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8

enough

근 한 달 동안 미뤄놓았던 영화를 봤고, 미뤄놓았던 음악을 들었다. 며칠은 집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푸른 소금을 보면서 이젠 됐다 싶었다. 예상대로 꽤 한심했지만 푸른 소금 맨 마지막은 마치 꿈 같다.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아마도 기쁠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제는 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정도 깜냥에 이 정도 보고, 듣고, 읽었으면 이제 충분하다. 별로 기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억울하지도 않다. 별로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서럽지도 않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 있지만, 앞으로 딱히 무슨 수가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그들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건 아니다. 이런 삶이 있고, 저런 삶이 있다. 누구는 완주를 하고, 누구는 달렸지만 꼴등을 하고, 누구는 포기를 하고, 누구는 달리고 싶었지만 넘어진다. 다들 저마다 사연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 고통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원하고, 누군가는 이 고통 속에서 이제 편안해진다.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자에게 행복을 기원하고 싶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편안해진 자에겐 이제 원하는 걸 쥘 수 있을테니 함께 기뻐하겠다. 아무도 60억 모두의 사연을 챙길 수 없다. 한 동안 기도를 했다. 비록 종교 집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어쨋든 한 번도 유신론자가 아닌 적은 없다. 무엇이든 답을 원했고, 확신을 하진 못하겠지만 아마도 답을 얻은 것 같다. 延期가 인생에서 의미를 가지는 때는 단 한 순간도 없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편안하다. 이 글자들은 이윽고 剝製가 될 것이다.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걱정마세요.

She & Him의 Volume Two를 듣다

She & Him은 Zooey Deschanel과 M.Ward가 함께 하는 듀오 밴드다. 데샤넬은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와 우크렐레를 연주한다. 워드는 기타를 치고 전반적인 프로듀스를 한다. 2006년 부터 시작했고, 그 동안 3장의 풀 음반을 냈다. Volume One(2008), Volume Two(2010), 그리고 A Very She & Him Christmas(2011)라는 홀리데이 음반이다. 정규 음반은 두 장이라 할 수 있는데 크리스마스 음반도 캐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벤트 성이기는 해도 정규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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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 데샤넬은 배우로 유명하기도 하고, 여기서도 몇 번 이야기 한 적 있으니까 배우 쪽 이야기는 생략하고, 음악 쪽 이야기만 하자면 : 원래는 데샤넬이 솔로 음반을 만들고 있었고, 워드가 그걸 프로듀스를 하고 있었는데 뭔가 잘 맞았는지 차라리 듀오를 하자,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첫번째 음반을 내던 2008년 데샤넬은 Death Cab for Cutie라는 밴드(잘 모르는데 정규 음반만 7장이다)의 리더 Ben Gibbard와 사귀고 있었는데, 2009년에 결혼했고 2011년에 이혼했다.

 

M. Ward는 이름이 매튜 워드. 포크 기반의 음악을 하고 있고 1999년에 첫번째 음반 Duet for Guitars No. 2가 나왔고 꾸준히 풀 음반을 내놓고 있다. 총 8장이다. 그리고 She & Him을 하고 있고,  Monsters of Folk라는 프로젝트도 있다. She & Him에서는 약간 더 프로듀싱에 힘을 쏟고 있다. 그냥 포크에 멈추지 않고 곡들을 좀 더 플루언트하게 덧칠한다.

타스캠의 포트랙 레코드들고 다니며 거의 모든 곡의 작곡 스타트를 이걸로 한다. 깁슨 기타의 스폰서를 받고 있는데 Johnny A 시그내처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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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밴드다. 인기 연예인과 프로듀서 조합의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는 그룹이라면 당장 생각나는 건 UV다. 인기 연예인의 후광을 아무래도 보고 있다는 점, 또한 그것 때문에 약간 무시받는 점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점, 하지만 굉장히 힙스터의 기대에 부흥하고 있다는 점, 어쨋든 나름 꽤 진지하고 전략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면에서 거의 비슷한 구조라 할 수 있다.

 

She & Him의 두번째 스튜디오 음반인 Volume Two는 일본, 미국, 영국 순으로 출시되었다. 거의 모든 곡을 주이 데샤넬이 만들었고 보컬과 가사가 기본적인 틀을 잡으면서 가고, 거기에 워드의 다양한 데코레이트가 첨가되는 식으로 가고 있다.

투박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꽤 풍부한 어레인지가 붙으면서 그닥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60년대 포크, 컨츄리 풍이 짙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좋은 조합이다. 그리고 한 우물을 생각보다 깊게 파고 있다. 모든 곡들이 OST 처럼 들린 다는 건 좀 문제다.

무려 '군무'가 나오는 음반의 첫번째 싱글 In the Sun의 뮤직 비디오도 인상적이지만, 오늘은 음반 첫번째 곡이자 두번째 싱글인 Thieves.

In the Sun이 궁금하면 http://youtu.be/pZ3cTwI9bIw

20120227

핸섬 슈트를 보다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츠카지 무가 이외에는 없다. 드렁크 드래곤의 이 아저씨는 사실 개그도 고만고만한 라인을 달리고 있고, 영화도 고만고만한데 그 억울한 표정이 왠지 정이 간다. 더구나 이 사람이 나오면 여배우가 예뻐보이는 특수 효과도 있다.

이 사람 나오는 영화를 두 편 봤는데 하나는 사와지리 에리카였고, 이번에는 키타가와 케이코다. 그러고보니 키타가와가 마미야에도 나왔었구나. 이 대단한 능력과 그것을 알아보는 자들이 만들어낸 필모그래피.

별 생각없이 봤는데, 역시 이에 보답하듯 별 생각없는 영화. 화면이 참으로 화사한게 이번 시즌 모스키노 Cheap & Chic에 나왔던 그런 색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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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모스키노 칩 앤 칙은 대충 이런 느낌.

도모토 쿄다이의 톰도 나오고, 모리삼중의 오오시마도 나오고, 드렁크 드래곤의 다른 콤비 스즈키 히로시도 잠깐 나오고, 바나나망의 히무라, 마지막에 노래부르는 토모치카 등등 버라이어티 게닌들이 꽤 출연하는 잔재미 정도.

