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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2

알게 뭐냐

'천국에서'에 대한 이 리뷰(링크)를 읽고 문득 생각나서. 이 소설과 그의 작품에 대해선 소문만 들었지 막상 읽어본 적이 없어서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뭐 좀 떠들어 보는 게 약간 소용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에 '라지에이터가 달린 폭스바겐'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가 알려진 건 그의 에세이 집 때문이다. 아래에 내용을 옮겨 보면

- 며칠 전 아키시마 시의 오카무라 씨라는  사람으로부터, 하루키 씨의 소설 중에 '폴크스바겐의  라디에이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상하지 않느냐는 투서가  모 잡지에 게재된 걸  알고 계십니까, 하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한테 물어  보니 분명히 폴크스바겐에는 라디에이터가 없는 듯하다. 영락없는 나의 실수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느냐 하면, 그러기는커녕  웃으며 넘겨 버린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세계에서는 화성인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코끼리를 축소하여 손바닥에 올려 놓아도, 폴크스바겐에 라디에이터가  붙어 있어도, 베토벤이 교향곡 11번을 작곡했다 해도, 그건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앗,  그렇구나. 이건 폴크스바겐에  라디에이터가 붙어  있는 세계의 얘기구나!'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어 주면 나는 굉장히 기쁠 것 같다 -

이렇게 되어있다. 이 부분은 꽤 많이 인용되고 활용되었다. 소설은 원래 그런 것이다라든가, 하루키 소설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든가 뭐 그런 식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바로 이렇게 이어진다.

- 그래도 역시 실수는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성실한 분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나올  영문판 <핀볼, 1973>에서는 그 부분을 제대로  고쳐 놓았으니까 그  쪽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보니 책 소개까지  하게 되었다 -

위에서 말하는 영문판은 일본 내수용 영문판이다. 미국용 영문판은 없다고 한다. 아마존에 보면 고단샤 인터내셔널에서 나온 영문판이 있는데 1985년에 나온 걸로 봐서 위에 말한 그 영문판인거 같다(링크). 가격을 보면 알겠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일본어 판은 어떻게 됐지 하고 찾아봤는데 고단샤 홈페이지에 보면 2004년 버전이 나와있고 이에 대한 글을 찾아보니 찾아보니 '라지에이터'를 '엔진'으로 고쳐놨다고 한다. 이 부분 말고 수정된 곳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어쩌구 저쩌구 했지만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 확인이 가능하니 고쳤다는 이야기다. 위 소설은 초기니까 그렇다고 해도(경험이 짜낼 수 있는 건 매우 선명하든지, 아니면 한계가 있다) 본격적으로 전업 소설가로 활동하면서는 팩트 체크를 하는 직원을 따로 두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약간 재미있는 건 우리의 경우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느냐 하면, 그러기는커녕 웃으며 넘겨 버린다"의 '소설가의 호연지기' 쪽이 뒤에는 결국 다 고쳐놨다보다 훨씬 더 잘 알려져있다. 이 이야기는 여기저기에서 활용되고 인용된다.

예를 들어 이 기사(링크)를 보면 위의 폭스바겐의 라지에이터 부분을 하루키 소설의 특징 중 하나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이게 뭔지’ 굳이 생각하지 않자고 말한다. 하지만 위에서 보다시피 핀볼의 실수는 하루키 자신이 다 고쳤고, 이후에도 팩트 체크를 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전혀 옳지 않다. 다 찾아 고친 수고, 겸언쩍으니 변명이라도 호방하게 해보자며  쓴 에세이, 그리고 이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고용한 직원 등 저자의 노력을 모두 한 방에 날려버린다.

물론 일부러 없는 것들을 배치하는 소설도 있다. 그건 그것으로써 소설 안에서 기능하기 위함이다. 핀볼의 경우엔 폭스바겐에 라지에이터가 있는 세상이 전혀 필요가 없고, 오히려 시대와 배경의 리얼함을 표방하고 있는 저 소설에 방해가 될 뿐이므로 고쳐진 거다.

하지만 위 링크의 기사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하루키, 혹은 여타 소설을 대하는 태도 - 뭘 따지고 드냐, 소설이잖아 - 는 종종 보인다. 이 예만 두고 봐도 위에서 말했듯 다 고쳤다가 거의 안 알려져 있어서 막 찾아봐야 했다는 점만 봐도 오히려 그 쪽을 더 선호하는 거 같다.

 

왜냐... 를 생각해 보면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건 역시 귀찮기 때문이다. 찾아보기도 싫고, 알아보기도 싫고, 폭스바겐에 라지에이터가 있든 말든 '폭스바겐'이라는 말이 주는 이그조틱함과 '라지에이터'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잘 어울리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알게 뭐냐.

리뷰를 가만히 읽어보자면 맨 위 링크의 소설도 그렇다는 거 같다. 이 리뷰에 대한 반응을 몇 개 찾아봤는데 게 중 재미있는 건 '게으른 리뷰'라는 거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앞뒤가 뭔가 이상한 이야기를 다 읽는다는 거 자체가, 게다가 서평으로 쓴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부지런해 보이는데...

20130625

최후의 끽연자를 읽다

츠츠이 야스타카(쓰쓰이 야스타카)의 '최후의 끽연자'를 읽다.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단편선집이고 번역본은 2008년에 나왔다. 원래 단편들은 '최후의 끽연자'만 1987년작이고 나머지는 1970년대 작품이다.

