 같은 그런 시위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위대 군중 안에서 헬멧을 쓰고 애타게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던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다.

야스다 강당을 점유하고 있던 대학생들을 경찰 기동대가 해산시켜버렸고 그때의 의장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예비학교의 물리 선생님이 되었고, 부의장 이마이 키요시는 사회당 의원으로 출발했다가 탈당하고 지금은 민주당 의원이 되었다. 진압을 하던 경찰 지휘부는 차례대로 4명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한때 55만명이 모였는데, 더구나 무력 시위였는데 이루어낸건 아무것도 없었다.

후퇴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놓지 않았던 이 시위는 결국 참여자 모두에게 패배감 만을 안겨주었다. 단카이 세대들은 결국 사회로 속속 들어가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것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때의 무브먼트는 누군가에게는 대학 시절을 이야기하는 술 안주거리가 되버렸겠지만 그런 세상을 정말 애타게 원했던 순진한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다. 고통의 전가. 그게 이 시위의 마지막 모습이다.

68혁명은 이와는 약간 다른 길을 걸었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드골을 내려앉히기 위해 시위가 시작되었다. 좌익 세력이 중심이었지만 참여한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들, 대학생들, 지식인들이었다. 파리 2/3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군사력이 동원되었고 의회가 해산되었다. 드골은 대피까지 했지만 시위는 갑자기 사그라들었다. 시위대의 모습을 보며 주판알을 튀기던 시위에 참가한 몇몇 조직들의 의견은 분열되었고 기만적 전술의 끝에 노동자들은 파업을 철회했다. 시위가 끝나고 이루어진 총선에서 드골은 오히려 승리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참여자들이 극한 탄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후 의식이 바뀌었다. 사람들 의식 속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 사라졌고 평등과 인권 그리고 연대가 전면에 나섰다. 진보적인 의식들은 제도들을 하나 하나 바꿔갔다. 물론 지금의 프랑스가 완성된 나라는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잔뜩 쌓여있다. 하지만 똑같이 68년에 일어났던 이 두 경험이 다른 결론을 만들었다는건 분명하다.

이번 시위가 좁은 의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재협상이라는 메인 타겟이 있는데 이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넓은 관점에서는 아마 더 나은 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좌파 운동권을 사로 잡고 있는 패배주의, 전대협을 사로 잡고 있는 패배주의, 그리고 60일간 촛불을 든 사람들 머리 위로 언뜻 언뜻 드리워지고 있는 패배주의. 어쨋든 이긴 건 별로 없고, 진건 잔뜩 있는게 우리나라 집회와 시위의 역사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조중동 광고 리스트 올렸다고 출국 금지를 당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잠시' 도래되고 있지만, 20년 전 30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우리는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아졌고, 할 수 있는 행동도 더 많아졌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런 시절은 앞으로 최고로 길어야 5년이다. 이 경험이 잊혀지질 않기를, 조금만 지나면 보나마나 도래할 저들의 기만적 전략들에 굴하지 않기를, 투표의 힘에 대한 시민적 각성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좀 더 의견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면 그때가서 발안제나 소환제를 도입하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정권은 외교도 못해, 영어도 못해, 컴퓨터도 못해, 경제도 못해, 인권도 못 보호해, 행정은 엉망이야, 지지율도 엉망이고 대체 뭘 잘하는걸까. 평범한 사람들과는 별 관계도 없는 5개 대기업 매출 늘어난거 한가지 있는건가. 역시 삽이나 던져줘야 신명나서 땅 파댈려나.


20080613

6월 10일 이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박이 촛불 시위대의 말을 들을 것인가. 글쎄, 아마 안들을 것 같다. 특히 이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비폭력'에 머무른다면 아마 절대 안들을거다. '비폭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경찰의 무장 해제 정도는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이런데는 사람들이 흥미가 없는거 같다. 모두들 자신이 만든 룰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형세다. 대체 뭐가 비폭력인거야.

사람들이 조중동을 쓰레기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무서워한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면 우리는 필패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적과 싸워야 하는데 이미 적을 무서워하고 있으니 게임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조중동을 완전히 청산시키기위해 나서야한다. 이런 기회는 금방 금방 찾아오지 않는다.

