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30

촛불 문화제의 진화

이 시위의 경과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비록 능력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양상의 변화와 경찰 및 정부 대응의 변화를 생각해 보고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시위에서 이길 수 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단상 정도로 이곳에 글을 남기곤 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의 급변함과 열린 지식의 숨가쁜 성장 덕분에 글을 올려놓고 하루만 지나도 적용이 어려운 옛날 이야기가 되버리곤 한다.

애초에 모두가 알고 있듯이 촛불 문화제는 위로 부터 기획된 시위가 아니라 어느날 문득 나타난 시위였다. 작금의 상황을 개탄하다 여기저기서 의견이 모이고 몇 안되는 사람들이 청계천 구석에, 동화 면세점 앞에 앉아 촛불을 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위가 대형화되면서 처음에는 다함께, 다음에는 대책위가 전반적인 리드를 담당하는 역할을 자처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완벽한 거리 민주주의로 작동해 순간적인 의사 판단, 광범위한 정보력으로 진행되던 시위는 그토록 거부하던 지보부와 마이크, 깃발의 등장으로 다시 예전 시위의 모습으로 복귀해 버렸다. 물론, 대체 목적이 뭔지 모르겠는 대책위의 나이브한 대응 방식과 마이크에서 울려퍼지는 대중을 괴리시키는 음악 소리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좌절했다. 대중 운동에서 참여자를 소외시키는 이런 구태의연한 방식에 꽤 많은 사람들이 대책위가 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래도 마이크가 있는 곳에 모이기 마련이고 이건 불만이긴 하지만 일종의 주어진 조건으로 작동했다. 그렇지만 대책위가 뭘 하든 말든 처음 시위를 시작했던 일군의 사람들은 대책위 주변에서 전경차를 치우고, 전경과 대치하며 청와대 행진이라든가, 게릴라식 행진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시위는, 특히나 비폭력을 명분에 걸어놓고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이면 당연히 많은 피해를 양산하고, 결국 사람들은 80년대 스타일의 사수대를 고려하게 된다. 이게 지금까지의 양상이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 웃기는 일이 하나 생겼는데 거리 민주주의를 방해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여겼지만 도저히 치울 수 없었던 대책위와 마이크 차량을 경찰이 직접 치워버린거다. 지금까지 시위의 진화가 주로 내부적인 요인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번에는 외부 요인에 의해 다시 한번 이루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되었든 경찰, 혹은 현 정부 덕분에 이 시위는 한 달간의 지지부진함을 딛고 5월 31일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블로그로 치면 5월 27일의 포스팅이다. (링크) 현 정부가 정말 멍청하다는게 이 사실로 다시 확인된다. 민주주의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거다. 이 시위는 이제 산발적으로 퍼질 것이고, 하부에 의해 전체가 모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거리에서 숨가쁘게 결정과 반성, 진화가 거듭될 것이다.

이런 방식의 시위는 분명 내게도 낯설기는 하다. 하지만 광화문을 지나 효자동과 삼청동에 진출했던, 청와대로 가는 골목 골목들에 시위대가 들어차고, 막히면 돌아가고 열려있으면 지나가며 전체가 유연하게 반응하던 바로 그날에 대책위도 다함께도 없었다는걸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방식의 우월함과 파괴력을 믿는다. 물론 지금까지의 진행으로 보건데 사수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필요성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어제 생각했던 그 사수대가 아니라 세포처럼 증식하며 함께 확장해 나가는 사수대가 될 것이다. 핏줄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적혈구와 백혈구의 집합. 바로 그것이다. 한 곳을 막으면 다른 곳으로 흘러갈테고, 다 막으면 한나라당이고 정부고 우리나라라는 몸 자체가 죽어버린다.

20080629

만약 아직도

사실대로 말하면 화염병 한 3개만 던져 불질러 버리면 될걸 왜 전경차에 밧줄 묶어 땡기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가 가진 않는다. 전경차 줄다리기가 며칠 정도, 현 정부와 경찰에 대한 경고의 퍼포먼스나 상징의 의미로 쓰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토록 오래 하고 있어야하는 일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비폭력 평화 시위'라는 명분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가는데 실리를 너무 도외시하고 있다. 더구나 사수대 비슷한 것도 없는 상황에서 버스가 끌려 나오자마자의 상황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버스가 끌려나오면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간다'가 아마 버스를 끌고 있는 사람들의 예상 답안지인거 같은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버스가 끌려나오면 전경들만 우르르 몰려나와 막 때리기만 한다.

곤봉 들고 때리는데 스크럼이 무슨 소용이 있냐. 강철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예전에 스크럼이 효용있었던 이유는 사수대가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전경들도 시위대에 도달하기가 용이하지 않았고, 도달해도 그쪽도 마찬가지로 위험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크럼을 짜고 있는 시위대 연행이 쉽지 않았었다.

어쨋든 이런 과정의 결과는 피해만 막심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시위에서 시간을 벌어주면 시위의 폭력성과 배후를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질 정부와 조중동에게 더 큰 이익이 될 뿐이다. 알다시피 조중동의 논조는 사뭇 선동적인데다가 중독성까지 있어서, 말이 안되도 왠지 그럴듯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맘 잡고 하나 하나 따지지 않으면 그들이 말하는 소위 합리적, 중립적 의사라는 선동에 몰락되기 쉽상이다. (그래서 약간 비겁하게 보일지 몰라도 능력이 딸리는 나같은 사람은 안보는게 최선의 방책이다)

현재 시민들은 비폭력이라는 명분을 단어 그대로만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개념이 담아내는 폭이 너무나 좁다. 비폭력을 위한 자기 방어의 선까지도 제외시켜 버리는 배타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비폭력에 대한 정의가 결국 시민들의 사고와 행동의 범위를 위험할 정도로 한정시킨다.

대책위에서는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시민의 뜻이 전달될 거라고들 말하는데, 여태 보면 알겠지만 전달 안된다. 전달이 되바야 듣지도 않고, 들려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다.

그래도 뭐, 이건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가장 하부로부터 상향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하고, 그게 패러다임이 되지 않는한 설득의 문제는 아니긴하다. 지금 시민들이 자기 방어를 위한 폭력을 허용할 심적 단계에 가있는가 생각하면 어떤 사람은 가 있는거 같은데 어떤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건 아직 그냥 내 생각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2008년 5월과 6월. 그리고 오늘 6월 29일이다. 고난의 행군이 문자 그대로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간밤의 극심한 탄압은 사람들에게 메타포로서 80년 광주를 연상시킨다. 이로써 87년 6월 서울 방식의 시위는 이제 그 잘난 정부 덕분에 80년 5월 방식을 고려하는데 까지 나간다.

만약 아직도 작금의 이 문제를 옳음과 틀림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면 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나 같은 경우 광우병 쇠고기 따위 이제 별로 관심도 안 간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협상을 둘러싸고 왜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수많은 메타 문제들, 그것도 쇠고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와 오류들을 자진해서 보여줘 버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정부가, 그리고 한국의 5%가 우리가 예상하던거보다 훨씬 더 미쳤고, 훨씬 더 무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당과 부당의 싸움이다. 이것은 시민들이 몇 십년 간 겨우겨우 이루어놓았던 민주주의와, 그것을 파괴하려는 자들과의 싸움이다. 명분, 시민들이 동의하든 말든 우리는 이것 때문에 잘 살게 될거라는 그다지 확실하지도 않은데다가 나머지 95%의 시민들에게는 보나마나 강건너 불구경이 될, 정부의 그 보잘 것 없는 명분으로부터 비롯된 권력의 강압적 발동을 분쇄하기 위한 싸움이다.

어느게 더 국익에 부합한다느니, 어느게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할 거라느니 웃기지마라. 맘에도 없이 떠드는 소리라는거 시위 현장에 1시간만 있으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민주 공화국이고 그러므로 파쇼와 독재는 청산할 대상일 뿐이다. 이건 선조들의 피가 얼룩져있는 헌법 제1조, 민주 공화국을 다시 구해내기 위한 작업이다.

2008년 5월과 6월. 그리고 오늘 6월 29일이다. 문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이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간밤의 극심한 탄압은 사람들에게 80년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87년 6월 서울 방식의 시위는 이제 그 잘난 정부 덕분에 80년 5월 광주 방식을 고려하게 만든다.

만약 아직도 작금의 이 문제를 옳음과 틀림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면 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광우병 쇠고기 따위 이제 별로 관심도 안간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협상을 둘러싸고 왜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수많은 메타 문제들, 그것도 쇠고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들을 자진해서 보여줘 버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정부가, 그리고 한국의 5%가 우리가 예상하던거보다 훨씬 더 미쳤고, 훨씬 더 무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이것은 당과 부당의 싸움이다.

이것은 시민들이 몇 십년간 겨우겨우 이루어놓았던 민주주의와, 그것을 파괴하려는 자들과의 싸움이다. 명분, 시민들이 동의하든 말든 우리는 이것 때문에 잘 살게 될거라는 그다지 확실하지도 않은데다가 나머지 95%의 시민들에게는 보나마나 강건너 불구경이 될 정부의 그 보잘 것 없는 명분으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권력의 발동을 분쇄하기 위한 싸움이다.

어느게 더 국익에 부합한다느니, 어느게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할 거라느니 웃기지마라. 우리는 민주 공화국이고 그러므로 파쇼와 독재는 청산할 대상일 뿐이다. 이건 선조들의 피가 얼룩져있는 헌법 제1조 민주 공화국을 다시 구해내기 위한 작업이다.

We shall overcome
We'll walk hand in hand
We'll all be free
We are not afraid
We are not alone
The whole wild world around
We shall overcome

20080628

비폭력은 무엇일까

우리는 투표를 해 헌법을 확정했고 이를 통해 국가에게 군과 경찰이라는 무장의 특권을 부여했다. 시민들 각자가, 혹은 단체를 이루어 무기를 지니고 자기 방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미국 같은 나라처럼 이런 무장의 자유권을 일부분 시민들에게 나눠 지니게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공권력이 너무 강한데다가 사적 자치의 원칙도 꽤 투철한 나라라 이런 식으로 전개된게 아닐까 싶다.

