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5

정서

예전에는 한의 나라, 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실현되지 못하는 게 많지만) 복수의 나라다. 노무현 정권 때는 범 한나라 계열이 노심초사 복수를 다짐했고, 지금 정권 때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하지만 앉아서 한을 쌓고 하는 일은 없다. 댓글로라도 복수의 심정을 푼다.

범죄자에 대한 정서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퇴임 즈음 이후 오랫동안 사형을 실시하지 않고 있지만 능지처참 같은 말이 난무한다. 그냥 댓글이기 때문에 어차피 책임질 일 없으니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범죄자가 사건 재현을 할 때 사람들이 돌을 던져대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영화도 그렇다. 박찬욱의 3부작은 결국 복수를 다루고 있다. 이유가 작든, 크든 무엇이든 한이 쌓이면 나중에 후회하면서도 풀고야 마는 복수의 정서.

복수의 정서가 메인에 올라서 있으니 협상이나 타협이 불가능하다. 나중에 복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역시 합의가 나중에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싶다. 제도가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자력구제의 시도로 표현한다.

예전에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삼성이 선동렬-김응룡 체제일 때 팀 옮기고 이런 문제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당시에 심심해서 신문을 유심히 읽었었다. 당시 선동렬도 그렇고 김응룡도 그렇고 말의 수위가 굉장히 높았었는데 꼭 뒤에 작게 붙이는 말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돌아오면 용서한다.

각자 다들 이유가 있겠지만 패가 확실치 않은데 무리를 해서라도 움직였다면 여러 이유로 반격을 당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완전히 죽일 수 있어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쨋든 다들 돈 벌고 잘 먹고 살자는 프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어차피 서로 얻고 싶은 걸 얻고, 얻기 위해 내놓을 게 있다면 내놓을 뿐이다. 한 손에 다 쥘 수는 없다. 민주주의라는 더 큰 게 걸려있으면 조금 더 민감해 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은 비슷하다. 잘 살자고 하는 짓이고, '잘' 사는 게 뭔지 의견들이 다르면 천천히 조화점을 찾아보는 게 할 일이다.

어차피 생각의 패러다임이 다른데 설득 따위는 불가능한 일이고, 복수의 정서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개종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타협이 중요하고, 타협은 훈련으로 가능해진다. 노르웨이인가 어딘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임금 협상 훈련을 시킨다는데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협상의 스킬들이다.

비지니스의 경우라면 더 유연하다. 사기를 치거나 보스 아래 뭉쳐있는 조직이 아닌 바에야 실로 적 같은 건 없다. 옛 애인이든 집안의 원수든 장사는 가능하다. 어차피 다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이니 잘 먹고 잘 살면 오케이다. 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실 굳이 같이하지는 않겠지만 덩치가 커지면 그것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강용석 전의원이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든 사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타짜에서 아귀가 장이냐 사쿠라냐를 놓고 손목을 묶던 장면이 생각났다. 하지만 정말로 사쿠라였는데 결론적으로 이번에는 함마를 내려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방향을 틀었다. 오늘 변희재, 강용석 등등이 무슨 공개 방송을 한다는 포스터를 봤는데 뭔가 방법을 찾겠지. 선거에 나올 거 같기도 하다.

물론 범죄, 준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고 그들은 형법과 상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갈 일이다. 이렇게 말 하면서 쓰다보니 하도 독점욕에 사로잡힌 자들이 많아 참 갈 길이 멀다는 게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가야할 길이 아닌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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