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가 퇴임을 발표했고 이집트 시민들은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분명 힘든 일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경험이, 그리고 독재자를 물리친 거의 모든 나라의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 비어있는 권력의 자리를 놓고 수많은 떨거지들이 몰려들 것이다.
부디 오늘 자유를 만끽하고 앞으로 닥칠 모든 어려움을 지금처럼 잘 극복해 지금 저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꿈꾸는 이집트를 만들길 기원한다.
축하드립니다.
무바라크가 퇴임을 발표했고 이집트 시민들은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분명 힘든 일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경험이, 그리고 독재자를 물리친 거의 모든 나라의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 비어있는 권력의 자리를 놓고 수많은 떨거지들이 몰려들 것이다.
부디 오늘 자유를 만끽하고 앞으로 닥칠 모든 어려움을 지금처럼 잘 극복해 지금 저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꿈꾸는 이집트를 만들길 기원한다.
축하드립니다.
딴지일보에 라뤼보고관의 연세대 강연과 기자회견의 번역본이 올라왔다. 내가 내지르는 천마디 헛소리보다 백배는 가치있는 내용이다.
http://www.ddanzi.com/news/20505.html
가만히 읽어보면 일면 교과서적이고 이런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냐 싶은 이야기들 뿐이다. 당연하다. 그런게 인권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인권과 언론, 집회의 자유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 사회에서는 이미 사문화되버린 듯한 교과서 적인 내용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그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다치고, 심지어 죽기 까지 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주어가 없는 그 양반이 전쟁 기념관까지 가서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내뱉고, 지하철 역 마다 두 명씩 짝지은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불심검문과 가방 검사를 받았다는 글이 각종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툭하면 올라오는 2010년 5월이다.
쌍용차 문제가 결국 강제 진압으로 얼룩졌고, 아마도 청산의 수순으로 나아갈 듯이 보인다. 이런 결정이 경쟁업체 등의 로비에서 나온 것인지, 나중에 혹시 생길지 모를 책임을 회피하려는 복지부동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나온 결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디벨롭핑 국가로서 이례적으로 후방 연관 효과가 저리도 큰 자동차 산업을 청산하는건 과감하기 이를데 없는 정책임은 분명하다. 미국 같은 나라도 GM을 결국 (약간 오묘한 방식이지만) 살릴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경쟁력 없는 업체의 청산, 리버럴리즘, 시장주의 원칙 운운을 계속 되뇌고 있다.
우리나라 노사 대립이 으레 그렇듯 사측은 이번에도 대화를 단절시킨채 시종일관 언론 플레이로 노측을 배수의 진을 칠 수 밖에 없는 궁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여론(혹은 여론이라는 이름을 빌린 다른 어떤 것)의 힘을 등에 업고 진압에 나섰다. (참조 링크) 90년대 이후 노조가 합법화되면서 계속 보이는 전술이다. 넓은 저변을 지닌 노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이 없다는 사실은 이렇게 계속 우리의 입지를 좁게 하고, 패퇴하게 만든다.
사측은 이러한 '대화 단절-무시-언론 플레이' 전술을 통해 '귀족 노조'라느니 '노조 이기주의'라느니 하는 단어를 시민들 머리 속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이나,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뒤통수를 칠 지 모르는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무관심과 (혹은 무관심을 부추키거나 조장하는 언론들과), 이에 반비례해 자신의 복지보다 일련의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GDP 순위의 등락에 더 관심이 많은 '착한'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 경쟁력 없는 업체는 사라져야 한다느니, 노조의 이기주의일 뿐이라느니 해대는데 당해낼 장사가 누가 있을까.