어쨋든 우리는 자신을 무장 시킬 자유권을 국가에 독점적으로 부여해줬고, 그러므로 헌법과 법률을 통해 이 독점권을 제한시킨다. 군대와 경찰이라는 무력의 사용은 국가를 지배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매우 강력한 권한이고, 그러므로 차칫 이런 권한을 허용하고 운영을 가능하도록 세금을 내는 시민 자신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고픈 개한테 잡아먹힌 주인,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경우다.

그래서 군경 입장에서 보면 약간 억울할 수 있을 정도로 무력 사용에는 아주 복잡한 규율이 존재한다. 특히 시민과 근접해 마주 대할 일이 많은 경찰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집시법과 국보법이 존재해 다른 시민 사회 국가에 비해 억압적인 룰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은 시민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있고, 그래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무기 사용의 독점은 매우 강력한 권한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임무 수행시 항상 자신의 관등성명을 밝혀야 하고, 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시민은 사적 자치와 천부적 자유권이 우선이지만 공권력은 헌법과 관련 법령이 우선이다. 경직법과 행정절차법 등이 이 권한의 발동 방법을 세세히 규정짓는다. 그러므로 시민을 위한 법률이 묘사하는, 예를 들어 경찰이 불법적인 체포를 시도했을때 사용되는 폭력 등의 정당 방위는 경찰에게는 의미가 없는 조항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단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너에게 방패를 주고 쓰는 방법을 정해 줬잖니 가 우리가 줄 수 있는 대답이다.

물론 폭도들이 등장해 공권력을 위협할 경우에 자위권이 발동 될 수 있다. 조직 폭력배 집단이 종로 경찰서 침탈을 시도하는데 어이쿠 그러냐 하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폭도의 정의는 매우 한정적이어야 한다. 아무대나 붙인다고 폭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권력에 정당 방위적 폭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민이 먼저 때리길래 우리도 때렸다는 변명은 필요 없다. 시민은 천부적 자유권으로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경찰은 법률에 규정된 범위 안에서만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어쨋든 그들에겐 민주 공화국이라는 헌정의 수호가 가장 중요한 임무다. 무력 사용의 독점에는 당연히 그만큼의 책임과 강력한 수행 조건이 뒤따르는 법이다.

만약 경찰 입장에서 자신을 제한하는 법률망이 정녕 싫다면, 그리고 대충 봐서 경찰 몇명 다치면 폭도로 간주해 그것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까지 진압을 하고자 한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경찰의 무력 사용 독점권을 해제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법률망을 넘는 작전을 펼치는게 합당화 될 수 있다. 애초에 무기 독점이라는 특권이 주어진 집단이므로 이런 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두가지 방법이 있을텐데 하나는 시민들에게도 무기 사용권을 허용하든지, 경찰이 직접 비무장을 선택하든지다. 어쨋든 룰은 공정해야 할 것 아닌가.

80년 광주나 여수 순천의 경우 시민들이 무력 사용권을 자력으로 획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건 아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그리고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다. 더구나 무기의 종류와 사용 면에서의 퀄러티의 차이가 아주 크기 때문에 시민들의 승리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이 길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경찰이 직접 자신의 무장을 해제 하든지, 시민들이 나서서 자력으로 경찰을 비무장화 시키든지 하는 방법이다. 물론 전자가 가장 훌륭하다. 꼭 막아야 하는 것만 몸으로 막는다. 꼭 막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쨋든 대략적인 구도를 이렇게 정해 놓으면 나중에 역사의 심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대략 미식 축구 경기장에서 쿼터백이 공을 잡고 있는 상황의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패싸움 하자고 모인건 아니므로 어깨 밀치기 정도가 허용될 수 있는 맥시멈이 될 것이다. 시민이 무지하진 않기 때문에 맨몸으로 나와있다고 마구 집단 폭행하는 일은 없다. 그런건 걱정안해도 되니까 만약 이렇게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안전도 보장된다. 이로서 경찰은 할 일을 했고, 시민도 할 일을 했다.

그 다음은 자력으로 비무장화 시키는 것인데 87년 6월 항쟁의 경우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경우 물론 강압적 폭력이 존재하게 되지만 가능성이라는 상황 안에서 볼때 피해는 가장 최소화 된다. 전자는 경찰청장이 특별한 용자면 몰라도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건 실현이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만약, 시위를 하는 사람이건, 진압을 하는 사람이건 전혀 아무런 피해가 없어야 하고, 그럼에도 민주 공화국이니까 정부는 시민들의 뜻대로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세계의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경찰이 직접 비무장을 선택하는 것보다 확률이 낮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비폭력의 방법은 역시 경찰을 무장 해제 시키는 후자다.

하지만 여기에도 역시 심각한 외부 요소가 존재하는데 바로 군대다. 군대를, 특히 시민의 뜻에 동의하지 않고 권력의 길을 걷기로 한 군대를 시민들의 자위로 무장 해제 시키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더구나 그게 일단락 되더라도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신적인 후유증이 끝도 없이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시민이 무장하고 내전화 되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87년에는 아마도 군대 출동 그 직전까지 갔지만 전두환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럼으로써 87년 6월을 시민들의 승리로 보이게 만드는 것에도 성공해 냈고, 권력을 자기 통제 범위 안에서 유지시키는데도 성공했다. 만약에 지금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 이런 전략으로 움직여 하야한다면 아마 약간은 더 온화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한나라당 정권으로 바뀔 지 모른다는 예상은 이 기억에서 비롯된다.

물론 군대를 누군가 설득할 수 있거나, 군대 내에서 민주화에 대한 자정 작용이 잘 이루어지고 있거하 하면 이야기는 약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가 그랬다. 시위에 의해 경찰이 거의 무장 해제되었고, 별 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은 대통령이 군대를 찾았지만 군대가 시민들에게 군 권력을 사용하기를 거부해 버렸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탈출 밖에 없었다. 80년에도 쿠데타를 막고 서울의 봄을 지키고자 하던 군인들이 분명히 있었다.

사실 남미의 사정은 우리와 약간은 다른데, 그쪽의 반정부단체들은 대부분 무장을 하고 있다. 그 나라들의 헌법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쨋든 무장을 통한 자기 방어권이라는 천부적인 권리를 반정부 세력이 어떤 식으로든 획득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아 군경의 피해도 심각하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상황이 심각하게 진행될 가능성들을 잔뜩 지니고 있다.

어쨋든,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 아주 많이 나아가 매우 특별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어딘가에서 총을 구입하거나, 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하거나 하는건 가능한 범위에서 제외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87년 방식 말고는 딱히 선택할 수 있는게 없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상황에 치닫기 전에 정부가 이 상황을 뒤로 물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런 일이 있을거 같지는 않다. 행정절차법을,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그리고 헌법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옳고, 결국 이게 시민들에게도 옳은 일이 될 것이다라고, 그것도 그에 대한 별다른 이유 설명도 없이, 주장하는 정부가 그렇게 근사하게 사태를 반전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이미 지나가버린 사실에 대한 가정이지만, 청와대에 가서 직접 말 좀 해야겠다고 효자동, 삼청동 골목에서 물대포를 맞던 2008년 6월 1일 새벽에, 이명박이 시위대를 청와대 앞마당에 불러들였다고 해보자. 이건 전혀 위험한 일도 아니고, 대통령으로서도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의 입장과 의식으로서는 쇠고기 수입과 한미 FTA,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에 대해 추진 말고 별다른 대안도 없겠지만(그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다) 그 날 어떻게든 사정을 털어놓던지,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반영시키려는 쇼만 했어도 지금 같은 상황은 오지도 않았고 올리도 없었다. 쇼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테고 나도 아마 그러겠지만 그래도 여론은 훨씬 더 먼 곳에 가있을테고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나같은 사람만 왕창 먹고 - 이번에도 글렀나하며 - 억울해 했을 것이다. 그 날 말고도 기회는 많이 있었다.

과연 그가 합리적인 해결, 소통을 통한 해결을 기대하는가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답이 너무 금방 나와버린다. 아마도 머리 속에 그런 선택안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한국형 CEO로 명령만 해 본 사람이라 자기가 인정하는 몇몇 세력들, 예를 들어 조중동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뭔가 듣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게 아닐까 싶다. 상징도 은유도 없는 양반이라 그런 면에서는 이해하기도 매우 쉽다. 만약 히딩크 스타일의 전략가 대통령이었다면 이 시위는 아마 방식의 근본부터 다시 잡아야 했을 것이고 매우 어렵게 전개되었을거다.

자, 이 시위에서 과연 시민들이 승리할 수 있을까. 그건 사실 분명하다. 혹시나 실패해 당장은 안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통사적인 관점에서는 승리할 것이다. 정 안되면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에 시민 정당 만들어서 내놓고 아예 제헌 헌법 만들어서 새 나라 만들어 버리고 다른 유산과 부채는 다 물려받고 다만 이명박은 청문회 열어 단죄하고, 그 불법성을 들어 정당성을 부인하고 당시 맺은 협상을 무효화 시킨 다음 재협상 하자고 나설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접근은 매우 힘든 고난의 길이고 더구나 매우 귀찮은 일이다. 생각만 해도 귀찮다. 그리고 역사의 유동성이라는게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믿고 뭔가 선택한다는 건 어렵다. 알다시피 안해도 되는걸 하는건 경제학적으로 기회 비용이라는 이름을 단 낭비다.

어쨋든 지금 시민과 정부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언제나 시민과 정부의 대립이 있을 경우 공은 정부에게 있게 된다. 이게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현 정부는 지금 이기고 나중에 망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지금 지고 나중에 그나마 편하게 살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시민들은 그 선택에 따라 반응할 것이다.

20080626

경찰 간부

진짜 ㅂㅅ이라는 말 밖에 안나온다. 경찰 조직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중대장이면 예하에 100명은 넘는 전투 중대원들 있을테고 전투 경찰 본연의 임무(대간첩 작전) 수행중이면 그 100명이 넘는 중대원들 생사가 중대장의 명령에 왔다 갔다 할텐데.

한 나라 군/경 병력의 장교 쯤이나 된다는 작자가, 기자가 이거 불법아니냐고 간부 나오라니까 한손으로 이름표 가리고 도망가는 꼴이라고는, 정말 가관이다. 애초에 책임 지지도 못할 일이면 왜 벌였고, 그럼에도 일이 일어났으면 그거 책임 질 자존심도 없나. 벌 받아봐야 얼마나 큰 벌 받는다고, 그래도 지네 중대원들이라고 그 사이로 이름표 가리고 도망이나 가고.

