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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총체적 부조리에 빠져있는 경찰이라는 조직

이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경찰 조직이 지속적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링크 참조) 그리고 공권력이 불법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위 '민주화'시대의 변화에 대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있다며 타박하는 조중동이 이를 서포트해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회의 민주화 과정으로 다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이 있었다. 권위주의의 해체란 어떤 조직의 힘이 약해진다는걸 뜻한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제한. 결국 이들은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부풀게 된다. 마침내 그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이 기회를 마음껏 활용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군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군부 통치의 시절이 있었고, 이게 지나감에도 하나회는 존속하며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방법이 뭐 없을까 뒤적거렸지만 하나회는 결국 해체되었다. 그리고 강력한 외부 감시(군의 정치 개입에 극히 민감한 반응)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군인이 있든 아니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나라는 가지게 되었다.


쇠고기 파동에 이어 반정부시위로 발전하고 있는 촛불 문화제 과정에서 경찰 조직은 극한 제압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도 예전처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돌을 던지고 파이프를 휘두르는 것도 아닌 고작 촛불들고 저기로도 좀 걸어가서 이야기좀 해보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살수차,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고 있다. 이런걸 넘어서 전경 한명 한명의 폭력의 도는 이미 수위를 넘었다.

물론 군복이 주는 익명성은 사람을 대담하게 만든다. 또 혈기 왕성하고 감정을 콘트롤하는 능력이 서툰 젊은이들이라 흥분하기 쉬운것도 맞는 일이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도망치는 사람을 방패로 치고 있다는건 경찰이라는 조직의 관리 능력 자체에 큰 문제점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무기를 든 부하의 감정을 콘트롤할 능력이 없다는건, 혹은 감정을 시민에게 발산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는게 의미하는건 만약 전자라면 조직의 구조, 전달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후자라면 이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이건 역시 경찰 조직 자체가 민주화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이고, 그러므로 맨 아래 조직으로 들어온 의경, 전경들 역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자기들의 본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해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채 방패주고 갑옷 주니까 맘대로 때려도 되나 보다 얼씨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포돌이 어쩌구하는 시덥잖은 이야기는 잔뜩 해대면서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경찰 조직은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 이유는 시민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필요성 때문에 시민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고 세금은 경찰청에 지급된다. 만약 시민들에게 필요없는 일을 한다면, 그리고 제 몸하나 못가누면서 내부인들의 위법 행위를 방치하고, 감싸주기에만 급급하다면 그 조직은 필요없다. 자신이나 민주화 시켜놓고 우리보고 준법이니 민주주의니 따져라.

경찰은 자신에게 솔직해 져야 한다. 능력도 안되면서 10만명이 넘는, 분에 넘치는 조직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더구나 경찰은 무기를 들 수 있는 조직이다. 제어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른다고 생각되면 솔직히 고백하고 다른 조직에 넘겨라.

우리가 없으면 경찰은 누가 이끌어 따위의 되도 않는 소리는 안해도 된다. 대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해체하고 자치 경찰제로 바꾸고 전의경은 본래의 임무 대간첩 작전 수행 중심으로 산속에다 집어넣어놓으면 된다. 교통정리와 고성 방가, 경범죄 위반을 잡기 위해 방패와 곤봉을 든 자들은 필요없다. 무장 간첩이나 테러단 나타나면 그때 내려와라. 열렬히 환영해 주마. 당신들의 분에 넘치는 욕심 때문에 400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더불어 이제 대부분 20대 초반들일 전의경들에게 보내는 말을 좀 보탠다. '공권력'은 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즉, 전의경의 옷은 폭력 허가증 같은게 아니다. 우리나라 법은 군 또는 이에 준하는 조직에서 상명 하달을 강조한다.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상관의 명령이라면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법에 어긋날때는 따르지 않도록 되어 있고 따르지 않아야만 하게 되어있다.

자신의 불법적 폭력을 위계조직의 상부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 믿지 마라. 위법은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그 행동을 한 당사자에게만 돌아간다. 고참도 간부도 아무 책임도 떠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꼭 저지르고 싶다면 판단을 명확히 해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준비를 해라. 시민들은 끝까지 쫒아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20080602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

버스 한대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나를 제약하는 일상 때문에 억울하지만 발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일상, 그놈의 일상. 그리고 지금, 인터넷 방송에서는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방패를 휘두르는 전경들의 모습이 보인다. RSS에 등록해 놓았던 BBC 뉴스 첫번째 칸에 실려있는 이 시위에 대한 사진을 본다.


민주주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그리고 아나키즘을 제외한 어떤 체계 안에서도 세상에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피지배계층이 뭔가 원하지만, 그것이 지배계층의 이익이 아니라면 '나라는 시민들의 것'이라는 허황된 레토릭들에도 불구하고 반항하고, 반발해야 얻어낼 수 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한다. 싸우지 않고선 빈 손 뿐이다. 그들은 대의를 쫓아 뭔가 내준 적도 없고,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될 상황이 와도 갖은 수사들로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와중에 꼼짝도 안하고 투덜거리면서, 아니면 아예 그럴 의지도 능력도 가지지 않고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다수다. 제 몸하나 까딱하기 싫으면서 권리는 줄기차게 주장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다. 누군가 다쳐가면서, 죽어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에 대고 감내놔라 팥내놔라 열심히도 챙겨먹는다.

