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년전쯤에 전경들을 처음 본거 같다. 아니, 물론 그 전에도 본적이 있긴 하지만 뭔가 얽혀서 맞닥트린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하철 신촌역에서 올라오는 출구를 다 막고, 방패를 들고 일렬로 주르륵 서서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부르고, 빤히 쳐다보면서 가방과 학생증을 검사했었다.
피할 수 없음. 그때 그걸 느꼈다. 저들에겐 지금 사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도망갈 곳은 없다.
그리고, 그리고. 숨이 막히는 매케한 연기로 가득찬 길거리에서 만난 그들은 왠지 증오에 차 있었다. 대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뭘 향해서 분노하고 있을까? 알 수가 없었다. 그 중에는 사실, 대학 선배도 있었고, 아마 내 나이대에 입대한 동년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더구나 저 일이 끝나면 나와 별 다를 것도 없는 처지로 돌아갈텐데 대체 왜 저럴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러지는 않을텐데' 라는건 그들에게 정당한 요구가 아닐 수도 있다. 이미 개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선, 조직이기 때문이다. 조직. 그것도 공권력이라는 무인칭의 조직. 그것을 감성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된건 훨씬 나중일이지만, 그들이 무서웠다.
전쟁터의 군인이 가지는 비인격성. 사실 인격을 가지면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을테니, 아니 아예 전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테니 군인 비슷한 종류가 가지는 필연적인 속성이다. 전쟁을 반대하거나, 폭력을 반대하거나를 떠나서 그것들은 이미 존재한다. 적군을 동정하는 순간 총을 맞는다, 시위대에 동감하는 순간 방어벽은 무너질 것이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바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거기서 그러고 있다. 아니 나 자신도 그 속에 들어가면 그렇게 변신하게 될 것이다. 변신하지 못하면 어차피 써주질 않는다.
나는 전경은 아니었지만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때 느끼는 그 거리감. 묘하다. 영미의 전후세대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전쟁이나 군대를 겪었다면 그들이 지금같은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질 때가있다. 이성이 사라짐을, 희미해짐을 겪어본다는건 견딜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다. 인식론에 관심이 많은 철학도여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방패를 주르륵 깔아놓고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걸 보면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참 고생한다는 생각도 하지만, 여전히 무섭다. 가슴속 깊숙이 자리잡은 공포감이 스멀스멀거린다.
그런 무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내온 사람들이 그래서 부럽다. 공포감이 없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않고 돌진하지만, 그 속에 함께 있을때도 있지만, 역시 내 마음 속은 머뭇거리게된다.
아닌척해도, 솔직히 무섭다.
200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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