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5

단절

집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선다. 배가 고프다. 탄수화물은 싫은데, 탄수화물은 싫은데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결국 김밥 헤븐에 들어가 떡라면을 시킨다. 탄수화물과 조미료가 만들어내는 이 포만감이 무척이나 싫지만, 뱃 속이 텅 빈 듯한 허함은 더더욱 싫다. 역으로 걸어가다가 한 정거장만 걷기로 한다. 그다지 춥지는 않다. 작년에 공사가 끝난 둥글둥글하게 생긴 두 개짜리 주상 복합 아파트에서 나오는 불빛이 눈에 거슬린다. 가까이 지나가다 보니 비어있는 거대한 일층 사무실에 억지로 불을 켜놨다. 그러고 보니 위에 주르륵 들어온 등불들도 같은 색이다. 괜시리 저리 켜놓는건가... 난들 알게 뭐냐.

지하철 역 의자에 앉는다. 아이팟이 갑자기 꺼진다.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여하튼 배터리 교체하고 처음이다. 이 불길한 암시가 맘에 걸린다. 아이팟 미니가 난데 없이 꺼졌을 경우 조금 기다렸다 다시켜면 배터리 마크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어제 자면서 충전해 놨으니 벌써 다 떨어졌을리는 없다. 플레이 버튼을 다시 누른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케미컬 브라더스, 에픽 하이, 브로컬리 너마저, 그루브 아르마다, 백현진의 음악이 차례대로 나온다. 지루한 것들, 지겨운 것들.

지하철이 5대 쯤 지나간다. 일어나기 싫다. 뭔가 허하고, 뭔가 우중충하다. 안에다 억지로 껴입은 오리털 잠바 팔 끝에 기름 때가 묻어있다. 언제쯤 세탁을 했더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외투도 구석구석 더럽다. 지겹구나. 왜 다 이모양이지.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다가 지하철을 타러 간다. 아저씨, 아줌마, 교복, 직장인, 화내는 사람, 웃는 사람, 술취한 사람. 날씨가 좀 더 따뜻했으면 어디든 돌아다닐텐데 하고 생각한다. 문래동에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아휴, 지금껏 몇 년을 돌아다녔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아. 나쁜 일만 계속 쌓이잖아. 됐다. 하릴없이 칼로리를 낭비하는 일 좀 그만하자. 낮에 찍은 하늘 사진을 본다. 휴대폰으로 잠깐 게임을 한다. 손이 떨린다. 그만 두자.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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