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촛불 시위대의 말을 들을 것인가. 글쎄, 아마 안들을 것 같다. 특히 이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비폭력'에 머무른다면 아마 절대 안들을거다. '비폭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경찰의 무장 해제 정도는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이런데는 사람들이 흥미가 없는거 같다. 모두들 자신이 만든 룰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형세다. 대체 뭐가 비폭력인거야.
사람들이 조중동을 쓰레기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무서워한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면 우리는 필패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적과 싸워야 하는데 이미 적을 무서워하고 있으니 게임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조중동을 완전히 청산시키기위해 나서야한다. 이런 기회는 금방 금방 찾아오지 않는다.
앞에서 아무리 재잘재잘 떠들어도 어이쿠 그렇구나 하고 물러나는 일은, 절대 없다. 100만명이 모여 앉아있어도 그들을 물러나게 할 전략이 없고 전술이 없으면, 그냥 야구장에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과 똑같다. 그냥 관객이 좀 많은 것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잔뜩 들어찬 시민들의 행렬을 보면 서 자꾸 월드컵이 떠오른다. 이게 기우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물론 이 시위가 확대 재생산 되기 위해선 논의와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그 과정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한 진실이다. 임계점에 닿았다 싶으면 내달리는게 정석이다.
정치적으로 이명박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아니면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5년간 군림하는 왕 뽑는 행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거 같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게 좀 의심스러운데. 뭔가 크게 한몫 잡아보려고 일 벌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몇조에 이르는 세금 환급, 100일 기념 사면, 군보호 지역 해제, 재산 환원 취소. 자기 돈 드는거 하나도 없이 남의 돈으로 어떻게 생색만 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국, 유럽 등지에서도 하도 문제가 많이 생겨 이리 저리 재검토 해보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는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다. 자연 독점 기업, 국가 기간 산업들이 민영화 되면 엄청난 이익이 보장될게 뻔하다. 넓지도 않은 우리나라 그런 기업들을 사들일 수 있는 후보자들 다 그놈이 그놈들이다. 대통령 측근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시민들은 2000억 넘게 쓰게 되겠지만) 국가는 2000억 아끼니 세금 낭비를 줄이는 일 아니냐는 발상이 대체 어떻게 나오게 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괄호는 왜 말 안하는데. 세금 두번만 아끼다간 사람들 초가 삼간 다 태워먹겠다.
시민들 다 거지되도 정부의 재정 적자 해소했다고 업적이랍시고 자랑할 사람이다. FTA하면 누가 제일 이익볼까. 대부분 이명박과 경영인 핫라인으로 연결된 수출 위주의 대기업들이다. 핫라인으로 연결된 철의 커넥션. 참으로 굳건하기도 하여라.
이명박의 오랜 기업인 생활이 증명하듯이 그는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촛불의 상징, 비폭력의 은유 그런거 전혀 못알아 듣는다. 알아 듣고 움직였을 사람이면 예전에 움직였고, 사실 아예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광화문, 효자동, 삼청동 모두 콘테이너로 틀어막고 청와대 처마 끝에 앉아 장마가 대체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할 이야기도 하나 없고, 들을 이야기도 하나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이 직접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 권한은 국회밖에 없다. 천상 국회를 압박해야한다. 여의도 가봐야 개회도 안했고 아무도 없긴 하지만 6월 10일에 명박산성이 세워져있고, 마침 청와대 가면 뭐하냐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회의론 대두도 있길래 난 당연히 행진이 국회로 향할 줄 알았다.
왜 안갔는지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아쉽다. 이명박 뒤에 숨어 상황만 좌시하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너네들을 잊어버린게 아니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기회였는데 그걸 그냥 날려먹었다. 실리주의자에게는 실리를 뺏는걸로 승부를 봐야한다. 100만명이 콘테이너 뒤에서 노래나 부르는 것보다 한나라당 출신 시장 한명 내리는게 정말로 훨씬 더 효과가 클 거다.
