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8

비폭력은 무엇일까

우리는 투표를 해 헌법을 확정했고 이를 통해 국가에게 군과 경찰이라는 무장의 특권을 부여했다. 시민들 각자가, 혹은 단체를 이루어 무기를 지니고 자기 방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미국 같은 나라처럼 이런 무장의 자유권을 일부분 시민들에게 나눠 지니게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공권력이 너무 강한데다가 사적 자치의 원칙도 꽤 투철한 나라라 이런 식으로 전개된게 아닐까 싶다.

어쨋든 우리는 자신을 무장 시킬 자유권을 국가에 독점적으로 부여해줬고, 그러므로 헌법과 법률을 통해 이 독점권을 제한시킨다. 군대와 경찰이라는 무력의 사용은 국가를 지배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매우 강력한 권한이고, 그러므로 차칫 이런 권한을 허용하고 운영을 가능하도록 세금을 내는 시민 자신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고픈 개한테 잡아먹힌 주인,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경우다.

그래서 군경 입장에서 보면 약간 억울할 수 있을 정도로 무력 사용에는 아주 복잡한 규율이 존재한다. 특히 시민과 근접해 마주 대할 일이 많은 경찰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집시법과 국보법이 존재해 다른 시민 사회 국가에 비해 억압적인 룰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은 시민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있고, 그래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무기 사용의 독점은 매우 강력한 권한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임무 수행시 항상 자신의 관등성명을 밝혀야 하고, 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시민은 사적 자치와 천부적 자유권이 우선이지만 공권력은 헌법과 관련 법령이 우선이다. 경직법과 행정절차법 등이 이 권한의 발동 방법을 세세히 규정짓는다. 그러므로 시민을 위한 법률이 묘사하는, 예를 들어 경찰이 불법적인 체포를 시도했을때 사용되는 폭력 등의 정당 방위는 경찰에게는 의미가 없는 조항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단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너에게 방패를 주고 쓰는 방법을 정해 줬잖니 가 우리가 줄 수 있는 대답이다.

물론 폭도들이 등장해 공권력을 위협할 경우에 자위권이 발동 될 수 있다. 조직 폭력배 집단이 종로 경찰서 침탈을 시도하는데 어이쿠 그러냐 하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폭도의 정의는 매우 한정적이어야 한다. 아무대나 붙인다고 폭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권력에 정당 방위적 폭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민이 먼저 때리길래 우리도 때렸다는 변명은 필요 없다. 시민은 천부적 자유권으로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경찰은 법률에 규정된 범위 안에서만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어쨋든 그들에겐 민주 공화국이라는 헌정의 수호가 가장 중요한 임무다. 무력 사용의 독점에는 당연히 그만큼의 책임과 강력한 수행 조건이 뒤따르는 법이다.

만약 경찰 입장에서 자신을 제한하는 법률망이 정녕 싫다면, 그리고 대충 봐서 경찰 몇명 다치면 폭도로 간주해 그것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까지 진압을 하고자 한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경찰의 무력 사용 독점권을 해제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법률망을 넘는 작전을 펼치는게 합당화 될 수 있다. 애초에 무기 독점이라는 특권이 주어진 집단이므로 이런 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두가지 방법이 있을텐데 하나는 시민들에게도 무기 사용권을 허용하든지, 경찰이 직접 비무장을 선택하든지다. 어쨋든 룰은 공정해야 할 것 아닌가.

80년 광주나 여수 순천의 경우 시민들이 무력 사용권을 자력으로 획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건 아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그리고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다. 더구나 무기의 종류와 사용 면에서의 퀄러티의 차이가 아주 크기 때문에 시민들의 승리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이 길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경찰이 직접 자신의 무장을 해제 하든지, 시민들이 나서서 자력으로 경찰을 비무장화 시키든지 하는 방법이다. 물론 전자가 가장 훌륭하다. 꼭 막아야 하는 것만 몸으로 막는다. 꼭 막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쨋든 대략적인 구도를 이렇게 정해 놓으면 나중에 역사의 심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대략 미식 축구 경기장에서 쿼터백이 공을 잡고 있는 상황의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패싸움 하자고 모인건 아니므로 어깨 밀치기 정도가 허용될 수 있는 맥시멈이 될 것이다. 시민이 무지하진 않기 때문에 맨몸으로 나와있다고 마구 집단 폭행하는 일은 없다. 그런건 걱정안해도 되니까 만약 이렇게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안전도 보장된다. 이로서 경찰은 할 일을 했고, 시민도 할 일을 했다.

그 다음은 자력으로 비무장화 시키는 것인데 87년 6월 항쟁의 경우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경우 물론 강압적 폭력이 존재하게 되지만 가능성이라는 상황 안에서 볼때 피해는 가장 최소화 된다. 전자는 경찰청장이 특별한 용자면 몰라도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건 실현이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만약, 시위를 하는 사람이건, 진압을 하는 사람이건 전혀 아무런 피해가 없어야 하고, 그럼에도 민주 공화국이니까 정부는 시민들의 뜻대로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세계의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경찰이 직접 비무장을 선택하는 것보다 확률이 낮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비폭력의 방법은 역시 경찰을 무장 해제 시키는 후자다.