유&아이 1회를 보다

정재형과 이효리가 진행하는 유&아이 1회를 보다. 예전 이소라, 윤도현의 프로포즈, 요즘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심야 음악 방송이다. 예능 방송 1회에 흐르는, 아무리 백전 노장들이 나와도 아직 안정되지 않은 그 특유의 어색한 기류가 만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묘한 재미가 있다.

이효리 같은 경우에는 오래간 만에 출연이기는 하지만 나름 버라이어티 백전 노장인데 보고 있자니 옛날 쟁반 노래방 신동엽하고 처음 했을 때(처음에는 정말 말이라고는 신동엽이 하는 말에 예, 예 하는 거 밖에 없었다)가 생각났다. 익숙해지고 나서야 발동이 걸리는 타입인가 싶기도 하고.

어쨋든 이런 방송을 시작하면서 1회 첫번째 게스트가 UV라는 건 나름 신선했다. 이효리가 트랄랄라 뮤비에도 나오고, 정재형도 Who am I(그건 유희열도 나와서 좀 그런가)도 했으니까 뭐라도 좀 할까 싶었는데 그닥 특별한 건 없었다.

이외에 첫회 출연자는 아이유, 루시드폴, 강풀. 정재형-이효리도 몇 곡 불렀다. 아이유는, 매번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게, 21세기 한국이 원하고 바라는 인간 군상은 저런 모습인건가 싶다. 보아와는 다르다.

TV로 본거라 정확히 말하긴 그런데 문제는 소리. 소리를 마치 공연장 관중석에서 그냥 녹음해 버린 듯 확확 퍼진다. 불후의 명곡 초반에서도 그랬던 거 같은데 설마하니 大 KBS의 제작진들인데 실수나 그런 건 아닐테고 현장음을 보다 살릴려는 의도였다면 뭔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음악 방송인데 그거 좀 아쉬었다.

7인의 사무라이를 보다

그러니까 예전에 학교에서 영화 감상 모임같은 걸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보고 나서 감상문 같은 걸 써서 같이 읽고 뭐 그런 거를 했었다. 1학년 때였나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오픈 시티(무방비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데, 1945년에 그걸 봤으면 또 모르겠지만 20세기 말에 그런  걸 봐봐야 네오리얼리즘이니 뭐니 사실 알게 뭐냐. 그래서 틀에 박힌 내용이라고 잔뜩 욕을 하고 분량이 너무 작아서 황지우였나 이윤재였나 시 하나 적어 냈다가 뭐 좀 싸우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뭐 무식했으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7인의 사무라이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다른 고전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7인의 사무라이도 이야기의 프로토타입 중에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따져보면 그것 역시 변주지만 그 이후로도 수도 없이 변주되고, 인용되고, 활용되고 있다. 지금봐도 스토리는 빈틈없이 꽉꽉 들어차 있다. '고전'이라는 이름에 손색 없게 밀도감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대여섯번 쯤 본 거 같은 이 영화에서 뭔가 새로운 걸 얻을 건 없다. 다시 볼 때마다 '발견'을 한다기 보다는 더 익숙해지고 숙지하게 된다.

예전에는 누군가 고전을 왜 읽어야 하나 하는 질문에 그다지 좋은 답이 없었다. 나 역시 위에 오픈 시티 이야기 때도 그랬지만 이 닳도록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다시 볼 이유가 있나라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뭐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느니, 양식이 풍부해진다느니 어쩌고 하지만 말했듯이 그런 거 알게 뭐냐. 그렇지만 당시에 이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면서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답은 간단하다.

농담을 하고 농담을 알아듣기 위해서, 인용을 하고 인용을 알아듣기 위해서 고전을 읽고 본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예전 프로토타입을 가져다 농담들을 정말 많이 해댄다. 하지만 원본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활용을 하거나, 활용된 예를 만나게 되면 그다지 유용하게 반응할 수가 없다.

당시에 (글자로 배운) 브레히트적인 관점을 (실제로 본) 우디 알렌 영화에 가져다 대려다가 실수를 했었고, 그런 실수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고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사실 좀 더 실질적으로는 농담(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무척 광범위하게 활용한다)을 알아듣기 위해 고전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 읽어놓을 거면 좀 더 자세하게 치밀하게 읽어놔야 한다. 언제든지 농담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사실 7인의 사무라이를 보면서 수호지나 황야의 무법자 같은 걸 본 적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둘을 봤다면 약간은 더 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를 봤다면 이후에 나온 영화들을 보면서 역시 약간은 더 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예전에 아카데미 시상식할 때 처음에 여러 역사적 명화들이 슈르륵 지나가는 데 그 화면 맨 앞인가에 오픈 시티가 나온다. 내가 오픈 시티로 실질적으로 얻은 건 어떻게 생각하면 그거 하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하고 화면이 죽 나오는데 어, 오픈 시티잖아? 한 거 그거 하나다. 뭐 당시에 나름 투덜거리며 열심히 본 게 체화되어 뭔가 더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게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어쨋든 재밌는 게 조금이라도 더 많으면 더 좋잖아.

500일의 섬머를 보다

500일의 섬머를 봤다. 고만고만한 로맨틱 코미디겠지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쥬이 드샤넬(히치하이커와 더 해프닝, 그리고 밴드 She & Him), 500일의 섬머에 관련된 리뷰(ㅎㅈㅇ이 쓴 것)를 차례대로 마주치면서 주말을 이용해 보게 되었다.

영화는 쏠쏠한 잔재미들이 있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였다. 내러티브에 집중하면서 뭔가 덜컥- 하는 걸 바랬는데 그런 것 까지는 없었다. 조셉 고든 레빗의 표정은 좀 웃겼고, 중간에 베르히만 영화로 장난친 거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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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쥬이 드샤넬(Zooey Deschanel). 입을 다물고 있을 때 표정, 동작을 멈추는 순간까지의 몸의 움직임, 목소리, 그리고 뭔가 응시할 때 눈빛 다 좋다. 좋아하는 인간 군상이 워낙 많기는 하지만 쥬이 드샤넬 역시 그 리스트에 들어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쥬이 드샤넬을 만나고 싶다/혹은 쥬이 드샤넬 같은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보다는 쥬이 드샤넬이 되고 싶다에 조금 더 가깝다.