내각 사퇴론 이야기까지는 나왔는데 사실 실행되고 있는건 거의 없다. 그리고 또 박근혜 총리론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그게 실행될까 의심스럽기는 하다. 알다시피 이명박은 한국 수구 우파 비주류다. CEO 이미지를 등에 업고 세계 경제가 어려운 타이밍을 잘 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실체를 이토록 못알아본 우리 시민들이 야속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당선된 후 그가 기용한 인사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맥 풀이 턱없이 좁고 그나마 엉망진창이다. 애초에 행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헌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나라를 경영하는게 기업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만 잔뜩 들어차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한국 수구 우파의 메인 스트림이다. 그들은 한 시절 나라를 꾸려나간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훨씬 노련하다. 인맥 풀도 비교가 안된다. 지금처럼 아마츄어 냄새 풀풀 나게 정권을 꾸려갈 뜨내기들이 아니다. 이제 됐다 싶으면 이명박 따위 뒤도 안돌아보고 차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방을 내주는건 자기 자리 찾기도 엄청나게 어려워 질거라는걸 아마 이명박도 알고 있을거다. 그래서 이 카드는 실현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이명박의 카드라고는 버티기 뿐이다. 하지만 촛불 문화제한다고 자유발언 계속해봐야 5년 정도 아마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하면서 실속 다 챙겨먹을거다.
정말로 후딱후딱 해치워 버려야한다. 느긋하게 앉아 우리 참 잘하지, 민주주의 만세 하면서 좋아하고 있을때가 아니다.
20080613
20080608
이 시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반신반의하며 방점을 찍어보겠다고 적었던 이 전의 글이 내 자신도 놀랄 정도로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굉장히 차분하게 이 촛불 시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6월 6일과 6월 7일, 예고한대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찾아간 이틀간의 경험은 지금 상황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고, 상당히 아프다는걸 다시금 확인해주고있다.
자, 이제 의문은 맨 처음으로 다시 향한다. 시청 광장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었던 2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있다. 과연 이 시위로 얻고자 하는건 무엇일까.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이 한 반쯤은 사라졌었다. 가능성이 높은 후보, 될지도 모르는 후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말이 들릴때는 몰랐지만 막상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자 머리 속에서 퍼지는 반향의 차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 그런거구나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와 시민들이 말하는 경제. 같은 단어에 함축된 소름끼칠 정도로 드넓은 의미의 차이를 시민들이 결국 납득할거라고는 (여론조사와 신문보도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얇디얇은 우리나라 지도자의 층을 눈앞에서 확인하는것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체념 반, 포기 반의 시간이 지나고 예상되었던, 정확히 말하면 그의 공약집에 써있었던 정책들이 밀고 나가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 문화제가 조율되고 실행되는 과정은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렇게 실행되어갔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의지는 그렇게 문화제에 녹아들어갔다. 이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건 실망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어떤'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정부의 천박한 대응과 강경한 탄압이 있었다. 의견 수렴이 무시되면서 촛불 문화제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시위가 되었다. 아직도 수입 재협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명박 퇴진, MB OUT의 구호가 훨씬 더 크게 울린다. 바야흐로 촛불 문화제는 반정부 투쟁이 되었다. 반정부 투쟁. 이 섬뜩할 수도 있는 이름이 전혀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연 대책위는 MB를 OUT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가?
안국동 로터리에 배치된 전경 버스를 빼내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이고 밧줄이 준비되었다. 몇번의 시도가 있고난 후 갑자기 누군가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립되어있는건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진압을 시작한다고 한다, 안전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기자. 의견이 충돌하지만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하고 시위대는 분열된다.
이런 일은 새벽에 새문안 교회 옆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고, 골목이라 혹시나 포위되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은 대로에 수도없이 모여있는 사람들이 막아주고 있다. 한참의 대치가 있었고 마치 만화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는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진압이 시작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정말 마술같이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꽉차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길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2시간 후쯤 다시 한번 찾아간 그 곳에는 오직 적막 밖에 없다.
그리고 새문안 교회 안쪽 주차장 옆 좁은 골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하다길래 사다 날라주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그 좁은 골목 안에서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남는건 여러분들 맘이지만 이곳은 위험하다. 빨리 나가라. 빨리 나가라.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남 걱정 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비질비질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동안 그것 참 우연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디에 전경이 온다더라. 가본다.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서 진압이 시작된다더라. 가본다. 아무일도 없다. 다리만 아프다. 유자드웹을 쓸 수 있으니 아고라와 오마이뉴스등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거기도 똑같다.
결국 아무 말도 믿지 않게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판단도 불가능하다. 시야는 좁고 거리는 너무 넓다. 아고라 회원들의 토론이 벌어지지만 5개가 넘는 아고라 깃발들은 다들 가는 길이 다르다. 제어되지 않은 시민의 의견은 이토록 간단히 움직인다. 토론, 민주주의라 이야기하지만 들어오는 정보는 너무 작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들 목표가 다르다.
