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알려진 이태리 영화가 보통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약간 삐툴어진 광기에 휩싸인 쓰레기... 뭐 그런 거다. 잘 안 알려진 영화를 찾아본 기억에 의하면 보통은 그냥 쓰레기다. 그거야 뭐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긴 하다.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미국의 패션은 왜 그 모양인가, 훌륭한 패션을 만드는 이태리의 영화는 왜 그 모양인가를 종종 생각해 보고는 하는데 성공의 가능성(엘리트들이 모일 가능성과 비례한다), 인력 풀의 차이, 나라에서 서포트 하는 방향 정도에서 갈리는 듯 싶다.
칼리귤라는 다시 봐도 쓰레기지만 몇몇 흥미로운 점들이 있는데 우선은 미친 말콤 맥도웰(광기를 흡수하는 데 멍석이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하게 된다)을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테레사 앤 사보이(Teresa Ann Savoy)다. 예전에는 테레사 앤 사보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나마 대략은 찾아볼 수가 있게 되었다. 여튼 이런 류의 이태리 영화라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찾아보는 사람이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테레사 이야기나 잠시.
이 이상한 이름의 여인은 원래 영국인으로 1955년 런던 출신이다. 이 분은 마치 캘리포니아에서 반전 운동을 하고 사이키델릭에 심취하던 히피가, 세상이 변하지만 자신은 변하지 못해 뉴 멕시코 주로 건너가 정착했던 패턴과 비슷한 케이스가 영국 혹은 유럽 히피 쪽에서는 어떻게 풀렸는지 보여준다.
유럽의 히피들은 이태리로 많이 건너갔는데 그 중 많은 이들이 시실리로 갔다. 왜 시실리였냐면 거기에 가면 지진 등으로 버려진 도시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씨도 좋고. 포지오베알레나 부사나 베치아 등이 그런 곳이었는데 여튼 테레사 앤 사보이도 16살이던 어느날 런던에서 사라졌고 시실리로 넘어가 히피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그렇게 지내다가 18세가 된 1973년 이태리의 성인 잡지 플레이멘에 테리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아마 테레사 앤 사보이도 본명은 아닐 거 같은데 여튼 1974년부터 영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75년 틴토 브라스를 만나 살롱 키티를 찍는다. 살롱 키티도 꽤 재미있다...
뭐 여튼 그러다가 칼리골라를 찍게 된다. 물론 칼리골라는 고어 비달의 원작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감독이 틴토 브라스고 제작자가 밥 구치오네라고 펜트하우스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애초에 등장 인물들이 옷을 입고 있기가 힘든 분위기다. 여튼 테레사는 살롱 키티에서도 그렇고 칼리귤라에서도 대체로 미쳐있는 사람들 사이의 좀 정상적인(어디까지나 좀, 그들 사이에서) 역을 주로 했다.
요즘에 뭐하시나 찾아봤는데 영화 일은 안 하는 거 같고(2000년에 뭔가 찍었다고 한다), 1989년에 Fellow of Royal Society of Arts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 밀라노에 살고 있고 두 아이의 어머니라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고향을 등지고 - 이태리가 너무 좋아서 이태리인이 되어 버린 영국 사람 - 집 나간 히피들 중 나름 괜찮게 풀린 케이스다.
칼리귤라는 다시 봐도 쓰레기지만 몇몇 흥미로운 점들이 있는데 우선은 미친 말콤 맥도웰(광기를 흡수하는 데 멍석이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하게 된다)을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테레사 앤 사보이(Teresa Ann Savoy)다. 예전에는 테레사 앤 사보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나마 대략은 찾아볼 수가 있게 되었다. 여튼 이런 류의 이태리 영화라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찾아보는 사람이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테레사 이야기나 잠시.
이 이상한 이름의 여인은 원래 영국인으로 1955년 런던 출신이다. 이 분은 마치 캘리포니아에서 반전 운동을 하고 사이키델릭에 심취하던 히피가, 세상이 변하지만 자신은 변하지 못해 뉴 멕시코 주로 건너가 정착했던 패턴과 비슷한 케이스가 영국 혹은 유럽 히피 쪽에서는 어떻게 풀렸는지 보여준다.
유럽의 히피들은 이태리로 많이 건너갔는데 그 중 많은 이들이 시실리로 갔다. 왜 시실리였냐면 거기에 가면 지진 등으로 버려진 도시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씨도 좋고. 포지오베알레나 부사나 베치아 등이 그런 곳이었는데 여튼 테레사 앤 사보이도 16살이던 어느날 런던에서 사라졌고 시실리로 넘어가 히피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그렇게 지내다가 18세가 된 1973년 이태리의 성인 잡지 플레이멘에 테리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아마 테레사 앤 사보이도 본명은 아닐 거 같은데 여튼 1974년부터 영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75년 틴토 브라스를 만나 살롱 키티를 찍는다. 살롱 키티도 꽤 재미있다...
뭐 여튼 그러다가 칼리골라를 찍게 된다. 물론 칼리골라는 고어 비달의 원작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감독이 틴토 브라스고 제작자가 밥 구치오네라고 펜트하우스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애초에 등장 인물들이 옷을 입고 있기가 힘든 분위기다. 여튼 테레사는 살롱 키티에서도 그렇고 칼리귤라에서도 대체로 미쳐있는 사람들 사이의 좀 정상적인(어디까지나 좀, 그들 사이에서) 역을 주로 했다.
요즘에 뭐하시나 찾아봤는데 영화 일은 안 하는 거 같고(2000년에 뭔가 찍었다고 한다), 1989년에 Fellow of Royal Society of Arts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 밀라노에 살고 있고 두 아이의 어머니라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고향을 등지고 - 이태리가 너무 좋아서 이태리인이 되어 버린 영국 사람 - 집 나간 히피들 중 나름 괜찮게 풀린 케이스다.
PS / 이 글을 2015년에 썼는데 테레사 앤 사보이는 2년 후인 2017년 1월에 밀라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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