앞에서 아무리 재잘재잘 떠들어도 어이쿠 그렇구나 하고 물러나는 일은, 절대 없다. 100만명이 모여 앉아있어도 그들을 물러나게 할 전략이 없고 전술이 없으면, 그냥 야구장에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과 똑같다. 그냥 관객이 좀 많은 것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잔뜩 들어찬 시민들의 행렬을 보면 서 자꾸 월드컵이 떠오른다. 이게 기우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물론 이 시위가 확대 재생산 되기 위해선 논의와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그 과정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한 진실이다. 임계점에 닿았다 싶으면 내달리는게 정석이다.


정치적으로 이명박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아니면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5년간 군림하는 왕 뽑는 행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거 같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게 좀 의심스러운데. 뭔가 크게 한몫 잡아보려고 일 벌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몇조에 이르는 세금 환급, 100일 기념 사면, 군보호 지역 해제, 재산 환원 취소. 자기 돈 드는거 하나도 없이 남의 돈으로 어떻게 생색만 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국, 유럽 등지에서도 하도 문제가 많이 생겨 이리 저리 재검토 해보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는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다. 자연 독점 기업, 국가 기간 산업들이 민영화 되면 엄청난 이익이 보장될게 뻔하다. 넓지도 않은 우리나라 그런 기업들을 사들일 수 있는 후보자들 다 그놈이 그놈들이다. 대통령 측근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시민들은 2000억 넘게 쓰게 되겠지만) 국가는 2000억 아끼니 세금 낭비를 줄이는 일 아니냐는 발상이 대체 어떻게 나오게 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괄호는 왜 말 안하는데. 세금 두번만 아끼다간 사람들 초가 삼간 다 태워먹겠다.

시민들 다 거지되도 정부의 재정 적자 해소했다고 업적이랍시고 자랑할 사람이다. FTA하면 누가 제일 이익볼까. 대부분 이명박과 경영인 핫라인으로 연결된 수출 위주의 대기업들이다. 핫라인으로 연결된 철의 커넥션. 참으로 굳건하기도 하여라.


이명박의 오랜 기업인 생활이 증명하듯이 그는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촛불의 상징, 비폭력의 은유 그런거 전혀 못알아 듣는다. 알아 듣고 움직였을 사람이면 예전에 움직였고, 사실 아예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광화문, 효자동, 삼청동 모두 콘테이너로 틀어막고 청와대 처마 끝에 앉아 장마가 대체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할 이야기도 하나 없고, 들을 이야기도 하나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이 직접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 권한은 국회밖에 없다. 천상 국회를 압박해야한다. 여의도 가봐야 개회도 안했고 아무도 없긴 하지만 6월 10일에 명박산성이 세워져있고, 마침 청와대 가면 뭐하냐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회의론 대두도 있길래 난 당연히 행진이 국회로 향할 줄 알았다.

왜 안갔는지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아쉽다. 이명박 뒤에 숨어 상황만 좌시하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너네들을 잊어버린게 아니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기회였는데 그걸 그냥 날려먹었다. 실리주의자에게는 실리를 뺏는걸로 승부를 봐야한다. 100만명이 콘테이너 뒤에서 노래나 부르는 것보다 한나라당 출신 시장 한명 내리는게 정말로 훨씬 더 효과가 클 거다.


내각 사퇴론 이야기까지는 나왔는데 사실 실행되고 있는건 거의 없다. 그리고 또 박근혜 총리론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그게 실행될까 의심스럽기는 하다. 알다시피 이명박은 한국 수구 우파 비주류다. CEO 이미지를 등에 업고 세계 경제가 어려운 타이밍을 잘 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실체를 이토록 못알아본 우리 시민들이 야속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당선된 후 그가 기용한 인사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맥 풀이 턱없이 좁고 그나마 엉망진창이다. 애초에 행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헌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나라를 경영하는게 기업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만 잔뜩 들어차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한국 수구 우파의 메인 스트림이다. 그들은 한 시절 나라를 꾸려나간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훨씬 노련하다. 인맥 풀도 비교가 안된다. 지금처럼 아마츄어 냄새 풀풀 나게 정권을 꾸려갈 뜨내기들이 아니다. 이제 됐다 싶으면 이명박 따위 뒤도 안돌아보고 차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방을 내주는건 자기 자리 찾기도 엄청나게 어려워 질거라는걸 아마 이명박도 알고 있을거다. 그래서 이 카드는 실현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이명박의 카드라고는 버티기 뿐이다. 하지만 촛불 문화제한다고 자유발언 계속해봐야 5년 정도 아마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하면서 실속 다 챙겨먹을거다.

