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경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경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0524

라뤼보고관 2

딴지일보에 라뤼보고관의 연세대 강연과 기자회견의 번역본이 올라왔다. 내가 내지르는 천마디 헛소리보다 백배는 가치있는 내용이다.

http://www.ddanzi.com/news/20505.html

 

가만히 읽어보면 일면 교과서적이고 이런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냐 싶은 이야기들 뿐이다. 당연하다. 그런게 인권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인권과 언론, 집회의 자유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 사회에서는 이미 사문화되버린 듯한 교과서 적인 내용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그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다치고, 심지어 죽기 까지 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주어가 없는 그 양반이 전쟁 기념관까지 가서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내뱉고, 지하철 역 마다 두 명씩 짝지은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불심검문과 가방 검사를 받았다는 글이 각종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툭하면 올라오는 2010년 5월이다.

20100205

iPad 관련 괜시리 글, 그리고 트위터

사실 얼마 전에 다른 블로그에다가 iPad 이야기를 썼는데 그냥 또 주절주절 생각나서. 이걸 어디다 마땅히 올릴 곳도 없고 해서 그냥 여기다 올린다.

블로그 세개를 카테고리처럼 하나는 패션 및 예술 분야를 비롯해 사는 이야기, 또 하나는 모바일 제품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여기는 여행과 경제, 정치 관련된 이야기를 올리는 식으로 살고 있는데(어차피 전부다 WLW로 쓰니까 일일이 찾아다니고 하면서 귀찮거나 하지는 않다) iPad 이야기를 우선은 모바일 관련 블로그에 올리고 나니 또 생각나는 것들은 어디에 써야되는지 마땅치가 않다. 카테고라이즈라는 선입견식 분류는 이래서 위험하고 상상력을 마비시킨다. 역시 블로그는 일기 쓰듯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줄줄 내려 써야하고, 애초에 그랬어야 하는데, 이건 이제와서 되돌리기도 그렇고, 괜히 아깝고.

 

iPad와 관련해서 회사들, 특히 언론사, 출판사들이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는 있다. 인터넷 초기에 신문들이 뭐가 뭔지 모르고 그저 페이지뷰/영향력 늘어난다는 생각에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뿌려댔다가 손해를 좀 막심하게 봤고 꽤 많은 회사들이 망하거나 망하기 직전의 상황으로 완전 사양 사업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아무리 봐도 수익원이 존재하지 않고 페이지 뷰로 인한 수익은 포털들이 다 가져가고 있으니) 모바일 분야에서는 어떻게든 포지셔닝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 중 하나가 iPad을 이용한 신문 구독. 이게 좀 궁금한게 잡지 같은 경우에는 한달이라는 텀이 있으니까 뭔가 쌓아서 보내주면 괜찮을 듯 한데 신문 같은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배달을 할지 궁금하다. 설마하니 요즘 같은 실시간 시대에 매일 아침 배달해 줍니다 방식으로 하지는 않을거 같다.

결국 홈페이지는 지금처럼 열어놓고 속보 같은걸 전하고, 사설이라든가 좀 복잡한 이야기는 배달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구태의연하게 보인다.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iTunes Store에서 음악 사듯이 기사 한개당 얼마 이렇게 하는 것도 웃기고. 아주 고급의, 정말 이 신문 아니면 볼 수 없으면서도 무척이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는 승부 보기는 어렵지 싶은데. 뭐 그건 머독이 잘 생각해 낼테고.

결국 구글이 만들어놓은 뉴스는 무료라는 세상은 오래 갈 종류는 아니었다. 기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수입원이 택도 없이 작으니 어떤 식으로라도 유지가 가능할 정도의 보상이 이뤄졌어야 한다. 그 사이를 애플이 치고 나가고 있고 - 내 말대로 하면 니들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잡스의 외침이 여기까지 들린다 - 이로서 구글의 수입 약화는 분명해 보인다. 결국 애플이 iPad를 내놓으면 구글도 타블렛을 같이 내놓거나 혹은 구글 뉴스 어플을 만들어 유료화 시켜서 한 배를 타는 방법 밖에 별 수 없지 않나 싶다.