특유의 오두방정이라할까 그런 건 여전하다. 단편이라 꾸역꾸역 밀고 나아가기 보다는 순간의 상상력에 의존한 게 약간 아쉬웠지만 단편선집을 붙들고 할 소리는 아니다.


'야마자키' 중간에 이렇게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거 약간 좋아한다. 뮤지컬은 너무 화려하고 스펙타클해서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영화용 뮤지컬이나 예능에서 뜬금없이 뮤지컬이 나오는 장면은 꽤 좋아한다. 일상->비일상으로 넘어가는 순간 주변 공기에 드리워지는 약간의 어색함과 주연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움은 언제봐도 두근거린다. 

책의 경우엔 주변의 모습을 동시에 재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만큼 도드라지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넘어갈 때는 역시 흥겹다.

20130331

두 가지 좀비 이야기를 읽었다

딱히 좀비와 연관된 사건이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공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좀비 이야기는 그래도 좀 보는 편이다. 좀비물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우선 말하자면 그냥 재밌다. 물려봐야 좀비, 혹시 좀비가 등장하면 어서 빨리 좀비가 되어 한 명이라도 빨리 잡아먹자 - 당연하지만 먼저 좀비가 되는 게 먹을 게 많다.

우선 맥스 브룩스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세계대전 Z'를 봐볼까 싶어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가 잠깐 발랄한 생각같은 걸 한 거 같기는 한데 서바이벌 가이드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솔깃하진 않았다.

머리를 기르지 말것이나 좀비를 모는 방법 등 실질적인 가이드들이 들어있긴 하지만 중간중간 들어있는 이야기꾼 같은 문장들이 서바이벌 가이드를 읽고 있다는 기분을 방해한다. 즉 만약 좀비들이 거리를 누비고 다녀 좁은 벙커에 숨어 이 책을 빨리 읽고 대비를 해야하는 입장이라면 필요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좀비 연구서' 정도면 적당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는 아이작 마리온의 웜바디스. 아이북스에서 샘플을 다운받아 읽다가 구입했다. 샘플에 들어있는 처음 챕터에서 좀비 시점으로 서술된 사냥을 떠났다가 돌아오기까지 이야기가 꽤 생동감넘치고 재미있었기 때문인데...

하지만 그 이후 계속 되는 이야기들은 그냥 그랬다. 뭐 주인공 좀비가 좀 문제가 있는 좀비이긴 하지만 좀비들이 학교에 다니질 않나, 결혼을 하질 않나, 사랑했던 인간을 보호하고 데려오질 않나 이런 것들이 영 시큰둥해서...

하긴 기존 개념의 좀비나 극의 초반 상태에 그저 멈춰있는 좀비였다면 나올 이야기가 전혀 없긴 하다. 대사가 꿰에엑 꿰에엑 말고 또 뭐가 있겠냐.

20130326

11/22/63을 읽다

스티븐 킹의 11/22/63을 다 읽었다. 침대 옆 스탠드 따위는 없지만 아이폰 덕분에 '잠들기 전에 읽는 책'이라는 꽤 미국 드라마같은 아이템이 생긴 거 같다. 다만 불꺼놓은 방에서 뒤척거리면서 보다보니 눈에 문제가 많이 생기는 거 같다. 아침에 찬 바람을 맞으며 매일 운다. 눈물이 주륵주륵.

번역본은 두 권으로 나왔다. 영어판은 한 권인데 왜 두 권이야 하면서 투덜투덜했는데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영어판을 보고 이 두께를 먼저 봤으면 안 봤겠구나 싶었다. 거의 목침 수준이다. 여하튼 아이북스에서 약간 저렴하게 구입했다(알라딘 가격으로 12,150원 14,220원, 아이북스에서 9불, 10불). 그것도 밤에 소일거리하면서 기프트카드로 산 거라

참고 - http://macrostar.tistory.com/335

읽으면서는 이것 저것 할 말이 꽤 많았는데 다 읽고나니 그런 건 다 무슨 소용이람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뭐 그런 거다. 이 책도 그런 이야기다.

스티븐 킹이 대단한 작업을 하는 거 같지는 않지만(노벨 문학상이나 카프카 상을 탈 거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래도 다음 문장, 다음 단락, 다음 페이지, 다음 챕터 쉼없이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능력은 역시 굉장하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한다.

그래도, 솔직히 너무 길다.

20130120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다

존 르카레의 세 번째 소설로 1963년 작이다. 이 소설로 인해 존 르카레는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책 맨 마지막에 실려있는 연보에 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963년 - 세 번째 작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발표. 이 작품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음...(중략)... 1960년대에 쿠바 사태가 발생하여 냉전이 열전으로 바뀔 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영국의 사회학자들은 르카레의 소설을 이렇게 평가했음. <1960년대의 동서 긴장 상황을 명확하게 알려 주는 데는 르카레의 소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갈등의 상황에서 벗어나 가벼우면서도 행복한 무엇을 동경하게 되었는데 그런 소망을 십대의 더벅머리 소년 네 명(비틀스)이 화끈하게  충족시켜 주었다>

이 연보의 출처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로 1963년은 비틀스의 데뷔 음반(Please Please Me)이 나온 해다.