이번 사태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민주 노총이 이런 저런 서포트를 하기는 했지만 총파업 시도 한번 못한채 부족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같은 처지에 언제 놓일지 모르는 동종 업계의 파업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마다 복잡한 계산을 해대느라 연대는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사원들과 협력 업체까지 수 만명이 얽혀있는 회사 하나가 사라지려고 하는데 연대 파업 한 번 없이 모두들 숨죽이고 그저 어떻게 되가나 바라보고만 있었고, 결국 그들은 외로운 투쟁을 계속 했다. 아쉬움을 넘어 이런 졸렬한 연대 의식을 대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구명 튜브 한 번 던져줄 생각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격이다. 발을 동동 구른다고 물에 빠진 사람이 살아 나오지는 못한다.
귀족 노조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그저 레토릭일 뿐이다. 노사의 대결 구도에서 노측은 언제나 약자일 수 밖에 없는게 자본주의의 구성 원리다. 하지만 산업과 사람을 두고 저울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에, 노조가 산업의 편에 서 있었다거나 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현대 / 기아차가 나중에 노사 갈등이 생기고 총파업을 시도하려고 할 때, 과연 시민들에게 어떤 말로 동의와 협조와 연대를 구하려고 할지 자뭇 궁금하다. 위급한 순간에 사람 편에 서지 않는 노조 따위는 존재 가치가 없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어쩌구 운운하는 이야기를 그때가서 들으면 나같은 사람으로서도 화가 좀 날거 같다.
솔직히 현 정부의 전략이 정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분에 넘치는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새로 찾아온 정부는 싱가폴이나 두바이 식의, 민주주의는 안해도 되니까 잘 살면되지 않느냐하는 방식이었다가 외교 문제가 얽히면서 이스라엘 식으로 턴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라는게 대략적인 느낌이다. 물론 이런 전략이라면 미국의 동조 내지는 아낌없는 지원이 필수적이고 그래서 PSI 전격 참여도 선언한거 아닌가 싶은데 그게 부시 시기에는 잘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스라엘도 오바마 정부를 바라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시기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고, 한국은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공통점은 어쨋든 평화가 찾아오는건 달갑지 않다 라는 점이다.
북한 역시 강경파와 온건파 대립 사이에서 균형이 무너져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나라 역시 관료제의 모순이 극에 달해 있는데다가, 집권 기간의 연장 내지는 정권의 보존 외의 어떠한 정책적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모든 일들이 결국 남쪽에서 벌어진 선거 한 번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에서 대의 민주주의라는게 얼마나 허약한 기반에 기대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남북 모두가 이제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흐름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는 끝자락들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네 역사 발전 단계를 놓고 보면 이 정도 까지 할 수 있는건가 싶다. 청산해야 할 것들을 청산하지 않은 결과가, 그리고 정신적 균형이 담보되지 않은 배금주의의 결과가 이렇게 찾아온다.
저번에 공민왕 이야기에서 잠시 썼던 것처럼 이게 역사가 발전하기 위한 극한 반동의 시기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 이상 낙관적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충 느긋하게 맘 잡고 기다려 보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음모론을 타박하는 사람들이 흔히 펼치는 반론은 음모론의 대상들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모여서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고려한다는게 말이 되냐고들 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루니와 박지성이 골을 넣을때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말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프로훼셔널의 세계의 작전이란 눈빛만 보면 읽을 수 있고, 그에 맞춰 반응해 골을 집어넣는 세계다. 남북 정부 모두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적대적 전략을 쑥쑥 키워가며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결국 영결식 문제에 대해 한치도 양보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서울 광장 개방 요구에 전의경 200 중대 배치로 화답했다. 도대체 내일 저녁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투표로 당선된 정부라지만, 정책을 수긍하는데도 한도가 있는 법인데 시민들이 정말 이대로 수긍하고 말 것인지 궁금하다. 사람 모이는게 싫다 싫다 해도 이 정도인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가 아닌한 정권 유지가 목표인 대립에서 전면전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지전 발생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신선 놀음에 시민들만 피곤하다. 가장 충돌 가능성이 높은 서해안 부근에 근무하는 장병들의 안전을 기원할 뿐이다.
참, 골치아픈 상황이다.
