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 시험 삼아 바꿔봤음. 너무 굴림체 선호인가)
오래간만에 종이 신문을 샀다. 한겨레 신문 2008년 7월 16일자. 나의 종이 신문 구독률은 낮의 빈시간, 지하철 이용률 두 변수의 플러스 함수다. 이 중에 지하철 이용률에 훨씬 많은 가중치가 붙어있다. 그렇지만 집중도와 졸음이라는 마이너스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하철 오래 탄다고 마냥 올라가는건 아니고 말하자면 역 U자형 함수라고 할 수 있다. 대략 편도 40분 정도의 지하철 Commuter일때 신문 구독률이 극대화 되는거 같다. 대학 4년간을 그랬고 덕분에 한때 항상 한겨레 신문을 가방에 끼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다.
오래간만에 신문을 산 이유는 사망설 광고 때문이다. 광고를 내자는 이야기를 슬쩍 봤고, 모금을 한다는 이야기도 슬쩍 봤는데 오늘 아침에 자판기 커피 마시면서 가판에 놓여있던 한겨레 신문에 우와사의 그 광고가 실려있는 모습을 보고 구입했다. 600여명이 성금을 냈고, 한겨레 쪽에서도 조금 할인해 줘서 1면에 실린걸로 알고 있는데 성금을 낸 사람에는 끼지 못했지만 어쨋든 신문은 하나라도 사줘야지 싶었다.
이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의 눈이라는건 사실 그다지 신뢰할 만한 도구는 아니다. 머리 속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고 상상력이 시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에 대한 실험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본 적 있는데 자신이 목격한 걸 제대로 기억하는 인간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이건 진실일 수도 있다. 아무도 가능성이 0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밝혀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되었든 단지 어떤 현상을 목격하고, 의심을 하고, 그걸 인터넷에 올렸다고 잡아가는 경찰도,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도, 구속적부심심사를 기각한 법원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무슨 죄목이 적용되는건지 잘 모르겠는데 어쨋든 그 사진을 올린 사람은 지금 구속 수감되어 있고, 경찰과 검찰에 의해 앰네스티 조사관의 면담도 거부당한게 지금의 상황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 조금 더 붙여본다.
어쨋든 오늘자 신문을 유심히 봤는데 줄줄이 암담한 이야기들 밖에 없다. 뭐, 즐겁고 소소한 일들만 써있으면 팔리는 뉴스는 안될지도 모른다. 노르웨이 신문 아프텐포스텐이 영어판 인터넷 사이트가 있어서 가끔씩 가보는데 거의 매번 첫페이지 톱은 순록이다. 순록이 많이 내려와서 전통있는 스키 대회가 취소되었다느니(스폰서까지 잡은 50년인가 된 대회가 순록 때문에 취소되었단다), 순록 한마리가 활주로에 뛰어들어서 나갈때까지 항공기 운항이 중지되었다느니 그런 이야기들이다. 어제 가봤더니 늑대 여섯마리가 마을에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걸려있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데 역시 자주가서 보게 되진 않는다. 또 순록이군- 정도의 느낌이랄까. 노르웨이 말은 못읽어서 잘 모르겠는데 사진으로 추측하건데 노르웨이판과 영어판이랑 같을 때도 있고 다를 때도 있고 그렇다. 약간 보수적 성향의 신문으로 알고 있는데 은근 외국인들의 눈을 신경쓰고 있는걸까 싶기도 한데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다.
어쨋든 안 좋은 소식만 실려야 팔린다고 해도 이건 너무 암울하다. 1면에는 사망설 광고가 실렸고, 2면에는 접견을 거부당한 앰네스티의 항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3, 4면은 독도 이야기, 5면은 금강산 피살 사건을 둘러싼 북한과의 이야기, 6면은 노무현 자료 반환을 놓고 벌어지는 다툼과 강만수의 서울 법대 사랑 이야기, 8면은 검찰의 고소 권유 이야기, 9면은 기무사 이야기다. 그 이후로는 파니메이와 프레디맥 이야기, 학교 보수공사 부실 시공 이야기 등등등이다.
