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리는데 이어폰에서 Aphex Twin이 Reconstruct한 지저스 존스의 'Zeros and Ones'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으면서 만약 내게 장례식 같은 게 주어진다면, 이걸 틀어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러든 말든.
음악을 꾸준히 들어오다 보면 몇 번의 전기를 맞이한다. 어떤 곡을 듣게 되고 이로 인해 음악 감상 생활에 일종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오는 지점이다.
언젠가부터 음악을 소리에 집중해서 들어왔다. 저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다. 스튜디오에서 정제되고 완성된 사운드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락 페스티발 등 대형 공연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데 방해만 되고 무척 피곤하다. 음악을 좋아해도 공연은 별로인 사람도 있는거다. 시위는 별로지만 가투는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너무 떠들석하지 않다면 작은 공연장 정도는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재머스 정도 크기만 되도 힘들었다. 그래서 스톤 로지스가 오든 말든 지산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있더라도 마찬가지일 거 같다. 무리를 한다면 펫 샵 보이스 정도 아닐까. 뉴 오더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리에만 집중하다가 Aphex Twin을 기점으로 소리를 쌓아 올리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뭐가 들리는 지, 뭐가 쌓이고 있는지, 뭘 빼내는지를 듣는다. 심지어 걸그룹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음악 감상 라이프가 엉망이 되었버렸다(영화를 보면서 카메라 워크만 보고 있으면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안 남는 것과 같다). 요즘에는 가능한 넓게 보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잘 안 바뀌는 거 같다. Aphex Twin을 처음 들은 지 거의 15년 쯤 흐른 거 같고, 리차드 디 제임스도 이미 그 시절 애티튜드에서 벗어났을 거 같은데 나만 그물에 걸려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뭐 그렇게 신조처럼 받들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치밀한 인간도 아니고.
어쨋든 Zeros and Ones가 들리면 좋겠다. 귀신이 되어서도 가만히 앉아 진지한 자세로 소리에 집중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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