그게 아니면 차라리 구글 뉴스라고 언론사를 만들어 기자를 직접 뽑아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비용이 많이 커지기는 하겠지만 덤으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챙길 수 있고 잘하면 타블렛 신문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이러면 너무나 큰 독점이 - 실로 구글 월드 - 되버릴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미국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우리나라도 아마 태블릿을 두고 - iPad는 아닐거 같지만 - 한동안 잡음이 오고갈 듯 하다. 저 모델이 성공적이면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형 모델이 등장할 테니까.

분명한 건 신문을 보기 위해 다시 돈을 내야 하는 시기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가격 책정이 문제겠지만 딱히 큰 불만은 없다). 부디 그 도구가 한국에서 S모사걸 반드시 써야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광고 잔뜩 띄어놓고 쓰잘데기도 없는 기사 몇개 포털에 뿌려놓고 보여주면서 생색내는 몇몇 신문을 이제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다시는 안봐도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꽤 기쁘다.

 

갑자기 또 생각나서.

트위터가 슬렁슬렁 가입자 수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선거가 복병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그랬었지만, 특히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법규로 선거 운동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트위터가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가 된다.

구글 블로그나 텀블 블로그에 비리 사실이나 후보자의 문제점 올려놓고 지메일로 가입되어 있는 트위터에서 RT 때려대면, 낙선 운동 이런거 하기는 딱 좋다. H모당이 그리도 좋아하는 규제가 없는 자유 경쟁이다. 오, 위대한 시장이여. 자유 경쟁이라는게 말만 자유지 얼마나 환경과 초기 인프라에 의해 좌우되는지 그 사람들도 좀 겪어봤으면 싶다.

어쨋든 오늘 뉴스를 보니까 경찰이었나, 여튼 거기서 트위터를 선거 홍보로 삼는걸 단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뭐 분명 실정법 위반이 있으면 나중에 헌법 소원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단속 대상인건 맞다. 경찰은 일단 법대로 해야 하는 조직이니까(가끔 임의 적용을 해서 문제지).

다만 과연 어떤 식으로 단속을 하려나 그게 궁금하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잘 모르겠다. 나야 뭐 딱히 선거 운동 같은거 하는 체질은 아니지만 여튼 흥미 진진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20090528

2009년 5월 말 즈음

솔직히 현 정부의 전략이 정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분에 넘치는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새로 찾아온 정부는 싱가폴이나 두바이 식의, 민주주의는 안해도 되니까 잘 살면되지 않느냐하는 방식이었다가 외교 문제가 얽히면서 이스라엘 식으로 턴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라는게 대략적인 느낌이다. 물론 이런 전략이라면 미국의 동조 내지는 아낌없는 지원이 필수적이고 그래서 PSI 전격 참여도 선언한거 아닌가 싶은데 그게 부시 시기에는 잘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스라엘도 오바마 정부를 바라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시기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고, 한국은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공통점은 어쨋든 평화가 찾아오는건 달갑지 않다 라는 점이다.

북한 역시 강경파와 온건파 대립 사이에서 균형이 무너져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나라 역시 관료제의 모순이 극에 달해 있는데다가, 집권 기간의 연장 내지는 정권의 보존 외의 어떠한 정책적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모든 일들이 결국 남쪽에서 벌어진 선거 한 번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에서 대의 민주주의라는게 얼마나 허약한 기반에 기대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남북 모두가 이제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흐름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는 끝자락들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네 역사 발전 단계를 놓고 보면 이 정도 까지 할 수 있는건가 싶다. 청산해야 할 것들을 청산하지 않은 결과가, 그리고 정신적 균형이 담보되지 않은 배금주의의 결과가 이렇게 찾아온다.