정말로 후딱후딱 해치워 버려야한다. 느긋하게 앉아 우리 참 잘하지, 민주주의 만세 하면서 좋아하고 있을때가 아니다.

20080608

이 시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반신반의하며 방점을 찍어보겠다고 적었던 이 전의 글이 내 자신도 놀랄 정도로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굉장히 차분하게 이 촛불 시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6월 6일과 6월 7일, 예고한대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찾아간 이틀간의 경험은 지금 상황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고, 상당히 아프다는걸 다시금 확인해주고있다.

자, 이제 의문은 맨 처음으로 다시 향한다. 시청 광장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었던 2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있다. 과연 이 시위로 얻고자 하는건 무엇일까.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이 한 반쯤은 사라졌었다. 가능성이 높은 후보, 될지도 모르는 후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말이 들릴때는 몰랐지만 막상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자 머리 속에서 퍼지는 반향의 차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 그런거구나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와 시민들이 말하는 경제. 같은 단어에 함축된 소름끼칠 정도로 드넓은 의미의 차이를 시민들이 결국 납득할거라고는 (여론조사와 신문보도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얇디얇은 우리나라 지도자의 층을 눈앞에서 확인하는것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체념 반, 포기 반의 시간이 지나고 예상되었던, 정확히 말하면 그의 공약집에 써있었던 정책들이 밀고 나가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 문화제가 조율되고 실행되는 과정은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렇게 실행되어갔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의지는 그렇게 문화제에 녹아들어갔다. 이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건 실망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어떤'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정부의 천박한 대응과 강경한 탄압이 있었다. 의견 수렴이 무시되면서 촛불 문화제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시위가 되었다. 아직도 수입 재협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명박 퇴진, MB OUT의 구호가 훨씬 더 크게 울린다. 바야흐로 촛불 문화제는 반정부 투쟁이 되었다. 반정부 투쟁. 이 섬뜩할 수도 있는 이름이 전혀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연 대책위는 MB를 OUT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가?


안국동 로터리에 배치된 전경 버스를 빼내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이고 밧줄이 준비되었다. 몇번의 시도가 있고난 후 갑자기 누군가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립되어있는건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진압을 시작한다고 한다, 안전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기자. 의견이 충돌하지만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하고 시위대는 분열된다.

이런 일은 새벽에 새문안 교회 옆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고, 골목이라 혹시나 포위되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은 대로에 수도없이 모여있는 사람들이 막아주고 있다. 한참의 대치가 있었고 마치 만화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는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진압이 시작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정말 마술같이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꽉차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길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2시간 후쯤 다시 한번 찾아간 그 곳에는 오직 적막 밖에 없다.

그리고 새문안 교회 안쪽 주차장 옆 좁은 골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하다길래 사다 날라주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그 좁은 골목 안에서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남는건 여러분들 맘이지만 이곳은 위험하다. 빨리 나가라. 빨리 나가라.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남 걱정 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비질비질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동안 그것 참 우연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디에 전경이 온다더라. 가본다.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서 진압이 시작된다더라. 가본다. 아무일도 없다. 다리만 아프다. 유자드웹을 쓸 수 있으니 아고라와 오마이뉴스등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거기도 똑같다.

결국 아무 말도 믿지 않게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판단도 불가능하다. 시야는 좁고 거리는 너무 넓다. 아고라 회원들의 토론이 벌어지지만 5개가 넘는 아고라 깃발들은 다들 가는 길이 다르다. 제어되지 않은 시민의 의견은 이토록 간단히 움직인다. 토론, 민주주의라 이야기하지만 들어오는 정보는 너무 작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들 목표가 다르다.


