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 감기를 월요일까지 끌고 가지 않으리라는 결의 속에서 일요일에 거의 내내 누워있기만 했다. 하도 누워있었더니 답답해서 잠시 산책을 하고, 강아지 목욕도 시켰지만 여튼 결론적으로 한 일은 누워있서 졸다 깨다 한 일과 약물의 과용...
누워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데프콘의 이번 앨범 'i am not a pigeon'이다. 데프콘이 히트곡을 한 세곡 연속 내놔서 케이 힙합 지형을 좀 바꿔놓으면 아주 재미있겠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 분은 멜로디 라인, 특히 사비 라인을 귀에 쏙 들어오고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하고 따라 부르게 만드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런 건 역시 좀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작곡자로서는 어떻게 그런 걸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한데 어디 한 부분이 꽤나 대쪽 같은 듯한 분이라... 독고다이... 2010년이었나... 하지만 사운드 톤은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 특유의 김 빠진 소리 - 어디 한 부분만 귀에 들어와도 데프콘인가 하게 되는 건 분명하다.
데프콘의 음악은 크게 야한 것과 욕으로 나눌 수가 있다. 힙합 유치원 같은 것도 있지만 그런 건 이제 아마도 대준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될 거 같으니(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듯) 분리다. 여튼 야함과 욕 중 이번 음반은 욕 쪽에 약간 치우쳐 있다. 우리집갈래 같은 곡이 있긴 하지만 예전의 야한 곡들과 비교하면 그건 좀...
여튼 데프콘 음악은 이어폰으로 들으면 좀 민망한 데가 있는데 집에서 스피커로 크게 들으면 그나마 좀 들을 수 있다. 특히 이 김빠진 사운드는 약간 중독성도 있어서 나중에는 랩이야 하든 말든 소리만 들으면서 곡을 듣게 되기도 하고... 이번 음반 뿐만 아니라 데프콘 음반이 보통 그렇다.
여튼 민망함은 왜 그런가 하면 케이 올드스쿨 힙합 특유의 진지함이랄까... 이런 게 듣기가 좀 어렵기도 하고, 이 분은 여튼 뼈속까지 중 2스럽기 때문이다. 중 2라기보다는 뭐 소년의 마음 정도로... 이미 그렇게 뿌리를 너무 깊게 내렸고, 나쁘냐 마냐를 떠들기에는 이미 그게 한 몸이 되어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러므로 그걸 이해하느냐 마느냐에서 듣고 말고가 갈릴 뿐이다.
대형 히트곡이 안 나오는 게 여전히 아쉽고(조금만 방향을 틀면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이다), 예능인 데프콘을 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가끔 내뱉을 수 있는 창고가 있다는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렇게 내뱉어야 한 다는 게 이미 소년의 증거고, 그걸 극복했으면 좋겠지만 안 그러고 사는 것도 또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여튼 자주 듣지는 않지만 뭔가 나오면 나름 챙겨 듣게 되는 거고.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나 팬덤은 특유의 평등 질서가 있다. 얼마전 조 배우 디씨갤 사건 때도 잠시 언급을 했었는데... 여튼 이게 바깥과는 약간 다르고, 애초에 형식적 평등 양식에 치우쳐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게 존재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응이 어렵지만 이런 데 잠깐만 몸을 담다 보면 금방 깨우치게 된다. 예를 들어 스타가 올드팬을 불러내 같이 노는 거 -> X, 기획사가 회원 중 일부에게 팬 미팅 앞자리를 제공하는 거 -> X, 씨디 구매량에 따라 팬싸 투표권을 주는 거 -> O, 콘서트에 개인 친구 표 주는 거 -> O, 개인 팬 표 주는 거 -> X 뭐 이런 식. 여튼 팬이라는 집단 안에는 적어도 복불복의 요소가 존재하게 되고, 그게 형식적 평등의 기반이 된다.
이번 스르륵 사태도 근본적으로는 평등이 깨지는 데서 비롯되었다. 물론 오유+일베 vs 여시라는 대규모 논쟁으로 커지긴 했고 그 안에 여러 이상하고 복잡한 논점들이 자리 잡고는 있지만 애초에 스르륵 내부의 동요 원인을 보면 : 스르륵은 대용량 사진을 많이 올리는 곳이고 그러므로 사이트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개인 회원들은 기부를 하든가, 이왕 하는 물품 구입을 스르륵에서 해 운영에 도움을 준다 -> 근데 특혜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튼 이 구조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한데... 그리고 스르륵 사람들이 오유에서 과연 적응이 가능할까도 궁금. 각 커뮤니티마다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저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른데.
자기 몸의 크기와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고 사방팔방 치고 다니는 건 현대에 퍼지고 있는 무슨 전염병 같은 게 아닐까?
최근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사건이 몇 있었는데 이게 그려려니 하며 지나치려고 하고 있지만 머리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 커져가는 게 느껴진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슷했던 동종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러한 거 같기도 하다. 이 머리는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세세하게 기억한다.여튼 시간이 아마도 약이 되겠지만, 방치는 다른 부분을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잠식하게 된다. 그런데 딱히 이 상황을 타개할 다른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어제 밤에 잠이 안와서(낮에 계속 잤으니...)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전투 신 모음이라는 게 있길래 보기 시작해 한참을 찾아 보다가 킹스맨을 봤다. 킹스맨은 그냥 생각보다 훨씬 더 시덥잖았는데 마지막에 태런 에저튼이 공주랑 자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하는 부분은 약간 웃기다. 뭐 전반이 그런 식이긴 하지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