저번에 공민왕 이야기에서 잠시 썼던 것처럼 이게 역사가 발전하기 위한 극한 반동의 시기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 이상 낙관적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충 느긋하게 맘 잡고 기다려 보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음모론을 타박하는 사람들이 흔히 펼치는 반론은 음모론의 대상들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모여서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고려한다는게 말이 되냐고들 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루니와 박지성이 골을 넣을때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말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프로훼셔널의 세계의 작전이란 눈빛만 보면 읽을 수 있고, 그에 맞춰 반응해 골을 집어넣는 세계다. 남북 정부 모두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적대적 전략을 쑥쑥 키워가며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결국 영결식 문제에 대해 한치도 양보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서울 광장 개방 요구에 전의경 200 중대 배치로 화답했다. 도대체 내일 저녁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투표로 당선된 정부라지만, 정책을 수긍하는데도 한도가 있는 법인데 시민들이 정말 이대로 수긍하고 말 것인지 궁금하다. 사람 모이는게 싫다 싫다 해도 이 정도인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가 아닌한 정권 유지가 목표인 대립에서 전면전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지전 발생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신선 놀음에 시민들만 피곤하다. 가장 충돌 가능성이 높은 서해안 부근에 근무하는 장병들의 안전을 기원할 뿐이다.

참, 골치아픈 상황이다.

20090501

집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2847.html

깝깝한 이야기 하나. 이거 말고 건대에서 노동절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학교가 봉쇄되었다드라-하는 뉴스도 있는데 그건 생략.

 

경찰이 원하는 건 아마 수사권 독립, 수사권 내에서의 권한 강화 같은 것들일테고 이를 얻어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 주의의 폐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래야 경찰이 주요 사건에서 검찰의 심부름꾼이나 들러리격으로 평가절하 되는걸 막을 수 있다. 이를 얻어내기 위한 방법은 간단히 두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권력의 종이 되어 떨어지는 고물을 얻어먹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 경찰에 권한을 강화시키자는 여론을 얻어내는 것이 있다.

전자는 가깝게 보이고, 기한도 짧고, 잘만 되면 확실하게 보이지만 후자는 멀리 보이고, 기간도 오래 걸릴 것이고, 여론이라는게 모호한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민의가 형성이 되어도 큰 전환점 같은게 오지 않는한 반영된다는 확신이 없다. 물론 후자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길이고, 만약 경찰이 짧은 시야를 버린다면, 혹은 우리 사회가, 특히 정치의 권력층이 올바르게 간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길로 갈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짧은 시야를 가지고 있고 우리 사회의 권력층이 올바르게 갈거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검사의 기소 독점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기소 독점권 폐지는 정치인들의 뜻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시민들의 투표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들, 지금의 여권 권력층의 신의를 얻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탁상위에 안건이 오르는 정도의 효용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큰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기소 독점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법을 가까이 하고, 숙지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경찰의 상층부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그들 - 즉 경찰의 최상층부 - 가 어떤 전략을 지금 가지고 있는지 대충은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임기는 길어야 10년 남짓 쯤 남아 있을 것이고 대부분은 현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고 끝나게 될 것이다. 그들도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냥 이런 저런 핑계로 남은 기간 동안 편안히,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 시키고 마무리 지을 길을 찾았을 뿐이다.

결국 아직 임기가 10년 이상 남은 그 아래, 앞으로 경찰의 상층부가 될 사람들은, 지금의 최상층부에게 이용만 당하고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권력층과(저들은 이 전 권력층에게만 충성하던 사람들일 뿐이다), 시민들(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의 타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조직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든지, 아니면 인지하면서도 그걸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없든지 한다는 점이다.

군사 정권 시절에 함께 날뛰던 임관급, 영관급 장교들이 87년 이후 어떻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선배들이 정치권, 공기업 심지어 사기업에까지 맘대로 들어가 정치를 뒤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고, 너희들도 이렇게 될테니 말 잘 들으라는 정치 장교들의 꼬드낌에 자기도 그렇게 될 줄만 알고 덩달아 날뛰기만 했지, 민주화 같은게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와 똑같은 짓을 경찰이 지금 하고 있다. 87년에 새 헌법이 만들어지고 하나회가 없어져 군의 정치색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 때까지 6년의 텀이 있었다. 역사가 후세에 알려주는 교훈들을 이리도 못 듣는 사람들이 있다.

