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살아있던 시대에는 꽤나 유용했을지 몰라도 세상을 이분법적 도식으로 바라보는건 위험하다. 손쉽긴 하지만 알다시피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가고 있지만은 않은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의 교육감 선거는 그런 도식이 완전히 무용한건 아니다. 아주 명확한 제로섬 게임의 선거전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시민을 크게 두 부류로 자녀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비록 지금 자녀가 없다해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주들에게 혹은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분류는 유효하다. 이 두 부류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사실 현 정권에 대한 찬반의 성향과도 많은 부분 겹쳐있다.
그리고 두명의 후보가 있었다. 한명은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할 만한 장을 마련해 주려는 사람이고, 또 한명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불이익을 가능한 덜어주려는 사람이다.
자, 선거가 있었고 결과 집계가 지금 진행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이미 선거율을 통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1, 2위가 강남구, 서초구로 둘다 19%대다. 그리고 은평구, 금천구, 강북구가 13%대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강북쪽에서 떠오르는 교육 관심구인 노원구가 17%대로 3위고, 송파구가 16%대로 4위다. 목동이 있는 양천구가 15%대로 의외로 낮게 나왔다.
두 집단간의 6%의 차이. 작다고 하면 작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차이가 뜻하는 바는 꽤나 의미 심장하다. 이건, 정치 운동이 하부 계층의 지지를 얻기는 매우 힘들고 - 그럴 시간도, 여력도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 그러므로 대중 운동화 하기 전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준다. 후쿠모토주의가 범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가 여기서 되풀이 되고 있다.
현 정권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의지를 확인하는 공감의 자리를 끊임없이 마련하는건 그 자체의 내부 결속을 위해서는 유의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자랑스러울지는 몰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핵심이 아니다. 좀 더 넓게, 특히 국내 정책들이 작금에 구가하고 있는 '고통의 전가 시스템'이 하부 계층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는걸 확인시키고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만이 우리 사회를 그나마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더 낮은 계층의 문제들을 더욱 들춰내야 하고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이건 자본주의의 계급 문제와 닿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매우 구조적인 문제가 만들어 내고 있다. 대체 왜 니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선거하러 나오지 않았냐고 투덜거리고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그걸 인식하지 않고서는 이번 교육감 선거와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맞닿게 되는지, 누진세 삭감의 문제와 어떻게 맞닿게 되는지 쉽게 깨닫지 못하는 현 구조는 점점 더 고착화 되어간다.
하지만 이건 직접적인 선동이라든가 선전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후쿠모토는 지식인 노동자들로부터 아래로의 혁명을 계획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연대는 너무나 헐거웠고, 정작 직접적으로 계급적인 문제들의 모순을 맞닥트리고 있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었다.
결국 필요한건 멀게만 느껴지는 지금 정부가 펼치는 정책들과 자신과의 연결 고리를 좀 더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지금 선거 결과가 나왔다. 절망적이고, 실망스럽지만 이제 할 일은 분명히 정해졌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촛불 시위보다 그것을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 체계에서는 100만의 군중보다 1표를 행사하는게 더 중요하다는걸 우리는 알아야한다.
1, 2위구가 보여주는 19%의 투표율은, 그리고 그들 구가 저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전국 1위의 투표율을 차지한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그 사람들이 요란을 떨지 않고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게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걸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촛불 시위의 의미가 퇴색되는건 아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광장을 지향하고 그곳에서의 소통을 통해 발전한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향해야 할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츠리를 위해 그곳에 모인게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그곳에 모였던것 역시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 무브먼트는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지고 더 깊어져야한다. 그래야만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여당과 20년, 30년 그것보다 더 길게 싸워온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잔뜩 쌓여 있다. 하루 아침에 끝날 싸움은 애초에 아니다.
너무 들뜨지도, 너무 실망하지도 않고 자신의 힘을 명확히 인식하고 하나씩 이뤄나가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아직 샴페인은 이르다. 우리는 오늘의 투표를 이 싸움이 끝날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해야 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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