하지만 여기에도 역시 심각한 외부 요소가 존재하는데 바로 군대다. 군대를, 특히 시민의 뜻에 동의하지 않고 권력의 길을 걷기로 한 군대를 시민들의 자위로 무장 해제 시키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더구나 그게 일단락 되더라도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신적인 후유증이 끝도 없이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시민이 무장하고 내전화 되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87년에는 아마도 군대 출동 그 직전까지 갔지만 전두환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럼으로써 87년 6월을 시민들의 승리로 보이게 만드는 것에도 성공해 냈고, 권력을 자기 통제 범위 안에서 유지시키는데도 성공했다. 만약에 지금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 이런 전략으로 움직여 하야한다면 아마 약간은 더 온화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한나라당 정권으로 바뀔 지 모른다는 예상은 이 기억에서 비롯된다.

물론 군대를 누군가 설득할 수 있거나, 군대 내에서 민주화에 대한 자정 작용이 잘 이루어지고 있거하 하면 이야기는 약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가 그랬다. 시위에 의해 경찰이 거의 무장 해제되었고, 별 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은 대통령이 군대를 찾았지만 군대가 시민들에게 군 권력을 사용하기를 거부해 버렸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탈출 밖에 없었다. 80년에도 쿠데타를 막고 서울의 봄을 지키고자 하던 군인들이 분명히 있었다.

사실 남미의 사정은 우리와 약간은 다른데, 그쪽의 반정부단체들은 대부분 무장을 하고 있다. 그 나라들의 헌법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쨋든 무장을 통한 자기 방어권이라는 천부적인 권리를 반정부 세력이 어떤 식으로든 획득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아 군경의 피해도 심각하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상황이 심각하게 진행될 가능성들을 잔뜩 지니고 있다.

어쨋든,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 아주 많이 나아가 매우 특별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어딘가에서 총을 구입하거나, 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하거나 하는건 가능한 범위에서 제외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87년 방식 말고는 딱히 선택할 수 있는게 없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상황에 치닫기 전에 정부가 이 상황을 뒤로 물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런 일이 있을거 같지는 않다. 행정절차법을,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그리고 헌법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옳고, 결국 이게 시민들에게도 옳은 일이 될 것이다라고, 그것도 그에 대한 별다른 이유 설명도 없이, 주장하는 정부가 그렇게 근사하게 사태를 반전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이미 지나가버린 사실에 대한 가정이지만, 청와대에 가서 직접 말 좀 해야겠다고 효자동, 삼청동 골목에서 물대포를 맞던 2008년 6월 1일 새벽에, 이명박이 시위대를 청와대 앞마당에 불러들였다고 해보자. 이건 전혀 위험한 일도 아니고, 대통령으로서도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의 입장과 의식으로서는 쇠고기 수입과 한미 FTA,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에 대해 추진 말고 별다른 대안도 없겠지만(그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다) 그 날 어떻게든 사정을 털어놓던지,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반영시키려는 쇼만 했어도 지금 같은 상황은 오지도 않았고 올리도 없었다. 쇼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테고 나도 아마 그러겠지만 그래도 여론은 훨씬 더 먼 곳에 가있을테고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나같은 사람만 왕창 먹고 - 이번에도 글렀나하며 - 억울해 했을 것이다. 그 날 말고도 기회는 많이 있었다.

과연 그가 합리적인 해결, 소통을 통한 해결을 기대하는가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답이 너무 금방 나와버린다. 아마도 머리 속에 그런 선택안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한국형 CEO로 명령만 해 본 사람이라 자기가 인정하는 몇몇 세력들, 예를 들어 조중동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뭔가 듣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게 아닐까 싶다. 상징도 은유도 없는 양반이라 그런 면에서는 이해하기도 매우 쉽다. 만약 히딩크 스타일의 전략가 대통령이었다면 이 시위는 아마 방식의 근본부터 다시 잡아야 했을 것이고 매우 어렵게 전개되었을거다.

자, 이 시위에서 과연 시민들이 승리할 수 있을까. 그건 사실 분명하다. 혹시나 실패해 당장은 안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통사적인 관점에서는 승리할 것이다. 정 안되면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에 시민 정당 만들어서 내놓고 아예 제헌 헌법 만들어서 새 나라 만들어 버리고 다른 유산과 부채는 다 물려받고 다만 이명박은 청문회 열어 단죄하고, 그 불법성을 들어 정당성을 부인하고 당시 맺은 협상을 무효화 시킨 다음 재협상 하자고 나설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접근은 매우 힘든 고난의 길이고 더구나 매우 귀찮은 일이다. 생각만 해도 귀찮다. 그리고 역사의 유동성이라는게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믿고 뭔가 선택한다는 건 어렵다. 알다시피 안해도 되는걸 하는건 경제학적으로 기회 비용이라는 이름을 단 낭비다.

어쨋든 지금 시민과 정부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언제나 시민과 정부의 대립이 있을 경우 공은 정부에게 있게 된다. 이게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현 정부는 지금 이기고 나중에 망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지금 지고 나중에 그나마 편하게 살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시민들은 그 선택에 따라 반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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