대체 경찰 대학에서는 뭘 가르치는 거길래 간부라는 사람이 저 모양인지(경찰 대학 출신 아닌 중대장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대원들이, 와~ 우리 중대장 이름표도 열라 잘가리고 도망도 잘가네 하면서 퍽이나 존중하고 명령도 잘 따르겠다. 어처구니가 없네 정말.

주변에 보면 그래도 그 와중에 중대원들 어차피 시민들 시위 막는건데 너무 심하게 진압하거나, 불법적 행동 있으면 막고, 맨 앞에 서서 시민들에게도 중대원들 다치지 말게 해달라고 자제시키고 하는 다른 중대장들 보면 창피하지도 않은지 정말.

so called 실용 파시즘

브리태니커 사전에 나와있는 파시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가의 절대 우위이고, 다른 특징들은 모두 여기에서 유래한다. 개인의 뜻을 굽혀 국가가 명시한 대로 국민의 통합된 뜻에 따르고 국가를 상징하는 보통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게 완전히 복종하는게 파시즘의 특징이다. 또한 군사적 가치관과 전투 및 정복을 찬양하고, 자유민주적 민주주의와 합리주의 및 부르주아적 가치관은 낮게 평가한다"


즉 파시즘은 국가의 절대 권력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에 기반하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지도자가 강권 통치를 휘두른다.

히틀러를 생각해 보자. 1차 대전 패전으로 실의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빚더미 속에서 슈퍼 인플레이션 상태에 빠져있는 독일 시민들에게 1등 국민 독일인, 1등 국가 독일을 주장하며 투표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지지를 기반으로 나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시민들을 무력으로 탄압하였다. 이건 좀 잘못된거 아닌가 하는 주장은 다수 득표를 받은 히틀러에 의해, 그리고 그 득표를 등에 얻은 나치스에 의해 철저히 억압되었다.


신자유주의를 제국주의의 세련되고 교묘해진 현대판 버전으로 생각할 수 있듯이 이걸 지금 시국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이명박은 현 상황을 잃어버린 10년, 즉 환란 상태라고 규정지었다. 그리고 이 주장을 조중동이 서포트하면서 그는 실정으로부터 시민을 구원할 CEO형 지도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그 이미지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주장했던 한미 FTA와 시민 생활에 필수적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임기가 보장된 수도 없이 많은 단체장들에게 강제 사표를 받았고, 측근으로 교체시켰다. 그리고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에(아마도, 틀림없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OK 사인을 해버렸다.

그리고 나더니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아이도 연행하고, 기자도 연행하고, 할아버지도 연행하고, 국회의원도 연행했다. 그러면서 '법치'를 말하기 시작했다. 불법 과격 시위와 반정부 세력. 어청수를 청장으로둔 경찰은 이에 보란듯이 반응해 주고 있다.

3.1운동이 과격해 지면서, 일본 내에서도 식민지에 대한 가혹한 수탈에 반발한 전세계적인 합리적 민주주의 요구에 발 맞춰 많은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소위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찾아왔다. 우리나라에도 헌병 경찰이 사라지고 보통 경찰이 등장했다.

식민지를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권을 소수의 시민들에게 뿌려주는 것이다. 권력과 돈을 쥔 소수는, 권력과 돈을 유지시키기 위해 동료 시민들을 억압한다. 지식인은 이론을 만들고, 권력자는 조직을 동원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이름을 잔뜩 알고 있고,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식민지는 자기 분열되고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게된다. 일제는 가만히 앉아 돈 몇푼, 권력 조금 던져주면 일제 편을 드는 우리 시민이 독립 운동하는 시민들을 잡으러 다닌다.

박정희 시대의 구사대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동작된다.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은 전경 등 외부에서의 외압과 프락치에 의한 내부 분열, 동료였던 사람들이 구사대로 변신해 가하는 폭력 앞에 노출된다. 지독한 과정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지쳐간다. 외형적, 내형적 폭력이 결합된 시민 억압 방식은 전형적인 파시즘의 룰이다.

사실 이와 비슷한 일이 지금 이랜드 시위나 기륭전자 시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시니컬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생존권 투쟁은 이토록 가혹한 일이고, 어떤 인간에게 인권이란, 인간의 존엄이란 아무 의미 없는 레토릭일 뿐이다.

한때 러시아에 협력하다가 일본 협력으로 노선을 바꾼 이완용도 사실 생각해 보면 조선을 꽤나 위했던 사람이다. 그는 조선인이 잘 살기 위해선, 이대로는 절대 불가능하니 어딘가 큰 나라에 위탁해 나라를 발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조선'이라는 이름이 무의미한 이상 어디에 붙어있어도 여튼 잘 살면 그걸로 된 거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 덕분에 제국의 시민이 된 조선인들이 자기를 을사 오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파렴치범으로 모는걸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은 자기 말을 들은걸 감사하게 될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건, 정당성 없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민주화는 글렀고 그러므로 경제 성장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박정희나 전두환도 마찬가지였다. 여운형을 살해한 어떤 사람도, 김구를 살해한 어떤 사람도, 시위대를 잡겠다고 검정 테이프로 감싼 쇠파이프를 들고 뛰어들던 백골단원들도, 광주의 소요를 진압하겠다고 총검까지 꼽고 사돈반을 타고 광주로 향하던 공수부대원들도 어쩌면 자기가 한 일이 결국은 선이라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믿음은 이토록 비열하고, 같은 시민으로서 고통스럽고, 모두를 괴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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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투표에 의해 선택된 이명박은, 다수의 표를 등에 업고 의견이 다른 자들을 경찰력으로 억압하고 있다. 민주주의 따위, 의견의 경청 따위, 조언 따위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자신이 틀림없이 옳고, 결국은 자신이 말한게 맞을거라고 시민들에게 주장하고, 듣지 않는 자들에게 잘못된 정보에 부화뇌동한다며 타박하고, 경찰을 동원해 진압해간다.

가장 괴로운 일은 이런 사람을 투표로 뽑았다는 몇개월밖에 안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괴로워하고,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긴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덕분에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또 똑같은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새로운 종류의 파쇼들을 우리의 역사에서 지워내야한다. 그것이 우리의 잘못을 속죄하고 후세들에게 적어도 나쁘지는 않은 나라를 넘겨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중 교통 이용 중 두가지 일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이명박 아웃, 소고기 재협상 등의 피켓을 든 아이들이 십여명 우르르 탔다. 아마도 초등학생인거 같았고 인솔자로 보이는 선생님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데려온 건 아닌거 같았고 어떤 종류의 모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애들이 우르르 타자 사람들이 촛불 집회에 가는 거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누군가 시위 현장에서 주의할 점을 이것 저것 설명해 주었고(간단히 요약하면 선생님을 잘 쫓아다녀라), 또 누군가 아이들이 직접 그린 팻말을 보면서 내용에 대해 물으며 이런 저런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또 누군가 아이들에게 의료 민영화에 대해 설명해 주고 가방에서 민영화 반대 뱃지를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달아주었다.

지금 이명박은, 조중동은, 공문 받고 우익 집회에 참가했다는 아저씨들은, 아고라 글마다 찾아가며 악성 댓글 올리는 알바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걸까.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아마도 보일텐데 알고 싶기는 한걸까.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길거리에 이런 저런 가판 음식점들이 있는 산 근처의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등산객들이 잔뜩 있고 뭔가를 드시고들 계셨는데 버스 앞에서 비둘기 한마리가 얼쩡 얼쩡 거렸다. 그 비둘기를 관심있게 쳐다보던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차를 세우더니 앞 문을 열고 좌상 아주머니에게 "비둘기 밥 좀 주세요~"하고 외쳤다.

그런데 아줌마 말이 비둘기에게 밥 주면 국립 공원 관리단에서 과태료를 물린단다. 나도 비둘기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밥 준다고 돈 물리는 법도 있나보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 역시 전혀 납득을 못하더니 아니 그런 법이 어딨냐고 하면서 그래도 밥 좀 줘요, 배고파 보이잖아 (그런데 정말 배고파 보였다) 소리치면서 다시 버스를 다시 운전하셨다. 그러면서 "아니 이놈의 지구 10초만 흔들면 다 죽을텐데 같이 좀 잘 살지"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같이 좀 잘 살지 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난리 치는 것들이 이리도 많은지.

20080624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군의 무리들

일제시대때 의병 토벌 하러 다니던 일진회 산하 자위단, 일제의 사주 아래 반러친일 운동을 벌이던 관민 공동회, 70년대 노동 운동이 시작되었을때 경찰보다 더 참혹하게 같은 노동자를 때려 잡던 구사대.

80년 광주로 진격한 공수부대, 구로구청 부정 선거 감시단을 때려 잡으러 들어갔던 백골단, 그리고 작금의 북파 공작원과 고엽제 피해자, 그리고 뉴라이트라고 자칭하는 일군의 사람들.

대체 이들을 움직이는 모티베이션은 무엇일까.

군인이나 경찰이라면 상의 하달의 명령 체계? 그게 다 일까? 그것만 가지면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의 폭력성은 그래도 나라를 보존시키겠다는 명분이 굳게 받쳐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이들은 자신이 나라를 구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건가? 아니면 몇 푼의 돈? 얼마만큼의 권한? 이권? 대체 그 원동력이 무얼까.

과연 무엇이 이토록 사람을 부끄러움을 모르도록 만들고, 사태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고, 사고를 정지시키고,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정말 모르겠다.


20080621

급흥분글

예를 하나 들자. 함수를 잘 모르는데 이번 시험 범위가 미적분이다. 미적분 공부 한답시고 뭔소린지 몰라도 열심히 외우면 아마 몇 점 맞을 수 있을거다. 그래서 뭐할거냐 대체. 와 80점 짝짝짝. 이유도 모르고, 점수만 나오면 신나고, 안나오면 우울하고. 완전 초등학교 마인드잖아 이거.

쌀 빨리 자라라고 위에서 끌어 올리면 다 죽어버린다 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머리채 잡고 끌어올려서 GDP 숫자 올리면 그거 뭐할거냐 대체. 사람들이 잘 사는게 중요한거냐 아니면 OECD 순위가 더 중요한거냐. 그거 두개가 같나? 멕시코 GDP도 매년 오르고, 실업률도 매년 오르는거는 안보이나.

