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8

지리멸렬

원래 여기에 '힘들다'라는 포스팅이 있었는데 너무 직설적이라 거슬려서 이걸로 바꾼다. 원래 RSS 리더에 올블로그 베스트글과 이글루스의 이오공감을 등록해 놨었는데 며칠 전에 다 빼버렸다. MB 취임 이후 하도 헉-하는 뉴스들이 많아서 이제는 질려버린 감이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수많은 논쟁들이 파생되어 벌어지고 있다. 근 몇 달간을 그러고 있는거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넷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별 볼일 없기는 하다. 왜냐하면 지금 정권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알바를 제외하고는 인터넷을 안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블로그에서의 담합, 혹은 논쟁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회합, 또는 알바와의 소모적 논쟁이 대다수를 이룬다. 물론 사고의 끝 지점에서 결정을 위해 조금 더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논쟁은 생산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닌 경우가 너무 많다. 

이 정도의 물가 상승과 실업난, 그리고 신입 사원 임금 삭감같은 말도 안되는 정책에 폭동이 나도 시원찮을 형편인데, 현 정부가 경제 상황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면서(딱히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믿지만) 폭동을 일으키러 나갈 힘조차 빼놓고 있다. 

안타깝지만 자인하건데 지쳤다. 전형적인 현실 도피의 증세다. 예전에 봉준호가 감독 데뷔 하기 전에 '지리멸렬'이라는 독립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는 검사, 신문사 논설 위원, 교수라는 사회 주요층의 지리멸렬하고도 3류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대비시켰는데 지금은 딱 내 꼴이 지리멸렬이다. 

이러다 보니 민감한 뉴스를 보는걸 피하게 되고 민감한 논쟁에 끼어드는 것도 피하게 된다. 대체 현 정부가 뭘 노리고 있는 건지 완벽하게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분명 무슨 로드맵이 있는데, 그 로드맵이라는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통으로 말아먹는 로드맵이다. 설마 그려랴하는 일말의 의심이 결론을 허공에 떠돌게 한다. 물론 남미식 토호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은 자들에게 무척이나 유리하다는건 분명한 팩트다. 정말 이들은 그걸 원하는 걸까?

며칠 전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요지는 지금 러시아의 경제 위기는 세계 경제 위기 탓이 아니다. 우리가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물론 이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내용이 깔려있다. 푸틴이 영구 집권 금지 때문에 앉혀놓은 메드베네프가 어느덧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푸틴의 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초석을 깔려는 시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푸틴의 영구 집권을 돕기 위해 러시아 관료들을 압박하기 위한 초석일 수도 있다. 

매우 모순적인 의견들인데 러시아의 정치는 그들의 외교만큼이나 아주 복잡한 어떤 선을 따라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논란이 확산되자 곧바로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어쨋든 꽤 스마트한 연설이었다. 그냥 저렇게 앞잡이나 하다가 사라질 사람은 아니지 싶다.

어쨋든 인터넷에서 의견을 모으고, 밖에서 움직이는 유비쿼터스의 세상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모든 걸 망쳐놓기에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Solidarity는 분명히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 


또 하나 : 좌파의, 혹은 반 보수주의 노선의 결정적인 약점은 도덕론에 메달리느라 목표를 자꾸만 놓친다는 점이다. 전투 방식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왜냐하면 전투는 이겨야 하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헌법 기관들의 좌우 균형은 시민들에 의해 결정되게 되어 있고, 그건 우연이 아니라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 분립에 기반한 민주주의는 매우 능동적인 시민을 요구한다. 가만히 앉아서 떡이나 먹으면 저절로 균형이 이루어지고 서로 견제해 시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진 제도가 애초에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매한 민중이 폴리스를 망칠 수 있다는 염려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같은 사람들은 민주정에 반대했었다. 지금은 경제적 식견이 정치적 우매를 만들어 고대의 철학자들이 염려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실, 이 모양 이 꼴이 되어도 할 말이 없는게 사실이다. 결국은 시민들이 만들어 놓은게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저 흘러가는대로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의지를 지닐 때이다. 목표는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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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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