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꽤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뭐 28일 후 같은 거 처럼 크게 확대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되기는 하는데 여튼 메르스는 대형 재난이 그러하듯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몇 가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메르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게(링크) 좀 참고할 만 하게 보이니 시간 나시면 읽어보시고... 다들 일단 손이라도 잘 씻으시고. 복지부는 이번에도 루머에 대한 단속 이야기를 하던데 1명 -> 13명이 되는 속도에 비하면 이 정도면 잘 관리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선은 방역 구조. 질병관리본부의 문제점은 에볼라, 사스, 신형 독감 등등 때마다 항상 지적되어 왔지만 아주 크게 개선되지는 못하는 거 같다. 규정을 정비하든 어쩌든 해야 할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 있고 나서야 시스템이 정비될 지 궁금하다.
여튼 메르스가 퍼지는 루트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런 문제는 애초에 의사나 기관, 환자 등 인간의 선의, 솔선수범, 자발적 희생 따위에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있으면 물론 더 좋겠지만 그런 게 없더라도 돌아가도록 만들어 놔야 하는 게 이상적인 방향이다. 하필 이 때 이래서, 하필 저 때 저래서 같은 건 언제나 늦을 뿐이고 게다가 소용도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인간의 자율성, 인권의 문제와 충돌한다. 즉 강력한 강제력이 보통 그러하듯 규정이 집행되는 유두리의 선이 사회적 합의점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게 사실 매우 복잡한 문제다. 특히 이번처럼 사태 확산의 속도가 빠를 때는 더욱 그렇다.
복지부가 의사나 환자에게 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안 할 때 과태료를 부과한 다는 건 그럴 듯 하게 보이기는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후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걸 감당할 능력이 되는 지도 궁금하고(예컨대 신고자가 100명이고 그 중 환자가 1명이고 이런 비율이면 어찌할 건지) 예컨대 비슷한 상황에서 아무 병 없으면 그냥 넘어가고, 병이 걸려 있으면 책임지라고 돈이라도 물리고 이러려는 거 아닐까 싶고... 뭐 없는 거 보다는 낫겠지만.
그리고 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한데. 소문에 의하면 중국에 간 그 직원은 모 대기업의 협력 업체 직원이다. 물론 비정규직보다야 상황이 낫겠지만 협력 업체의 업무 환경 문제는 나라의 방치, 대기업의 이익 확보, 노동 운동의 쇠퇴 등과 결부되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찾아보니 그래도 저 소문의 회사는 덩치가 좀 있긴 하던데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 사내에 직책의 대체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공무원이 자리가 없어질까봐 유학도 망설이고, 심지어 월차나 휴가도 손 쉽게 쓰기가 어려운 회사가 많은 게 작금의 현실인데 기업의 직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럴 때 해결 솔루션이라면 그 직원이 맞이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걸텐데 : 예컨대 병에 걸릴 지도 모른다는 게 의심스러워 출장을 포기 -> 회사에 어떤 손해가 생김 -> 근데 병 안 걸렸음, 건강함의 경우다. 뭐 건강하니 다행이네 하면 좋겠지만 왜 호들갑을 떨어서 손해가 생겼냐 쪽이 되면 솔선수범을 한 사람의 입장은 난감해 진다. 보통의 경우엔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건 첫 번째 문제와 결부되는 데 결국 어느 정도의 강제력 말고는 방법이 없다. 불이익의 최소화 방안과 거짓말을 한 거에 대한 처벌 등등.
그리고 회사의 의식 개선도 물론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진행된 상황을 보면 속으로 의심스러웠겠지만 출장을 감 -> 확진 -> 중국에서 격리됨 -> 한국 회사의 직원들도 격리됨(25명인가 격리되었다나 그렇다는 듯). 즉 손해는 아마 더 커졌을텐 데 개인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지 좀 더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저 사람이 자진해서 출장을 안 갔을 때 본인에게 생길 손해를 시스템이 책임져 줄 수 있는 가도 마찬가지다. 즉 저런 이유로 퇴사시키는 걸 막아야 한다... (손해가 크다면 다른 핑계로 퇴사시키겠지만...)
물론 뭐 안 걸리면 그만... 더 이익...이 지금의 분위기고 그러므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거겠지만. 결국 비용처럼 생각되는 게 당연하게 드는 돈이라는 인식이 중요하고, 이 당연하게 드는 돈을 의무적으로 쓰게 만드는 건 결국 일단은 규정에 의한 법적 강제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회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담합을 해도 과태료가 담합에 의한 이득보다 낮고, 얼마 전 고속도로 페인트 칠 사건에서 보듯 : 업체가 사업권을 따 낸다 -> 그걸 커미션 때고 다시 판다 -> 계속 내려감 -> 맨 아래 하청 업체는 사업비 60%가지고 공사 해야 함 -> 잘 지워지는 부실 도료 사용..
예컨대 거의 모든 게 이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걸리면 손해지만 몇 번만 저러고 있으면 상관없다. 감옥 좀 다녀오면 어때... 갔다 와도 돈은 그대로 있드만 뭐... 하는 마인드가 가능한 사회라면 사실 뭔 방법이 없다. 결국 이런 패턴이 거의 모든 업종에서 적용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지금처럼 나라가 회사한테 오냐 오냐 잘한다 잘한다 하고 있으면 이런 일은 계속되고 커질 수 밖에 없다. 결국은 노동자여 단결하라... 내 권리를 지켜내는 건 돈 주는 사람의 선의가 아니라 규정과 시스템...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든든한 사회망을 확신하게 될 때 선의와 자발도 더 잘 나오게 된다.
PS) 결국 3차 감염자도 발생하고 사망자도 발생하고 일이 엄청나게 커졌는데. 이런 문제의 시작을 개인의 보건 의식 부족, 상식적인 책임감의 부족으로 치환하는 거에 완전하게 동의하진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 개인의 책임감이라는 건 든든한 시스템의 존재한다는 걸 확신했을 때나 발휘된다. 가만히 앉아서 당연히 해야지 왜 안해서 이 모양을 만들었냐고 말하는 건 추후에는 몰라도 지금 사태에 별로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시민 의식은 몇 십년 째 그 모양 그대로고 vs 예전에 만들어졌던 그나마 잘 돌아간다던 시스템은 에볼라, 메르스를 거치며 내려가고 있다. 사스 때만 생각해 봐도 손 세정제 같은 게 정말 미친듯이 보급됐었다. 지금은 병원도 모르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고, 뉴스에 확진 환자와 사망자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여튼 뒤떨어진 놈을 일단 회복시키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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