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1

권리 그리고 과격

무허가 건물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재산권을 인정받았나

1980년대 초반 목동에는 안양천 변을 따라 긴 뚝방촌이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가구주 2500세대, 세입자 5200세대로 합쳐서 300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1960년대 후반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가 개발되면서 그곳 일대의 판자촌이 강제 철거되자 옮겨온 사람들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안양천 주변으로 주민들을 옮기며 이들에게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영화 방식으로 서민 주택을 싼 값에 대량으로 공급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도시 미화 사업을 시작했는데 1983년에 서울시는 강서구 목동과 신정동 지역에 신시가지 140만평을 조성한다고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서민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취소하고 20~60여평 대의 아파트를 짓겠다고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안양천 변 주민들에게는 이주비 50만원과 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아파트 분양가격은 최소 평형인 20평짜리가 2100만원. 1983년에 2100만원이 있었다면 사실 그들이 안양천 옆 뚝방촌에 살 이유가 없다. 알다시피 무허가 주거지에도 세금이 나온다. 근 20여년간 취득세, 재산세 , 건물분 토지사용료를 내며 지내온 주민들은 이제 꼼짝없이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목동 주민들의 철거 반대 투쟁이 시작된다. 주민들은 조직 체계를 만들고 공권력에 맞서 철야 경비조와 지역 대기조를 운영하였다. 500여명 단위로 신민당과 KBS, 영등포 로터리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고 국회의원 선거때는 민정당 후보 낙선 운동을 전개했다. 경인 고속도로를 4번이나 차단했고 서울 시청을 향한 진격 투쟁을 15회 전개했다. 구속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위원회를 만들어 대학 등 집회가 있는 곳마다 찾아가 목동 주민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는지를 알렸다. 또 주민 총회를 통해 자녀들의 등교 거부 투쟁도 벌였다. 이런 시위가 100회 이상 3년이 계속 되었다.

마침내 가옥주들은 무허가 주택의 재산권을 인정 받을 수 있었고 세입자들은 10평 아파트 입주권과 가장 저렴한 비용의 융자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성공에 자극 받아 사당동 지구, 송파 가락 지구, 오금동 지구 등에서도 연대에 의한 철거 반대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역 내에서의 조직화/의식화라는 단계를 거치고 지역간 연대 조직 결성의 형태로 나아갔다. 이렇게 확대 재생산 되가는데는 사실 87년 6월 항쟁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조금만 역사를 뒤적거려보면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주 40 시간 근무라든가, 어린 아이들 과노동 금지같은 지금 보면 적어도 성문법 상으로는 당연히 보장되어 있는 권리들을 획득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고 많은 희생이 따랐는지 찾을 수 있다. 권리는 가만히 있는 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베풀어 지는게 아니다. 자신들이 찾아내고, 그것을 요구하고, 끝내 관철시키는데 성공했을때 권리로써 존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격 시위의 무용성을 지적하고, 노조나 철거민 등의 시위를 보며 그저 돈 좀 더 얻을라고 저리 소란스럽고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오랜 시절동안 중산층에게 상당히 많은 권리를 보장했고 결국 계급간 분화에 성공했었다. 중산층들은 빈민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그것은 내일이 아니며/오히려 방해가 된다라고 생각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자유주의 개혁은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고 덕분에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나의 권리를 보장받는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상류층과 하류층만 존재하던 시절에 비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후 제도권 국가에서 시도된 중산층 포섭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식민지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이러한 허위 의식에 기반한 계급간 갈등 유발 정책은 정말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순수하게 대결 국면에서의 전략적 측면에서 본다면 감탄이 나온다.

시민들의 총합으로써 나라가 만들어진 것 임에도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할 때 '어떤' 시민들의 의견을 경시한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마도 국가의 내가 결국은 옳다라는 선민 의식이거나, 선도하고 싶어하는 욕구의 표출일 것이다.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결국은 선생질을 하고 싶은 것이다. 도시 미화도 아파트 건설도 나쁠 것 없다. 

그리고 만약 지가 상승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거쳐 새로운 재산이 창출된다면 그것도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보호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들도 저들도 시민이고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고 같은 정도로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낭비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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