수구 세력들은 진보 진영이나 정당한 시민들의 권리 의식들과 그나마 정면 대결이라도 하고 있지 ,이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은 변화의 시기엔 몸을 숙일 뿐이다. 뭔가 바뀌나 싶으면 재빨리 주판알을 튀기고 대세를 따른다.

이들을 원망하는건 아니다. 이들도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시민이다. 우리의 점잖은 선조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무신함을 피하려 안이하노라'라며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은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하노라'는 때아닌 관용을 베풀었지만 이런 현학적인 단어들도 실로 아깝다.

이들을 책망하지는 못한다. TV로 폭력의 현장을 바라보며 히히덕 거리며, 폭력 앞에 노출되어있는 시민들에게 비폭력하라고, 그게 시민의 힘이라고 쉽게들 말한다. 질서 의식을 말하며 불법을 탓한다. 물론 이것은 지켜야할 것이고 이 시위의 진정한 힘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너희들이 할 말은 아니다. 그건 그 자리에 서있는 절박한 사람들 입에서나 나올 말이다. 이런 자들을 다 끌어다 단두대에 밀어넣은 로베스피에로는 실로 위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뿐이다. 민주주의의 성과물들을 부산물들을 마음껏 받아 먹어도 좋다. 다만 지금하고 있는 일, 그거라도 열심히 해라. 제발 거기서라도 남의 성과물들을 탐내지 말고, 그곳의 불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너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싸워라. 그리고 제발 방해라도 하지 말 것을 간절히 바란다.

20080527

시민들의 정당은 가능할까

촛불 문화제가 문화제 참여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진화해 나갈지는 전혀 알 수 없는게, 주도층이란게 딱히 없기 때문이다. 아고라에서, 디씨에서, 그리고 그외 여러 카페,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의견으로 수렴된다. 현장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 수렴과 결정이 반복된다. 물론 딱 떨어지는 지시가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지는 않다.

효율적인 면에서는 떨어질 지 몰라도 정보 누출의 걱정이 전혀 없고 (당사자들도 모른다),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이므로 결정에 대한 순응도가 높다. 이거야 사실 애초에 민주주의란게 의견 수렴과 결정이 그렇게 완벽히 작동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다. 살짝 살짝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오류는 즉시 즉시 보완해가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루소가 국민의 의사는 대표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의제를 반대하고 경험적 의사를 중시해야한다고 말하는걸 예전에 읽었을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뭐가 결정된다는걸까, 세상에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너무 아이디얼하지 않나?

이제와서 이게 대충이나마 이해가 간다. 촛불 문화제를 경험하면서 약간이나마 상상력이 더 풍부해진 덕이다. 그것은 아마, 대충 지금같은 식의 의사 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의견이 서서히 수렴되고 뭔가가 결정된다. 투표도 없고, 지시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결정되고, 동의되고, 실행된다.


생각해보면 1789년에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갈때 그 전날 밤에 누군가 소위 '지도층'들이 모여서 결정하고 지시한건 아니다. 루소는 대혁명을 겪진 않았겠지만 그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학자다. 68년 5월은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어진 다음 과정에서 68년에 논의가 이루어진 사항들에 대한 시민들의 토론과 결정이 그래도 성공적이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사회는 변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가는데, 이게 반사적으로 다른 정당들의 지지율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은 정치 전반에 회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들은 보수 우익도 아니고, 운동권 좌파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좋은 나라에서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 하고 싶은 일 잘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금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은 '정치'에 대단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반감을 드러내는건 물론 모순된 행동이 아니라, 여기서 '정치'가 우리나라의 '기존 정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게다.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너무 없고, 권력을 두 손 가득 쥔 정치인들만 잔뜩 있는게 문제다.