버스속에서 지하철 속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어제 시위의 무용담을 나눈다. 전경 새끼들, 프락치 새끼들, 어제 한 인터뷰 이야기, 어제 어떤 기자에게 사진 찍힌 팜플렛 자랑.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서로 서로의 무용담에 자위를 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한다.
광화문은 떠들썩하다. 자유 발언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386쯤의 나이대 사람들 몇명이 둥그렇게 앉아 운동 가요를 끊임없이 부른다. 내 바로 앞에 디씨 무적 김밥 부대인가에서 봉사자가 김밥 두박스와 생수 한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김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그들은 달려들었다.
단 5분만에 종이 박스와 생수가 포장되어있던 비닐 봉지만 남는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건 묘한 경험이다. 버스를 움직이는 행위는 의식이 되어간다. 한밤에 벌어지는 거리의 마츠리다. 영차 영차. 움직임 하나 하나에 사람들이 환호한다.
결국 이 시위는 점점 쇼가 되어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쇼 데몬스트레이션. 고생하고 잡혀가는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까지 시위 군중 속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미약한 힘의 사람들 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목적이 쇠고기 재협상인가? 재협상 하면 그만 둘건가? 나중에 수도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이런 일 있으면 또 반복하면서 나올건가. 나중에 비록 실패했지만 역사적인 시위로 시민의식으로 높였다고 역사에 기록되면 그거나 보며 흐뭇해 할 생각인가?
대책위가 MB OUT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뭐냐. 아웃시킬 생각이 있기는 한건가. 그럼 어떻게 아웃 시킬 생각인가. 알겠지만 광화문 거리 앞에서 자유 발언을 한다고 대통령이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72시간이 아니라 720시간을 텐트를 쳐도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제발로 나갈 작자였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다. 지금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탄핵을 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헌법을 바꿔 하야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아예 새 나라를 만들 생각인가?
아웃 시키고 나면 뭔가 로드맵이라도 있나? 어떤 세상을 만들어볼 생각인가. 그 어떤 세상은 누구의 의견으로 만들어진건가? 시민의 의견? 대책위의 의견? 이에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희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그 이후에 과정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조금씩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은 있나? 그냥 이런것들을 단지 꿈처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쇼를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쇼의 목적은 대체 뭐냐. 사람들이,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것만 가지고도 큰 의미가 있고, 우리 국민의 훌륭한 의식을 보여주는거라 생각하나. 그런 자족을 위해 20만명이나 필요한가. 월드컵때 100만이 넘게 모이는걸 보고 충분히 자족하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포장하지 않았나? 그런 의식이 정말 더 필요한건가?
청와대로 가는 일의 상징성은 무척이나 크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있다. 부화뇌동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광화문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자가 외친다, 지금 안국동에서 전경들과 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함성을 보내줍시다. 와~ 자, 그럼 다음 자유 발언을 들어봅시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시민.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위해 이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앞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간걸까. 그걸 점점 모르겠다. 물론 그 가치를 폄하하진 못한다. 시민의 거대한 움직임에 평가를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 경험은 누군가에겐 민주주의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고, 우리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 20만명이 모일 필요는 없다.
문화제가 조율되고 조직되는 감동적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실망이 큰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기회는 너무 아깝다. 이게 끝나고 나면 뭐가 다가올까.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의 제목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예전 전공투의 구호 중 하나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금 현실에 투사하는건 지나친 일인가.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왜 적군파가 생겨났는지,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하였다. 이게 정말 지나친 생각인가.
광장에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그래 난 살아있으므로 따르겠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갈데가 어딘지 알기는 하나? 아니, 갈데가 있기는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조롱으로 들린다. 이 노래에 실려있는 치열함이 웃음 속에 묻힌다. 그 음악을 제발 틀지마세요 DJ, DJ. 이건 이 노래에 대한 모욕이다.