이번 범위가 뭐든 함수 공부 먼저 해야하는거 아닌가? 기초 튼튼 실력 쑥쑥 이런말 못들어본건가? 이번 시험 점수 떨어지는거 그게 뭐가 그리 무섭냐. 시험 한 번 보고 말거 아니잖아.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각종 원자재 가격에 유류 가격 상승, 거기다 식량 가격 상승으로 세상이 다 난리인데 대기업 수출 잘하라고 환율 개입했단다. 물가가 안오를리가 없다. 물론 덕분에 1/4분기 대기업 매출도 십 몇퍼센트인가 늘어났댄다. 백화점 매출도 그만큼 올랐고 더구나 명품관 매출은 삼십 몇퍼센트인가 늘어났단다.

대기업 수출 많이 하면 당연 GDP 오른다. 추가 경정 예산 투입해도 GDP 오른다. 그래서 뭐할거냐 대체. OECD 순위 작년엔 몇위였는데 올해는 몇위. 와~ 짝짝짝. 삼성 휴대폰 수출액 얼마, 세계 시장 몇위 놀랍다 덩기덕 쿵덕.

나머지는 다 구경꾼이냐. 다카키 마사오 시절에 저녁에 뭐 먹을 것도 없으면서 신문보면서 오, 자랑스러워 수출 백만불탑. 이게 재밌냐. 여기가 대표 선수들 열라 뛰면 나머지는 응원이나 하는 축구장인가?

중소 기업 지금 얼마나 엉망인지 알기나 하는건가 모르겠다. 열심히 일 좀 해보려면 대기업한테 삥뜯기고, 국세청에 삥뜯기고. 자본금 5억에 인테리어 3억 들여서 중소기업 지원금 받으러 돌아다니고 술사주고 쿵짝쿵짝, 여자 끼워주고 쿵짝쿵짝.

마누라도 법인 만들라고 시켜서 무슨 사업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여성 벤처 지원금이나 받으러 다니고. 유령 회사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대기업이 비자금 만드는건 잡을 생각도 없으면서 광화문 앞에다 컨테이너나 쌓고 앉아있고.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데 문짝은 으리으리 번쩍번쩍, 회사는 테헤란로에, 청담2동에. 이런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는 하는건가. 뭔가 해보려는 사람 발목은 잡지 말아야할거 아닌가.

그런거는 강건너 불구경하면서 조갑 그 양반은 언제적 양반이 아직도 튀어나와서 공권력의 힘을 보여줘야 하느니 이따위 소리나 해대고, 왜 아직 살아 있는거야 대체. 무덤에 침 뱉어 주겠다고 진중권이 말했잖아.

정부는 뭐 하려고 있는거야. 헌법 읽어보기는 했나. 그런거 무슨 소리 써있는지 관심은 있냐. 농지는 농부만 가질 수 있다고 제헌 헌법부터 써있었던거 들어보기는 했나? 지들끼리 잘살고, 지들끼리 세계 수위 해먹고 좋다고 헤벌래 하고, 나머지는 구경꾼이냐. 어차피 수출 해서 돈 벌어도 니들이 다 가지고 가잖아.

우리도 좀 같이 잘 살게 해달라고 촛불들고 앉아있었더니 물대포를 뿌리지 않나, 율동하고 춤추는 여고생은 방패로 쳐서 끌고가질 않나. 북파 공작원, 고엽제 피해자, 뉴라이트 이건 또 뭐야 대체. 나중에 장군의 아들같은 드라마나 한편 만들어줬으면 하는건가. 멀쩡히 있는 사람들은 대체 왜 때려.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왜 우리나라는 성장론자들이 하나같이 파시스트들인거야. 파이프 하나씩 쥐어주고 말 잘들으니까 그것도 좋다고 플랜 카드 걸어주고 이권 사업하게 법만들어준다고 하고 뭐하는 짓들이야 대체.

사업하고 돈벌어서 벤틀리 타고 다닌다고 누가 뭐래냐, 조중동 기자하면서 좌파 타령 한다고 누가 뭐래냐, 멋대로 신나게 살아 아무 말 안할테니까 좀 가. 왜 대체 정치는 하겠다고 나와서 사람 이렇게 못살게 만드는거야.

민주 공화국 이런 휘양 찬란한 이름따위 필요도 없다. 이게 나라 맞는거냐. 이게 정말 나라가 맞기는 하는 거냐.

20080619

'친일파'라는 명칭에 대하여

얼마 전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서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근본으로 돌아가 친일파의 죄상을 알려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 나라와 우리 나라 시민들을 해하였고 생존을 위협했기 때문이고, 더불어 미래에 혹시나 비슷한 일이 생겼을때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끝까지 쫓아가 벌 줄 것이다라는 걸 후세에 알리기 위함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이익을 위해 평화를 버린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다. 좋게 말해서 교훈이고 솔직히 말하면 딴 생각 품으면 죽는다 정도...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이런 일이 생겼을때 자발적인 참여 말고, 이리 저리 주판알을 두드릴 사람들에게 독립 운동을 할 유인 같아 보이는 건 그다지 없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었고, 그래서 일제 부역 세력에게 친일파라는 이름이 붙인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일본은 지금 GDP도 우리보다 높고, 각종 공업도 발전한 나라다. 이유야 어떻게 생각하든 결과적으로 그렇다. 특히 튼튼한 중소 제조업 분야는 분명 배울 것이 많은 부분이다. 그와 더불어 그냥 옆나라인데 재밌는 것도 좀 많아 보이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어의 의미 측면에서 보면 일제 식민지 시절의 잔재는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배울 건 배워오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 소비자라든가 그냥 뭐 있나 관심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친일파다. 일본 시민들과 환경이나 평화 연대를 꾸미는 사람들도 말하자면 일본과 친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여기서 물타기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갈길이 삼만리인데 친일파 처단이라니 무슨 소리냐는 말이 위에서는 나온다. 이 놈의 나라는 제국주의 시대에 한 몫 잡은 사람들이 열심히 재산과 권력을 뿔려놔서 이제는 어지간하면 따라잡기도 힘든 형편이 되어버렸다. 이 사람들이 친일파와 저 위의 친일파가 다른 사람들을 뜻하는데도 같이 뭉뚱그려 슬렁슬렁 넘어가버릴라고 하는 격이다.

물론 일본도 제국주의 청산에 완전히 성공한 나라는 아니다. 독일 같은 경우 네오 나치다 뭐다 해서 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류 정치계, 문화계, 산업계에서는 발 붙일 자리가 사실 거의 없어 보이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한때 정한파의 선두에 섰던 사람 손자가 수상도 하고 그러고 있다.

경제가 문제라고 식민지(혹은 그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가 있어야 호황이 계속되는 제국주의 스타일의 자본주의 신봉자를 수상으로 올리다니 그것 참 말세다. 하긴 뭐 우리나라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할 말은 없다. (참고 - 우석훈 교수의 촌놈들의 제국주의)

어쨋든 이런 애매한 단어 조합을 사용해 빌미를 제공하느니 이름을 좀 다듬는게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일제 식민지 시절 반역자 명단'이라든가, '반 제국주의 복역자 처벌 운동'이라든가. 말이 좀 복잡해지기는 한데 그래도 이름을 명확히 해야 이용당하는 일이 없어진다.

반 제국주의에 좀 더 방점을 붙이면 일본에 남아있는 군국주의 세력 축출과도 연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못하고 있으면서 남의 나라보고 이러쿵 저러쿵 하기도 좀 그런 일이다. 그리고 총칼 대신 무역 보복과 경제 봉쇄를 무기로 하는 제국주의의 세련된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을 신 자유주의 반대 운동과도 연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쨋든 천상 이런 양반들 이미 늙어 죽어버린 사람도 많고 하니 형벌은 어려울 것 같고 당시 반민특위 자료라도 어케 구해다가 재산 몰수라든가, 이익 반환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그거 가져다가 독립 운동했던 사람들 찾아다 연금이라도 좀 주게.



2008년 6월 19일

마음이 복잡한데 정리가 좀 안되고 있다.

1. 강남역, 코엑스, 테헤란로 등지에서 요새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아주 예전에 왜 시위를 신촌, 명동, 시청에서만 하냐고, 압구정동이나 강남역 같은데서 하면 안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은 거기 다 있지 않냐고.

뭐, 반응이 영 안좋고 결론적으로 말이 씨알도 안먹힐 곳에서 하면 뭐하냐는 충고만 듣고 말았었다. 2008년 드디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참 기쁘다.

인원이 좀 많고, 콘트롤 할 수 있으면 서울 곳곳에서 한 천명씩 횡단 보도를 막고 10분 정도 구호를 외친다던가 하는 게릴라 시위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저번에 논란이 되었던 북파 공작원 단체에 이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욕 조금 먹는다치고 추진할 거 같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 대체 어쩌려고들 그러는건지. 이거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은데 생각이 좀 더 정리되고 나면.

3. KBS 노조가 원하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성명서를 대충 요약해보면 어쨋든 더 거대한 세력에 붙어서 언론의 사명이고 나발이고 편하고 즐겁게 살리라 정도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를 시민 편으로 놔두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깝다.

-PS : KBS는 복수 노조인것으로 확인되었다. 공정방송노조가 있고, KBS 노조가 있다. 공정방송노조는 위원장이 윤명식이고 KBS 노조가 언론 노조 산하 조직이다. 성명서 발표는 물론 공정방송노조.

4. 내키는 데로 쓰니까 퀄러티가 너무 떨어지는구나.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뭔가 쓰게 되면 이 글은 지울 예정.

20080613

6월 10일 이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박이 촛불 시위대의 말을 들을 것인가. 글쎄, 아마 안들을 것 같다. 특히 이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비폭력'에 머무른다면 아마 절대 안들을거다. '비폭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경찰의 무장 해제 정도는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이런데는 사람들이 흥미가 없는거 같다. 모두들 자신이 만든 룰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형세다. 대체 뭐가 비폭력인거야.

사람들이 조중동을 쓰레기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무서워한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면 우리는 필패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적과 싸워야 하는데 이미 적을 무서워하고 있으니 게임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조중동을 완전히 청산시키기위해 나서야한다. 이런 기회는 금방 금방 찾아오지 않는다.