20120225

정서

예전에는 한의 나라, 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실현되지 못하는 게 많지만) 복수의 나라다. 노무현 정권 때는 범 한나라 계열이 노심초사 복수를 다짐했고, 지금 정권 때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하지만 앉아서 한을 쌓고 하는 일은 없다. 댓글로라도 복수의 심정을 푼다.

범죄자에 대한 정서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퇴임 즈음 이후 오랫동안 사형을 실시하지 않고 있지만 능지처참 같은 말이 난무한다. 그냥 댓글이기 때문에 어차피 책임질 일 없으니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범죄자가 사건 재현을 할 때 사람들이 돌을 던져대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영화도 그렇다. 박찬욱의 3부작은 결국 복수를 다루고 있다. 이유가 작든, 크든 무엇이든 한이 쌓이면 나중에 후회하면서도 풀고야 마는 복수의 정서.

복수의 정서가 메인에 올라서 있으니 협상이나 타협이 불가능하다. 나중에 복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역시 합의가 나중에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싶다. 제도가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자력구제의 시도로 표현한다.

예전에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삼성이 선동렬-김응룡 체제일 때 팀 옮기고 이런 문제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당시에 심심해서 신문을 유심히 읽었었다. 당시 선동렬도 그렇고 김응룡도 그렇고 말의 수위가 굉장히 높았었는데 꼭 뒤에 작게 붙이는 말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돌아오면 용서한다.

각자 다들 이유가 있겠지만 패가 확실치 않은데 무리를 해서라도 움직였다면 여러 이유로 반격을 당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완전히 죽일 수 있어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쨋든 다들 돈 벌고 잘 먹고 살자는 프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어차피 서로 얻고 싶은 걸 얻고, 얻기 위해 내놓을 게 있다면 내놓을 뿐이다. 한 손에 다 쥘 수는 없다. 민주주의라는 더 큰 게 걸려있으면 조금 더 민감해 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은 비슷하다. 잘 살자고 하는 짓이고, '잘' 사는 게 뭔지 의견들이 다르면 천천히 조화점을 찾아보는 게 할 일이다.

어차피 생각의 패러다임이 다른데 설득 따위는 불가능한 일이고, 복수의 정서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개종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타협이 중요하고, 타협은 훈련으로 가능해진다. 노르웨이인가 어딘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임금 협상 훈련을 시킨다는데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협상의 스킬들이다.

비지니스의 경우라면 더 유연하다. 사기를 치거나 보스 아래 뭉쳐있는 조직이 아닌 바에야 실로 적 같은 건 없다. 옛 애인이든 집안의 원수든 장사는 가능하다. 어차피 다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이니 잘 먹고 잘 살면 오케이다. 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실 굳이 같이하지는 않겠지만 덩치가 커지면 그것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강용석 전의원이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든 사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타짜에서 아귀가 장이냐 사쿠라냐를 놓고 손목을 묶던 장면이 생각났다. 하지만 정말로 사쿠라였는데 결론적으로 이번에는 함마를 내려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방향을 틀었다. 오늘 변희재, 강용석 등등이 무슨 공개 방송을 한다는 포스터를 봤는데 뭔가 방법을 찾겠지. 선거에 나올 거 같기도 하다.

물론 범죄, 준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고 그들은 형법과 상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갈 일이다. 이렇게 말 하면서 쓰다보니 하도 독점욕에 사로잡힌 자들이 많아 참 갈 길이 멀다는 게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가야할 길이 아닌 건 아니다.

20120223

20120223, 산책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발바닥에서 뿌리가 나와 장승이 되겠다 싶어(사실 이게 그다지 나쁜 선택지는 아니지만), 점퍼와 모자를 챙기고 산책에 나선다. 날이 많이 풀렸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생각처럼 따뜻하지는 않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부실하게 옷을 챙긴 탓도 있다.

카메라를 챙겨서 나갔지만 차마 남의 삶의 일부에 렌즈를 가져다 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무생물과 자청해서 나선 자가 아니면 찍지를 못하니, 역시 사진가가 될 운명은 아니다.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다. 기록은 하지 못하지만 기억은 하자고 마음 먹는다.

개천과 슬래트 지붕, 합판 벽과 조악한 붉은 벽돌, 돌이 박혀있는 회색 시멘트들, 육중한 철제 대문과 이층 양옥집. 재래식 시장과 수도물을 사용했다고 광고하는 목욕탕. 한자로 적혀있는 미용실과 훌라후프가 걸려있는 문방구. 창문과 벽, 골목마다 먼지가 잔뜩 들어차 있는 게 예전과 다를 뿐이다.

길게 늘어선 시장과 신경질적인 트럭 운전수의 목소리가 서서히 뒤로 밀리더니 이윽고 거리는 좀 더 조용해 지고 잘려진 대리석 벽으로 장식된 이층 양옥집은 좀 더 거대해진다. 하지만 모든 것들은 이미 낡았다. 거대한 굴뚝이 서 있는 80년대 풍 아파트 단지를 지나 길 하나를 건너고 나니 입구에 차단기가 설치된 뉴타운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공원을 지나 좀 더 걸어가니 롯데 캐슬이 보인다.

단 30분을 걸었는데 1960년대부터 2010년(은 아니고 평균적인 서울의 풍경을 고려하면 2000년 정도 쯤 되겠다)까지의 압축된 뷰가 펼쳐진다. 사람들을 데려다 서울 주거지 역사 투어를 시켜주고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여기도 재개발이 확정되었고 늦어도 3, 4년 안에 다 사라질 동네다. 나처럼 거처를 찾지 못했고 찾을 수도 없는 자들은 또 떠돌이가 되겠지.

어둑해지면서 다시 집에 들어온다. 배가 고프다. 괜히 움직였나보다.