PS 밤새 우석훈 박사가 상당히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길이 쇼 데몬스트레이션보다 훨씬 빨라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단체장이라는 어감의 차이가 좀 멀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소환제, 대통령 및 관료 소환제가 없다는게 이렇게 일을 힘들게 만든다.
http://retired.tistory.com/150
자, 이제 의문은 맨 처음으로 다시 향한다. 시청 광장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었던 2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있다. 과연 이 시위로 얻고자 하는건 무엇일까.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이 한 반쯤은 사라졌었다. 가능성이 높은 후보, 될지도 모르는 후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말이 들릴때는 몰랐지만 막상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자 머리 속에서 퍼지는 반향의 차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 그런거구나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와 시민들이 말하는 경제. 같은 단어에 함축된 소름끼칠 정도로 드넓은 의미의 차이를 시민들이 결국 납득할거라고는 (여론조사와 신문보도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얇디얇은 우리나라 지도자의 층을 눈앞에서 확인하는것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체념 반, 포기 반의 시간이 지나고 예상되었던, 정확히 말하면 그의 공약집에 써있었던 정책들이 밀고 나가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 문화제가 조율되고 실행되는 과정은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렇게 실행되어갔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의지는 그렇게 문화제에 녹아들어갔다. 이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건 실망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어떤'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정부의 천박한 대응과 강경한 탄압이 있었다. 의견 수렴이 무시되면서 촛불 문화제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시위가 되었다. 아직도 수입 재협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명박 퇴진, MB OUT의 구호가 훨씬 더 크게 울린다. 바야흐로 촛불 문화제는 반정부 투쟁이 되었다. 반정부 투쟁. 이 섬뜩할 수도 있는 이름이 전혀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연 대책위는 MB를 OUT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가?
안국동 로터리에 배치된 전경 버스를 빼내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이고 밧줄이 준비되었다. 몇번의 시도가 있고난 후 갑자기 누군가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립되어있는건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진압을 시작한다고 한다, 안전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기자. 의견이 충돌하지만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하고 시위대는 분열된다.
이런 일은 새벽에 새문안 교회 옆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고, 골목이라 혹시나 포위되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은 대로에 수도없이 모여있는 사람들이 막아주고 있다. 한참의 대치가 있었고 마치 만화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는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진압이 시작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정말 마술같이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꽉차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길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2시간 후쯤 다시 한번 찾아간 그 곳에는 오직 적막 밖에 없다.
그리고 새문안 교회 안쪽 주차장 옆 좁은 골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하다길래 사다 날라주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그 좁은 골목 안에서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남는건 여러분들 맘이지만 이곳은 위험하다. 빨리 나가라. 빨리 나가라.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남 걱정 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비질비질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동안 그것 참 우연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디에 전경이 온다더라. 가본다.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서 진압이 시작된다더라. 가본다. 아무일도 없다. 다리만 아프다. 유자드웹을 쓸 수 있으니 아고라와 오마이뉴스등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거기도 똑같다.
결국 아무 말도 믿지 않게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판단도 불가능하다. 시야는 좁고 거리는 너무 넓다. 아고라 회원들의 토론이 벌어지지만 5개가 넘는 아고라 깃발들은 다들 가는 길이 다르다. 제어되지 않은 시민의 의견은 이토록 간단히 움직인다. 토론, 민주주의라 이야기하지만 들어오는 정보는 너무 작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들 목표가 다르다.
버스속에서 지하철 속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어제 시위의 무용담을 나눈다. 전경 새끼들, 프락치 새끼들, 어제 한 인터뷰 이야기, 어제 어떤 기자에게 사진 찍힌 팜플렛 자랑.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서로 서로의 무용담에 자위를 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한다.
광화문은 떠들썩하다. 자유 발언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386쯤의 나이대 사람들 몇명이 둥그렇게 앉아 운동 가요를 끊임없이 부른다. 내 바로 앞에 디씨 무적 김밥 부대인가에서 봉사자가 김밥 두박스와 생수 한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김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그들은 달려들었다.
단 5분만에 종이 박스와 생수가 포장되어있던 비닐 봉지만 남는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건 묘한 경험이다. 버스를 움직이는 행위는 의식이 되어간다. 한밤에 벌어지는 거리의 마츠리다. 영차 영차. 움직임 하나 하나에 사람들이 환호한다.
결국 이 시위는 점점 쇼가 되어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쇼 데몬스트레이션. 고생하고 잡혀가는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까지 시위 군중 속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미약한 힘의 사람들 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목적이 쇠고기 재협상인가? 재협상 하면 그만 둘건가? 나중에 수도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이런 일 있으면 또 반복하면서 나올건가. 나중에 비록 실패했지만 역사적인 시위로 시민의식으로 높였다고 역사에 기록되면 그거나 보며 흐뭇해 할 생각인가?