앞에서 아무리 재잘재잘 떠들어도 어이쿠 그렇구나 하고 물러나는 일은, 절대 없다. 100만명이 모여 앉아있어도 그들을 물러나게 할 전략이 없고 전술이 없으면, 그냥 야구장에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과 똑같다. 그냥 관객이 좀 많은 것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잔뜩 들어찬 시민들의 행렬을 보면 서 자꾸 월드컵이 떠오른다. 이게 기우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물론 이 시위가 확대 재생산 되기 위해선 논의와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그 과정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한 진실이다. 임계점에 닿았다 싶으면 내달리는게 정석이다.


정치적으로 이명박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아니면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5년간 군림하는 왕 뽑는 행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거 같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게 좀 의심스러운데. 뭔가 크게 한몫 잡아보려고 일 벌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몇조에 이르는 세금 환급, 100일 기념 사면, 군보호 지역 해제, 재산 환원 취소. 자기 돈 드는거 하나도 없이 남의 돈으로 어떻게 생색만 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국, 유럽 등지에서도 하도 문제가 많이 생겨 이리 저리 재검토 해보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는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다. 자연 독점 기업, 국가 기간 산업들이 민영화 되면 엄청난 이익이 보장될게 뻔하다. 넓지도 않은 우리나라 그런 기업들을 사들일 수 있는 후보자들 다 그놈이 그놈들이다. 대통령 측근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시민들은 2000억 넘게 쓰게 되겠지만) 국가는 2000억 아끼니 세금 낭비를 줄이는 일 아니냐는 발상이 대체 어떻게 나오게 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괄호는 왜 말 안하는데. 세금 두번만 아끼다간 사람들 초가 삼간 다 태워먹겠다.

시민들 다 거지되도 정부의 재정 적자 해소했다고 업적이랍시고 자랑할 사람이다. FTA하면 누가 제일 이익볼까. 대부분 이명박과 경영인 핫라인으로 연결된 수출 위주의 대기업들이다. 핫라인으로 연결된 철의 커넥션. 참으로 굳건하기도 하여라.


이명박의 오랜 기업인 생활이 증명하듯이 그는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촛불의 상징, 비폭력의 은유 그런거 전혀 못알아 듣는다. 알아 듣고 움직였을 사람이면 예전에 움직였고, 사실 아예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광화문, 효자동, 삼청동 모두 콘테이너로 틀어막고 청와대 처마 끝에 앉아 장마가 대체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할 이야기도 하나 없고, 들을 이야기도 하나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이 직접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 권한은 국회밖에 없다. 천상 국회를 압박해야한다. 여의도 가봐야 개회도 안했고 아무도 없긴 하지만 6월 10일에 명박산성이 세워져있고, 마침 청와대 가면 뭐하냐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회의론 대두도 있길래 난 당연히 행진이 국회로 향할 줄 알았다.

왜 안갔는지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아쉽다. 이명박 뒤에 숨어 상황만 좌시하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너네들을 잊어버린게 아니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기회였는데 그걸 그냥 날려먹었다. 실리주의자에게는 실리를 뺏는걸로 승부를 봐야한다. 100만명이 콘테이너 뒤에서 노래나 부르는 것보다 한나라당 출신 시장 한명 내리는게 정말로 훨씬 더 효과가 클 거다.


내각 사퇴론 이야기까지는 나왔는데 사실 실행되고 있는건 거의 없다. 그리고 또 박근혜 총리론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그게 실행될까 의심스럽기는 하다. 알다시피 이명박은 한국 수구 우파 비주류다. CEO 이미지를 등에 업고 세계 경제가 어려운 타이밍을 잘 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실체를 이토록 못알아본 우리 시민들이 야속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당선된 후 그가 기용한 인사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맥 풀이 턱없이 좁고 그나마 엉망진창이다. 애초에 행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헌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나라를 경영하는게 기업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만 잔뜩 들어차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한국 수구 우파의 메인 스트림이다. 그들은 한 시절 나라를 꾸려나간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훨씬 노련하다. 인맥 풀도 비교가 안된다. 지금처럼 아마츄어 냄새 풀풀 나게 정권을 꾸려갈 뜨내기들이 아니다. 이제 됐다 싶으면 이명박 따위 뒤도 안돌아보고 차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방을 내주는건 자기 자리 찾기도 엄청나게 어려워 질거라는걸 아마 이명박도 알고 있을거다. 그래서 이 카드는 실현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이명박의 카드라고는 버티기 뿐이다. 하지만 촛불 문화제한다고 자유발언 계속해봐야 5년 정도 아마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잠잠해지면 움직이고 하면서 실속 다 챙겨먹을거다.

정말로 후딱후딱 해치워 버려야한다. 느긋하게 앉아 우리 참 잘하지, 민주주의 만세 하면서 좋아하고 있을때가 아니다.

20080608

이 시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반신반의하며 방점을 찍어보겠다고 적었던 이 전의 글이 내 자신도 놀랄 정도로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굉장히 차분하게 이 촛불 시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6월 6일과 6월 7일, 예고한대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찾아간 이틀간의 경험은 지금 상황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고, 상당히 아프다는걸 다시금 확인해주고있다.

자, 이제 의문은 맨 처음으로 다시 향한다. 시청 광장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었던 2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있다. 과연 이 시위로 얻고자 하는건 무엇일까.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이 한 반쯤은 사라졌었다. 가능성이 높은 후보, 될지도 모르는 후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말이 들릴때는 몰랐지만 막상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자 머리 속에서 퍼지는 반향의 차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 그런거구나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와 시민들이 말하는 경제. 같은 단어에 함축된 소름끼칠 정도로 드넓은 의미의 차이를 시민들이 결국 납득할거라고는 (여론조사와 신문보도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얇디얇은 우리나라 지도자의 층을 눈앞에서 확인하는것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체념 반, 포기 반의 시간이 지나고 예상되었던, 정확히 말하면 그의 공약집에 써있었던 정책들이 밀고 나가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 문화제가 조율되고 실행되는 과정은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렇게 실행되어갔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의지는 그렇게 문화제에 녹아들어갔다. 이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건 실망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어떤'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정부의 천박한 대응과 강경한 탄압이 있었다. 의견 수렴이 무시되면서 촛불 문화제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시위가 되었다. 아직도 수입 재협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명박 퇴진, MB OUT의 구호가 훨씬 더 크게 울린다. 바야흐로 촛불 문화제는 반정부 투쟁이 되었다. 반정부 투쟁. 이 섬뜩할 수도 있는 이름이 전혀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연 대책위는 MB를 OUT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가?


안국동 로터리에 배치된 전경 버스를 빼내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이고 밧줄이 준비되었다. 몇번의 시도가 있고난 후 갑자기 누군가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립되어있는건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진압을 시작한다고 한다, 안전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기자. 의견이 충돌하지만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하고 시위대는 분열된다.

이런 일은 새벽에 새문안 교회 옆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고, 골목이라 혹시나 포위되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은 대로에 수도없이 모여있는 사람들이 막아주고 있다. 한참의 대치가 있었고 마치 만화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는 위험하다, 지금 전경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진압이 시작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정말 마술같이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꽉차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길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2시간 후쯤 다시 한번 찾아간 그 곳에는 오직 적막 밖에 없다.

그리고 새문안 교회 안쪽 주차장 옆 좁은 골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하다길래 사다 날라주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그 좁은 골목 안에서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남는건 여러분들 맘이지만 이곳은 위험하다. 빨리 나가라. 빨리 나가라.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남 걱정 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비질비질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동안 그것 참 우연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디에 전경이 온다더라. 가본다.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서 진압이 시작된다더라. 가본다. 아무일도 없다. 다리만 아프다. 유자드웹을 쓸 수 있으니 아고라와 오마이뉴스등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거기도 똑같다.

결국 아무 말도 믿지 않게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판단도 불가능하다. 시야는 좁고 거리는 너무 넓다. 아고라 회원들의 토론이 벌어지지만 5개가 넘는 아고라 깃발들은 다들 가는 길이 다르다. 제어되지 않은 시민의 의견은 이토록 간단히 움직인다. 토론, 민주주의라 이야기하지만 들어오는 정보는 너무 작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들 목표가 다르다.


버스속에서 지하철 속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어제 시위의 무용담을 나눈다. 전경 새끼들, 프락치 새끼들, 어제 한 인터뷰 이야기, 어제 어떤 기자에게 사진 찍힌 팜플렛 자랑.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서로 서로의 무용담에 자위를 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한다.

광화문은 떠들썩하다. 자유 발언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386쯤의 나이대 사람들 몇명이 둥그렇게 앉아 운동 가요를 끊임없이 부른다. 내 바로 앞에 디씨 무적 김밥 부대인가에서 봉사자가 김밥 두박스와 생수 한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김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그들은 달려들었다.

단 5분만에 종이 박스와 생수가 포장되어있던 비닐 봉지만 남는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건 묘한 경험이다. 버스를 움직이는 행위는 의식이 되어간다. 한밤에 벌어지는 거리의 마츠리다. 영차 영차. 움직임 하나 하나에 사람들이 환호한다.

결국 이 시위는 점점 쇼가 되어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쇼 데몬스트레이션. 고생하고 잡혀가는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까지 시위 군중 속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미약한 힘의 사람들 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목적이 쇠고기 재협상인가? 재협상 하면 그만 둘건가? 나중에 수도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이런 일 있으면 또 반복하면서 나올건가. 나중에 비록 실패했지만 역사적인 시위로 시민의식으로 높였다고 역사에 기록되면 그거나 보며 흐뭇해 할 생각인가?

대책위가 MB OUT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뭐냐. 아웃시킬 생각이 있기는 한건가. 그럼 어떻게 아웃 시킬 생각인가. 알겠지만 광화문 거리 앞에서 자유 발언을 한다고 대통령이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72시간이 아니라 720시간을 텐트를 쳐도 제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제발로 나갈 작자였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다. 지금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탄핵을 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헌법을 바꿔 하야시킬 생각인가? 아니면 아예 새 나라를 만들 생각인가?