20080730

앰네스티 보고서 / 연대를 기대한다

앰네스티의 무이코 조사관이 촛불 시위와 관련된 국내 인권 상황에 대해 조사하고 돌아갔다. 이에 대한 보고서가 몇 장 엠네스티 홈페이지에 올라와있고, 9월에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1960년, 살라자르의 독재 체제하에 있던 포르투갈에서 두명의 대학생이 술집에서 자유를 위해 건배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영국의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이에 대한 기사를 읽고 1961년 옵서버지에 '잊혀진 수인들'이라는 기고문을 내 정부의 탄압에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행동이 필요함을 밝혔다. 그렇게 앰네스티가 탄생했다.

150여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앰네스티는 사실 행정 집행력이 있는 기관도 아니고 정부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기관도 아니다. 그럼에도 앰네스티가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는 이유는 명확한 보고서와 이에 대한 각 지부국들의 호응이다.

호응을 통해 연대를 만들어내고 그럼으로서 힘을 얻는다. 자기랑 별로 관계없어 보일지 모르는 먼 남의 나라 인권을 위한 조그만 행동들이 모여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권을 공권력으로 부터 보호받고 존중받게 된다. 연대는 이렇게 현실이 되고 실질적인 힘을 얻는다.

 

우리나라 정부는 보고서에 대해 앰네스티가 균형잡힌 시각을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했다. 이건 완전히 잘못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엠네스티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우리나라 공권력이 말하는 인권이라는게 국제 표준, 즉 세계 인권 선언과 여타의 인권 선언에서 밝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고 균형과 정당한 법집행 운운하는건 애초에 말이 안된다.

콩고는 피그미족을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대량 학살했고, 우간다는 우출루 족을 공권력으로 합법적인 이유를 대며 대량 학살했다. 이 둘은 자기네 나라 법으로는 합법적인 행동을 했을지 몰라도 국제 인권 기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거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엄연히 우리의 헌법에, 그것도 허가제를 절대 금지한다고까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부는 집회를 실질적으로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고 더구나 공권력의 무력을 동원해 강제로 해산시켰다. 앰네스티가 말하는 것은 이 국내적인 '합법'의 국제적인 '비합법'이다.

 

어쨋든 9월에 보고서가 발표된다. 아직은 어떤 내용이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검경의 방해로 구속 수감자들과의 면담도 금지되었고 조사관의 스케줄도 계속 공개되어 제대로 된 조사를 방해받기 때문에 좋은 내용의 보고서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우리의 인권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정부와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우리 나라의 인권 탄압이 비록 잠비아, 수단, 앙골라, 르완다, 동남 아시아의 몇개 국가, 북한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이들과 달리 엄연히 세계 주류 시장에 포섭되어 있는 국가고 그러므로 우리같은 나라에서의 인권 탄압을 크게 다루어야 앞으로 소위 선진국에서 나올 수 있는 인권에 대한 탄압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미영독프 같은 주판알 열심히 두드리는 복잡한 나라들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중시한다고 맨날 떠드는 북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시민들이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고 대처하는지 유심히 지켜볼 생각이다. 실질적인 대안을 우리 정부에서 내놓을 때까지 대사를 소환하든, 우리 물품 불매 운동을 벌이든 열렬히 호응해 주겠다. 절대 가만히 있는 것만은 말아달라.

앰네스티를 통한 연대가 있었기에 우리 세계 시민들은 피노체트에 대해 사법적인 단죄를 할 수 있었다. 승리는 기억일 뿐만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미래여야만 한다.