대책위가 MB OUT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뭐냐. 아웃시킬 생각이 있기는 한건가. 그럼 어떻게 아웃 시킬 생각인가. 알겠지만 광화문 거리 앞에서 자유 발언을 한다고 대통령이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72시간이 아니라 720시간을 텐트를 쳐도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제발로 나갈 작자였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다. 지금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탄핵을 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헌법을 바꿔 하야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아예 새 나라를 만들 생각인가?
아웃 시키고 나면 뭔가 로드맵이라도 있나? 어떤 세상을 만들어볼 생각인가. 그 어떤 세상은 누구의 의견으로 만들어진건가? 시민의 의견? 대책위의 의견? 이에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희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그 이후에 과정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조금씩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은 있나? 그냥 이런것들을 단지 꿈처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쇼를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쇼의 목적은 대체 뭐냐. 사람들이,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것만 가지고도 큰 의미가 있고, 우리 국민의 훌륭한 의식을 보여주는거라 생각하나. 그런 자족을 위해 20만명이나 필요한가. 월드컵때 100만이 넘게 모이는걸 보고 충분히 자족하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포장하지 않았나? 그런 의식이 정말 더 필요한건가?
청와대로 가는 일의 상징성은 무척이나 크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있다. 부화뇌동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광화문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자가 외친다, 지금 안국동에서 전경들과 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함성을 보내줍시다. 와~ 자, 그럼 다음 자유 발언을 들어봅시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시민.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위해 이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앞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간걸까. 그걸 점점 모르겠다. 물론 그 가치를 폄하하진 못한다. 시민의 거대한 움직임에 평가를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 경험은 누군가에겐 민주주의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고, 우리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 20만명이 모일 필요는 없다.
문화제가 조율되고 조직되는 감동적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실망이 큰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기회는 너무 아깝다. 이게 끝나고 나면 뭐가 다가올까.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의 제목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예전 전공투의 구호 중 하나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금 현실에 투사하는건 지나친 일인가.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왜 적군파가 생겨났는지,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하였다. 이게 정말 지나친 생각인가.
광장에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그래 난 살아있으므로 따르겠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갈데가 어딘지 알기는 하나? 아니, 갈데가 있기는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조롱으로 들린다. 이 노래에 실려있는 치열함이 웃음 속에 묻힌다. 그 음악을 제발 틀지마세요 DJ, DJ. 이건 이 노래에 대한 모욕이다.
PS 밤새 우석훈 박사가 상당히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길이 쇼 데몬스트레이션보다 훨씬 빨라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단체장이라는 어감의 차이가 좀 멀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소환제, 대통령 및 관료 소환제가 없다는게 이렇게 일을 힘들게 만든다.
http://retired.tistory.com/150
20080602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
버스 한대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나를 제약하는 일상 때문에 억울하지만 발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일상, 그놈의 일상. 그리고 지금, 인터넷 방송에서는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방패를 휘두르는 전경들의 모습이 보인다. RSS에 등록해 놓았던 BBC 뉴스 첫번째 칸에 실려있는 이 시위에 대한 사진을 본다.

민주주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그리고 아나키즘을 제외한 어떤 체계 안에서도 세상에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피지배계층이 뭔가 원하지만, 그것이 지배계층의 이익이 아니라면 '나라는 시민들의 것'이라는 허황된 레토릭들에도 불구하고 반항하고, 반발해야 얻어낼 수 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한다. 싸우지 않고선 빈 손 뿐이다. 그들은 대의를 쫓아 뭔가 내준 적도 없고,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될 상황이 와도 갖은 수사들로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와중에 꼼짝도 안하고 투덜거리면서, 아니면 아예 그럴 의지도 능력도 가지지 않고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다수다. 제 몸하나 까딱하기 싫으면서 권리는 줄기차게 주장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다. 누군가 다쳐가면서, 죽어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에 대고 감내놔라 팥내놔라 열심히도 챙겨먹는다.
수구 세력들은 진보 진영이나 정당한 시민들의 권리 의식들과 그나마 정면 대결이라도 하고 있지 ,이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은 변화의 시기엔 몸을 숙일 뿐이다. 뭔가 바뀌나 싶으면 재빨리 주판알을 튀기고 대세를 따른다.
이들을 원망하는건 아니다. 이들도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시민이다. 우리의 점잖은 선조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무신함을 피하려 안이하노라'라며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은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하노라'는 때아닌 관용을 베풀었지만 이런 현학적인 단어들도 실로 아깝다.