20130114

레미제라블을 읽다

다들 영화를 보고 있지만, 책을 읽었다. 아이북스 스토어에 한글판이 두 가지가 있는데 5권짜리(이건 권당 7.99불, 8.99불이다)가 있고, 1권짜리 무료 버전이 있다. 5권짜리가 다 합쳐서 대충 2500페이지 정도 되는데 그걸 400페이지 안쪽으로 줄인 버전이다. 물론 테스트라 무료 버전으로.

이 책읽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하나는 읽은 지 엄청나게 오래된 걸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보자 + 나는 과연 아이북스 전자책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가였다.

후자의 경우

- 소설을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게 좀 어렵다. 등장인물을 잘 못 외워서 '폭풍의 언덕'과 '죄와 벌'을 읽으면서 생긴 습관이다. 덕분에 히이드 클리프나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이름이 여전히 머리 속에 남아있다. (참고로 폭풍의 언덕의 경우 3대가 입체로 내려오기 때문에 벽걸이형 달력 정도 크기의 종이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간은 필사적으로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이런 습관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나을 거 같기도 하고.

- 아이폰으로 봤는데 한 페이지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수가 너무 적다. 글을 읽는 행위와 페이지 넘기는 행위가 혼재하는 바람에 산만해진다. 더구나 기술적인 문제 -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간다든가 하는 등등 - 의 존재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영어의 경우에는 한 페이지에 들어가있는 단어수의 측면에서 약간 더 낫기는 한데 이건 대신 또 너무 촘촘해 매직아이를 보는 기분이 든다. 결국 아이패드, 적어도 아이패드 미니 정도는 되야 양쪽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왕 TV 미니시리즈를 보기 시작했으니 한꺼번에 읽어 버리자는 기분으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한 권 사봤다. 아이북스에서 찾아보면(영어판 존 르 카레 소설은 거의 다 있다) TTSS가 3가지가 나오는데(한글판은 없다) 원래 책이 12.99불인데 영화 나오고 나온 게(Enhanced 버전으로 영화 예고편 같은 게 들어있다) 11.99불이다. 뭔가 불안해서 원래 책을 샀다. 이거 말고 칼라 트릴로지 디지털 컬렉션이라는 게 있는데 TTSS와 The Honourable Schoolboy, Smiley's People 세 권을 묶어서 29.99불로 판다.

그런데 오늘 ㄷㅁㄴ 교정으로 ㄱ앤ㅎ 사무실에 갔다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열린 책들)를 빌려오는 바람에 일정이 좀 꼬였다. 빌린 거 먼저, 는 일단 원칙이다.

 

소설은 예전에도 그렇게 느꼈겠지만 여전히 깝깝하다.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으니까 더 짜증난다. 하도 이런 깝깝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다보니(나이가 들 수록 생활이 안 풀려서 그런 건지 이런 경향이 심해지는 듯 - 넉넉하고 안정적인 환경이었다면 이런 소설을 즐기며 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예전에 안 그런 게 뭐 있을까 하고 찾아본 적이 있다.

당시 집에 있던 한국 소설 전집인가 하는 세로로 적혀 있는 소설책 중에 그런 걸 하나 찾았었는데(이광수의 별로 안 유명한 소설이었던가 그랬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여하튼 사건은 계속 있기는 한데 싹이 나오자 마자 잘라버리며 의문의 여지없이 샥샥 풀리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보다시피 제목도 생각 안 날 만큼 기억에서 사라져있다.

 

할 일이 전혀 없으니 이런 것들을 쌓아 놓는다.

20130108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를 보다

다이지로 읽기가 계속되고 있다. 제괴지이를 1~4권까지 봤는데 시리즈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재 중인걸 기다리며 보기'는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여하튼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를 봤다. 80년대에 했던 작업을 모아 1991년에 나왔고, 우리나라에는 2012년에 나왔다. 단편들의 묶음인데 타이틀은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다. 그리고 이 제목은 폴 사이먼이 1972년에 발표한 노래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에서 나왔다.

이 곡은 영화 로열 테넨바움에도 들어가 있다. 진 해크만이 빨간색 아디다스 츄리닝입은 애 둘 데리고 노는 장면에서 계속 나온다.

책은 처음에는 약간 낯설어서 리듬 찾기가 어려웠는데 진수의 숲을 지나며 익숙해지기 시작해 후반부 들어가면 강렬함이 배가된다. 적절한 배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20121226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를 읽다

이 블로그의 태그를 읽다와 보다로 분리해 놨는데 만화책은 읽는 건지 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책이니 읽다라고 해야겠지.

살아있는 목, 파란 말, 살육시집, 밤의 물고기, 무언가 마을로 찾아온다까지 총 다섯 권이다. 딱히 Vol같은 건 적혀 있지 않은데 이야기들이 조금씩 쌓이기 때문에 순서대로 보는 게 좋다. 여하튼 꽤 재미있다.

2012-12-25 22.51.14 

이 장면은 왠지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이 책을 보다가 든 생각인데, 인섹타 에렉투스가 한글로 나왔으면 좋겠다.

20121222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을 읽다

몇 번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존 엘리스라는 멘체스터 대학 군사학 교수로 있고, 주로 전쟁사를 연구하는 분이 썼다.