Inglourious Basterds를 보다

우리나라 제목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이었다.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는 거 정도 말고는 역시나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봤는데 2차 대전 시대물일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시작하자마자 1941년 뭐 이런 이야기 나오길래 약간 놀랐다.
영화는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시시했다. 이건 뭐 -_-
가장 좋았던 건 크레딧, 폰트도 예쁘고 배경 음악도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고르자면 브래드 피트의 액센트. 예전에 말했듯이 영어도 잘 못하는 주제에 사투리, 액센트 이런 거에 민감한데 극중에서 보면 브래드 피트(알도 중위)는 테네시주 매리빌 출신이다.
보나마나 경치가 기가 막히고 따뜻하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동네겠지 싶어 좀 찾아봤다.
테네시도 철자가 웃긴데 Tennessee다. 연속으로 n 두개, s 두개, e 두개. Mississippi에 뒤질 게 없다. 매리빌은 Maryville이다. 일단 궁금한 동네가 나오면 찾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 미쉐린 타이어에서 나온 두꺼운 미국 국도 지도가 있었는데 이사다니다가 없어져서 아쉽다. 이런 식으로 사라진 게 하도 많아서 그런지 창고가 있는 집에서 천년 만년 사는 게 괜찮은 삶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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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고 싶으면 http://g.co/maps/mrhr7
캡쳐는 잘 안보이지만 가운데 빨간 풍선 A가 매리빌이다. 이런 거 볼 때 산과 강이 어디있는지 생각하면서 저기는 어떤 곳일까 생각한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렉싱턴, 서쪽으로는 내쉬빌, 남쪽으로는 아틀란타가 비슷한 거리 즈음에 놓여있다. 오른쪽으로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라레이가 있다.
여의도 다섯 개 정도 되는 크기에 인구는 2만 7천명. 바로 아래 초록색은 Green Smoky Mountains 국립 공원이라는 곳으로 2천 미터 정도되는 산이다. 바로 위에 흐르는 강은 테네시 강의 지류 중 하나인 리틀 테네시다. 백인이 94%, 흑인이 3%로 대충 풍경이 그려지는 동네다.
그래도 19세기 초반 Abolitionism(노예 제도 폐지론)의 중심지였고, 남부 연합군이 도시에 침입해 왔을 때 Polly Tool이라는 아프리칸-아메리칸 노예 덕분에 도시의 여러 기록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성공해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미국 도시는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신기한게 설립일이 있다. 매리빌은 1795년 7월 11일에 만들어졌다. 뉴욕은 네덜란드 식민지였다가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이름이 뉴욕으로 바뀌었는데 그게 1664년 9월 9일이다.
영화가 그닥이어서 그런지, 이런 거만 열심히 찾았다.

20120222

SIN CITY를 보다

프랭크 밀러의 만화 신 시티는 예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다. 만화의 경우 편집, 그러니까 그림 사이의 텀에 민감한 편이다. 리듬감이 몸에 잘 익는 만화들이 있고, 아무리 봐도 낯선 만화들이 있다. 이건 버릇인데,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음악에서나 그런 걸 빨리 찾아내려고 하고, 익숙해지려고 한다.

예전에 장정일이 진짜로 소설을 읽는다는 건 하루 밤 새에 몰두해서 읽어 치우는 것이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리듬이 몸에 익고, 아직 남아있을 때 해치워야하고, 늘어지면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고 아무 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에 이것 저것 보는 건 잘 못한다.

미국 만화책 같은 건, 리듬감이 참 어렵다. 영 어색하다. 특히 슈퍼맨, 배트맨 같은 액션물의 경우 굉장히 화려하지만, 이야기가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신 시티도 비슷했다. 보고, 또 보고, 자꾸 보고 해도 이게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하면서 자꾸 앞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어제 본 건 만화는 아니고 영화다. 이제 영화는 그만 봐야지, 해놓고 밤에 역시 잠이 안 오는 구나 하면서 뒤적거리다가 뒤끝이 없을 거 같은 기분에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브리태니 머피를 꽤 좋아한다.

로드리게즈는 영화 자체도 미국 만화처럼 띄엄 띄엄한 경향이 있다. 퀀틴은 차곡차곡 하진 않아도 배치가 세심한데, 그런 것도 없다. 보고 있으면 뭉텅, 뭉텅, 뭉텅이 계속되는 기분이다. 그냥 평범하게 영화화 했어도 로드리게즈가 했으면 아마 만화같은 기분이 들었을 거 같은데, 이건 그냥 아예 만화처럼 만들어 버렸다. 나쁘지 않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을 안 봤는데 이거나 볼까 싶다. 이런 건 불꺼진 방에서 혼자 보면 바보같기는 한데. 블러드 심플이나 허드서커 프록시, 레이디 킬러 같은 걸 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조금 있다. 이거 리스트가 너무 길어지기만 하는데.

하나비를 보다

여튼 이 영화는 깝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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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영화들이 대개 그러하듯 볼 때 마다 앞뒤 꽉꽉 막힌 듯이 깝깝해지는데(인생도 깝깝한데 영화마저 여기에 수저를 얹으면 곤란하다), 얼마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파란톤 가득한 화면과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들과 묵묵한 기타노 다케시 얼굴만 남는다.

또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잊혀지고 '하나비'하면 파랬던 화면만 생각나고, 기타노 다케시와 선글라스 자리는 호킨족 때 검정 테입 눈썹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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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아카시아 산마.

어느날 문득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잔잔함이 생각나 다시 소나티네나 자토이치 같은 걸 보고 나면 또 다시 음울함이 기어오른다. 이건 뭐 눈 돌리면 잊어버리는 빙닭과 다를 바가 없다.

코미디빅리그 시즌1 7회, 옹달샘. 전설의 빙닭.

20120221

20120221, 베로니크

1.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다. 베로니카 : 두개의 삶, 이 정도가 맞다고 하는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졌다. 예전에 극장 개봉했을 때랑 비디오에는 二重生活이라고 크게 한자로 적혀있었다. 당시에 야한 영화인 줄 알고 보러갔다가 사람들이 항의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냥 혼자 생각할 때는 베로니카, 베로니크라고 부르고 있다. Weronika/Véronique.