*어제 우분투를 켜고 이걸 쓰다가 날려먹었다. 구글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자동 저장을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공민왕이 즉위했을 당시 고려는 원(몽고) 지배 하에 있었다. 막강한 원의 세력 덕분에 고려 내에서도 친원 세력과 권문 세가들의 보수 정치의 폐단이 만연해 있었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폐단의 핵심은 토지의 점탈이다.
공민왕은 즉위 후 원의 연호, 관제를 폐지하고 내정 간섭을 하던 사법 기관 이문소를 폐지한다. 그리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을 숙청하고 원의 직속령이었던 쌍성총관부를 탈환한다. 이는 원이 세퇴해 가고 신진 국가인 명나라의 세력이 커지고 있는 당시 세계 정세를 읽은 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의 반발이 있었고 부인인 노국대장 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한 일도 겪는다. 공민왕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신돈을 기용해 개혁을 주도하게 한다. 신돈은 보수 세력이 불법 탈취한 토지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 시키는 등의 개혁을 한다.
그리고 공민왕은 성균관을 다시 부흥시켜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래디컬한 사상이었던 성리학을 공부한 학자들을 무더기로 배출시킨다.
결국 개혁은 실패하는데 신돈의 악행과 공민왕의 실수 등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개혁을 뒷받침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나 신돈 같은 개인이 일사천리로 진행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무슨 개혁이든 적어도 위 아래 모든 계층의 1/3이라도 포섭하는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오직 위에서 아래로의 개혁만이 있었다. 물론 이는 시민 교육을 의도적으로 등한시 시킨 원의 책략도 숨어있다. 우민 정책만큼 효과적인 개혁의 장애물은 없다. 공민왕은 실의에 빠져있다가 결국 시해당한다.
그리고 우왕이 즉위하고 극단적인 반동 보수 정치가 시작된다. 원의 쇠퇴와 함께 친원파 세력이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기존 권문 세력의 횡포는 제어가 불가능했다. 토지 겸병이 자행되고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땅도 없다”는 말이 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 부흥하는 명을 적대시하고 망해가는 원을 가까이하는 시대 역행적인 외교를 펼친다.
이런 극단적인 보수 반동 정치는 공민왕 시절의 개혁 정치가 실패했던 원인 중 한가지인 공통된 마인드 형성에 이바지한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라는 생각이 횡횡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성균관을 나온 개혁 성형의 학자들이다.
이렇게 혁명의 조건은 완벽히 갖춰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민중 혁명은 일어나지 못하는데 성균관을 나오는 부르주아들이 시민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왕조 개창에 성공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성계를 위시로 한 무장 세력의 도움이 컸다.
결국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우왕, 창왕을 차례로 내쫓고 공양왕 시기에 토지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양왕 2년에 옛 토지 대장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공양왕 3년에는 전격적으로 과전법을 실시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 개혁을 실시한다(북한은 광복이후 실시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392년 7월 17일 도평의사사의 인준으로 조선왕조를 개창한다.
**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혁명은 어느 정도의 세력 형성이 없으면 실패한다. 이건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보수 세력의 이권을 위한 결집은 대단히 큰데 그에 대항하는 자들이 가질 모티베이션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순이 어지간히 커지지 않으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영미, 유럽권 국가들은 그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런건 전후 50여년이 지나고, 전후 세대가 주도가 되어 그런 모순의 극단화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없는 자들이 신자유주의라는 극단적인 사상을 등장시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개혁에 위아래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건 아주 소소한 이야기에도 응용할 수 있다. 모바일 산업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통신 3사의 담합에 익숙해져있는 대다수의 국내 소비자들은 통신 3사가 제공하는 사고의 틀에 얽메어 있다. 그래서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생산자와 서비스 프로바이더)이 찔끔찔끔 보여주는 기술의 일면에 감탄하도록 인식이 재구성되어진다.
