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7

walk alone, listen from the ambience

제목을 바꿨다. 소문자로 표시되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하지만 지금 블로거 자체 글쓰기 모드 위로 보이는 화면에는 특유의 터무니 없이 귀여운 폰트로 선명히 새겨져있다. 이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누구 보라고 쓰는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떠냐. 이건 삶의 테제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숲 속을 생각했다. 깊은 숲 속을 바스락거리며 걷다 가만히 멈춰 귀를 기울이는 모습. 예전에 소요산에서 그런 적이 있다. 산 입구부터 시작해 정상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동안 단 한명도 보질 못했다. 뭔가 등산 간 나 빼놓고 세상이 멸망해 버린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길을 걷다가 멈추면 귀에 압력이 느껴질 정도로 침묵이 파고든다. 가끔 하늘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었다. 설마하니, 내가 죽는걸 기다리고 있는 거냐.

하지만 여기서는 저 문장이 그렇게 심각하거나, 한계적이거나, 혹은 토속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앰비언스에는 약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사실은 그것보다 음악 장르 앰비언트의 느낌을 살리고 싶다. 어쨋든 약간 고급스럽고 깔끔하게 들렸으면 좋겠는데 네이티브가 아니라서 뉘앙스까지는 잘 모르겠다. 한글로 쓸 수도 있는데... '혼자 걷다,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라서 좀 이상하다. 앰비언스가 죽어버린다. 그냥 로로스의 음반을 듣다가 저 문장이 문득 생각났을 뿐이다. 

8년. 그렇다 8년이다. 그쯤을 방황을 했다. 원하는 거였든, 원하지 않는 거였든, 운명이 었든, 혹은 게으름에 불과한 것이었든 이미 지나가 버린 시절이다. 그동안 얻은게 뭐가 있나 뒤돌아봐도 별로 잡히는게 없다. 마땅한 커리어도 없고 득도를 한 것도 아니다. 물론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한다. 버려지듯 내팽개쳐진 8년 동안, 그들이 날 버리든 말든 상관없이 꼭 붙잡고 절대 놓지 않을 작정인 사람들이 몇 명있다.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왠지 불쌍하군.

잃은건 꽤 된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피지컬리하게만 바라봐도 치아가 한개 반이 썪어 문드러져 떨어져나갔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아픈 위가 생겼고, 손바닥에 안없어지는 손톱만한 굳은살 비슷한게 하나 생겼다. 코에 점이 하나 더 생겼고, 여드름은 어렸을 적보다 더 많이 난다. 얼굴은 더더욱 칙칙해졌고, 보기 싫은 군살이 여기저기 붙었다. 군대 3년의 정신적 충격을 매듭짓는데 이리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라고 변명한다. 누구는 멀쩡히 살아가지만 다시 사회에 복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8년이 걸렸을 뿐이다라고, 이 정도면 잘 한거 아니냐라고 별 쓸데도 없는 변명도 해본다. 어쨋든 변명 거리는 하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어쨋든 다시 돌아보건대 지난 8년간 나는 그토록 증오하던 인습의 벽에 더 굳건하게 휩싸여 있다. 깃털처럼 가벼워져 훨훨 날겠다는 애시당초의 꿈은 온데 간데도 없다. 삶은 더 팍팍해 지기만 하고 생각은 구석구석까지 정치적이 되어간다. 빙빙 돌아다니다 길을 잊어먹었나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난 반환점을 턴했다. 지금 온 만큼 앞으로 더 갈 수 있을지 이제는 확신이 없다. 남들은 정리를 해야할 시간에 나는 다시 출발을 해야 한다. 하긴. 아무렴 어떠냐. 언제나 출발하면서 죽을 때까지 살면 안될건 또 뭐 있으랴 싶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숲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나무가 살짝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간다. 발자국 소리 따위는 없다. 그렇다. 여기엔 아무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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