이들을 책망하지는 못한다. TV로 폭력의 현장을 바라보며 히히덕 거리며, 폭력 앞에 노출되어있는 시민들에게 비폭력하라고, 그게 시민의 힘이라고 쉽게들 말한다. 질서 의식을 말하며 불법을 탓한다. 물론 이것은 지켜야할 것이고 이 시위의 진정한 힘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너희들이 할 말은 아니다. 그건 그 자리에 서있는 절박한 사람들 입에서나 나올 말이다. 이런 자들을 다 끌어다 단두대에 밀어넣은 로베스피에로는 실로 위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뿐이다. 민주주의의 성과물들을 부산물들을 마음껏 받아 먹어도 좋다. 다만 지금하고 있는 일, 그거라도 열심히 해라. 제발 거기서라도 남의 성과물들을 탐내지 말고, 그곳의 불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너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싸워라. 그리고 제발 방해라도 하지 말 것을 간절히 바란다.

민주주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그리고 아나키즘을 제외한 어떤 체계 안에서도 세상에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피지배계층이 뭔가 원하지만, 그것이 지배계층의 이익이 아니라면 '나라는 시민들의 것'이라는 허황된 레토릭들에도 불구하고 반항하고, 반발해야 얻어낼 수 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한다. 싸우지 않고선 빈 손 뿐이다. 그들은 대의를 쫓아 뭔가 내준 적도 없고,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될 상황이 와도 갖은 수사들로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와중에 꼼짝도 안하고 투덜거리면서, 아니면 아예 그럴 의지도 능력도 가지지 않고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다수다. 제 몸하나 까딱하기 싫으면서 권리는 줄기차게 주장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다. 누군가 다쳐가면서, 죽어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에 대고 감내놔라 팥내놔라 열심히도 챙겨먹는다.
수구 세력들은 진보 진영이나 정당한 시민들의 권리 의식들과 그나마 정면 대결이라도 하고 있지 ,이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은 변화의 시기엔 몸을 숙일 뿐이다. 뭔가 바뀌나 싶으면 재빨리 주판알을 튀기고 대세를 따른다.
이들을 원망하는건 아니다. 이들도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시민이다. 우리의 점잖은 선조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무신함을 피하려 안이하노라'라며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은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하노라'는 때아닌 관용을 베풀었지만 이런 현학적인 단어들도 실로 아깝다.
이들을 책망하지는 못한다. TV로 폭력의 현장을 바라보며 히히덕 거리며, 폭력 앞에 노출되어있는 시민들에게 비폭력하라고, 그게 시민의 힘이라고 쉽게들 말한다. 질서 의식을 말하며 불법을 탓한다. 물론 이것은 지켜야할 것이고 이 시위의 진정한 힘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너희들이 할 말은 아니다. 그건 그 자리에 서있는 절박한 사람들 입에서나 나올 말이다. 이런 자들을 다 끌어다 단두대에 밀어넣은 로베스피에로는 실로 위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뿐이다. 민주주의의 성과물들을 부산물들을 마음껏 받아 먹어도 좋다. 다만 지금하고 있는 일, 그거라도 열심히 해라. 제발 거기서라도 남의 성과물들을 탐내지 말고, 그곳의 불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너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싸워라. 그리고 제발 방해라도 하지 말 것을 간절히 바란다.
20080527
시민들의 정당은 가능할까
촛불 문화제가 문화제 참여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진화해 나갈지는 전혀 알 수 없는게, 주도층이란게 딱히 없기 때문이다. 아고라에서, 디씨에서, 그리고 그외 여러 카페,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의견으로 수렴된다. 현장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 수렴과 결정이 반복된다. 물론 딱 떨어지는 지시가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지는 않다.
효율적인 면에서는 떨어질 지 몰라도 정보 누출의 걱정이 전혀 없고 (당사자들도 모른다),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이므로 결정에 대한 순응도가 높다. 이거야 사실 애초에 민주주의란게 의견 수렴과 결정이 그렇게 완벽히 작동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다. 살짝 살짝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오류는 즉시 즉시 보완해가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루소가 국민의 의사는 대표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의제를 반대하고 경험적 의사를 중시해야한다고 말하는걸 예전에 읽었을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뭐가 결정된다는걸까, 세상에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너무 아이디얼하지 않나?