이런건 단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 훨씬 치열해 할 수 없이 여러 기술을 미리 미리 내보내야 하는 영미, 유럽권 국가에서도 소비자들은 통신 요금이라는 벽 때문에 사고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게 무상으로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건 사실 필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치열한 경쟁 상황”이 그나마 소비자들의 편의를 더 좋게 만들어주고 있다.
약간의 소회 : 이 블로그에 설치되어있는 구글 어낼러틱스가 여기가 얼마나 마이너한 곳인가 증명한다. 거기다 쓰여있는 글까지 가는 곳없이 길어지니 이야 말로 금상 첨화, 한계 구독률이 0으로 수렴한다. 길게, 길게, 아무도 읽을 엄두가 결코 안나도록 재미없게 길게, 길게.
최선의 결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물론 최악의 결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것 역시 바보같기는 매한가지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결과적으로 행동의 준거에 영향을 미친다. 필요없는 실망과 필요없는 환희보다 더 중요한건 앞으로 살아가야할 삶이다. 결국은 두 다리로만 버티며 머리와 손으로 한칸 한칸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삶.
가끔 뉴스에서 부모가 상속한 엄청난 재산을 두고 어처구니 없게 치사한 싸움을 벌이는 형제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본다. 건실해 보이고 자본도 넉넉한 회사가 월급 얼마 주지도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이야기를 본다. 아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그 복잡 다단한 탈세의 방법들을 본다. 더 필요할 것도 없을 거 같은 자산가가 탈세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별의 별 치사한 수단을 동원하는 모습을 본다.
예의도 없고, 인정머리도 없고, 최소한의 상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 인터넷 게시판에 어처구니 없는 댓글을 달고, 반대 시위라며 쇠파이프와 각목을 챙겨오는 사람들. 대한 제국때도 있었고, 자유당때도 있었던 그 사람들. 완장을 채워주니 감격에 겨워 다 쓸어버리자고 의기를 다지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우선 그걸 알아야 한다. 촛불 좀 들고 있으면 세상이 확확 변할거라는 나이브한 인식은 정신을 더 옭아맬 뿐이다. 50만이 모였다. 만족한다. 비폭력을 유지했다. 만족한다. 풍자가 가득한 인기 만점의 팻말을 만들어 들고 나갔다. 만족한다. 글쎄, 이 싸움은 그리 간단하게 풀려나갈 문제가 아니다.
이 시위의 시작은 의식의 환기가 아니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현 시점 그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과정을 지금의 집권자는 '오해가 풀리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을 투표로 뽑았다는게 믿겨지지 않지만 유신 헌법도, 짐바브웨의 무가베도, 히틀러도, 부시도 애초에 투표로 결정된 것들이다.
참여의 주최가 20대 대학생들이었으면 그들은 조직할 수 있는 단위가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제도가 있고, 세상의 불의와 부정에 반박할 수 있는 전통과 정당성이 있으니 이렇게 나아가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압박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는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든지, 더 나은 삶 따위는 RATM의 노래나 프랑스 신문에나 나오는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든지, 아니면 오직 기득권으로 들어가는게 목표지 능력없어서 고생하는 하부 시민들의 인생 따위는 관심없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물론 개인적으로 참가한 수많은 학생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투표에 의해 선출된 학생회의 결정을 따른다는 (만약 학생회가 나가자고 했어도 우르르 나올거라고도 전혀 믿지 않지만) 대의 민주주의가 무얼 말하는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관용에는 폭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전 세계의 현대사는 아픔으로 점철되었고 우파 내에서도 결국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한국 거대 기득권이 60년에 학생들의 힘을 본 후 전두환 정권때부터 근 20년간 줄기차게 시도된 조용하고 순종적인 소시민 양성 계획은 이렇듯 성공적이다.
전공투의 투쟁도 68혁명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 이후 프랑스와 일본의 사회는 매우 다르다.