처음 이 영화를 본 게 비디오 복사판이였는데 화면도 엉망인데다가, 하도 많이 짤려있는 상태에서 이렌느 야곱은 뭐가 좋은 지 계속 싱글벙글한 얼굴로 알쏭달쏭한 말만 해대고, 내용은 하나도 연결이 되지 않아 클립 사진만 띄엄띄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폴란드의 유명 감독이라는 키에슬로부스키가 아방가르드 같은 거 만드는 감독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약간의 supernatural한 분위기가 뒤에 깔려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다시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렌느 야곱은 20대 초반에 찍은 이 영화에서 여전히 싱글벙글하며 자폐증에 빠진 소녀처럼 소소한 민폐를 끼친다(영화에서 좋게 봐서 그렇지 주변에 저런 분 있으면 난처할 타입이다).

1966년생으로 박중훈, 변집섭 같은 분하고 동갑인데 요새 뭐 하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일년에 한 두편 씩은 꾸준히 영화나 드라마를 찍고 있다. 출연작은 대중 없는 듯. 2008년에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The Dust of Time에 출연했었고, 가장 최근작은 2010년에 찍은 Rio Sex Comedy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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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Rio Sex Comedy 프리미어 때 사진이다. 웃는 모습이 어제 봤던 영화에서 모습 그대로네.

 

2. Miss A의 Touch의 후렴구 부분을 듣다보면 예전 2pm, 원더걸스와 유사한 멜로디 라인이 발견된다. 그냥 들으면 곡 속에 섞여서 잘 안 들리는데 Newport Mix라고 보너스로 들어있는 걸 들어보면 티가 많이 난다.

표절 운운하는 게 아니라 이게 다 박진영의 곡들인데 좋아하는 멜로디와 곡 패턴이 정해져 있고, 그걸 너무 한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걸 트레이드 마크 비슷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러기에는 그 운신의 폭이 좀 좁다.

하지만 이건 그냥 유행을 따라가다 어쩌다일 수도 있는게 엠블랙의 전쟁이야를 듣고 이것 또한 범 JYP 풍의 노래군 했는데 작곡이 이단옆차기였다. 미료 솔로의 DIRTY도 이단옆차기다. 이단옆차기는 기억에 작곡팀이었다.

 

3. 감정이 앞서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서 논리실증주의 책들도 읽고, 냉정히 생각하고 쓸데없는 말들은 안 남기기 위해 애써보는데 영 안된다. 어차피 그런 사람이었나. 여튼 유행가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4. 영화는 당분간 그만 봐야겠다. 코너에 몰린다고 필요없는 감정 소모를 지속하는 건 문제다. 뭘 좀 가져다 팔기라고 해야 될 텐데 팔 게 없다는 게 에러. 어차피 이렇게 흘러가는 것.

 

5. 케이팝 스타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게, 이 변방의 블로그에 이 전 미스에이에 대한 포스팅이 엄청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트래픽이 전 세계에서 생긴다. 이게 다 구글 번역기 덕인 건가.

20120220

미스에이의 Touch를 듣다

이제 3년차를 향해 다가가는 그룹(2010년 7월 1일 데뷔, 라이벌이라 할 2ne1, f(x), 시크릿, 포미닛, 티아라, 애프터스쿨 모두 2009년 데뷔)에게 이렇게 말하는 건 이상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와는 음악 풍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소녀시대-f(x), 원더걸스-미스에이 이런 구도도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없기도 하고, 그 이후도 꽤나 많은 걸 그룹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후발 주자의 느낌도 없다. 잘 나가는 걸그룹은 우리나라에 들어올 시간도 없고, 국내에서는 후크송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고, 걸 그룹의 시대도 슬슬 끝나가고 있다. 그런 만큼 이제 이들이 내놓는 곡들은 걸그룹 시대의 후광없이 제 발로 살아남아야 한다.

요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스케, 위탄에서는 시종 일관 남자들이 강세인데 정작 3대 회사 제작자들과 프로듀서가 참여하는 K팝스타에서는 완연한 여성 강세라는 점이다. 박지민, 백아연, 이하이, 이미쉘, 김나윤 거기다 이정미까지 프로그램의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미스에이는 페이와 지아의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고, 그런 만큼 그룹으로써 발란스가 좋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분명 도발적이었는데 Love Alone을 기점으로 뭔가 달라졌다. 덤벼봐~ 하던 느낌은 한풀 죽었고 그 상태로 정돈되어졌고, 세련되어졌다. EP에 실린 6곡 모두가 부드럽게 넘어가고 부드럽게 착지한다. 그런 만큼 Breathe나 Bad Girl Good Girl 같은 재미는 없다. 하지만 항상 그들 노래 저 너머에 놓여있는 애틋함이 좋고, 그래서 나는 미스에이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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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h M/V의 춤은 정말 보기 좋았다. 좀비 식 움직임이랄까... 사족들은 다 빼버리고 춤 추는 것만 나오는 M/V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Resident Evil : Afterlife를 보다

레지던트 이블 : 애프터라이프(2010)을 보다. 이건 뭐, 정으로 계속 보는 거다. 맨 마지막에 Sienna Guillory가 잠깐 등장하면서 다음편을 예고하며 끝이나는데, 2012년 9월 14일 개봉 예정인 Resident Evil : Retribution에서 아마 시에나가 정신을 차리고 앨리스랑 같이 좀비를 때려 부수는 식으로 전개될 거 같다. 다음 편도 감독은 폴 W.S 앤더슨이다.

공포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좀비물은 그닥 거부감이 없다. 뭐 물려봐야 좀비 되는 거고, 그러면 꾸웩 꾸웩 소리나 지르면서 돌아다니다가 머리 날라가면 또 죽는 거고. 생과 사 사이에 중간 단계가 있다는 안락함이랄까, 안정감이랄까.

Afterlife는 의외로 좀비와의 싸움이 별로 없다. 어쨋든 앨리스가 다시 인간이 되었으니 눈 반짝하면 다 날라가고 이런 건 이제 못보게 될 거 같아 아쉽다.

 

이 이야기는 그만 하고, 어제 구로사와 아키라 '란'에서 쓸려다가 빼먹은 이야기나 하나 해보자면

4. 역사물 전투신을 보면 속절없이 끌려와 뭐가 뭔지 모르고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이 나온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 시절에 태어났다면 저 속에서 뭔지도 모르고 우왕 좌왕하다가 창에나 찔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삼국지 같은 소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삼국지도 결국은 엄한 인간들이 대의가 어쩌구 떠드는 덕분에 수백만 씩 되는 백성들이나 죽어가는 이야기다.