1. 요새 카게무샤도 그렇고 전쟁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접하고 있다. 나름 균형을 잡겠다는 목적도 있고, 요즘 기분이 이 정도로 답답한 게 아니면 잘 안 읽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기말 아니 박툰말이기도 하고. 여하튼 13박툰인가가 끝나고 우리는 마야인들은 모르는 시공간에 접어 들었다.

2.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안와서 아이폰 블로거 앱을 들고 쓰고 있다. 쿼티 자판은 쓴 지 2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잘 못친다. 그리고 이 앱이 자꾸 쓴 걸 삼켜버려서 이것도 없어질까 싶다. 그렇게 사라진 글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3. 자, 이제 전쟁. 2차대전은 그래도 보고 들은 게 좀 있는데 1차대전은 잘 모른다. 1차대전의 한심한 점은 무기는 현대전인데 전술은 근대전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막 발명된 기관총을 앞에 두고 허허벌판 초원에서 돌격 앞으로~가 반복된다. 그걸 4년 쯤 했나보다.

카게무샤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런 게 나온다.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가 방어막을 세우고 조총으로 지키고 있는데 다케다 신겐의 아들이 그 사지에 자기 군대를 밀어 넣고 결국 사람이고 말이고 다 죽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 전투에 참가한 인원 중 반은 살아 남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벨기에부터 쭉 아래로 길게 대치하고 있던 연합군과 독일군은 돌아가면서 다케다 신겐의 아들같은 짓을 한다. 기계는 정신을 이길 수 없다는 근대 군사학의 가르침 덕분이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는 맞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틀리다. 그게 다라면 아마도 북한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거다.

여하튼 존 엘리스는 이 전쟁을 전략, 보급, 후방, 전투, 후생 등으로 나눠 하나하나 분석한다. 들춰볼 수록 어이가 없는 현실 천지지만 그래도 이 전쟁은 역사적 사실이고, 목숨을 걸고 참전한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여기서 쌓인 노하우와 반성이 2차대전에서 더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인상적인 것 첫번째는 전투의 장소. 이 대치 지점은 하나같이 진흙밭이었다. 기관총에 맞서 참호를 파야했고, 그 안에서는 계속 물이 나왔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적진을 향해 뛰어가다 진흙늪에 빠져 죽은 사람도 널려있다.

군대 훈련하면서 바깥에서 며칠 만 지내도 온 사방에 불편한 게 천지인데 저런 전장에서 4년이 넘게 전쟁이 계속 되었다니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그런 만큼 온갖 전염병 - 쥐, 이, 말똥, 시체, 파리가 만드는 - 이 번진 기록이 있다. 지저분한 환경이 수많은 환자를 양산했지만 의외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률은 높지 않았다.

또 하나는 돌격 앞으로. 카게무샤에서 다케다 신겐의 군사와 같은 입장이다.

상상을 해보자. 적진과 우리 진지는 4~5km를 사이에 두고 참호 안에 매복 중이다. 양쪽 다 포와 기관총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계속 대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대치점 여기 저기에서 쉬지 않고 돌격 앞으로가 행해진다. 물론 가끔 적진을 빼앗기도 하고, 뺐기기도 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명령이 떨어지면 진흙 투성이에 폭탄이 만든 물구덩이와 거기 빠져 죽은 시체가 널려있는 평지를, 날아오는 폭탄과 기관총을 피해가며 4km를 뛰어가서 그걸 쏘고 있는 적을 잡아야 한다. 총과 대포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지금은 참호 아래다. 올라갈 준비를 하고 명령을 기다린다. 이게 끝나고 용케 살아 남으면 다음에 또 똑같은 걸 한다. 그렇게 4년.

명령을 기다리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집? 가족? 살아야 겠다는 욕구? 적을 무찌르겠다는 다짐?

이 부분에 대해 꽤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다들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가장 가까운 건 적을 무찌르겠다는 일종의 전우애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죽는 거야 뭐, 라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놈도 뛰는데 같이 가자 같은 전우애도 함께 발생한다.

긴장감은 참호 아래에서 대기할 때 극도에 달하다가 막상 올라가면 풀린다고 한다. 혼란의 와중에 쉼없이 여러가지 판단(생사가 오고 가는)을 하다보면 흥분하게 되고, 그러므로 긴장이 약해진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신에게의 감사 기도? 아니면 가족들에게 안위를 전할 역심? 그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부족한 잠을 자든가, 배고파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훨씬 낮은 강도의 스트레스겠지만 군대 가기 전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어떻게 되려나 하는 점이었다. 결론은 적어도 내 자신은 일차적인 욕구, 즉 졸림과 배고픔에 끊임없는 지배를 받았다. 거의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뭔가 보고 싶다거나, 어디 가고 싶다거나 하는 것도 사라졌다. 여자를 중심으로 한 사람에 관련된 것도 한창 힘들 때는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자고, 먹고 싶을 뿐.