전공투는 애초에 말이 안되는 투쟁이었다. 학내 문제 등에서 출발해 마르크스, 트로츠키, 마오, 제4인터내셔널, 스탈린, 아나키즘 등의 현란한 문구가 난무했지만 이건 말하자면 홍대 클럽 안에 붙어있는 체 게바라의 포스터 같은 그런 시위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위대 군중 안에서 헬멧을 쓰고 애타게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던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다.
야스다 강당을 점유하고 있던 대학생들을 경찰 기동대가 해산시켜버렸고 그때의 의장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예비학교의 물리 선생님이 되었고, 부의장 이마이 키요시는 사회당 의원으로 출발했다가 탈당하고 지금은 민주당 의원이 되었다. 진압을 하던 경찰 지휘부는 차례대로 4명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한때 55만명이 모였는데, 더구나 무력 시위였는데 이루어낸건 아무것도 없었다.
후퇴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놓지 않았던 이 시위는 결국 참여자 모두에게 패배감 만을 안겨주었다. 단카이 세대들은 결국 사회로 속속 들어가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것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때의 무브먼트는 누군가에게는 대학 시절을 이야기하는 술 안주거리가 되버렸겠지만 그런 세상을 정말 애타게 원했던 순진한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다. 고통의 전가. 그게 이 시위의 마지막 모습이다.
68혁명은 이와는 약간 다른 길을 걸었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드골을 내려앉히기 위해 시위가 시작되었다. 좌익 세력이 중심이었지만 참여한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들, 대학생들, 지식인들이었다. 파리 2/3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군사력이 동원되었고 의회가 해산되었다. 드골은 대피까지 했지만 시위는 갑자기 사그라들었다. 시위대의 모습을 보며 주판알을 튀기던 시위에 참가한 몇몇 조직들의 의견은 분열되었고 기만적 전술의 끝에 노동자들은 파업을 철회했다. 시위가 끝나고 이루어진 총선에서 드골은 오히려 승리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참여자들이 극한 탄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후 의식이 바뀌었다. 사람들 의식 속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 사라졌고 평등과 인권 그리고 연대가 전면에 나섰다. 진보적인 의식들은 제도들을 하나 하나 바꿔갔다. 물론 지금의 프랑스가 완성된 나라는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잔뜩 쌓여있다. 하지만 똑같이 68년에 일어났던 이 두 경험이 다른 결론을 만들었다는건 분명하다.
이번 시위가 좁은 의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재협상이라는 메인 타겟이 있는데 이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넓은 관점에서는 아마 더 나은 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좌파 운동권을 사로 잡고 있는 패배주의, 전대협을 사로 잡고 있는 패배주의, 그리고 60일간 촛불을 든 사람들 머리 위로 언뜻 언뜻 드리워지고 있는 패배주의. 어쨋든 이긴 건 별로 없고, 진건 잔뜩 있는게 우리나라 집회와 시위의 역사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조중동 광고 리스트 올렸다고 출국 금지를 당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잠시' 도래되고 있지만, 20년 전 30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우리는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아졌고, 할 수 있는 행동도 더 많아졌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런 시절은 앞으로 최고로 길어야 5년이다. 이 경험이 잊혀지질 않기를, 조금만 지나면 보나마나 도래할 저들의 기만적 전략들에 굴하지 않기를, 투표의 힘에 대한 시민적 각성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좀 더 의견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면 그때가서 발안제나 소환제를 도입하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정권은 외교도 못해, 영어도 못해, 컴퓨터도 못해, 경제도 못해, 인권도 못 보호해, 행정은 엉망이야, 지지율도 엉망이고 대체 뭘 잘하는걸까. 평범한 사람들과는 별 관계도 없는 5개 대기업 매출 늘어난거 한가지 있는건가. 역시 삽이나 던져줘야 신명나서 땅 파댈려나.

1. 호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 a)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은 "호포읍 대소동"이 더 어울릴 거 같다. "대소동"이라는 나름 전통적인 단어가 들어간 최고 제작비 영화가 됐을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