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8

이 시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반신반의하며 방점을 찍어보겠다고 적었던 이 전의 글이 내 자신도 놀랄 정도로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굉장히 차분하게 이 촛불 시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6월 6일과 6월 7일, 예고한대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찾아간 이틀간의 경험은 지금 상황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고, 상당히 아프다는걸 다시금 확인해주고있다.

자, 이제 의문은 맨 처음으로 다시 향한다. 시청 광장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었던 2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있다. 과연 이 시위로 얻고자 하는건 무엇일까.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이 한 반쯤은 사라졌었다. 가능성이 높은 후보, 될지도 모르는 후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말이 들릴때는 몰랐지만 막상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자 머리 속에서 퍼지는 반향의 차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 그런거구나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와 시민들이 말하는 경제. 같은 단어에 함축된 소름끼칠 정도로 드넓은 의미의 차이를 시민들이 결국 납득할거라고는 (여론조사와 신문보도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얇디얇은 우리나라 지도자의 층을 눈앞에서 확인하는것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체념 반, 포기 반의 시간이 지나고 예상되었던, 정확히 말하면 그의 공약집에 써있었던 정책들이 밀고 나가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 문화제가 조율되고 실행되는 과정은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렇게 실행되어갔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의지는 그렇게 문화제에 녹아들어갔다. 이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건 실망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어떤'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정부의 천박한 대응과 강경한 탄압이 있었다. 의견 수렴이 무시되면서 촛불 문화제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시위가 되었다. 아직도 수입 재협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명박 퇴진, MB OUT의 구호가 훨씬 더 크게 울린다. 바야흐로 촛불 문화제는 반정부 투쟁이 되었다. 반정부 투쟁. 이 섬뜩할 수도 있는 이름이 전혀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연 대책위는 MB를 OUT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가?


안국동 로터리에 배치된 전경 버스를 빼내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이고 밧줄이 준비되었다. 몇번의 시도가 있고난 후 갑자기 누군가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립되어있는건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진압을 시작한다고 한다, 안전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기자. 의견이 충돌하지만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하고 시위대는 분열된다.

이런 일은 새벽에 새문안 교회 옆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고, 골목이라 혹시나 포위되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은 대로에 수도없이 모여있는 사람들이 막아주고 있다. 한참의 대치가 있었고 마치 만화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는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진압이 시작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정말 마술같이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꽉차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길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2시간 후쯤 다시 한번 찾아간 그 곳에는 오직 적막 밖에 없다.

그리고 새문안 교회 안쪽 주차장 옆 좁은 골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하다길래 사다 날라주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그 좁은 골목 안에서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남는건 여러분들 맘이지만 이곳은 위험하다. 빨리 나가라. 빨리 나가라.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남 걱정 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비질비질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동안 그것 참 우연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디에 전경이 온다더라. 가본다.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서 진압이 시작된다더라. 가본다. 아무일도 없다. 다리만 아프다. 유자드웹을 쓸 수 있으니 아고라와 오마이뉴스등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거기도 똑같다.

결국 아무 말도 믿지 않게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판단도 불가능하다. 시야는 좁고 거리는 너무 넓다. 아고라 회원들의 토론이 벌어지지만 5개가 넘는 아고라 깃발들은 다들 가는 길이 다르다. 제어되지 않은 시민의 의견은 이토록 간단히 움직인다. 토론, 민주주의라 이야기하지만 들어오는 정보는 너무 작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들 목표가 다르다.


버스속에서 지하철 속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어제 시위의 무용담을 나눈다. 전경 새끼들, 프락치 새끼들, 어제 한 인터뷰 이야기, 어제 어떤 기자에게 사진 찍힌 팜플렛 자랑.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서로 서로의 무용담에 자위를 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한다.

광화문은 떠들썩하다. 자유 발언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386쯤의 나이대 사람들 몇명이 둥그렇게 앉아 운동 가요를 끊임없이 부른다. 내 바로 앞에 디씨 무적 김밥 부대인가에서 봉사자가 김밥 두박스와 생수 한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김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그들은 달려들었다.

단 5분만에 종이 박스와 생수가 포장되어있던 비닐 봉지만 남는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건 묘한 경험이다. 버스를 움직이는 행위는 의식이 되어간다. 한밤에 벌어지는 거리의 마츠리다. 영차 영차. 움직임 하나 하나에 사람들이 환호한다.

결국 이 시위는 점점 쇼가 되어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쇼 데몬스트레이션. 고생하고 잡혀가는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까지 시위 군중 속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미약한 힘의 사람들 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목적이 쇠고기 재협상인가? 재협상 하면 그만 둘건가? 나중에 수도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이런 일 있으면 또 반복하면서 나올건가. 나중에 비록 실패했지만 역사적인 시위로 시민의식으로 높였다고 역사에 기록되면 그거나 보며 흐뭇해 할 생각인가?

대책위가 MB OUT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뭐냐. 아웃시킬 생각이 있기는 한건가. 그럼 어떻게 아웃 시킬 생각인가. 알겠지만 광화문 거리 앞에서 자유 발언을 한다고 대통령이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72시간이 아니라 720시간을 텐트를 쳐도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제발로 나갈 작자였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다. 지금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탄핵을 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헌법을 바꿔 하야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아예 새 나라를 만들 생각인가?

아웃 시키고 나면 뭔가 로드맵이라도 있나? 어떤 세상을 만들어볼 생각인가. 그 어떤 세상은 누구의 의견으로 만들어진건가? 시민의 의견? 대책위의 의견? 이에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희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그 이후에 과정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조금씩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은 있나? 그냥 이런것들을 단지 꿈처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쇼를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쇼의 목적은 대체 뭐냐. 사람들이,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것만 가지고도 큰 의미가 있고, 우리 국민의 훌륭한 의식을 보여주는거라 생각하나. 그런 자족을 위해 20만명이나 필요한가. 월드컵때 100만이 넘게 모이는걸 보고 충분히 자족하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포장하지 않았나? 그런 의식이 정말 더 필요한건가?


청와대로 가는 일의 상징성은 무척이나 크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있다. 부화뇌동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광화문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자가 외친다, 지금 안국동에서 전경들과 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함성을 보내줍시다. 와~ 자, 그럼 다음 자유 발언을 들어봅시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시민.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위해 이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앞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간걸까. 그걸 점점 모르겠다. 물론 그 가치를 폄하하진 못한다. 시민의 거대한 움직임에 평가를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 경험은 누군가에겐 민주주의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고, 우리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 20만명이 모일 필요는 없다.

문화제가 조율되고 조직되는 감동적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실망이 큰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기회는 너무 아깝다. 이게 끝나고 나면 뭐가 다가올까.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의 제목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예전 전공투의 구호 중 하나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금 현실에 투사하는건 지나친 일인가.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왜 적군파가 생겨났는지,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하였다. 이게 정말 지나친 생각인가.


광장에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그래 난 살아있으므로 따르겠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갈데가 어딘지 알기는 하나? 아니, 갈데가 있기는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조롱으로 들린다. 이 노래에 실려있는 치열함이 웃음 속에 묻힌다. 그 음악을 제발 틀지마세요 DJ, DJ. 이건 이 노래에 대한 모욕이다.



PS 밤새 우석훈 박사가 상당히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길이 쇼 데몬스트레이션보다 훨씬 빨라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단체장이라는 어감의 차이가 좀 멀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소환제, 대통령 및 관료 소환제가 없다는게 이렇게 일을 힘들게 만든다.
http://retired.tistory.com/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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