이제와서 이게 대충이나마 이해가 간다. 촛불 문화제를 경험하면서 약간이나마 상상력이 더 풍부해진 덕이다. 그것은 아마, 대충 지금같은 식의 의사 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의견이 서서히 수렴되고 뭔가가 결정된다. 투표도 없고, 지시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결정되고, 동의되고, 실행된다.
생각해보면 1789년에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갈때 그 전날 밤에 누군가 소위 '지도층'들이 모여서 결정하고 지시한건 아니다. 루소는 대혁명을 겪진 않았겠지만 그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학자다. 68년 5월은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어진 다음 과정에서 68년에 논의가 이루어진 사항들에 대한 시민들의 토론과 결정이 그래도 성공적이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사회는 변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가는데, 이게 반사적으로 다른 정당들의 지지율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은 정치 전반에 회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들은 보수 우익도 아니고, 운동권 좌파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좋은 나라에서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 하고 싶은 일 잘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금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은 '정치'에 대단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반감을 드러내는건 물론 모순된 행동이 아니라, 여기서 '정치'가 우리나라의 '기존 정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게다.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너무 없고, 권력을 두 손 가득 쥔 정치인들만 잔뜩 있는게 문제다.
몇개의 언론사와 대기업과 결탁된 수구 정당은 그들만 이익인 정책을 잔뜩 펼쳐보이고 있고, 노조나 시민단체 등 몇몇 운동권 세력이 결집된 정당들은 보다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고립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야당이 된 저번 여당은 솔직히 지금 뭐하고 있는건지, 생각은 하고 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본격적인 시민 정당의 출현을 기대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정당과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는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찾아오는 일은 4년에 한번 총선, 5년에 한번 대통령 선거때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며 지들 멋대로 하고 싶은걸 해댈 뿐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시민들에게는 소환권도 없고, 탄핵권도 없고, 쓸만한 참여 절차도 없으니 정치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다. 구경거리라도 되면 괜찮지만, 직접적으로 생계에 위협까지 가하니 이건 정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자 비슷한 걸 몇년에 한번씩 뽑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투표를 제대로 하면 되잖아 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기존 권력의 공고함과, 그 이권이 엄청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 관심을 가지고 쳐다봐야 맘에 그다지 안차는 대안들 중에 대체 누굴 골라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정도에서 멈춘다. 맘에 드는 사람이 혹시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이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구시대적 정치 세력들을 거부하고, 시민의 복지와 환경, 합리적인 이념의 조화, 시민들을 위한 정책에 역점을 둔 본격적인 시민 정당이 가능할 시기,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의견을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 혹시나 그 와중에 구시대적 권력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소환시켜 버리고 하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듯 싶다. 시민 의식이라는게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건 가까운데 있는 지방 자치 단체급부터 시작해서 차츰 차츰 넓혀가는게 올바른 길이긴 한데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 단체라는게 그다지 권한도 없고 딱히 와닿는 일을 하는 경우도 없고, 지역 유지들과 결탁해서 역시나 자기들 좋은 일만 해대는게 다반사인데다, 시민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래서 역시 국회부터 노리고 시작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정치인이라는게 권력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시민의 대행자라는걸 직접, 명확하게 느끼게 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물론 현실 정치라는게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고, 저런 식의 작동 방식을 어떻게 고수해 나갈 수 있을지도 큰 문제거리다. 급박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저런 방식이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적극적인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행정학, 법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익스퍼트들의 몫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초야에 뭍혀있을, 생각이 좀 올바른 사람들이 슬슬 기어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감을 가지고, 저항하고, 제대로 좀 하라고 핀잔을 줄 일도 있는데, 가끔은 도무지 답이 안보여서 직접 나서서 해야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만약 재협상 등의 의사를 관철해 낸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결과적으로 어떤 식의 결실을 맺을지 아직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그냥 잠자코 원래 자리로들 돌아가고 만다면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또 촛불을 들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땐 뽑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게 될거다.
어쨋든 이 과정을 잘 겪고,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책에서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효율적인 면에서는 떨어질 지 몰라도 정보 누출의 걱정이 전혀 없고 (당사자들도 모른다),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이므로 결정에 대한 순응도가 높다. 이거야 사실 애초에 민주주의란게 의견 수렴과 결정이 그렇게 완벽히 작동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다. 살짝 살짝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오류는 즉시 즉시 보완해가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루소가 국민의 의사는 대표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의제를 반대하고 경험적 의사를 중시해야한다고 말하는걸 예전에 읽었을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뭐가 결정된다는걸까, 세상에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너무 아이디얼하지 않나?
