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8

호포읍 이야기

1. 호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 

a)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은 "호포읍 대소동"이 더 어울릴 거 같다. "대소동"이라는 나름 전통적인 단어가 들어간 최고 제작비 영화가 됐을 수 있었을텐데. 정호연의 더 레벨이 높기는 하지만 나머지 주인공 2인을 포함해 등장인물들이 모두 약간 이상한 억양과 은근 또박또박한 발음을 하는데 이게 대소동의 분위기를 더 배가시킨다. 혹시나 이 영화가 이상하게 보인다면 줄거리나 CG가 아니라 이런 억양 때문이 아닐까 싶다.

b) 2편이 나올 것인가 라고 하면 일단 이 영화에서 호포읍 사람들과 괴물(외계인)은 서로 오해가 있고, 억울한 것도 있고, 너무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이 상태로 균형을 이뤄버렸다. 해소가 된다면 한쪽이 억울해지고 화해를 한다면 너무 시시해진다. 즉 이 상태로 완결이 되었다. 더 뭐가 필요할까 싶다.

c) 물론 이 영화 속에 드리워져 있는 애매한 구석들은 만약 1편의 성공으로 나홍진 감독에게 2편, 3편을 찍을 많은 예산이 주어진다면 우주 대서사시 같은 걸로 얼마든지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다.

d) b)의 견해의 약점은 그렇다면 영화 맨 마지막의 대화들은 무엇인가 하는 건데 그것도 그렇고 다른 에피소드들, 대사들 모두 그냥 매크로스의 승무원들이 선장의 명령에 따라 의미를 알 수 없는 복명복창을 외치는 것과 뭐 다를 게 있나 싶다. 어이쿠 대사를 해야되나 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a)의 억양이 만들어내는 인상과 마찬가지다.

e) 조인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불사신인가.

f) 사냥꾼으로 나오는 두 그룹이 상당히 패셔너블하다. 그 무리의 주인공 조인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전형적인 일본식 신대륙 패션의 두 축인 헌터들의 헤비 듀티와 와코 마리아의 룩북이나 비트 다케시 영화에 나올 법한 야쿠자 풍 룩을 잘 보여준다. 

g) 약간 옛날 사람 같은 의견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뭘 본거지"라고들 했다는 칸느의 반응을 되새겨 보면 이상하고 괴상한 영화를 만날 기회가 참 한정적인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이상한 영화는 잔뜩 있고 찾으려고 한다면 옛날보다 훨씬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찾을 일이 없다. 요즘 이상한 영화 중 가시성이 높은 것들은 별로 없다.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같은 건 나름 이상하긴 했지만 그건 영화의 미라기보다는 줄거리의 미가 아니었나 싶다.

h) 영화 전체가 뭔가의 패러디, 오마주, 인스피레이션 등으로 가득 차 있는데 굳이 찾을 이유를 주진 않는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 같다. 그런걸 늘어놓고 어디 한 번 찾아봐라! 끌끌끌 하는 어리숙한 구석이 없는 건 상당한 장점이다.

i) 음문석이 연기한 목수로 나오는 양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입도 눈도 돌아있다.

j) 점프도 하고 180도 드리프트를 수시로 하는 스텔라를 볼 수 있다는 건 나름 귀한 체험이었다.

k) 그래서 이 영화가 재미있냐고 하면 재미있다. 광기까지는 모르겠지만 우당탕탕이 있다. 다 닥쳐라 나는 간다하는 파워가 있다. 밀도가 좀 낮게 느껴지는 게 약간 아쉽지만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오래간 만에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


20260707

여름, 습관, 인상

1. 여름이 오면 위스키를 산다. 이렇게 된 유래를 따라 올라가면 꽤 궁상맞고 지리한 과거들이 파묘되지만 아무튼 언젠가 여름 이렇게 잠들면 아침에 백숙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실제적인" 걱정을 하던 시절에 어떻게 되든 차라리 위스키나 한 잔 마시고 디비져 누워있자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한동안 멈췄다가 작년 여름 오래간 만에 작은 사이즈를 하나를 구입했었고 올해도 하나를 구입했다. 사실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아주 가끔 맥주 두 잔 정도 마시는 정도라 미국인처럼 데일리 위스키 따위가 필요한 인간은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그럴 때 적당한 위스키 이야기.