아웃 시키고 나면 뭔가 로드맵이라도 있나? 어떤 세상을 만들어볼 생각인가. 그 어떤 세상은 누구의 의견으로 만들어진건가? 시민의 의견? 대책위의 의견? 이에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희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그 이후에 과정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조금씩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은 있나? 그냥 이런것들을 단지 꿈처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쇼를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쇼의 목적은 대체 뭐냐. 사람들이,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것만 가지고도 큰 의미가 있고, 우리 국민의 훌륭한 의식을 보여주는거라 생각하나. 그런 자족을 위해 20만명이나 필요한가. 월드컵때 100만이 넘게 모이는걸 보고 충분히 자족하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포장하지 않았나? 그런 의식이 정말 더 필요한건가?


청와대로 가는 일의 상징성은 무척이나 크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있다. 부화뇌동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광화문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자가 외친다, 지금 안국동에서 전경들과 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함성을 보내줍시다. 와~ 자, 그럼 다음 자유 발언을 들어봅시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시민.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위해 이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앞에서 명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간걸까. 그걸 점점 모르겠다. 물론 그 가치를 폄하하진 못한다. 시민의 거대한 움직임에 평가를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 경험은 누군가에겐 민주주의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고, 우리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 20만명이 모일 필요는 없다.

문화제가 조율되고 조직되는 감동적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실망이 큰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기회는 너무 아깝다. 이게 끝나고 나면 뭐가 다가올까.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의 제목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예전 전공투의 구호 중 하나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금 현실에 투사하는건 지나친 일인가.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왜 적군파가 생겨났는지,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하였다. 이게 정말 지나친 생각인가.


광장에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그래 난 살아있으므로 따르겠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갈데가 어딘지 알기는 하나? 아니, 갈데가 있기는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조롱으로 들린다. 이 노래에 실려있는 치열함이 웃음 속에 묻힌다. 그 음악을 제발 틀지마세요 DJ, DJ. 이건 이 노래에 대한 모욕이다.



PS 밤새 우석훈 박사가 상당히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길이 쇼 데몬스트레이션보다 훨씬 빨라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단체장이라는 어감의 차이가 좀 멀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소환제, 대통령 및 관료 소환제가 없다는게 이렇게 일을 힘들게 만든다.
http://retired.tistory.com/150


20080605

감정의 콘트롤, 그리고 시위

요 몇주간 감정을 콘트롤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꽤 오래간만에, 급작스럽게 찾아온거 같다. 조용 조용히 촛불 문화제에 찾아가 가만히 앉아있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버린게 결정적이었다.

처음으로 방송을 본 5월의 마지막날 몸과 정신이 엉망이 되며 그렇게 지나갔다. 어쨋든 지금이라도 방점을 찍고 지나가야한다. 못살겠다. 그래서 이 글은 아마 조금, 조금 많이 길어질 것이다. 그 리고 그 누구도 읽을 엄두마저 나지 않을 정도로 지루하게 나갈거 같다.


1. 인생 첫번째 시위

임프레션은 기억을 압도하기 때문에 아마 많이 틀릴거다.

신입생들은 선배들과 한명씩 조를 만들어줬다. 룰은 간단하다, 움직이라고 할때 움직이고, 멈추라고할때 멈추면 된다. 누군지 기억은 안나는데 선배 한명이 들어와 아무말 없이 칠판에다가 시간과 장소를 몇개 적었다. 만약 시위대가 진압으로 분산되었을때 모일 장소란다. 도청이 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고, 마침 얼마전에 영문과 과방에서 도청기가 발견된 일이 있었다. 그게 누구건지, 정말 도청기인지 그런건 모른다. 어쨋든 중요한 사항에 대해선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는다. 공기가 꽤 무겁다.

마음이 꽤 복잡했는데 다치거나 잡히면 어떻하지라는 생각과 뭐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뒤섞여있었다. 사수대 인원이 부족하다는 연락에 선배 몇명이 나갔다. 파이프 같은 것들을 나르는 모습이 멀리 보인다. 여하튼 나는 같은 조인 선배 한명만 잘 따라다니면 되는거다.

이리저리 흩어져서 집회 장소에 도착했고 꽤 지리한 행사가 이어졌다. 봄날 특유의 따스한 햇빛과 답답하고 뿌연 공기 뭉치들. 이런 사람도 나오고 저런 사람도 나오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출정 선언문 낭독이 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줄을 맞춰 거리로 나갔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간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날 쳐다보면서 욕하고 쫓아오는 스노우진 입은 아저씨를 봤다. 죽자고 선배 뒤만 따라 열심히 도망갔다. 정말 죽을거 같았다. 밤이 되고, 시위가 마무리되고, 술집에 앉아 밤새 술을 마시며 그렇게 그 날은 지나갔다.

몇달이 지난 다음엔 페퍼포그를 쳐다보면서 (불꽃이 튀며 12발인가 연발이 발사되는 모습은 나름 장관이다) 날라가는 최류탄이 어디 떨어지는지 보고 쫓아가 신문지로 감싸 불을 붙이고 다니며 놀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최류탄의 매운기가 많이 사라진다. 사수대나 파이프 같은거 드는거에도 껴보고 싶었지만 나같이 힘없는 사람이 끼는건 민폐라 관뒀다. 나 때문에 다 고생하면 곤란하다. 내가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기침을 한다. 그것 참.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같이 모여 가는 집회는 관뒀다. 운동권 특유의 그 다정다감한 말투들도 짜증나고, 나름 갖춰져있는 위계 질서도 짜증나고 뭐 그랬다. 그냥 벽보보다가 옳다고 생각되는 집회만 찾아갔다. 혼자도 가고, 마음 맞는 사람있으면 같이도 가고. 매년 꼭 찾아갔다고 할만한건 서울에서 열리는 5.18 추모 집회 정도. 망월동은 못가봤다.

철거민 연합 시위하길래 쫓아가본적도 있고,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안나는데 반미 시위도 갔었다. 학생이 주도가 아닌 집회는 난이도가 좀 높다.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따라가기 힘들다. 그리고 절박하다. 너무나 절박해서 내가 학생인게, 그들과 같은 처지가 아닌게 미안해진다.


뭔가, 세상을 낫게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그 치열함을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물론, 세상은 그렇게 쉽게 쉽게 안돌아간다. 정말 말도 안되는구나 싶은 일들은 매번 일어난다. 시위에 나가는 사람들은 그나마 순진하다. 그게 옳다고 믿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이런 움직임 뒤에서 주판알을 튀기는 손길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동학 혁명으로 이익을 본건 일본이었고, 4.19가 끝나고 박정희가 집권했다. 80년 5월 벌어진 수많은 시위는 16일에 소탕되었고, 그 결과는 광주의 5.18과 전두환의 집권이었다. 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얻었지만 구로구청 투표함 사건이 있었고 노태우가 집권했다.

도대체 이 사건들로 몇명이 죽었을까. 몇명이 가슴을 쳤고, 몇명이 눈물을 흘렸을까. 그리고 우리는 과연 뭘 얻었을까.

분명히, 뭔가 발전했다. 남산으로 끌려간다는 사람도 이젠 없고, 대통령이 군인도 아니다. 여전히 국보법과 집시법이 있지만 예전처럼 위력을 발휘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2008년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물이 이 모든 희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다. 그때 그 시절 고문을 하던 검사도, 군부에 협력해 한몫 잡았던 경영인도, 아니 그보다 더 앞으로 일제 시대 우리를 괴롭히고 착취하던 동족들도, 그보다 더 뒤로 기자를 성희롱하던 국회의원도 여전히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런 아픔과 시련들에도 자신의 집시법 위반 경력이, 운동 활동 경력이 혹시나 촛불 집회에 누가 될까봐 뒷편에서 촛불이라도 하나 들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대단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하다.

잘 모르겠다. 정말 잘 모르겠다


2. 조선일보

아주 오래전, 지금은 이런말을 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엉망으로 살고 있지만, 좌파적인 생각을 지니고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한 다음부터 조선일보는 내 머리 속에서는 그냥 세상에 없는 신문이 되었다. 신석우, 안재홍이 사장이었던 시절에는 그래도 조선일보가 괜찮은 신문이었다.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 꽤 심각한 노선이다. 나는 아마 그 길을 따르지 않겠지만 저런게 식민지하에 존재하고있다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시절은 잠깐이었다.

그 버라이어티함과 중독적인 문체, 앞뒤가 하나도 안맞는 얼토당토한 내용, 교묘한 외신 짜집기 이 모든게 짜증이 났다. 전두환 정권 시절 우민화 방편으로 프로야구 창단, 국풍 80 같은게 있었는데 최고의 우민화 정책은 조선일보가 가장 영향력있는 신문사가 되버린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신문은 사람을 정말 아무 생각없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다.

그래서 뭔가 이것들을 어떻게 할 방법없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내 힘으로 마땅히 생각나는건 없고 그래서 그냥 없는 놈이라 생각하기로 한거다. 눈에 띄는 활동이라봐야 주변 사람들에게 조선일보의 실상을 전하고, 지하철 선반위에 놓여있으면 다른 사람 볼까봐 휴지통에 버리는 정도 뿐. 그러다가 손석춘의 책이 나왔길래 읽어도 봤고, 안티 조선 운동을 하길래 그것도 좀 열심히 찾아 보고, 딴지일보 초기에 조선일보 분석이 한동안 나왔었는데 그것도 열심히 봤다. 나보다 몇백배는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이 있다.

요새, 촛불 시위와 더불어 안티 조중동 운동도 한참이다. 광고주 불매 운동이니 항의 전화니 역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니까 그나마 좀 위력적으로 전개되는거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요새 들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일본 천황 만세), 저런 일도 있었어요(방사장집 조망권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지어진 아파트) 하는게 게시판에 오르고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며 흥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 나도 그렇고, 손석춘도 그렇고, 안티 조선도 그렇고 뭐했나 싶다. 꽤나 이리 저리 애쓴거 같은데 이토록 아무에게도 안알려졌구나.

지금 벌어지는 일이 과연 좋은 성과를 남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잘 되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잘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건 이런 반민주적, 반시민적인 잔재물들을 배제시키는 일이라고 나름은 생각하고 있다. 방어적 민주주의. 바로 그거다.


3. 사실대로 말하자면 광화문과 시청앞에 깔리는 태극기와 애국가,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예비군복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격분해서 뜯어내고 페인트를 붓는다든가 하는짓은 물론 안하지만 불편한건 불편한거다.