버스속에서 지하철 속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어제 시위의 무용담을 나눈다. 전경 새끼들, 프락치 새끼들, 어제 한 인터뷰 이야기, 어제 어떤 기자에게 사진 찍힌 팜플렛 자랑.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서로 서로의 무용담에 자위를 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한다.

광화문은 떠들썩하다. 자유 발언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386쯤의 나이대 사람들 몇명이 둥그렇게 앉아 운동 가요를 끊임없이 부른다. 내 바로 앞에 디씨 무적 김밥 부대인가에서 봉사자가 김밥 두박스와 생수 한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김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그들은 달려들었다.

단 5분만에 종이 박스와 생수가 포장되어있던 비닐 봉지만 남는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건 묘한 경험이다. 버스를 움직이는 행위는 의식이 되어간다. 한밤에 벌어지는 거리의 마츠리다. 영차 영차. 움직임 하나 하나에 사람들이 환호한다.

결국 이 시위는 점점 쇼가 되어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쇼 데몬스트레이션. 고생하고 잡혀가는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까지 시위 군중 속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미약한 힘의 사람들 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목적이 쇠고기 재협상인가? 재협상 하면 그만 둘건가? 나중에 수도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이런 일 있으면 또 반복하면서 나올건가. 나중에 비록 실패했지만 역사적인 시위로 시민의식으로 높였다고 역사에 기록되면 그거나 보며 흐뭇해 할 생각인가?

대책위가 MB OUT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뭐냐. 아웃시킬 생각이 있기는 한건가. 그럼 어떻게 아웃 시킬 생각인가. 알겠지만 광화문 거리 앞에서 자유 발언을 한다고 대통령이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72시간이 아니라 720시간을 텐트를 쳐도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제발로 나갈 작자였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다. 지금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탄핵을 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헌법을 바꿔 하야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아예 새 나라를 만들 생각인가?

아웃 시키고 나면 뭔가 로드맵이라도 있나? 어떤 세상을 만들어볼 생각인가. 그 어떤 세상은 누구의 의견으로 만들어진건가? 시민의 의견? 대책위의 의견? 이에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희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그 이후에 과정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조금씩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은 있나? 그냥 이런것들을 단지 꿈처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쇼를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쇼의 목적은 대체 뭐냐. 사람들이,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것만 가지고도 큰 의미가 있고, 우리 국민의 훌륭한 의식을 보여주는거라 생각하나. 그런 자족을 위해 20만명이나 필요한가. 월드컵때 100만이 넘게 모이는걸 보고 충분히 자족하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포장하지 않았나? 그런 의식이 정말 더 필요한건가?


청와대로 가는 일의 상징성은 무척이나 크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있다. 부화뇌동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광화문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자가 외친다, 지금 안국동에서 전경들과 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함성을 보내줍시다. 와~ 자, 그럼 다음 자유 발언을 들어봅시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시민.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위해 이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앞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간걸까. 그걸 점점 모르겠다. 물론 그 가치를 폄하하진 못한다. 시민의 거대한 움직임에 평가를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 경험은 누군가에겐 민주주의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고, 우리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 20만명이 모일 필요는 없다.

문화제가 조율되고 조직되는 감동적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실망이 큰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기회는 너무 아깝다. 이게 끝나고 나면 뭐가 다가올까.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의 제목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예전 전공투의 구호 중 하나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금 현실에 투사하는건 지나친 일인가.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왜 적군파가 생겨났는지,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하였다. 이게 정말 지나친 생각인가.


광장에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그래 난 살아있으므로 따르겠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갈데가 어딘지 알기는 하나? 아니, 갈데가 있기는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조롱으로 들린다. 이 노래에 실려있는 치열함이 웃음 속에 묻힌다. 그 음악을 제발 틀지마세요 DJ, DJ. 이건 이 노래에 대한 모욕이다.