20080709

순진한 상황 인식

약간의 소회 : 이 블로그에 설치되어있는 구글 어낼러틱스가 여기가 얼마나 마이너한 곳인가 증명한다. 거기다 쓰여있는 글까지 가는 곳없이 길어지니 이야 말로 금상 첨화, 한계 구독률이 0으로 수렴한다. 길게, 길게, 아무도 읽을 엄두가 결코 안나도록 재미없게 길게, 길게.

최선의 결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물론 최악의 결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것 역시 바보같기는 매한가지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결과적으로 행동의 준거에 영향을 미친다. 필요없는 실망과 필요없는 환희보다 더 중요한건 앞으로 살아가야할 삶이다. 결국은 두 다리로만 버티며 머리와 손으로 한칸 한칸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삶.

가끔 뉴스에서 부모가 상속한 엄청난 재산을 두고 어처구니 없게 치사한 싸움을 벌이는 형제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본다. 건실해 보이고 자본도 넉넉한 회사가 월급 얼마 주지도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이야기를 본다. 아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그 복잡 다단한 탈세의 방법들을 본다. 더 필요할 것도 없을 거 같은 자산가가 탈세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별의 별 치사한 수단을 동원하는 모습을 본다.

예의도 없고, 인정머리도 없고, 최소한의 상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 인터넷 게시판에 어처구니 없는 댓글을 달고, 반대 시위라며 쇠파이프와 각목을 챙겨오는 사람들. 대한 제국때도 있었고, 자유당때도 있었던 그 사람들. 완장을 채워주니 감격에 겨워 다 쓸어버리자고 의기를 다지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우선 그걸 알아야 한다. 촛불 좀 들고 있으면 세상이 확확 변할거라는 나이브한 인식은 정신을 더 옭아맬 뿐이다. 50만이 모였다. 만족한다. 비폭력을 유지했다. 만족한다. 풍자가 가득한 인기 만점의 팻말을 만들어 들고 나갔다. 만족한다. 글쎄, 이 싸움은 그리 간단하게 풀려나갈 문제가 아니다.

이 시위의 시작은 의식의 환기가 아니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현 시점 그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과정을 지금의 집권자는 '오해가 풀리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을 투표로 뽑았다는게 믿겨지지 않지만 유신 헌법도, 짐바브웨의 무가베도, 히틀러도, 부시도 애초에 투표로 결정된 것들이다.

참여의 주최가 20대 대학생들이었으면 그들은 조직할 수 있는 단위가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제도가 있고, 세상의 불의와 부정에 반박할 수 있는 전통과 정당성이 있으니 이렇게 나아가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압박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는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든지, 더 나은 삶 따위는 RATM의 노래나 프랑스 신문에나 나오는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든지, 아니면 오직 기득권으로 들어가는게 목표지 능력없어서 고생하는 하부 시민들의 인생 따위는 관심없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물론 개인적으로 참가한 수많은 학생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투표에 의해 선출된 학생회의 결정을 따른다는 (만약 학생회가 나가자고 했어도 우르르 나올거라고도 전혀 믿지 않지만) 대의 민주주의가 무얼 말하는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관용에는 폭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전 세계의 현대사는 아픔으로 점철되었고 우파 내에서도 결국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한국 거대 기득권이 60년에 학생들의 힘을 본 후 전두환 정권때부터 근 20년간 줄기차게 시도된 조용하고 순종적인 소시민 양성 계획은 이렇듯 성공적이다.

전공투의 투쟁도 68혁명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 이후 프랑스와 일본의 사회는 매우 다르다.

전공투는 애초에 말이 안되는 투쟁이었다. 학내 문제 등에서 출발해 마르크스, 트로츠키, 마오, 제4인터내셔널, 스탈린, 아나키즘 등의 현란한 문구가 난무했지만 이건 말하자면 홍대 클럽 안에 붙어있는 체 게바라의 포스터 같은 그런 시위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위대 군중 안에서 헬멧을 쓰고 애타게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던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다.