국익. 우리의 이익이라면 어쨋든 OK라는 민족주의 성향은 무섭다. 이건 다른 나라 사람을 착취해도 국익이면 괜찮다는 제국주의와 단 한끝 밖에 다르지 않다. 한순간 뭔가 잘못 주입되면 TV에서 본 이라크에 가서 그들을 다 청소해버리고 오겠다는 이라크전 출병을 앞둔 20대 초반의 미군 해병처럼 되버린다. 그도 국익을 위해 그 자리에 있다.

지금은 이성이 이 집단의식을 잘 제어하고 있지만 감정은 언제나 뒤에서 움크리고 있다. 감정은 격동적이고 파동도 크다.

더 큰 문제는 이게 국가간의 카르텔 게임과 비슷해져서 먼저 누군가 관두면 손해가 막심해진다는 사실이다. 국가간의 문제를 콘트롤할 수 있는 제도의 부재와 자국 시민들에게 표를 얻어야하는 정치인이라는 백그라운드는 이 게임을 더 강하게 만들고 영속적으로 만든다.

인권 앞에 서있는 민족주의는 없다. 민족주의에 대한 열망은, 국가에 대한 열망은 분명히 뷰를 좁게 만든다. 아주 간단한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게 지금 이익인가 아닌가. 편을 가르는게 너무 쉽고 내재된 배타적 성향은 동의하지 않는 자를 배제시키게 된다. 관용의 폭이 너무 좁다. 이걸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좋은 소재다. 그래서 두렵다.


4. 어쨋든 지금은 다음을 준비해야 할때다. 지금 정권은 아마 항복하지 않을 거다. BBK 김경준이 예전에 말했던대로 지금 대통령은 옆방으로 가고 싶을때 문으로 돌아가는게 싫어서 벽을 뚫고 가는 사람이다. 뭐 알아서 관두고 그럴 사람이 아니다.

경영인이라는 직업은 사태를 가급적 단순하게 판단하는게 유리하고, 아마 이 복잡한 문제를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예전에 김영삼 정권 시절에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는데 이건 뭐, 무천도사와 베지타 만큼이나 레벨 차이가 나는거 같다. 베지타는 자존심이라도 있었지. 몰라, 하고 싶은대로 할래. 그게 그의 생각같다.

그렇다면 천상 우리는 한나라당과 정부를 떼어놓는 일을 해야한다. 오늘 선거가 있었고 한나라당이 졌다. 수도권과 영남권에서의 패배는 좀 아플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선거가 있다. 계속 지금 정부가 이렇게 인기가 없다면 여당은 어쨋든 고민에 들어가야한다. 열린우리당이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을 헌신짝처럼 버렸듯이 선거는 냉정하다. 대통령이 누구든, 국회의원의 목표는 재선이다. 우리나라 시스템으로는 어지간하면 정책이고 나발이고 재선하기 위해선 뭘 해야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시민 정당의 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불가능하다. 시위에 주도점이 없는건 역사적으로 큰 장점이고, 거시적으로 우리를 한단계 발전시킬 훌륭한 경험이긴 하지만, 미시적으로 이 다음에 어떻게 할건가의 대책이 별로 없다는 점이 조금 아프다. 일단 지금 정부는 물리쳐 줄테니 그 다음은 다시 정치권이 알아서 해결하라가 지금 시위의 애티튜드같다. 물론 엉뚱한 짓 하면 또 나선다라는 견제가 있으니 아주 멋대로 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쨋든 이걸 처리할 사람들도 지금으로선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만약 누군가 주도 세력이 있고, 사람들이 이 정도로 동조한다면 혁명이 되고, 헌법을 바꾸고, 새 나라를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이건, 평범한 시민들의, 그것이 조선일보 때문이든 뭐 때문이든, 운동권, NGO, 좌파, 대안 조직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에 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위가 마무리되고 나면 이들에게도 자신을 다시 성찰할 꽤 깊은 아픔을 줄 것이다.

이승만 하는 짓이 너무 미워서 4.19가 일어나고 100명도 넘게 사람들이 죽을때도 꼼짝않더니, 미국 대사가 시위대 지지한다고 한마디 하니까 이승만은 그날로 바로 그만 둬버렸다. 그리고나서 과도정부에게 넘겨줬더니 허정이 자유당 시절하고 하등 다를거 없는 똑같은 정책만 내놨다. 그 후의 일은 잘 알려져있다. 군부 재집권 같은 일이야 이제 없겠지만 여튼 애써 한 시위의 결과가 이런식으로 나타나는 일이 또 안생기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한다. 사실 정말 어려운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을,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결과물이 흐지부지하면 슬플거 같다. 지금까지 매번 느꼈던 그 괴로움. 술집 거리의 떠들썩한 젊은이들과 고요한 주택가를 지나며 대체 뭘 위해 난 이러고 있나 하는 그 자괴감.

그래도, 아마 뭐가 나타나도 지금보다는 나을거 같다는 믿음에 일단은 중요한, 머리수라도 채우려고 나가긴 한다.


20080604

이글루스와 구글 블로그

이곳은 알다시피 구글 블로그다. 구글에서 서비스하는 블로그니까 구글 블로그다.

www.google.com/blog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www.google.com/blogger에는 뭔가 나온다. 이게 Blogger.com과 같은건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시간 블로거닷컴은 잘 되는데, 구글닷컴/블로거는 2시부터 3시 30분까지 공사중이라는 표시가 뜬다.

사실 원래 Blogger였던걸 구글이 샀다. 이름을 안바꿨으니까 블로거가 맞는 이름이다. 그런데 블로거는 이제 일반 명사다. 즉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은 몽땅 블로거다.

나는 (구글의) 블로거에요
아, 그래요? 어느 블로그에서 활동하시는 블로거시죠?
아니, (구글의) 블로거라니깐요

이런 바보같은 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또, 주소는 Blogspot이다. 맨처음 들어갈때 주소는 블로거닷컴인데 계정을 만들면 블로그스팟에서 생긴다. 이게 왠지 좀 싫다. 나에게도 블로거 닷컴을 좀 주면 안되겠냐.

결론적으로 블로거, 블로그스팟, 구글 블로그 다 같은 것이다. 그거 참, 이거 왜 하나로 통합시킨다던가 간단하게 안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쨋든 그렇다.


사실 블로거닷컴에 먼저 만들기는 했는데 뭘 해야할지 몰라서 방치해두다가 이글루스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여기도 한정적이지만 슬슬 쓰고 있다. 지금까지 이 주소에서 몇번이나 뒤집고, 다 지우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역시 뭔가 안정이 안된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했는데 한글 폰트가 좀 문제다. 전체 프레임의 측면에서는 이글루스에 비해 약간 더 리버럴한 면이 있고, 좀 더 깔끔해서 좋기는 한데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한글 폰트가 없다. 그러다보니 글을 쓸때와 다 쓰고 업로드했을때 느낌이 많이 다르다. 세상에 2008년에 위지위그는 전혀 불가능한 블로그질을 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편집창이 좀 문제다. HTML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원하는 모양으로 얼추 만들어낼 수 있을텐데 전혀 모른다. 띄어쓰기에 상당히 둔감한 편집창이라 이게 띄어 쓴건지, 두번 누른건지, 단락 바꾼게 맞는건지 빨리 눈치채기가 힘들다. 좀 어중간하다. 그러다보니 오자도 잘 안보이고 나중에 다시 봐야 몇개 찾는다.

그리고 편집창이 좁아서 쓰면서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자꾸 놓친다. 그래서 하나같이 앞뒤가 엉망이다. 다른 편집틀 - 라이브 라이터나 스크라이브 파이어 아니면 MS 워드 등등 - 을 사용하면 되는데 난 <비알>하고 <피>하고던가 여튼 이게 잘 이해가 안되서 단락 사이가 자꾸 넓게 벌어진다. (HTML 창이 아니더라도 저런 명령은 먹어버리는구나 -_-) 어쨋든 이런거 참 싫어한다. 콘트롤 누르고 엔터치면 된다던가 말하는데 몰라 그런거, 귀찮다.


미리보기도 있긴 있는데, 미리보기 누른 화면이랑 다 쓰고 블로그 찾아서 보는 화면이랑 전혀 다르다. 이 점을 구조적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설정'에서 포스팅 화면 세팅을 할 수 있고, 또 쓰면서도 폰트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다 쓰고나면 설정이 우선이고, '게시'를 누르기 전까지는 위지위그다. 즉 미리보기는 내가 쓰고 있는 모습과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

HTML창에서 한글쓰기는 골치아프다. 사실 아직도 이글루스에서 폰트 설정을 어떻게 해야 가장 확실하고 변동없이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복잡하구나.

어쨋든 요새 한동안 사용하고 있는 소감은 이렇다. 결정적으로 다 써놓고 내가 봐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화면이 전반적으로 난삽하다. 이건 아마 레이아웃의 문제인데, 딱히 마음에 드는것도 없고 그렇다. 결론은 외부틀을 쓰는게 낫지 않나 생각중이다.

20080603

총체적 부조리에 빠져있는 경찰이라는 조직

이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경찰 조직이 지속적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링크 참조) 그리고 공권력이 불법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위 '민주화'시대의 변화에 대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있다며 타박하는 조중동이 이를 서포트해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회의 민주화 과정으로 다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이 있었다. 권위주의의 해체란 어떤 조직의 힘이 약해진다는걸 뜻한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제한. 결국 이들은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부풀게 된다. 마침내 그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이 기회를 마음껏 활용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군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군부 통치의 시절이 있었고, 이게 지나감에도 하나회는 존속하며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방법이 뭐 없을까 뒤적거렸지만 하나회는 결국 해체되었다. 그리고 강력한 외부 감시(군의 정치 개입에 극히 민감한 반응)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군인이 있든 아니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나라는 가지게 되었다.


쇠고기 파동에 이어 반정부시위로 발전하고 있는 촛불 문화제 과정에서 경찰 조직은 극한 제압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도 예전처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돌을 던지고 파이프를 휘두르는 것도 아닌 고작 촛불들고 저기로도 좀 걸어가서 이야기좀 해보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살수차,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고 있다. 이런걸 넘어서 전경 한명 한명의 폭력의 도는 이미 수위를 넘었다.