PS 밤새 우석훈 박사가 상당히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길이 쇼 데몬스트레이션보다 훨씬 빨라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단체장이라는 어감의 차이가 좀 멀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소환제, 대통령 및 관료 소환제가 없다는게 이렇게 일을 힘들게 만든다.
http://retired.tistory.com/150


20080603

총체적 부조리에 빠져있는 경찰이라는 조직

이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경찰 조직이 지속적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링크 참조) 그리고 공권력이 불법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위 '민주화'시대의 변화에 대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있다며 타박하는 조중동이 이를 서포트해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회의 민주화 과정으로 다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이 있었다. 권위주의의 해체란 어떤 조직의 힘이 약해진다는걸 뜻한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제한. 결국 이들은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부풀게 된다. 마침내 그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이 기회를 마음껏 활용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군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군부 통치의 시절이 있었고, 이게 지나감에도 하나회는 존속하며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방법이 뭐 없을까 뒤적거렸지만 하나회는 결국 해체되었다. 그리고 강력한 외부 감시(군의 정치 개입에 극히 민감한 반응)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군인이 있든 아니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나라는 가지게 되었다.


쇠고기 파동에 이어 반정부시위로 발전하고 있는 촛불 문화제 과정에서 경찰 조직은 극한 제압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도 예전처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돌을 던지고 파이프를 휘두르는 것도 아닌 고작 촛불들고 저기로도 좀 걸어가서 이야기좀 해보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살수차,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고 있다. 이런걸 넘어서 전경 한명 한명의 폭력의 도는 이미 수위를 넘었다.

물론 군복이 주는 익명성은 사람을 대담하게 만든다. 또 혈기 왕성하고 감정을 콘트롤하는 능력이 서툰 젊은이들이라 흥분하기 쉬운것도 맞는 일이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도망치는 사람을 방패로 치고 있다는건 경찰이라는 조직의 관리 능력 자체에 큰 문제점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무기를 든 부하의 감정을 콘트롤할 능력이 없다는건, 혹은 감정을 시민에게 발산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는게 의미하는건 만약 전자라면 조직의 구조, 전달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후자라면 이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이건 역시 경찰 조직 자체가 민주화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이고, 그러므로 맨 아래 조직으로 들어온 의경, 전경들 역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자기들의 본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해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채 방패주고 갑옷 주니까 맘대로 때려도 되나 보다 얼씨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포돌이 어쩌구하는 시덥잖은 이야기는 잔뜩 해대면서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경찰 조직은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 이유는 시민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필요성 때문에 시민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고 세금은 경찰청에 지급된다. 만약 시민들에게 필요없는 일을 한다면, 그리고 제 몸하나 못가누면서 내부인들의 위법 행위를 방치하고, 감싸주기에만 급급하다면 그 조직은 필요없다. 자신이나 민주화 시켜놓고 우리보고 준법이니 민주주의니 따져라.

경찰은 자신에게 솔직해 져야 한다. 능력도 안되면서 10만명이 넘는, 분에 넘치는 조직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더구나 경찰은 무기를 들 수 있는 조직이다. 제어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른다고 생각되면 솔직히 고백하고 다른 조직에 넘겨라.

우리가 없으면 경찰은 누가 이끌어 따위의 되도 않는 소리는 안해도 된다. 대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해체하고 자치 경찰제로 바꾸고 전의경은 본래의 임무 대간첩 작전 수행 중심으로 산속에다 집어넣어놓으면 된다. 교통정리와 고성 방가, 경범죄 위반을 잡기 위해 방패와 곤봉을 든 자들은 필요없다. 무장 간첩이나 테러단 나타나면 그때 내려와라. 열렬히 환영해 주마. 당신들의 분에 넘치는 욕심 때문에 400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더불어 이제 대부분 20대 초반들일 전의경들에게 보내는 말을 좀 보탠다. '공권력'은 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즉, 전의경의 옷은 폭력 허가증 같은게 아니다. 우리나라 법은 군 또는 이에 준하는 조직에서 상명 하달을 강조한다.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상관의 명령이라면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법에 어긋날때는 따르지 않도록 되어 있고 따르지 않아야만 하게 되어있다.

