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클라인은 나와는 무천도사와 베지타 만큼 정도 전투력 차이가 나는 사람이지만 어쨋든 그에 대한 글을 읽다가(이 전 포스팅에서 조만간 번역을 올린다고 했지만 아직도 한참 남은 바로 그 아티클 - 뉴요커 지의 2008년 12월 8일 업로드 기사 Outside Agitator) 만난 흥미진진한 구절 한토막.
이 글을 읽어보면 역시 세상의 레프티스트들은 비슷한 열망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짠한 감정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그가 비록 각종 무브먼트 전선의 최전방에 있지만, 특히 비유로권 문제에 대해서 역시 제3자적 처지일 뿐이라는 사실 역시 느낄 수 있다. 어쨋든 그는 콜롬비아에 새 정권을 만들고자 하는 반군은, 전두환에 맞서 싸운 투사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동남아시아 농민 자신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저런 경험이 드물다는 이야기를 하겠지.
개인적으로 '그녀'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로 통일. 이건 좀 더 생각해 보고 나서.
"저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게 훨씬 더 편하다고 느낍니다"
그(나오미 클라인)가 유토피아가 이런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문득 했던 유일한 순간은 2002년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그와 루이스(남편)이 영화 "The Take"를 찍기 위해 가 있던 그때 아르헨티나의 정치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그 순간 진공 상태가 완전히 열려버린 아르헨티나에 기적적인 시간이 찾아왔었어요. 사람들은 2주일 동안 네명의 대통령을 쫓아 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모든 기관들이 위기에 빠져있었죠. 정치인들은 집안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아주머니들이 빗자루를 들고 그들을 때렸어요.
그리고, 밤 중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 나서면 거의 모든 거리의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 대외 부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100명에서 500명 정도 사람들이 한 그룹을 이루고 있었죠. 약간이라도 더 싼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함께 식료품을 구입했고, 화폐가 거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물물교환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본 것들 중 가장 고무되는 모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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