이상하게 현대물에서는 그런 감정이 약간은 덜한데(없는 건 아니지만) 시대극에서는 훨씬 심하다. 농사나 짓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내가 이리 못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사극에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가끔 나오는데 역시 속절없이 끌려가 온갖 고생은 날로 하다가 죽어가는 말들이 잔뜩 등장한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란'에서 말을 1,000마리인가 공수했다는데 초원이고 강이고 여튼 고생은 직싸게 한다.

여튼 말이라는 동물은 무슨 천형을 지었길래 그리 고생 중인지 마음이 아프다. 남 좋으라고 하루밤 1,000리씩 뛰고, 항우는 자기나 죽지 말은 왜 죽이는 거고, 김유신도 지가 잘못해놓고 말 탓이나 하고. 더구나 말은 유난히 슬프게 생겼다.

원당에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말 목장이 있는데 거기에 말의 하루 일과가 그림으로 나와있다.
6~8시간 : 서서 쉬기
1시간 : 누워서 쉬기
30분 : 물 마시기
나머지 : 배회하며 풀 뜯기

이렇게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는 평화로운 애들을 그 고생을 시키다니.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보다

예정했던 대로 란(乱)을 보다. 1985년 작. 얼마 만에 다시 본 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아저씨 영화는 정말 힘이 넘친다. 한참 보다보면 배우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는 방화가 생각나서 그닥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이 정도 되면 질질 끌려가게 된다.

이제와서 이 영화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건 하나마나 할 거 같고 그냥 문득 들었던 자그마한 생각들만 몇 가지 나열해 본다.

1. 구로사와 아키라는 黒澤明이니까 쿠로사와가 맞을 거 같은데 어디서나 구로사와로 부르고, 2010년 100주년 기념 영화제 때도 공식 영화제 명이 구로사와 아키라였었다.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한데 여튼 구로사와 아키라하는 게 더 어울리기도 하다. 박력이 넘친다.

2. 도대체 이 들판만 가득있는 산들이 널려있는 곳이 어디일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쿠마모토 현에 있는 아소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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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모습. 1,592m의 화산산으로 안 가봤지만 아소 온천 유명하다. 이 외에 첫번째 성은 히메지, 두번째 성은 구마모토 성이다.

3. 음양사에 나온 세이메이(노무라 만사이)가 대체 어디에 나온다는 건가하고 유심히 봤는데 못 찾았다. 알고 봤더니 스에의 동생 역할인 츠루마루(피리 가져다 달라고 했다가 다 죽이고 결국 최후의 생존자가 된)였다. 얼굴도 잘 안 나오니 몰랐지. 당시에는 이름이 노무라 타케시였다.

이름이 바뀐 이유는 복잡하다. 자세한 내용은 이즈미류에 대한 위키피디아(링크)를 참고. 이즈미류에 대해서는 나중에 심심하면 한 번 정리하기로 하고, 어쨋든 노무라 만사이는 일본 전통 예능 중에 하나이고 일본 무형 문화제이자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인 노가쿠 보유자다.

노가쿠에는 시테(주인공), 와키(시테의 생각을 드러내주는 역할), 피리, 소고, 대고, 북, 희극 등등이 들어가는데 이 중 이즈미류는 희극의 계승 분파 중에 하나다.

20120217

영화 음양사 2를 보다

1이 2000년에 나왔는데 2는 2003년이다.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연 2명,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에게서 세월의 흔적이 조금 많이 느껴진다. 1에 비해서 CG같은 게 좀 볼만해졌고 스케일도 크다.

하지만 과거/요괴도 같이 사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화면에 뭔가 색이 덧칠해져있고 그 때문에 아무리 넓은 곳을 보여줘도 어딘가 답답하다. 일본 공기 색(이걸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나라마다 색감이 다르다, 이런 거에 좀 민감하다)이 예뻐서 좋아하는데 그 부분이 조금 불만이었다.

역시 등장 인물도 내용도 전혀 모르고 봤는데 후카다 쿄코가 나와서 또 놀랐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의 그 머리 스타일이라는 건 아무리 후카쿙이어도 그렇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발음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사극하고는 좀 안 맞는 거 같은데(참고로 이 여자는 가히 연애의 신으로, 수많은 남성 편력이 있지만 그게 이미지나 인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종종 캐스팅되는 게 신기하다.

세이메이 역을 맡은 노무라 만사이가 후반부에 아라테미스를 만나기 위해 무녀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가히 '열연'을 펼치는데 너무 열연이어서 내가 다 부끄러웠다.

이걸로 음양사는 이제 치운다.

20120216

의지와 필요

http://foog.com/11553/

푸그 닷컴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그래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는 다음과 같다. 고용의 질이 좋지 않고, 새로이 창출되는 고용도 주당 36시간 미만 일자리에 집중되어 있고, 고용률에서 고령자의 고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임금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

고용, 물가, 금리가 다 엉망이다.

이야기를 돌려보자. 이 나라는 고도 성장의 혜택 덕분에 유난히 금권 주의와 매판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고, 기회의 균등은 잘못 해석되어 이재용이나 빈농의 아들이나 같은 선상에 서 있기를 강요한다.

고작 3세대 앞에서 벌어진 상전 벽해의 신화들 덕분에, 안정적 제도권 정규직 하에 놓여있는 기자들이 생산하는 뉴스는 그 시절의 신화를 계속 보여주며 빈농의 자식이 계속 못사는 건 너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몇 번의 반발이 있었지만 투표는 계속 같은 곳에 몰린다. 어디에 투표하든 많은 사람들의 목표는 한가지다. 지금 새누리당에 투표하지 않는다면 다만 그것은 그들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용, 물가, 금리가 다 엉망으로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투표의 수혜자들과 2, 3세대 부의 수혜자들이 돌아가는 형국을 다 결정하는 이 나라에서 이 수혜자들은 더더욱 부를 누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과연 고용, 물가, 금리를 다수를 위해 올바르게 운용할 의지가 있을까? 아니, 도의적 이유 외에 근본적 처방을 할 필요가 존재할까?

