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6

진화. 그리고 연대

관련한 이전 포스팅은 링크(클릭) 참조.

주말 이틀간 평화적 촛불 문화제는 거리 시위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순간적인 진화의 과정을 보고 있는건 경이로운 경험이다. 소수의 주체가 있지만 그것을 선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애초에 선동에 혹할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제도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주체는 시민이고,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모이고있다. 애초에 정부 기득권도 좌파도 이 속도를 못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정부 측이 촛불 같은거에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는 계속 나타나고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지 바뀌어야할 시점이 요구되었는데 이렇듯 홀연히 찾아왔고, 시민들의 미시적 패러다임도 홀연히 변신하고 있다. 뭔가 더 해야한다는걸 깨닫고 있다.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지, 시민의 의지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고, 분열되고, 다시 진화하는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생생하게 보고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촛불 문화제와 길거리 투쟁, 즉 가투는 전혀 다른 일이다. 문화제는 보호를 받지만 가투는 보다 적극적인 공권력과의 싸움이고 현행법상 위법이다. 몇 십년간 집시법 개정을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대중들은 침묵했고, 개정은 실패했다. 이것들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목을 향해 날라오고 있다. 연대의 실패는 이토록 뼈아프다.

가투는 무척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막는 공권력의 입장에선 이건 일종의 전쟁이다. 그들의 임무이고, 반드시 해내야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의견 전달에 더해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험(잡힌다든가, 다친다든가)을 피하기 위해선 일종의 테크닉적인 요소와 행동 방침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이전 가투 경험자들, 즉 운동권 출신들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노하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상태로 가투로 진화하는건 너무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공권력을 절대로 우습게 보면 안된다. 이건 매우 힘든 싸움이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기존 운동권에 대한 반감들이 모여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문화제였다는 점에서 여기엔 복잡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과정상으로 보자면 촛불 문화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결과의 측면에서도 원하는걸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하우가 없으면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된다. 군중은 쉽게 흥분하고, 막는 자들도 쉽게 흥분한다. 사람의 이성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그다지 믿을만한게 아니다. 만약 4.19나 6월 항쟁처럼 100만명씩 모여있다면, 아니 적어도 몇십만명쯤이 모여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것도 아니다.

어차피 참여자로서도 이젠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도 없고, 누군가 통제할 수 있는 성질도 애초에 아니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거리의 시민들이 더 거대한 대중들로부터 소외받지 않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열망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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