결국 본능은 일단 제 몸 사는 게 먼저고, 그 다음은 번식이고, 그 다음에 가서야 조금 더 복잡한 즐거움이군 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1차대전 참전 병사들의 행동 패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런 게 극대화된 상태다. 무아의 지경은 저렇게 찾아온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서 부처가 되겠다고 갖은 방식으로 제 몸을 박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4. 내세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죽음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인식해야하는 기관이 죽기 때문이다. 벌판을 뛰어가고 있다가 옆에 폭탄이 떨어지는 걸 보고, 쾅 소리가 들리고(들릴까?), 그 다음은 무다. 즉 아마도 그는 자기가 죽은 걸 모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늙고 병들어 죽는 때도 마찬가지다. 아프다, 힘들다 하다가 무. 총에 맞아 죽는 것도, 텔 아비브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폭탄이
터지는 것도, 맨하탄을 걷다가 고층 건물에
비행기가 와서 박히는 것도, 사고로 죽는 것도 그렇다. 교수형을 당하는 사람은 유일하게 자기가 언제 죽는 지 정확한 날짜을 아는 사람이지만 그 역시 죽는 순간은 아마 캐치하지 못할 거다.

또 군 이야기를 하자면(전쟁 관련된 걸 많이 보고 있다니까...) 잘못 터진 크레모어에 팔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를 의무병이었던 후배에게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있던 부대는 아니었고.

여튼 위력 시범을 보이는 거였는데 시범탄이 터지지 않았고, 왜 저러냐 하고 병사 한 명이 다가가는 동안에 터졌다고 한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 그 병사는 뛰어가다가 갑자기 너무 졸려서 누워서 잤다고 한다. 폭발-팔이 사라짐/큰 출혈-졸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잠에서 깨어난 다음엔 거대한 고통이 찾아왔겠지만 죽은 사람들은 그 부분이 없다. 졸리네 하고 끝이다.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아마 굉장한 아픔에 시달리다 어느 순간 끝날 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총상에 내장이 빠져나왔던 병사가 그런 식으로 죽었다. 이 책에 보면 부상당한 배를 꼭 붙잡고 병원에 와서 팔을 내렸더니 장이 쏟아지더라 하는 실화도 있었다.

다 떠나서 죽는 순간을 본인이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그래도 나름 괜찮은 거 같기도 하다. 아이폰으로 쓴 거라 순서 등이 엉망이지만 대충 읽으세요.

20121205

몇가지 사소한 이야기

며칠 전 이야기한 고독한 미식가 책 맨 뒤에 보면 작가가 쓴 짧은 글이 하나 들어있다. 이 글이 문득 다시 생각났는데

1. 일본 맛집 다큐나, 아니면 일본에 가서 보면 혼자 밥먹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서 나처럼 혼자 밥 먹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입장에서는 그 편의성 같은 게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 의하면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일'은 그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 거 같다. 망설이고, 고민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먹는 다는 뜻이다. 미국은 어떨 지 모르겠다. 그쪽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할 거 같기도 하고, 인간이란 역시 외로움을 타는 존재들인가 싶기도 하고.

물론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먹는 게 즐겁기는 하지만 혼자 먹는 재미도 좀 있다. 난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스마트폰도 TV도 거의 안 보고 밥에 집중하는 편이다. 밥을 '음미'까지는 그렇고 밥과 가벼운 '대화' 정도 한다고 할까.. 여하튼 집중하면서 사소한 반찬의 맛을 찬찬히 느낄 수 있는 점은 나름 괜찮다. 이제 습관이 되서 그런지 혼자 먹는 다고 굳이 허겁지겁 먹지는 않는 편이다.

단점은 아무래도 한정적인 식당 선택지를 가지게 되는 점은 좋지 않다. 어지간하면 그냥 들어가도 괜찮은 데, 혼자 가기엔 살짝 곤란해 보이는 곳들도 분명 많이 있다.

그래도 뭐, 백반 반찬이 맛있어 봤자지 사람하고 떠들고 웃으며 먹는 게 더 좋기는 하겠지만.

2. 또 하나는 문을 박차고 식당에 들어가 '영감, 밥 줘!"라고 소리치고 싶다는 부분이다. 이런 마쵸 동경은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기는 하는데, 소심한 문단을 이어가다가 이런 말이 나오면 그 갭을 보다 크게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식당에 터프하게 들어가고 싶다거나 하는 욕구는 별로 없는 편이다. 예전에 '무사'의 나라여서 그런지 종종 이런 동경을 만나게 된다. 마루야마 겐지처럼 이상하고 어설프게 삐툴어진 경우도 있고, 빙빙 돌려서 아주 메타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3.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평소에 로켓독을 사용하고 있는데 항상 미니멀-흑백 아이콘만 써왔다. 하도 심심해서 몇 가지를 원래 아이콘으로 돌려봤다.

dock

흠. 뭐 이런 분위기.

20121203

고독한 미식가를 읽다

만화책 고독한 미식가를 봤다. 다니구치 지로 지음,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박정임 옮김, 이숲 comics, 2010. 원작은 1997년에 나왔나보다. 1권짜리다.

TV 시리즈로 1편을 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약간 다르다. TV 시리즈는 규격화되어 있는 배치(에피소드 - 약간 짜증/별 생각 없음 - 배고파! - 와구와구 - 다음엔 뭘 먹자)가 꽤나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한마디로 좀 웃긴다고나 할까, 정말 생각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먹방이다.

책의 경우엔 구조 자체는 비슷한데 좀 더 휙휙 지나간다. 주인공의 인상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상상되는 공간의 모습도 다르다. 역시 음식의 컬러풀한 모습이나 쩝쩝거리는 소리같은 게 들어가진 못하고 뭐든 맛있게 먹는 방송과 다르게 투덜거리는 횟수가 꽤 많다.

