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7

시민들의 정당은 가능할까

촛불 문화제가 문화제 참여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진화해 나갈지는 전혀 알 수 없는게, 주도층이란게 딱히 없기 때문이다. 아고라에서, 디씨에서, 그리고 그외 여러 카페,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의견으로 수렴된다. 현장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 수렴과 결정이 반복된다. 물론 딱 떨어지는 지시가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지는 않다.

효율적인 면에서는 떨어질 지 몰라도 정보 누출의 걱정이 전혀 없고 (당사자들도 모른다),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이므로 결정에 대한 순응도가 높다. 이거야 사실 애초에 민주주의란게 의견 수렴과 결정이 그렇게 완벽히 작동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다. 살짝 살짝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오류는 즉시 즉시 보완해가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루소가 국민의 의사는 대표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의제를 반대하고 경험적 의사를 중시해야한다고 말하는걸 예전에 읽었을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뭐가 결정된다는걸까, 세상에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너무 아이디얼하지 않나?

이제와서 이게 대충이나마 이해가 간다. 촛불 문화제를 경험하면서 약간이나마 상상력이 더 풍부해진 덕이다. 그것은 아마, 대충 지금같은 식의 의사 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의견이 서서히 수렴되고 뭔가가 결정된다. 투표도 없고, 지시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결정되고, 동의되고, 실행된다.


생각해보면 1789년에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갈때 그 전날 밤에 누군가 소위 '지도층'들이 모여서 결정하고 지시한건 아니다. 루소는 대혁명을 겪진 않았겠지만 그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학자다. 68년 5월은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어진 다음 과정에서 68년에 논의가 이루어진 사항들에 대한 시민들의 토론과 결정이 그래도 성공적이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사회는 변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가는데, 이게 반사적으로 다른 정당들의 지지율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은 정치 전반에 회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들은 보수 우익도 아니고, 운동권 좌파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좋은 나라에서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 하고 싶은 일 잘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금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은 '정치'에 대단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반감을 드러내는건 물론 모순된 행동이 아니라, 여기서 '정치'가 우리나라의 '기존 정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게다.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너무 없고, 권력을 두 손 가득 쥔 정치인들만 잔뜩 있는게 문제다.

몇개의 언론사와 대기업과 결탁된 수구 정당은 그들만 이익인 정책을 잔뜩 펼쳐보이고 있고, 노조나 시민단체 등 몇몇 운동권 세력이 결집된 정당들은 보다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고립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야당이 된 저번 여당은 솔직히 지금 뭐하고 있는건지, 생각은 하고 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본격적인 시민 정당의 출현을 기대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정당과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는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찾아오는 일은 4년에 한번 총선, 5년에 한번 대통령 선거때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며 지들 멋대로 하고 싶은걸 해댈 뿐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시민들에게는 소환권도 없고, 탄핵권도 없고, 쓸만한 참여 절차도 없으니 정치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다. 구경거리라도 되면 괜찮지만, 직접적으로 생계에 위협까지 가하니 이건 정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자 비슷한 걸 몇년에 한번씩 뽑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투표를 제대로 하면 되잖아 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기존 권력의 공고함과, 그 이권이 엄청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 관심을 가지고 쳐다봐야 맘에 그다지 안차는 대안들 중에 대체 누굴 골라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정도에서 멈춘다. 맘에 드는 사람이 혹시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이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구시대적 정치 세력들을 거부하고, 시민의 복지와 환경, 합리적인 이념의 조화, 시민들을 위한 정책에 역점을 둔 본격적인 시민 정당이 가능할 시기,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의견을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 혹시나 그 와중에 구시대적 권력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소환시켜 버리고 하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듯 싶다. 시민 의식이라는게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건 가까운데 있는 지방 자치 단체급부터 시작해서 차츰 차츰 넓혀가는게 올바른 길이긴 한데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 단체라는게 그다지 권한도 없고 딱히 와닿는 일을 하는 경우도 없고, 지역 유지들과 결탁해서 역시나 자기들 좋은 일만 해대는게 다반사인데다, 시민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래서 역시 국회부터 노리고 시작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정치인이라는게 권력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시민의 대행자라는걸 직접, 명확하게 느끼게 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물론 현실 정치라는게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고, 저런 식의 작동 방식을 어떻게 고수해 나갈 수 있을지도 큰 문제거리다. 급박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저런 방식이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적극적인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행정학, 법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익스퍼트들의 몫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초야에 뭍혀있을, 생각이 좀 올바른 사람들이 슬슬 기어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감을 가지고, 저항하고, 제대로 좀 하라고 핀잔을 줄 일도 있는데, 가끔은 도무지 답이 안보여서 직접 나서서 해야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만약 재협상 등의 의사를 관철해 낸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결과적으로 어떤 식의 결실을 맺을지 아직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그냥 잠자코 원래 자리로들 돌아가고 만다면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또 촛불을 들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땐 뽑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게 될거다.

어쨋든 이 과정을 잘 겪고,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책에서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3개:

  1. 급 와서 댓글 남겨서 죄송합니다.
    온라인에서도 촛불 문화제에 참여할 수 있어요.
    너무 무섭고 깜깜한 현실이지만 저는 제 블로그에서도 제 할말 할랩니다ㅠ
    http://www.sealtale.com 입니다. 백만 찍으면 해외 외신 홍보감인데..

    답글삭제
  2. 360명정도 연행됐다던데.사실인진 모르겠지만 마구잡이로 연행해가는것 같아요..
    진짜 닭장차 투어하러 서울로 고고싱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지방은 참 조용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시민들 손으로 이룰수 있을까요.그러길 바라겠습니다.

    답글삭제
  3.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너무 없고, 권력을 두 손 가득 쥔 정치인들만 잔뜩 있는게 문제다.
    그렇죠?

    전 생각을 정리해야 움직이는 편이라 아직 촛불문화제에 대한 입장정리를 못했어요. 나중에 입장정리를 했는데 이미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도 말이죠.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민가야겠다는 얍실한 생각이 종종 고개를 쳐들정도에요.
    국민은 우매하다는 생각을 어디서 주입당한 것인지... 그 사람들은 이런저런일들을 너무 쉽게 벌이는 것 같아요. 대운하 등을 하려면 예산도 필요할테고... 그래서 공기업을 싹 팔준비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요. 정말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국민을 위한다고 믿고 있는 바보라서 그러는 것인지... 요즘 정책들을 보면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혼란스러워요. 흠... 이거 은근히 넋두리네요;

    답글삭제

두통, 공습, 직감

1. 주말에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월요일이 되니 비가 내린다. 날씨가 종잡을 수가 없어. 오늘은 왠지 머리가 아파서 집에서 일하는 중. 하지만 졸리다. 2.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이 있었다. 드론과 미사일을 상당히 많이 날렸고 대부분 요격되었다.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