몇개의 언론사와 대기업과 결탁된 수구 정당은 그들만 이익인 정책을 잔뜩 펼쳐보이고 있고, 노조나 시민단체 등 몇몇 운동권 세력이 결집된 정당들은 보다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고립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야당이 된 저번 여당은 솔직히 지금 뭐하고 있는건지, 생각은 하고 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본격적인 시민 정당의 출현을 기대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정당과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는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찾아오는 일은 4년에 한번 총선, 5년에 한번 대통령 선거때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며 지들 멋대로 하고 싶은걸 해댈 뿐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시민들에게는 소환권도 없고, 탄핵권도 없고, 쓸만한 참여 절차도 없으니 정치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다. 구경거리라도 되면 괜찮지만, 직접적으로 생계에 위협까지 가하니 이건 정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자 비슷한 걸 몇년에 한번씩 뽑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투표를 제대로 하면 되잖아 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기존 권력의 공고함과, 그 이권이 엄청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 관심을 가지고 쳐다봐야 맘에 그다지 안차는 대안들 중에 대체 누굴 골라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정도에서 멈춘다. 맘에 드는 사람이 혹시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이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구시대적 정치 세력들을 거부하고, 시민의 복지와 환경, 합리적인 이념의 조화, 시민들을 위한 정책에 역점을 둔 본격적인 시민 정당이 가능할 시기,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의견을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 혹시나 그 와중에 구시대적 권력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소환시켜 버리고 하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듯 싶다. 시민 의식이라는게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건 가까운데 있는 지방 자치 단체급부터 시작해서 차츰 차츰 넓혀가는게 올바른 길이긴 한데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 단체라는게 그다지 권한도 없고 딱히 와닿는 일을 하는 경우도 없고, 지역 유지들과 결탁해서 역시나 자기들 좋은 일만 해대는게 다반사인데다, 시민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래서 역시 국회부터 노리고 시작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정치인이라는게 권력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시민의 대행자라는걸 직접, 명확하게 느끼게 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물론 현실 정치라는게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고, 저런 식의 작동 방식을 어떻게 고수해 나갈 수 있을지도 큰 문제거리다. 급박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저런 방식이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적극적인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행정학, 법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익스퍼트들의 몫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초야에 뭍혀있을, 생각이 좀 올바른 사람들이 슬슬 기어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감을 가지고, 저항하고, 제대로 좀 하라고 핀잔을 줄 일도 있는데, 가끔은 도무지 답이 안보여서 직접 나서서 해야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만약 재협상 등의 의사를 관철해 낸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결과적으로 어떤 식의 결실을 맺을지 아직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그냥 잠자코 원래 자리로들 돌아가고 만다면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또 촛불을 들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땐 뽑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게 될거다.

어쨋든 이 과정을 잘 겪고,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책에서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운 그들

약 15년전쯤에 전경들을 처음 본거 같다. 아니, 물론 그 전에도 본적이 있긴 하지만 뭔가 얽혀서 맞닥트린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하철 신촌역에서 올라오는 출구를 다 막고, 방패를 들고 일렬로 주르륵 서서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부르고, 빤히 쳐다보면서 가방과 학생증을 검사했었다.

피할 수 없음. 그때 그걸 느꼈다. 저들에겐 지금 사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도망갈 곳은 없다.

그리고, 그리고. 숨이 막히는 매케한 연기로 가득찬 길거리에서 만난 그들은 왠지 증오에 차 있었다. 대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뭘 향해서 분노하고 있을까? 알 수가 없었다. 그 중에는 사실, 대학 선배도 있었고, 아마 내 나이대에 입대한 동년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더구나 저 일이 끝나면 나와 별 다를 것도 없는 처지로 돌아갈텐데 대체 왜 저럴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러지는 않을텐데' 라는건 그들에게 정당한 요구가 아닐 수도 있다. 이미 개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선, 조직이기 때문이다. 조직. 그것도 공권력이라는 무인칭의 조직. 그것을 감성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된건 훨씬 나중일이지만, 그들이 무서웠다.

전쟁터의 군인이 가지는 비인격성. 사실 인격을 가지면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을테니, 아니 아예 전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테니 군인 비슷한 종류가 가지는 필연적인 속성이다. 전쟁을 반대하거나, 폭력을 반대하거나를 떠나서 그것들은 이미 존재한다. 적군을 동정하는 순간 총을 맞는다, 시위대에 동감하는 순간 방어벽은 무너질 것이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바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거기서 그러고 있다. 아니 나 자신도 그 속에 들어가면 그렇게 변신하게 될 것이다. 변신하지 못하면 어차피 써주질 않는다.

나는 전경은 아니었지만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때 느끼는 그 거리감. 묘하다. 영미의 전후세대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전쟁이나 군대를 겪었다면 그들이 지금같은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질 때가있다. 이성이 사라짐을, 희미해짐을 겪어본다는건 견딜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다. 인식론에 관심이 많은 철학도여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방패를 주르륵 깔아놓고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걸 보면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참 고생한다는 생각도 하지만, 여전히 무섭다. 가슴속 깊숙이 자리잡은 공포감이 스멀스멀거린다.

그런 무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내온 사람들이 그래서 부럽다. 공포감이 없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않고 돌진하지만, 그 속에 함께 있을때도 있지만, 역시 내 마음 속은 머뭇거리게된다.

아닌척해도, 솔직히 무섭다.

더위, 증폭, 통증

1. 낮에는 거의 40도, 밤에도 거의 30도에 가깝게 오르던 더위가 한풀 꺾였다. 보통은 처서가 넘어야 뜨겁지 않은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번에는 입추를 넘으면서 불어온 걸 보면 극강의 더위가 예년에 비해 길지는 않았던 거 같다. 다만 남쪽에는 40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