여하튼 볼 수록 정말 뭐랄까... 만성 불임같은 여운의 만화다.

20121115

지갑, 소설, 감기

1. ㅇㅇㅇ 쎅ㅅ 이러면서 놀리는 거나, 진짜 문화 노찾사하는 거나 이상하게 들리긴 마찬가지. 이 분야로는 즉각적인 반발 심리를 가지고 있는 듯. 그저 다들 먹고 사는 건데.

2. 그저께, 그러니까 화요일은 너무 계획없이 동선을 짜고, 생각없이 결정을 하는 바람에 2호선을 뱅뱅 돌면서 고생을 했다. 감기가 더욱 심해짐.

3. (동생이 준 갈색) 지갑을 밀봉하고 예전에 쓰던 (내가 산 검정) 지갑을 다시 꺼냈다. 많이 낡은 거고, 더 사용하면 회복 불가의 길에 접어들 거 같은데 그냥 이걸 쓰고 싶어졌다. 계절이 바뀌었기 때문인가.

4. 한유주의 얼음의 책(2009, 문학과 지성사)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여러 잡지에 실렸던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첫번째 단편인 '허구0'까지 읽었는데 이제 읽기 시작한 거고, 두 권째일 뿐이라 정확히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전에 봤던 것과 비슷한 '실험'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을 실험이라고 해야 하나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게 스타일로 구축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먼저 나온 것부터 읽을 걸 그랬나 하고 잠시 후회했다 // 상정된 독자, 그러니까 직업적 이유, 체크 등이 아니라 아무 정보도 없이 서점 가판대를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계산대로 가지고 간 독자를 상상해봤다, 이런 상상은 역시 좀 어렵다, 생각나는 게 별로 없다 // 이건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책은 미국에서 적힌 것 같다. 시간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지하철 요금이나 거리의 가게 명 등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을 느끼기는 어렵다. 또 어떤 여자가 옷을 벗고 침대에 눕는 모습을 본 오전 12시 20분은 낮인지 밤인지도 헷갈린다. 오후 12시 5분이라는 게 등장하니 앞은 말하자면 0시 20분일테고 그렇다면 밤 풍경을 떠올리는 게 맞을 것이다. 여하튼 시간과 공간을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록, 모호하게 존재하고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혹은, 아니 등등 계속 반복되는 사고의 흔적들은 '허구0'이 흘러가면서 서서히 옅어진다. 이게 문장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인 건지, 실제로 빈도수가 떨어져 가는 건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아직은 42분동안 63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5. 머리가 많이 아프다. 몸이 좋지가 않다. 아주 나쁜 건 아니고, 그냥 감기가 매우 끈덕지게 붙어있다. 방이 너무 건조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숨이 막힌다.

20121101

보기, 읽기, 듣기 뭐 그런 것들

1. 저번 주에 모로호시 다이지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궁금해져서 시오리와 시미코의 한밤의 무서운 이야기를 빌려서 봤다. 유명세에 비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낯이 익어서 찾아봤더니 몇 편 본 적이 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미장원이다. 거기서 간츠 1, 2편과 모로호시의 만화 등등을 봤다. 뭐가 기다리는 게 아닌 평상의 상태에서 곰곰이 보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토 준지같은 지글지글한 여운은 개인적으론 덜하게 느껴진다.

2. 바 레몬하트 6, 7권을 보다. 역시 먹고 마시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3. 현아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 많은 이들이 재미없고 어색하다고 하는 바에 비해 좀 좋아하는 편인데 포텐이 좀 더 있는 듯 한데 잘 못 풀어가는 거 같다. 특히 솔로 음반이 포미닛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영 이상하다.

하지만 이번 EP를 어제 밤에 유심히 들었는데 풋사과 - 내 남자친구에게 - Very Hot으로 연결되는 약간의 실험들이 꽤 인상깊다. 이건 포미닛과는 색이 많이 다른 컬러의 곡들이다. 풋사과는 괜찮긴 한데 현아 이미지에 비해 좀 약하고, 내 남자친구에게는 곤란할 거 같다. Very Hot의 힙합스러운 느낌이 어울리기는 하는데 효리가 떠오른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포미닛의 정체성이 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데 뭔가 잘 좀 정돈해 놨으면 좋겠다. 닻을 잘 내려놓고 나면 휙휙 질러댈 수 있을 거 같은데.

4. 지옥의 묵시록을 다시 봤다.

5. 제임스 본드 수트 이야기를 찾다보니 예전 007이 궁금해 졌다. 몇 편 챙겨 볼 생각이다. 달튼이라는 이름이 참 재미있다.

20121011

철도사고 왜 일어나는가를 읽다

철도사고 왜 일어나는가를 읽다. 야마노우치 슈우이치로라는 일본에서 기차 관련해 오랫동안 일하신 분이 쓴 책이다. 즉 매우 실용적인 목적의 업계용 데이터 모음 느낌을 주는 책이다. 도서관 안에 있는 것도 완전 새거였는데 학교 안에 이런 걸 읽을 사람이 거의 없을 듯. 누가 가져다 놨을까..

책은 전반부 철도 역사를 잠시 훑으면서 세계 곳곳의 대형 철도 사고에 대해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일본 안에서 겪었던 사건들에 대해 정리한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하철이 생긴 나라가 헝가리라는 게 신기했다. 맨 뒤에 국내 열차 사건을 정리한 도표도 들어있다.