자신의 불법적 폭력을 위계조직의 상부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 믿지 마라. 위법은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그 행동을 한 당사자에게만 돌아간다. 고참도 간부도 아무 책임도 떠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꼭 저지르고 싶다면 판단을 명확히 해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준비를 해라. 시민들은 끝까지 쫒아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20080602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

버스 한대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나를 제약하는 일상 때문에 억울하지만 발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일상, 그놈의 일상. 그리고 지금, 인터넷 방송에서는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방패를 휘두르는 전경들의 모습이 보인다. RSS에 등록해 놓았던 BBC 뉴스 첫번째 칸에 실려있는 이 시위에 대한 사진을 본다.


민주주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그리고 아나키즘을 제외한 어떤 체계 안에서도 세상에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피지배계층이 뭔가 원하지만, 그것이 지배계층의 이익이 아니라면 '나라는 시민들의 것'이라는 허황된 레토릭들에도 불구하고 반항하고, 반발해야 얻어낼 수 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한다. 싸우지 않고선 빈 손 뿐이다. 그들은 대의를 쫓아 뭔가 내준 적도 없고,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될 상황이 와도 갖은 수사들로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와중에 꼼짝도 안하고 투덜거리면서, 아니면 아예 그럴 의지도 능력도 가지지 않고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다수다. 제 몸하나 까딱하기 싫으면서 권리는 줄기차게 주장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다. 누군가 다쳐가면서, 죽어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에 대고 감내놔라 팥내놔라 열심히도 챙겨먹는다.

수구 세력들은 진보 진영이나 정당한 시민들의 권리 의식들과 그나마 정면 대결이라도 하고 있지 ,이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은 변화의 시기엔 몸을 숙일 뿐이다. 뭔가 바뀌나 싶으면 재빨리 주판알을 튀기고 대세를 따른다.

이들을 원망하는건 아니다. 이들도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시민이다. 우리의 점잖은 선조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무신함을 피하려 안이하노라'라며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은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하노라'는 때아닌 관용을 베풀었지만 이런 현학적인 단어들도 실로 아깝다.

이들을 책망하지는 못한다. TV로 폭력의 현장을 바라보며 히히덕 거리며, 폭력 앞에 노출되어있는 시민들에게 비폭력하라고, 그게 시민의 힘이라고 쉽게들 말한다. 질서 의식을 말하며 불법을 탓한다. 물론 이것은 지켜야할 것이고 이 시위의 진정한 힘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너희들이 할 말은 아니다. 그건 그 자리에 서있는 절박한 사람들 입에서나 나올 말이다. 이런 자들을 다 끌어다 단두대에 밀어넣은 로베스피에로는 실로 위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뿐이다. 민주주의의 성과물들을 부산물들을 마음껏 받아 먹어도 좋다. 다만 지금하고 있는 일, 그거라도 열심히 해라. 제발 거기서라도 남의 성과물들을 탐내지 말고, 그곳의 불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너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싸워라. 그리고 제발 방해라도 하지 말 것을 간절히 바란다.

20080527

시민들의 정당은 가능할까

촛불 문화제가 문화제 참여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진화해 나갈지는 전혀 알 수 없는게, 주도층이란게 딱히 없기 때문이다. 아고라에서, 디씨에서, 그리고 그외 여러 카페,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의견으로 수렴된다. 현장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 수렴과 결정이 반복된다. 물론 딱 떨어지는 지시가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지는 않다.

효율적인 면에서는 떨어질 지 몰라도 정보 누출의 걱정이 전혀 없고 (당사자들도 모른다),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이므로 결정에 대한 순응도가 높다. 이거야 사실 애초에 민주주의란게 의견 수렴과 결정이 그렇게 완벽히 작동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다. 살짝 살짝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오류는 즉시 즉시 보완해가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루소가 국민의 의사는 대표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의제를 반대하고 경험적 의사를 중시해야한다고 말하는걸 예전에 읽었을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뭐가 결정된다는걸까, 세상에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너무 아이디얼하지 않나?