이제와서 이게 대충이나마 이해가 간다. 촛불 문화제를 경험하면서 약간이나마 상상력이 더 풍부해진 덕이다. 그것은 아마, 대충 지금같은 식의 의사 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의견이 서서히 수렴되고 뭔가가 결정된다. 투표도 없고, 지시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결정되고, 동의되고, 실행된다.
생각해보면 1789년에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갈때 그 전날 밤에 누군가 소위 '지도층'들이 모여서 결정하고 지시한건 아니다. 루소는 대혁명을 겪진 않았겠지만 그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학자다. 68년 5월은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어진 다음 과정에서 68년에 논의가 이루어진 사항들에 대한 시민들의 토론과 결정이 그래도 성공적이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사회는 변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가는데, 이게 반사적으로 다른 정당들의 지지율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은 정치 전반에 회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들은 보수 우익도 아니고, 운동권 좌파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좋은 나라에서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 하고 싶은 일 잘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금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은 '정치'에 대단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반감을 드러내는건 물론 모순된 행동이 아니라, 여기서 '정치'가 우리나라의 '기존 정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게다.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너무 없고, 권력을 두 손 가득 쥔 정치인들만 잔뜩 있는게 문제다.
몇개의 언론사와 대기업과 결탁된 수구 정당은 그들만 이익인 정책을 잔뜩 펼쳐보이고 있고, 노조나 시민단체 등 몇몇 운동권 세력이 결집된 정당들은 보다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고립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야당이 된 저번 여당은 솔직히 지금 뭐하고 있는건지, 생각은 하고 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본격적인 시민 정당의 출현을 기대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정당과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는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찾아오는 일은 4년에 한번 총선, 5년에 한번 대통령 선거때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며 지들 멋대로 하고 싶은걸 해댈 뿐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시민들에게는 소환권도 없고, 탄핵권도 없고, 쓸만한 참여 절차도 없으니 정치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다. 구경거리라도 되면 괜찮지만, 직접적으로 생계에 위협까지 가하니 이건 정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자 비슷한 걸 몇년에 한번씩 뽑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투표를 제대로 하면 되잖아 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기존 권력의 공고함과, 그 이권이 엄청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 관심을 가지고 쳐다봐야 맘에 그다지 안차는 대안들 중에 대체 누굴 골라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정도에서 멈춘다. 맘에 드는 사람이 혹시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이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구시대적 정치 세력들을 거부하고, 시민의 복지와 환경, 합리적인 이념의 조화, 시민들을 위한 정책에 역점을 둔 본격적인 시민 정당이 가능할 시기,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의견을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 혹시나 그 와중에 구시대적 권력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소환시켜 버리고 하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듯 싶다. 시민 의식이라는게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건 가까운데 있는 지방 자치 단체급부터 시작해서 차츰 차츰 넓혀가는게 올바른 길이긴 한데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 단체라는게 그다지 권한도 없고 딱히 와닿는 일을 하는 경우도 없고, 지역 유지들과 결탁해서 역시나 자기들 좋은 일만 해대는게 다반사인데다, 시민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래서 역시 국회부터 노리고 시작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정치인이라는게 권력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시민의 대행자라는걸 직접, 명확하게 느끼게 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물론 현실 정치라는게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고, 저런 식의 작동 방식을 어떻게 고수해 나갈 수 있을지도 큰 문제거리다. 급박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저런 방식이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적극적인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행정학, 법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익스퍼트들의 몫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초야에 뭍혀있을, 생각이 좀 올바른 사람들이 슬슬 기어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감을 가지고, 저항하고, 제대로 좀 하라고 핀잔을 줄 일도 있는데, 가끔은 도무지 답이 안보여서 직접 나서서 해야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만약 재협상 등의 의사를 관철해 낸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결과적으로 어떤 식의 결실을 맺을지 아직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그냥 잠자코 원래 자리로들 돌아가고 만다면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또 촛불을 들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땐 뽑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게 될거다.
어쨋든 이 과정을 잘 겪고,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책에서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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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 때 거의 경찰 주도 독재국가였다. 검찰 통제가 있긴 했지만 이승만의 신임 속에서 내무부 치안국, 현 경찰이 가장 큰 권력을 발휘했고 정치 파동, 야당 탄압, 부정 선거, 언론 검열 등을 주도했다. 419 때 총을 쏜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