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7

7인의 사무라이를 보다

그러니까 예전에 학교에서 영화 감상 모임같은 걸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보고 나서 감상문 같은 걸 써서 같이 읽고 뭐 그런 거를 했었다. 1학년 때였나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오픈 시티(무방비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데, 1945년에 그걸 봤으면 또 모르겠지만 20세기 말에 그런  걸 봐봐야 네오리얼리즘이니 뭐니 사실 알게 뭐냐. 그래서 틀에 박힌 내용이라고 잔뜩 욕을 하고 분량이 너무 작아서 황지우였나 이윤재였나 시 하나 적어 냈다가 뭐 좀 싸우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뭐 무식했으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7인의 사무라이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다른 고전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7인의 사무라이도 이야기의 프로토타입 중에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따져보면 그것 역시 변주지만 그 이후로도 수도 없이 변주되고, 인용되고, 활용되고 있다. 지금봐도 스토리는 빈틈없이 꽉꽉 들어차 있다. '고전'이라는 이름에 손색 없게 밀도감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대여섯번 쯤 본 거 같은 이 영화에서 뭔가 새로운 걸 얻을 건 없다. 다시 볼 때마다 '발견'을 한다기 보다는 더 익숙해지고 숙지하게 된다.

예전에는 누군가 고전을 왜 읽어야 하나 하는 질문에 그다지 좋은 답이 없었다. 나 역시 위에 오픈 시티 이야기 때도 그랬지만 이 닳도록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다시 볼 이유가 있나라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뭐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느니, 양식이 풍부해진다느니 어쩌고 하지만 말했듯이 그런 거 알게 뭐냐. 그렇지만 당시에 이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면서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답은 간단하다.

농담을 하고 농담을 알아듣기 위해서, 인용을 하고 인용을 알아듣기 위해서 고전을 읽고 본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예전 프로토타입을 가져다 농담들을 정말 많이 해댄다. 하지만 원본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활용을 하거나, 활용된 예를 만나게 되면 그다지 유용하게 반응할 수가 없다.

당시에 (글자로 배운) 브레히트적인 관점을 (실제로 본) 우디 알렌 영화에 가져다 대려다가 실수를 했었고, 그런 실수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고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사실 좀 더 실질적으로는 농담(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무척 광범위하게 활용한다)을 알아듣기 위해 고전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 읽어놓을 거면 좀 더 자세하게 치밀하게 읽어놔야 한다. 언제든지 농담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사실 7인의 사무라이를 보면서 수호지나 황야의 무법자 같은 걸 본 적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둘을 봤다면 약간은 더 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를 봤다면 이후에 나온 영화들을 보면서 역시 약간은 더 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예전에 아카데미 시상식할 때 처음에 여러 역사적 명화들이 슈르륵 지나가는 데 그 화면 맨 앞인가에 오픈 시티가 나온다. 내가 오픈 시티로 실질적으로 얻은 건 어떻게 생각하면 그거 하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하고 화면이 죽 나오는데 어, 오픈 시티잖아? 한 거 그거 하나다. 뭐 당시에 나름 투덜거리며 열심히 본 게 체화되어 뭔가 더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게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어쨋든 재밌는 게 조금이라도 더 많으면 더 좋잖아.

댓글 2개:

  1. 방금 7인의 사무라이를 보고 검색해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그냥 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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