이제와서 이게 대충이나마 이해가 간다. 촛불 문화제를 경험하면서 약간이나마 상상력이 더 풍부해진 덕이다. 그것은 아마, 대충 지금같은 식의 의사 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의견이 서서히 수렴되고 뭔가가 결정된다. 투표도 없고, 지시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결정되고, 동의되고, 실행된다.


생각해보면 1789년에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갈때 그 전날 밤에 누군가 소위 '지도층'들이 모여서 결정하고 지시한건 아니다. 루소는 대혁명을 겪진 않았겠지만 그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학자다. 68년 5월은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어진 다음 과정에서 68년에 논의가 이루어진 사항들에 대한 시민들의 토론과 결정이 그래도 성공적이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사회는 변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가는데, 이게 반사적으로 다른 정당들의 지지율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은 정치 전반에 회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들은 보수 우익도 아니고, 운동권 좌파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좋은 나라에서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 하고 싶은 일 잘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금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은 '정치'에 대단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반감을 드러내는건 물론 모순된 행동이 아니라, 여기서 '정치'가 우리나라의 '기존 정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게다.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너무 없고, 권력을 두 손 가득 쥔 정치인들만 잔뜩 있는게 문제다.

몇개의 언론사와 대기업과 결탁된 수구 정당은 그들만 이익인 정책을 잔뜩 펼쳐보이고 있고, 노조나 시민단체 등 몇몇 운동권 세력이 결집된 정당들은 보다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고립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야당이 된 저번 여당은 솔직히 지금 뭐하고 있는건지, 생각은 하고 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본격적인 시민 정당의 출현을 기대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정당과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는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찾아오는 일은 4년에 한번 총선, 5년에 한번 대통령 선거때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며 지들 멋대로 하고 싶은걸 해댈 뿐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시민들에게는 소환권도 없고, 탄핵권도 없고, 쓸만한 참여 절차도 없으니 정치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다. 구경거리라도 되면 괜찮지만, 직접적으로 생계에 위협까지 가하니 이건 정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자 비슷한 걸 몇년에 한번씩 뽑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투표를 제대로 하면 되잖아 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기존 권력의 공고함과, 그 이권이 엄청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 관심을 가지고 쳐다봐야 맘에 그다지 안차는 대안들 중에 대체 누굴 골라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정도에서 멈춘다. 맘에 드는 사람이 혹시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이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구시대적 정치 세력들을 거부하고, 시민의 복지와 환경, 합리적인 이념의 조화, 시민들을 위한 정책에 역점을 둔 본격적인 시민 정당이 가능할 시기,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의견을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 혹시나 그 와중에 구시대적 권력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소환시켜 버리고 하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듯 싶다. 시민 의식이라는게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건 가까운데 있는 지방 자치 단체급부터 시작해서 차츰 차츰 넓혀가는게 올바른 길이긴 한데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 단체라는게 그다지 권한도 없고 딱히 와닿는 일을 하는 경우도 없고, 지역 유지들과 결탁해서 역시나 자기들 좋은 일만 해대는게 다반사인데다, 시민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래서 역시 국회부터 노리고 시작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정치인이라는게 권력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시민의 대행자라는걸 직접, 명확하게 느끼게 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물론 현실 정치라는게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고, 저런 식의 작동 방식을 어떻게 고수해 나갈 수 있을지도 큰 문제거리다. 급박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저런 방식이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적극적인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행정학, 법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익스퍼트들의 몫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초야에 뭍혀있을, 생각이 좀 올바른 사람들이 슬슬 기어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감을 가지고, 저항하고, 제대로 좀 하라고 핀잔을 줄 일도 있는데, 가끔은 도무지 답이 안보여서 직접 나서서 해야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만약 재협상 등의 의사를 관철해 낸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결과적으로 어떤 식의 결실을 맺을지 아직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그냥 잠자코 원래 자리로들 돌아가고 만다면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또 촛불을 들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땐 뽑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게 될거다.

어쨋든 이 과정을 잘 겪고,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책에서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호포읍 이야기

1. 호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  a)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은 "호포읍 대소동"이 더 어울릴 거 같다. "대소동"이라는 나름 전통적인 단어가 들어간 최고 제작비 영화가 됐을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