야스다 강당을 점유하고 있던 대학생들을 경찰 기동대가 해산시켜버렸고 그때의 의장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예비학교의 물리 선생님이 되었고, 부의장 이마이 키요시는 사회당 의원으로 출발했다가 탈당하고 지금은 민주당 의원이 되었다. 진압을 하던 경찰 지휘부는 차례대로 4명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한때 55만명이 모였는데, 더구나 무력 시위였는데 이루어낸건 아무것도 없었다.

후퇴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놓지 않았던 이 시위는 결국 참여자 모두에게 패배감 만을 안겨주었다. 단카이 세대들은 결국 사회로 속속 들어가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것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때의 무브먼트는 누군가에게는 대학 시절을 이야기하는 술 안주거리가 되버렸겠지만 그런 세상을 정말 애타게 원했던 순진한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다. 고통의 전가. 그게 이 시위의 마지막 모습이다.

68혁명은 이와는 약간 다른 길을 걸었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드골을 내려앉히기 위해 시위가 시작되었다. 좌익 세력이 중심이었지만 참여한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들, 대학생들, 지식인들이었다. 파리 2/3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군사력이 동원되었고 의회가 해산되었다. 드골은 대피까지 했지만 시위는 갑자기 사그라들었다. 시위대의 모습을 보며 주판알을 튀기던 시위에 참가한 몇몇 조직들의 의견은 분열되었고 기만적 전술의 끝에 노동자들은 파업을 철회했다. 시위가 끝나고 이루어진 총선에서 드골은 오히려 승리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참여자들이 극한 탄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후 의식이 바뀌었다. 사람들 의식 속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 사라졌고 평등과 인권 그리고 연대가 전면에 나섰다. 진보적인 의식들은 제도들을 하나 하나 바꿔갔다. 물론 지금의 프랑스가 완성된 나라는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잔뜩 쌓여있다. 하지만 똑같이 68년에 일어났던 이 두 경험이 다른 결론을 만들었다는건 분명하다.

이번 시위가 좁은 의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재협상이라는 메인 타겟이 있는데 이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넓은 관점에서는 아마 더 나은 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좌파 운동권을 사로 잡고 있는 패배주의, 전대협을 사로 잡고 있는 패배주의, 그리고 60일간 촛불을 든 사람들 머리 위로 언뜻 언뜻 드리워지고 있는 패배주의. 어쨋든 이긴 건 별로 없고, 진건 잔뜩 있는게 우리나라 집회와 시위의 역사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조중동 광고 리스트 올렸다고 출국 금지를 당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잠시' 도래되고 있지만, 20년 전 30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우리는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아졌고, 할 수 있는 행동도 더 많아졌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런 시절은 앞으로 최고로 길어야 5년이다. 이 경험이 잊혀지질 않기를, 조금만 지나면 보나마나 도래할 저들의 기만적 전략들에 굴하지 않기를, 투표의 힘에 대한 시민적 각성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좀 더 의견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면 그때가서 발안제나 소환제를 도입하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정권은 외교도 못해, 영어도 못해, 컴퓨터도 못해, 경제도 못해, 인권도 못 보호해, 행정은 엉망이야, 지지율도 엉망이고 대체 뭘 잘하는걸까. 평범한 사람들과는 별 관계도 없는 5개 대기업 매출 늘어난거 한가지 있는건가. 역시 삽이나 던져줘야 신명나서 땅 파댈려나.


20080603

총체적 부조리에 빠져있는 경찰이라는 조직

이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경찰 조직이 지속적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링크 참조) 그리고 공권력이 불법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위 '민주화'시대의 변화에 대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있다며 타박하는 조중동이 이를 서포트해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회의 민주화 과정으로 다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이 있었다. 권위주의의 해체란 어떤 조직의 힘이 약해진다는걸 뜻한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제한. 결국 이들은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부풀게 된다. 마침내 그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이 기회를 마음껏 활용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군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군부 통치의 시절이 있었고, 이게 지나감에도 하나회는 존속하며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방법이 뭐 없을까 뒤적거렸지만 하나회는 결국 해체되었다. 그리고 강력한 외부 감시(군의 정치 개입에 극히 민감한 반응)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군인이 있든 아니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나라는 가지게 되었다.