멕시코에서도, 브루나이에서도, 심지어 잠비아와 콩고에서도 부를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자기 주변에는 경제 위기를 느끼는 사람이 없는데 국민들만 자꾸 그런다고 이야기한다. 당연하지. 거기에는 정말로 없으니까. 이들은 나쁜 놈도, 멍청한 놈도 아니고 그냥 계속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할 뿐이다.

같은 목표를 지니고 계속 투표하는 한 이 상황은 결코 반전되지 않는다. 표를 던지는 곳은 잠깐 바뀔 지 몰라도 생각을 바꾸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걸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영화 음양사를 보다

요즘 제일 많이 하는 건 잠자는 거다. 잔다. 계속 잔다. 눈을 뜨면 신경질이 난다. 그러므로 다시 잔다. 가만히 있으니 배도 안고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창문을 담요로 덮어놨는데 구석 한 부분만 비워놨다.

다 가려버렸더니 낮밤 없이 너무 컴컴해 그래도 빛이 좀 있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딱 그 자리에 해가 들어온다. 얼굴이 따가워서 일어난다. 방이 비좁고 책상이 온통 들어서 있어 창문의 다른 자리를 비울 수도 없다. 뭐, 그 정도 수고야 감내하자.

창문의 빈 공간, 바로 그 자리는 무척 묘해서 보름달 때가 되면 달도 딱 그 자리에 들어 선다. 서늘한 달빛이 방에 드리운다. 달빛이라는 건 참으로 서늘한 색이다. 만약 꼬리가 있었으면 거대 원숭이로 변했을 지도 모르는데 라는 생각을 보름이 되는 15일 마다 한 번씩 꼭꼭 한다.

그리고 조금 걷기도 하고, 뭔가 먹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보고, 버라이어티를 보고, 저번에 말한 쌓여있는 영화를 본다. 걷는 건 2km 정도가 평균이다. 그냥 걷는 거 말고, '걷는다'라는 명백한 인식 하에 이 정도다. 6.5km, 8km 짜리 계획들을 세우고 지도를 저장해 놓았지만 막상 걷다보면 아직 춥다. 그나마 좋아하는 일인데 추위가 무섭고 서럽다.

발도 시리다. 제 정신인 신발이 없다. 눈, 비, 바람, 추위 모두 그저 반긴다. 그래봐야 죽으러 갈 차비도 없는 판국에 이것도 감지덕지다.

트위터는 자다 잠시 깨어나서도 본다. 화장실에서도 보고, 밥 먹다가도 본다. 언어가 실종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들리는 걸 갈구한다. 소리가 안되니 글자로라도 충족한다. 괜히 남의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후회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생도 그러하다. 저번 주 내내 인터넷과 전화가 함께 끊겨버렸을 땐 한심하긴 해도 아예 포기하니 그것도 편안하지 않나 생각했었다. 여튼 하지만 그것도 그 때 뿐이었다.

그리고 버라이어티를 보고, 저번에 말했던 안 보고 남겨뒀던 영화를 본다. 이게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많다. 역시 5분 쯤 들으면, 풀 앨범이라해도 1시간 쯤 들으면 되는 음악과 다르다. 여하튼 음양사도 그 중 하나다. 음양사 2도 남아있다.

 

음양사는 원래 소설이고, 그게 만화화가 되었고, 다시 영화화가 되었다. 사실 이 방면으로는 공작왕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약간 소박하지만 음양사도 나쁘진 않다. 영화는 만화보다 별로였다. 세이메이도 이상하고, 히로마사도 이상하다. 이마이 에리코(스피드!)와 코이즈미 쿄쿄(오토코 노 코, 온나 노 코!)가 나오지만 고만고만하다.

다만 세이메이 역의 노무라 만사이가 66년 생인 건 조금 놀랐다. 그는 3살 때 아역으로 데뷔했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에도 나왔단다. 1985년 영화니 20살인데 란의 어디에 나왔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생각난 김에 아키라 영화도 좀 봐야겠다.

침묵

원래 멋대로 쓰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아 덧붙인다.

아래 내용은 리포트도 아니고 정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극히 러프하게 전개되고, 오해의 여지도 많고, 나 자신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많을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논리 철학 논고를 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모든 전공 분야 서적이 그러하듯이 혼자 읽으면 단지 오해만 늘어날 뿐이고 동감되는 말 찾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코칭 스탭을 찾기를 권한다. 이 내용의 그나마 가까운 형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단상이다.

 

ㄱㅇㄱ 선생님에 의하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이하 논고)는 (러셀의) 논리주의에 도전하는데 세가지 측면을 들 수 있다.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i)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구분은 유형 이론을 통해 역설을 극복하려는 러셀의 시도를 거부한다. (ii) 논리를 공리에 근거지우려는 생각, 즉 기초적이며 필연적 진리인 공리와 정리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따라서 논리적 공리로부터 수학적 명제들을 도출하는 것이 수학적 명제들을 보다 명증한 진리, 혹은 자명한 진리를 통해 근거 지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iii) 수에 대한 논리주의의 정의를 공박한다.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은 구성주의적 대안을 제시한다. 자연수는 논리적 작용 과정의 단계들을 표상한다.


 

(i)에 대해서 : 러셀은 유형 이론을 통해 역설을 극복하려고 했다. 러셀의 역설은 프레게의 논리 체계와 칸토어의 나이브한 집합론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예이다.

러셀이 들었던 세비아의 이발사 이야기를 써 놓는다.

만약 세비야에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이의 이발 만을 해주는 이발사가 있다고 하자. 이 이발사는 이발을 스스로 해야 할까? 만약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다면, 그 전제에 의해 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야 하고, 역으로 스스로 이발을 한다면, 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서는 안 된다.

러셀은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다.

예를 들어 포유류라는 집합이 있다. 이 집합의 원소인 사자, 원숭이는 유형 A, 포유류는 유형 B, 포유류를 원소로 포함하는 상위의 집합인 동물은 유형 C가 된다. 여기서 포유류에는 어떤 원소가 있을까하고 물었을 때 사자, 원숭이는 예가 될 수 있지만 포유류와 동물이라고 답하면 안된다. 유형이 다른 것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세비아의 이발사의 경우 원소 중 하나인 세비야의 이발사가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이'라는 집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이 사과는 붉다'는 유의미하지만 '붉은 건 사과다'는 무의미하다.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유형 이론을 비판한다.