기무사 이야기는, 어떤 하사가 개인 블로그에 <제국주의론>, <임금노동과 자본>을 인용한 글을 올리고 책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을 소지하고 있는 걸 기무사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다. 다행히 군 검찰은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지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위의 사망설 구속 사건도 그렇고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나는 생각의 범위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제도라는건 사람 잘 살자고 만든 도구다. 그러므로 국가의 목표는 자유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아니라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다. 자유 민주주의는 중간 목표로서 기능할 뿐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이론이나 제도 따위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애초에 신이 아닌 이상 오류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 오류와 실수를 가능한 줄이는 방법은 가능성의 측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범위를 검토하는 일이다.
그런데 국보법은 중간 목표를 공고화 한답시고 궁극적인 목표로 가는 상상의 범위를 오히려 좁혀 놓고 있다. 목적을 지배해 버리는 수단. 그런게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이 사회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민족주의든, 아니면 국가주의든 다른 이론에 배타적인 근본주의적 경향만 아니라면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한다. 물론 오늘까지는 자본주의와 결합된 대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쨋든 발전하고 있으므로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결국 이 때문에 우리는 남들보다 항목이 더 좁은 선택지를 지닐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건 집권 엘리트 층이 체제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보안법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게 이승만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몰라도 그 다음에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시킬 정당성이 없어지니 결국 만들어낸게 보안법이었다. 체제 유지에 자신감이 없고, 그 자신감을 만들어줄 정당성이 없으니 아무대나 같다 붙여도 되는 법을 만들어냈다. 이 법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오고 있다.
나는 왜 이 정권의 주도층이 자신의 이론과 신념에 그토록 자신감이 없이 국보법을 유지시켜 놓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로 사회주의 혁명이나 무정부주의자들의 준동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식한 시민들이 꼬드김 몇 번에 넘어가 혁명론자가 되어 테러를 벌일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설마 그게 겁나는건가? 북한의 존재? 글쎄, 그들이 정말 공산주의자가 맞는지 아닌지가 토론의 대상이 되어버리지도 못하는 지금에 와서 국보법의 존재 따위로 실질적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주사파? 주사파가 과연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미국에도 이탈리아에도 프랑스에도 영국에도 심지어 일본에도 반국가주의 단체가 존재한다. 나라가 망했나? 사람들이 집에서 몰로토프 칵테일을 만들면서 폭력 혁명을 준비하고 있나?
이런 점은 소위 음란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안법처럼, 음란물도 이 이름에 포섭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자의적 해석이 동반되는 법이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포르노가 합법화되면 사람들이 포르노에 미쳐서 사회가 음탕해 질거라는 생각은 꽤 이상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합법화가 이미 되어 있는 나라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걸까. 지금껏 20여년 우민화 정책을 추진해온 당사자들은 시민들이 멍청해졌을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보다시피 그런 일은 안벌어졌다. 애초에 방 구석에 처박혀 그런 거나 볼 놈들은 이미 보고 있으니 별로 상관할 바도 아니다.
또한 이건 예술 분야에서 상상력을 억압하는 도구로도 자리잡고 있다. 예술은 애당초 설득의 과정이 아니라 모티베이션의 과정이다. 사람의 머리 속에 잠재되어있는 어떤 의식들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리고 환기시켜 보는게 목표고 그걸 경험하는게 감상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옳음과 틀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뭐가 끌어올려졌는지, 어떤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에 T와 F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 아 기분나쁘네 F, 아 이건 좀 좋네 T. 이런 식의 점수 매김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장정일은 대체 왜 잡혀갔던걸까.
더구나 애초에 그런 류의 정화는 시민들 자신이 경험과 이성으로 이룩해내야 하는 일이지 규제로 이루어질 일이 전혀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내가 뭘 보든 대체 왜 국가가 나서서 상관해야 하는지, 그렇게 할 일들이 없는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이런 류의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에 매번 나오는 집권층의 견해는 "아직 시민들의 의식이 성숙하지 않아서...' 운운이다. 아마도 가장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집단이 그 따위 말을 하고 있으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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