쇠고기 파동에 이어 반정부시위로 발전하고 있는 촛불 문화제 과정에서 경찰 조직은 극한 제압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도 예전처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돌을 던지고 파이프를 휘두르는 것도 아닌 고작 촛불들고 저기로도 좀 걸어가서 이야기좀 해보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살수차,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고 있다. 이런걸 넘어서 전경 한명 한명의 폭력의 도는 이미 수위를 넘었다.

물론 군복이 주는 익명성은 사람을 대담하게 만든다. 또 혈기 왕성하고 감정을 콘트롤하는 능력이 서툰 젊은이들이라 흥분하기 쉬운것도 맞는 일이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도망치는 사람을 방패로 치고 있다는건 경찰이라는 조직의 관리 능력 자체에 큰 문제점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무기를 든 부하의 감정을 콘트롤할 능력이 없다는건, 혹은 감정을 시민에게 발산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는게 의미하는건 만약 전자라면 조직의 구조, 전달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후자라면 이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이건 역시 경찰 조직 자체가 민주화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이고, 그러므로 맨 아래 조직으로 들어온 의경, 전경들 역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자기들의 본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해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채 방패주고 갑옷 주니까 맘대로 때려도 되나 보다 얼씨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포돌이 어쩌구하는 시덥잖은 이야기는 잔뜩 해대면서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경찰 조직은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 이유는 시민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필요성 때문에 시민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고 세금은 경찰청에 지급된다. 만약 시민들에게 필요없는 일을 한다면, 그리고 제 몸하나 못가누면서 내부인들의 위법 행위를 방치하고, 감싸주기에만 급급하다면 그 조직은 필요없다. 자신이나 민주화 시켜놓고 우리보고 준법이니 민주주의니 따져라.

경찰은 자신에게 솔직해 져야 한다. 능력도 안되면서 10만명이 넘는, 분에 넘치는 조직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더구나 경찰은 무기를 들 수 있는 조직이다. 제어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른다고 생각되면 솔직히 고백하고 다른 조직에 넘겨라.

우리가 없으면 경찰은 누가 이끌어 따위의 되도 않는 소리는 안해도 된다. 대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해체하고 자치 경찰제로 바꾸고 전의경은 본래의 임무 대간첩 작전 수행 중심으로 산속에다 집어넣어놓으면 된다. 교통정리와 고성 방가, 경범죄 위반을 잡기 위해 방패와 곤봉을 든 자들은 필요없다. 무장 간첩이나 테러단 나타나면 그때 내려와라. 열렬히 환영해 주마. 당신들의 분에 넘치는 욕심 때문에 400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더불어 이제 대부분 20대 초반들일 전의경들에게 보내는 말을 좀 보탠다. '공권력'은 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즉, 전의경의 옷은 폭력 허가증 같은게 아니다. 우리나라 법은 군 또는 이에 준하는 조직에서 상명 하달을 강조한다.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상관의 명령이라면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법에 어긋날때는 따르지 않도록 되어 있고 따르지 않아야만 하게 되어있다.

자신의 불법적 폭력을 위계조직의 상부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 믿지 마라. 위법은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그 행동을 한 당사자에게만 돌아간다. 고참도 간부도 아무 책임도 떠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꼭 저지르고 싶다면 판단을 명확히 해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준비를 해라. 시민들은 끝까지 쫒아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견제, 더위, 수치

1.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 때 거의 경찰 주도 독재국가였다. 검찰 통제가 있긴 했지만 이승만의 신임 속에서 내무부 치안국, 현 경찰이 가장 큰 권력을 발휘했고 정치 파동, 야당 탄압, 부정 선거, 언론 검열 등을 주도했다. 419 때 총을 쏜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