뭐 이 책은 정말 훌훌 지나가면서 읽었다. 문제는 이 책 근처에 있던 한국 열차의 역사(제목은 이 비슷한 느낌인데 이건 아니다)인가 뭔가 하는 매우 두껍고 두 권짜리인 여러 교수들의 공저. 이걸 읽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해도 너무한 한가한 짓 같아 망설이고 있다.

20121009

기계비평을 읽다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이영준 교수의 기계비평을 다 읽었다. 2006년에 나왔다. 관심이 가는 책으로 작년에 나온 페가서스 10000마일, 올해 나온 기계산책자가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 페가수스를 잠깐 구경했었고, 기계 산책자를 구입할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도 기계에 관심이 많다 / 패션 비평에 응용할 부분이 있을까 궁금했다.

첫번째 이유는 넘어가고,

두번째 이유인 기계에 대한 관심 - 사실 약간 일관성이 없다. '덩어리'의 느낌을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덩어리의 느낌이 크기에서 오지는 않는다.

또 소위 스펙 그리고 기능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이 자동차가 시속 몇 킬로로 달릴 수 있다든가, 이 비행기가 얼마나 높게 날 수 있다든가, 이 미사일이 터지면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가라든가, 이 잠수함에 얼마나 조용하고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설치되어 있는가 등등은 개인적으로 큰 관심 사항이 아니다.

단순하고, 호기심을 당기는 메카니즘이 있고(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극히 비일관적이다) 뭐 그런 것들이다. 자동차와 비행기에는 큰 관심이 없고, 기차와 배에는 관심이 있다. 총과 탱크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지뢰(M16A1이나 M18같은 거)는 좀 관심이 있다. 기폭제에도 관심이 있다. 권총은 조금 재밌다. 또 뭐가 있지... 여튼 이런 식.

세번째는 말 그대로.

 

등등의 이유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왜 이거냐 하면 도서관에서 이게 제일 먼저 눈에 띄었기 때문에. 두 권이 있었는데 하나는 앞 면이, 또 하나는 뒷 면이 심하게 울어 있었다. 도서관이 책 관리를 잘못하고 있나...

여튼 마침 오늘 보니 이 분의 책들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어설픈 이야기를 늘어놓기가 창피하지만 어차피 그려러고 만든 블로그이니 몇 자 남겨보면

기계비평은 배, 기차, 비행기 등등의 소재를 다뤘는데 재미있고 몰랐던 에피소드같은 게 많다. 직접 경험을 하면서 느끼는 감동같은 걸 전하는 부분이 많은데, 문학인들 처럼 세세하고 정밀하게 적어놓지 않은 덕에 정말 닥쳐있는 순간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상했던 점은 기계비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의외로 '기계비평'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최근 나온 책인 기계산책자라는 이름이 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기계를 파고 든다기보다는 기계 -> 경험 -> 감상 -> 학자이자 이론가로서 거기에 뭔가 씌우기 순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들뢰즈가 자주 나타난다.

결국 비평이라는 말이 붙어있기는 한데 뭐라고 할까... 이게 비평이구나 하는 감은 잘 오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어가 던져주는 의미의 '기계비평'이라는 게 약간 애매하게 사용되고(혹은 내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 개인적으로는 좀 더 '분석적'인 어떤 걸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조금 떨어져있다. 더불어 기계가 그냥 예처럼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비평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패션에서도 이런 애매함과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 옷은 좀 더 상업 전선에 나서 있고, 혼자 동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기계에 비해 낮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우주복, 기능복 같은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예전에 회사에서 소방복 관련일을 한 적이 있는데 좀 살펴보면서 은근히 재미있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은 했었다.

 

어쨌든 뭔가 이상한데 + 그닥 도움은 안되겠는데 정도 생각을 하고 말았는데 책을 다 읽고 트위터를 보니 마침 좀 더 본격적인 논의가 있다고 한다. http://blog.aladin.co.kr/culture/5898818

바로 기계산책자 출간 기념해 이영준 - 임근준(aka 이정우) 맞짱 토론. 위에서 내가 잠시 말한 의문같은 시덥잖은 내용이 나올 가능성은 없겠지만 여튼 저자를 좀 더 심도있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하지만 15명 밖에 못 간다고.. 녹화해서 유튜브라도 올려주지.

20120903

나의 왼손은... 을 읽다

한유주의 소설집인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를 읽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이곳 저곳에 실렸던 단편들의 모음집으로 2011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다.

'나는'이라는 글자가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보다 많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이 소설집은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방향의 글을 꽤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글자들이 조금만 더 힘을 가졌으면, 그래서 좀 더 강하게 날 후드려 쳤으면, 덴서티가 좀 더 높아 늪에 밀려들어가듯 빠져버려 허우적 거릴 수 있다면 이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은 다만 오늘 내 컨디션 탓일 것이다.

윌슨을 읽다

몇달 전 쯤에 토미네의 '완벽하지않아'를 읽었는데 오늘 문득 같은 출판사(세미콜론)에서 나온 윌슨이라는 만화가 보였다. 미국 만화 시리즈를 낼 생각인건가? 여하튼 책의 크기도 같고, 두께도 비슷하다.