물론 군복이 주는 익명성은 사람을 대담하게 만든다. 또 혈기 왕성하고 감정을 콘트롤하는 능력이 서툰 젊은이들이라 흥분하기 쉬운것도 맞는 일이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도망치는 사람을 방패로 치고 있다는건 경찰이라는 조직의 관리 능력 자체에 큰 문제점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무기를 든 부하의 감정을 콘트롤할 능력이 없다는건, 혹은 감정을 시민에게 발산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는게 의미하는건 만약 전자라면 조직의 구조, 전달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후자라면 이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이건 역시 경찰 조직 자체가 민주화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이고, 그러므로 맨 아래 조직으로 들어온 의경, 전경들 역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자기들의 본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해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채 방패주고 갑옷 주니까 맘대로 때려도 되나 보다 얼씨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포돌이 어쩌구하는 시덥잖은 이야기는 잔뜩 해대면서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경찰 조직은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 이유는 시민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필요성 때문에 시민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고 세금은 경찰청에 지급된다. 만약 시민들에게 필요없는 일을 한다면, 그리고 제 몸하나 못가누면서 내부인들의 위법 행위를 방치하고, 감싸주기에만 급급하다면 그 조직은 필요없다. 자신이나 민주화 시켜놓고 우리보고 준법이니 민주주의니 따져라.

경찰은 자신에게 솔직해 져야 한다. 능력도 안되면서 10만명이 넘는, 분에 넘치는 조직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더구나 경찰은 무기를 들 수 있는 조직이다. 제어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른다고 생각되면 솔직히 고백하고 다른 조직에 넘겨라.

우리가 없으면 경찰은 누가 이끌어 따위의 되도 않는 소리는 안해도 된다. 대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해체하고 자치 경찰제로 바꾸고 전의경은 본래의 임무 대간첩 작전 수행 중심으로 산속에다 집어넣어놓으면 된다. 교통정리와 고성 방가, 경범죄 위반을 잡기 위해 방패와 곤봉을 든 자들은 필요없다. 무장 간첩이나 테러단 나타나면 그때 내려와라. 열렬히 환영해 주마. 당신들의 분에 넘치는 욕심 때문에 400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더불어 이제 대부분 20대 초반들일 전의경들에게 보내는 말을 좀 보탠다. '공권력'은 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즉, 전의경의 옷은 폭력 허가증 같은게 아니다. 우리나라 법은 군 또는 이에 준하는 조직에서 상명 하달을 강조한다.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상관의 명령이라면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법에 어긋날때는 따르지 않도록 되어 있고 따르지 않아야만 하게 되어있다.

자신의 불법적 폭력을 위계조직의 상부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 믿지 마라. 위법은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그 행동을 한 당사자에게만 돌아간다. 고참도 간부도 아무 책임도 떠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꼭 저지르고 싶다면 판단을 명확히 해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준비를 해라. 시민들은 끝까지 쫒아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20080602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

버스 한대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나를 제약하는 일상 때문에 억울하지만 발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일상, 그놈의 일상. 그리고 지금, 인터넷 방송에서는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방패를 휘두르는 전경들의 모습이 보인다. RSS에 등록해 놓았던 BBC 뉴스 첫번째 칸에 실려있는 이 시위에 대한 사진을 본다.


민주주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그리고 아나키즘을 제외한 어떤 체계 안에서도 세상에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피지배계층이 뭔가 원하지만, 그것이 지배계층의 이익이 아니라면 '나라는 시민들의 것'이라는 허황된 레토릭들에도 불구하고 반항하고, 반발해야 얻어낼 수 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한다. 싸우지 않고선 빈 손 뿐이다. 그들은 대의를 쫓아 뭔가 내준 적도 없고,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될 상황이 와도 갖은 수사들로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와중에 꼼짝도 안하고 투덜거리면서, 아니면 아예 그럴 의지도 능력도 가지지 않고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다수다. 제 몸하나 까딱하기 싫으면서 권리는 줄기차게 주장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다. 누군가 다쳐가면서, 죽어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에 대고 감내놔라 팥내놔라 열심히도 챙겨먹는다.

수구 세력들은 진보 진영이나 정당한 시민들의 권리 의식들과 그나마 정면 대결이라도 하고 있지 ,이 민주주의의 프리라이더들은 변화의 시기엔 몸을 숙일 뿐이다. 뭔가 바뀌나 싶으면 재빨리 주판알을 튀기고 대세를 따른다.

이들을 원망하는건 아니다. 이들도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시민이다. 우리의 점잖은 선조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무신함을 피하려 안이하노라'라며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은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하노라'는 때아닌 관용을 베풀었지만 이런 현학적인 단어들도 실로 아깝다.

이들을 책망하지는 못한다. TV로 폭력의 현장을 바라보며 히히덕 거리며, 폭력 앞에 노출되어있는 시민들에게 비폭력하라고, 그게 시민의 힘이라고 쉽게들 말한다. 질서 의식을 말하며 불법을 탓한다. 물론 이것은 지켜야할 것이고 이 시위의 진정한 힘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너희들이 할 말은 아니다. 그건 그 자리에 서있는 절박한 사람들 입에서나 나올 말이다. 이런 자들을 다 끌어다 단두대에 밀어넣은 로베스피에로는 실로 위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뿐이다. 민주주의의 성과물들을 부산물들을 마음껏 받아 먹어도 좋다. 다만 지금하고 있는 일, 그거라도 열심히 해라. 제발 거기서라도 남의 성과물들을 탐내지 말고, 그곳의 불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너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싸워라. 그리고 제발 방해라도 하지 말 것을 간절히 바란다.

스크럼

아주 복잡한 문제라 결론은 모르겠다. 대체적인 스킴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평화 시위를 열망한다. 일제의 지독한 탄압으로 폭력 시위화 되긴 했지만 3.1운동도 비폭력 시위로 시작되었고, 87년 6월의 전단을 봐도 절대 비폭력 노선 견지를 외치고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처럼 내전화 되는 일은 거의 없고, 혹시 최류탄, 강력 진압이 동원되면 화염병, 돌로 맞서는 정도다. 거기까지 발전하기 이전에는 '대치'상황이 주로 나타난다.

본진으로 대규모로 모여있는 시위 집단이 있고, 최전선은 전경들과 대치한다. 그리고 혹시나 연행되거나 대열이 무너졌을때를 대비해 대체 인원들이 뒤에서 이를 서포트한다. 이 대치를 지속시키기 위해 스크럼을 짠다. 시위는 남자만 참여하거나, 여자만 참여하는건 아니기 때문에 남녀가 섞여서 스크럼을 짜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예를 들어 성희롱 (지금은 이 정도로 밀집되어있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은 없다, 그리고 이건 철저히 잘못된 개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논쟁 가치는 별로 없다), 효율성 논쟁, 남녀 성역할 문제 등등이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 들은건 거의 20여년일이고 그때 조금 고민해보다가 한동안 의식의 구석에 잠재되어있었는데, 요새 다시 스크럼을 짤 일들이 생기면서 의식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우선 효율성 문제.

시위는 목적은 '승리'하는 것이다. 전투의 측면에서 보자면 남자, 여자가 섞여있으면 힘의 차이 때문에 분명 효율성은 떨어진다. 이런건 나처럼 별로 힘 세보이지 않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함께 싸울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전경들이 약한 쪽을 공략해 무너지면 그게 더 손해지 않냐는 생각이다. 더구나 전경들은 갖은 모욕적인 언어 폭력을 구사하며 상당히 악랄하게 공략한다.

그렇지만 다른 면에서 시위는 시민 의식을 모아 합리적인 의견을 전하는 과정이 중요한 일이다. 시위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이고,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위법성이 정당화되기 위해선 과정의 명분이 중요하다. 그래야 관심없는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효율성보다 중요한건 참여의 평등함이다. 무너지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함께 행동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발생하는게 성에 따른 역할 문제다. 분명 평균적으로 남자쪽이 힘은 더 세다. 시위는 어쩔 수 없이 폭력, 혹은 준폭력이라는 남성성을 동반하게 된다. 절대 비폭력을 외치지만 결정적 순간에 방어하지 않으면 결코 이길 수 없다.

방어적 민주주의라는게 있다. 히틀러는 1차 대전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독일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며 독일 국민들에 의해 선택받은 지도자였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집단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투표에 의해 채택되었으므로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건 다만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그 레토릭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우리는 자세히 알고 있다.

어쨋든 이런 몸싸움의 와중에 여전히 남아있는 유교적 가부장주의는 여성은 보호 대상이라는 관념을 만들고, 결론적으로 그곳에서 여성을 배제시키려는 욕구를 낳는다. 지금 등장하고있는 예비군 시위대를 예로 들 수 있다.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서라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 수긍할 수도 있고, 수긍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런건 남성이 해야되는 일이라면서 '주체적'으로 물러나는 일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생각은 아주 복잡해진다. 과연 성평등의 상태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분리주의는 손쉬운 해답이긴 하지만, 재생산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구나 '배제'를 기본 테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나로서는 수긍할 수 없다.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

출산을 제외한 나머지 역할의 동일성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이건 남성도, 여성도 상당히 주체적으로 부지런하게 의식을 발전시켜야한다. 이상적인 상태를 말할때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걸 요구하는건 대부분 좋긴하지만 이루기가 힘들다. 끊임없는 사고의 확장을 요구하고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 공산주의는 그래서 실패했다.

남녀의 역할이 완전히 따로 적립된 상태라고 한다면, 그건 과정은 어떨지 몰라도 결과물은 유교적 가부장주의와 별다를게 없을 듯 하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아마도 정답은 없다.

중요한건 배제시키지 않는 일이다. 시위 현장은 마초들이 구성시켜놓은 기존 구조물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장이다. 참여하기 위해 그곳에 온 것이지 구경하기 위해 그곳에 온건 아니다. 그러므로 스크럼에 힘을 보태고 싶은 여성이 참여시키는게 옳다. 위험하니까 뒤로 비키세요라는 말은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어차피 판단은 자기가 하는 일이다.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뒤로 비킬테고, 이 정도면 해볼만하다 싶으면 버틸 것이다. 효율성은 아마 보완 방법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내 짧은 지식때문에, 참 어려운 문제다.

추위, 오구오구, 훈련

1. 너무 춥다. 집에 오는 길에 날씨를 보니 기온은 0도, 바람이 좀 불어서 체감 온도는 영하 3도 쯤이다. 옷은 작년 한 겨울 쯤 입은 것과 거의 같았는데 셔츠에 플리스, 오리털 파카, 청바지에 운동화였다. 여기에 머플러, 더 추우면 히트텍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