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5

Design under Constraint

Design under Constraint : How Limits Boost Creativity
- Wired.com

2장의 종이를 묶어 만든 16 X 10.875인치의 직사각형은 174제곱 인치만큼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전설적인 잡지 아트 디렉터이자 펜타그람의 파트너인 D.J.Stout는 이 박스를 채우는 기술과, 문자와 이미지의 예술적인 배치를 “직사각형 위의 variation”이라고 부른다. 지금 보는 이 잡지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잡지들의 주제와 내용들은 다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측면에서는 같은 하얀 빈 박스를 계속 다루고 있을 뿐이다.

Wired에서 디자인 팀은 이런 제한을 매일 아침 먹는 빵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편집상의 페이지들을 위해 우리는 단어와 사진을, 종이와 잉크의 부분적인 제한을 극복해 내기 위해 사용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정보 그래피를 실을 수 없다(아직은). 비디오나 목소리를 포함시킬 수도 없다(아직은). 음향 효과나 음악을 집어넣을 수도 없다(아직은).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일을 이 정적인 매개물에 포함시킬 수 없음에도, 이것의 가능성으로부터 깨달음과 놀라움을 찾아낸다. 이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공유하는 믿음이다. 사실 디자이너들이 듣는 가장 최악의 말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원하는걸 맘대로 해봐”라는 말이다. 디자이너들은 한계의 힘을 이해하고 있다. 제한은 성장과 혁신을 위해 비할 바 없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어린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물과 햇빛에 의해 크고 튼튼하게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이 성장의 초기에 주의 깊은 가지 치기 - 아래에 매달린 가지들을 제거해 주면 - 를 해주면 나무는 더 크고, 튼튼하고, 빠르게 자라난다. 나무는 성장에서 궁극적인 목표에 기여하지 못할 부분을 제외시킬 수 있게 되고 귀중한 양분들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같은 원리가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더 작은 자원이 주어질 수록,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 증거로 지난 세기의 문화적, 기술적 최고점에 대해 생각해 보기만 해도 된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업을 90도 직선과 주요 컬러에 한정시킴으로써 모더니즘의 도래를 알릴 수 있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싱글 코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Kind of Blue 음반을 만들 수 있었다. 더 최근에 지금 마일즈의 대표 앨범을 듣고 있을 아이폰은 구속 내에서 이상을 향한 추구의 최고의 예다. 최초 화면이 28개의 단어로 제한되어 있는 지루하도록 단순한 구글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제한 내에서 작업하는 아이디어는 특히 더 작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드는 요즘 시대에 실제적으로도 중요하다. 월 스트리트, 디트로이트, 워싱턴 D.C에서의 한계의 부재는 잘못된 자유였음이 밝혀졌다.

이 모든 경제적 침체 안에서 미국의 개척이 평창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에 대해 당신은 비난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지금이 기회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다음 페이지에서 우리가 선호하는 제한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제한을 강요하는 것이 창조성을 억제하지 않을 수 있다. - 사실 오히려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 바로 위에서 말한 ‘이 다음 페이지’라는 곳에 아주 긴 기사가 실려서 해석은 생략한다. 그 기사에서 Wired는 세가지 Manifesto를 제안한다.

1) Set the Data Free

오늘날 모든 공개 회사와 금융 기관들은 숫자와 통계가 가득 차 있는 끝도 없는 문서들 속에 그들의 활동을 공개하고 있다. 이 대신에 데이터에 쉽게 접근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태그(XBRL) 사용을 의무화시켜야 한다.

2) Empower all Investor

모든 회사의 데이터에 식별 태그가 붙는다면 누구든 실적 비교를 위해 숫자들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금융 기관들을, 단지 대차 대조표와 순익 계산서로 보는 것을 넘어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3) Create an army of Citizen Regulator

모두에게 데이터 접근권을 줌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자동적인 조절과 시장 상황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의 빗장을 풀어 낼 수 있게 될 것이고 일반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여기까지가 해석. 이제 내 이야기.

기본적으로 룰 안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좋아한다. 멋대로 입고와 이런 것보다는 프레피 룩이 유행이라는데 그 룰을 지키면서 어떻게 튀어볼까 생각하는게 훨씬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을 보고 혹해서 해석해 봤는데 내용이 약간 다르게 뻗어나간다. 전반적으로 내용이 부실하고 이상적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아주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여기에 올리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해 무제한 적인 창조성은 온연히 신의 영역이다. 제한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제한을 대하는 태도를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위의 기사대로 제한 내에서 머리를 굴려 극복해 내는 방안을 찾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제한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는 방법이다.

전자는 디자이너를 비롯해 대부분의 창조적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예를 들자면 대기업, 금융 회사들이 시도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언제나 규제를 없애자고 말한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의 역사 과정이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합이라는, mentally한 progress의 확신은 별로 없다. 발전을 재는 척도는 너무나 임의적이라 그다지 신용할 만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반-정-반 왔다갔다하는 시계추 정도가 더 신뢰가 간다. 민주성과 경제성 사이에 무슨 합 따위가 있을거라고는 생각이 안든다. 발전은 커녕 조화시킬 능력조차 없는게 인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더욱 확신에 차고 있다. 인간에게 존경할 만한 구석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은 이성과 발전이 아니라 임기 응변의 능력과 그 가열찬 생존력이라고 믿는다.

 

다시 경제 이야기를 좀 하면.

당연하지만 규제라는건 보호의 측면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대변하는 WTO나 IMF, World Bank에서도 규제를 없애는걸 제한한다. 나 역시 쓸데 없는 규제는 나라의 힘을 과대화 시키기 때문에 없애는 걸 찬성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렇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규제가 있는 경우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규제가 없어지면 상황이 다르다. 규제를 풀고자 했었던 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규제를 풀고자 하는 자들이 책임을 지면 그들과 별 상관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책임을 지게 하고 뜻하지 않은 불이익을 받은 이들은 나라에서 구제해 주는게 최선의 해결 방안이다.

하지만 한국이 삼성 없으면 나라 망할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미국도 별 다를게 없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와 완전 같은 방향은 아니겠지만 결국 향하고 있는 방향은 비슷하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망하게 두고, 정말 망하는지 두고 보면서(물론 나같은 경우 절대 안망한다고 믿는다, 인간과 사회라는게 뭐 하나 없다고 다 망하고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제 할일 열심히 해 극복해 내는게 옳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니(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1+1=3이라고 생각하면 3이어야 하는게 옳다) 그 단계에서 우리는 또 해결책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어쨋든 지금 필요한 건 이런 저런 규제니 뭐니 하는게 아니라 전향적인 투명성의 확보다. 이건 분명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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