토미네는 읽고 나서 이야기를 안 했으니 잠깐 덧붙이자면 벤-미코 / 앨리스의 이야기다. 여하튼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벤이 애인, 친구 등등 모든 걸 다 잃고 마는 과정. 전반적으로 미국 타입의 시니컬이 가득 들어있는데 그런 만큼 허망하다.

윌슨은 데니얼 클로즈라는 만화가의 작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윌슨이다) 시니컬을 넘어서 말이 못됐다. 거의 아무한테나 말 걸고 욕하는 1호선 방랑자 할아버지 마인드인데 그런 만큼 허망의 크기는 더 크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생각난 이야기 : 한때 공공 도서관에 다녔는데(동대문) 시설이 별로 좋지 않은 공공 도서관이라는 곳은 정말 이런 곳이 세상에 있는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사람들도 어딘가 삐툴어져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하튼 그 속에서 나도 함께 이상한 기운을 뿜어내고 함께 삐툴어졌다.

대체 왜 여기 와 있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물론 꽤 있는데 어떤 젊은 산발의 청년이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이런 분들의 특징), 바랜 빛의 두터운 재질의 검정 베낭을 옆에 두고 뭔가 알 수 없는 옛날 책들을 보고 있었다. 가끔 시끄러운 말 소리를 내고 그러면 사람들의 얼굴이 잠깐 열람실 책상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사라지는 패턴의 반복.

화장실에 갔다가 그 청년이 변기가 있는 칸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난 양치를 하고 있었다. 조금있다가 정말 서럽게 우는 소리가 나면서 그 청년은 엄마를 찾으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나오더니 다시 민폐형 도서관 청년으로 변신.

뭔가 저러면 쓰나 싶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윌슨을 보는 기분이 이랬다.

20081205

논쟁과 발전

얼마전에 폴 크루그먼과 그렉 맨큐 사이에 블로그에서 소소한 논쟁이 좀 있었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팀과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팀에 대한 평가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맨큐가 미국 경제학자 랭킹 이야기를 꺼낸건 약간 웃기지 않았나 싶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전소'(링크)에 적어놓은게 있다.

사실 이 둘은 논쟁이 붙는 빈도가 상당히 높다. 몇년 전에도 부시 정부의 감세안을 놓고 논쟁이 붙은 적이 있다. 그때 맨큐의 케인지어니즘은 이미 닻을 올리고 딴데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부시 행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쨋든 인터넷과 블로그의 발달로 유수의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이 가끔씩 아주 소소한 것들가지고도 논쟁이 붙는데, 꽤 거장들의 이런 논쟁을 구경하는건 꽤 재미도 있고 배우게 되는 것도 많기는 하다. 예전에 신문 지상을 통해 이루어졌던 이어령과 김수형의 순수-참여 문학 논쟁을 생각하면 요새는 상당히 스피디하고 관중들의 리액트도 바로 바로 이루어진다.

오늘 모 신문에 이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한국 외대 모 교수라는 사람이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위기를 진단하기 때문에 미네르바 신드롬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에서 가끔씩 보이는 이런 식의 전술은 확실히 짜증나는 구석이 있다. 전문은 여기(링크)에서 볼 수 있다.

아주 애매하게 기사를 마무리 짓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문장 자체가 중의적이기 때문이다.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 왜 안일어 나는가를 묻는 것일 수도 있고,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 실명으로 위기를 진단하지 않는건 무책임하다 로 읽힐 수도 있다.

신문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측면을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그 인상에 대한 평가는 독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조X일보처럼 선동적이거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식은 아니지만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트랩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교묘하다.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실명으로 위기에 대해 진단했다가는 아주 골치아픈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매우 중요한 팩트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미없는 비관론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의미없는 낙관론도 역시 문제다. 어쨋든 그 점을 이 글을 쓴 기자가 간과하고 있는건지, 외대 교수가 간과하고 있는건지도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 무엇이 되었든 근본주의는 위험하다. 사람이 만든 건 어떤 것이든 오류를 포함하고 있고 그것만 따라가면 되는 유니버설한 완전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논쟁은 어느 순간이든 중요하고 적어도 발전을 할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기존 사상이 이긴다면 자신의 이론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계기가 되고, 기존 사상이 진다면 그건 그게 잘못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므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타인의 사상을 억압하고 논쟁 자체를 피하며 그저 우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많고,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근본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되었든 예술이 되었든 아니면 어떤 분야가 되었든 사고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것처럼 한심한 짓은 없다.


PS) 맨큐와 크루그먼 사이의 논쟁의 핵심은 사실 감세정책과 재정정책 사이에서 어느게 더 지금 이 상황에 효과적일까였다. 맨큐는 감세를 주장했고, 크루그먼은 재정정책을 주장했다. 맨큐가 과연 케인지언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되긴 했는데 이건 개인적인 일이고... 결론적으로 현재 가는 방향을 볼때 맨큐는 바보다-로 끝이 날거 같다. 부디 Your Havard에서 즐겁게 사시길.

견제, 더위, 수치

1.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 때 거의 경찰 주도 독재국가였다. 검찰 통제가 있긴 했지만 이승만의 신임 속에서 내무부 치안국, 현 경찰이 가장 큰 권력을 발휘했고 정치 파동, 야당 탄압, 부정 선거, 언론 검열 등을 주도했다. 419 때 총을 쏜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