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 의자에 앉는다. 아이팟이 갑자기 꺼진다.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여하튼 배터리 교체하고 처음이다. 이 불길한 암시가 맘에 걸린다. 아이팟 미니가 난데 없이 꺼졌을 경우 조금 기다렸다 다시켜면 배터리 마크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어제 자면서 충전해 놨으니 벌써 다 떨어졌을리는 없다. 플레이 버튼을 다시 누른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케미컬 브라더스, 에픽 하이, 브로컬리 너마저, 그루브 아르마다, 백현진의 음악이 차례대로 나온다. 지루한 것들, 지겨운 것들.
지하철이 5대 쯤 지나간다. 일어나기 싫다. 뭔가 허하고, 뭔가 우중충하다. 안에다 억지로 껴입은 오리털 잠바 팔 끝에 기름 때가 묻어있다. 언제쯤 세탁을 했더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외투도 구석구석 더럽다. 지겹구나. 왜 다 이모양이지.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다가 지하철을 타러 간다. 아저씨, 아줌마, 교복, 직장인, 화내는 사람, 웃는 사람, 술취한 사람. 날씨가 좀 더 따뜻했으면 어디든 돌아다닐텐데 하고 생각한다. 문래동에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아휴, 지금껏 몇 년을 돌아다녔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아. 나쁜 일만 계속 쌓이잖아. 됐다. 하릴없이 칼로리를 낭비하는 일 좀 그만하자. 낮에 찍은 하늘 사진을 본다. 휴대폰으로 잠깐 게임을 한다. 손이 떨린다. 그만 두자.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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