지금까지 여러 종류를 구입해 왔는데 용도에 맞추자면 몇 년 숙성 고급 라인 이런 건 필요없고 그저 저렴한 게 최고다. 그렇다고 또 너무 저렴하면 그것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적절 수준이라는 게 생기게 되는데 대략 2, 3만원 대에서 고르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커티샥, 발렌타인, 조니 워커, 산토리 이런 걸 구입했었다. 럼과 보드카도 잠깐 시도해 봤었는데 만사가 귀찮기 때문에 보통 스트레이트라, 요새는 니트라고 하드만, 좀 힘들어서 관뒀다. 최근 들어서는 버번 추세다. 

영국 위스키 쪽은 오래 숙성된 것과 아닌 것들 사이에 차이가 아주 크고, 가격도 차이가 많이 나고, 저렴 종류는 뭔가 기분 나빠지는 뉘앙스가 있다. 하지만 버번 종류는 옥수수의 한계 때문인지 숙성이 짧은 기본 버전도 그렇게까지 지독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신 오래 된 것도 또 고만고만한 느낌이 든다. 결론적으로는 좋은 위스키를 챙겨 놓고 싶으면 오래 숙성된 고급 위스키 쪽으로 가는 게 낫고 그냥 던져놓고 아무 때나 마실 용도로는 베이직 버번이 취향인 것 같다.

잠깐 비교해 보자면 일단 잭 다니엘스 올드 넘버 세븐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붕 떠있고 목이 쉰 듯한 맛이 난다. 그래도 500ml 단위가 있고 가끔 2만원 대에도 구할 수 있는 게 좋긴 하다. 

짐빔 오리지널, 소위 화이트 라벨은 꽤 괜찮은 편이다. 가격도 750ml 짜리를 보통 2만원 대에 구할 수 있어서 아마도 버번 3총사 중에 제일 낮은 거 같다. 그렇지만 약간 달다. 또한 알콜과 향 사이가 약간 어긋나 있는데 그건 저렴 위스키, 버번 종류 공통의 특징이긴 하다. 아무튼 한 병이 다 끝나기 전에 좀 질리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와일드 터키는 걔중 약간 비싸다. 101 기본 버전 750ml 짜리가 4만원 대 정도 하는 거 같은데 종종 3만원 대를 찾을 수 있다. 가격 레벨 차이를 감안해야 겠지만 아무래도 이게 가장 훌륭하긴 하다. 거부감도 낮고 상당히 심플하다. 대단찮은 기술은 아니더라도 그걸 아주 잘 하면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타입이다. 어렸을 적에 온더락은 와일드 터키! 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온더락으로 마셔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자꾸 들기는 한데 스트레이트로도 별 상관은 없다.

아무튼 이런 것들이 있는데 작년에는 잭 다니엘스였고 올해는 와일드 터키로 가고 있다. 이런 흐름이면 내년에는 짐빔이겠지. 


2. 넷플릭스에 가스인간이라는 일본 시리즈가 있길래 1회를 잠깐 봤다. 오구리 슌, 아오이 유우, 히로세 스즈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극본이 연상호다. 뭐 극본이라서 시리즈 전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론, 단체, 매스미디어, 스트리머 등등 인물 구도가 지옥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 특히 지옥을 보면서 스트리머의 영향에 인상이 꽤 깊었나 생각을 했었는데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감독(가타야마 신조)이 지옥을 참고했을 수도 있고.


호포읍 이야기

1. 호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  a)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은 "호포읍 대소동"이 더 어울릴 거 같다. "대소동"이라는 나름 전통적인 단어가 들어간 최고 제작비 영화가 됐을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