명제 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적 표현에 있어서 기호와 상징의 개념을 적용한다. 여기서 상징은 명제의 뜻을 특징짓는 명제 각 부분을 말하고(3.31), 기호는 상징에서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것이다(3.32).

독일어 be 동사인 ist를 예로 들자면 ist는 계사, 동일성 기호, 존재의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즉 기호는 하나인데 상징은 다르다. 그래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상징이 기호를 공유할 수 있다(3.321). 여기서 기호는 사실 자의적인 것이며, 상징은 사용과 관련된 개념이다. 그렇다면 기호를 보면서 상징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복잡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구문론의 규칙들은 기호가 어떻게 가리키는지 알기만 하면 저절로 이해되어야 하고(3.334), 기호의 의미가 어떤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3.33). 러셀의 유형 이론의 경우 기호 규칙을 세우는 데 있어 그 의미를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잘못되었다.

 

이 대답은 명제가 하나의 사실을 말한다는 대답으로 연결되는데 크게 봐서 명제가 어떻게 뜻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논거 중 하나다. 또 하나는 명제가 그림일 수 있다는 거다. 이 두가지 대답을 전개하기 위해 논고의 1, 2에서 존재론에 대해 해명한다.

위에서 보듯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구문론을 매우 엄격하게 전개시키는 데 이는 그의 철학에 대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사고의 논리적 명료화이고 그 결과 명제들은 명료해진다.

그러므로 기존의 대부분의 철학적 물음들은 참/거짓의 문제가 아니고 그저 무의미한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대답도 없고 그저 무의미성을 확립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명료한 명제들은 자연 과학의 명제들이다(6.53).

이런 식으로 그는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명제는 뜻을 지닐 수 있는가, 왜 어떤 명제는 뜻 있는 명제와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뜻을 지니지 않는가, 왜 요소 명제의 진리 함수가 아닌 명제들은 뜻을 지니지 않는가 / 또한 이 명제들의 성격이 상이할 수 있다면 어떻게 상이한가에 대해 논고를 통해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나서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하듯"이라는 유명한 사다리 비유를 통해서 논고에서 제시한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한다(6.54).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득도했으니 여기 써있는 언어는 버려라 뭐 이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결정되면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결정된다. 그럼 그건 어떻게 해야 할까. 비트겐슈타인은 말해질 수 있는 건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런 식으로 사고의 표현에 한계를 긋는다.

20120215

직설적 인용

아스톤 마틴이라는 자동차 회사가 있다. 1913년에 영국 위릭셔의 Gaydon이라는 동네에서 시작했다. 제임스 본드가 타던 자동차답게 랜드로버, 재규어, 롤스 로이스 등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였는데 시간이 흘러흘러 영국의 자동차는 세계로 팔려나갔고 아스톤 마틴도 Ford에 팔렸다. 세월이 또 흘러 유럽 자동차 회사를 신나게 사들이던 포드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회사들을 팔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던건지 어쨋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스톤 마틴은 영국의 Prodrive라는 회사가 사들이면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Prodrive는 David Richards라는 모터 스포츠계에서 잔뼈가 굵은 아저씨의 개인 기업이다. 여튼 그 덕분에 영국 귀족들은 아무 문제없이 아스톤 마틴을 신나게 탈 수 있게 되고 어쩌고 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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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눈에 딱 들어오는 건 저 앞 부분의 그릴이다. 아주 아주 초기에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었는데 어느 때인가부터(대략 50년대, 추적하기 귀찮다) 저런 아래가 넓은 형태의 그릴 모습을 하고 있다.

두 번째 빨간 거 참 예쁘네. 두번째 차는 1961년형 DB4 GT다.

이에 비해 로고는 날개를 핀 새 모양으로 좀 넙적하기는 하지만 그릴과 반대인 역 삼각형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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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DB9, 아래는 뱅퀴시. 그냥 봐도 절대 싸구려는 아닌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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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초기는 뭐, 다들 그러하듯이.

 

아스톤 마틴 이름을 붙인 오피스용/가정용 가구가 만들어졌고, 역시나 저 그릴 형태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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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는 푸시 버튼으로 서랍이 열리고, 자동차 인테리어와 거의 비슷한 느낌의 가죽, 알루미늄 등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나치게 직설적이다. 대놓고 아스톤 마틴이다. 이렇게 티가 나면 사실 좀 재미가 없다.

아스톤 마틴이라는 회사가 좀 재밌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둔탁하니 돈 자랑 일변의 컨셉을 걷는 걸 보니 살짝 안타깝다. 이것은 마치..

뭐 이렇게 말해봐야 저 가구를 사는 사람들은 자랑질 하기도 좋고, 괜찮을 지도 모른다. 아니 괜찮을 거다. 훌륭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고, 매우 고급스러운 재료들이 그 의식에 부흥한다. 놀리는 게 아니다. 놀릴 게 뭐 있나.

고매한 취향 따위를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라 저 가구를 좀 더 폼나고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뭔가 잘 모르겠는데 딱 보자마자 화려해 보이진 않지만 이건 엄청 좋은 건가보구나 하는 느낌을 속 깊은 데서부터 풍겨오르게 만드는 포스랄까 뭐 그런 것들을.

돈만 많다면 나도 당장 달려가 (저 괴상한 가구는 모르겠지만) 1961년형 아스톤 마틴 DB4 Zagato를 구입할 거다(찾아보니 오리지널은 옥션 거래가 대략 10~20억, 레플리카는 이거보다는 좀 싸다). 앗싸리 어화 둥둥 즐거운 세상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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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보트도 내 놓을 생각이 있는데(위 사진은 컨셉이다) 창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저 모양에 나름 집착하고 있다.

20120214

20120214, 철도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북한 철도 동영상이라는게 있길래 뭘까 싶어 다운 받아 봤다. Shinchosha(신조사)라는 로고가 계속 나오는 걸로 봐서는 일본 쪽에서 촬영한 영상 같다. 하지만 촬영도 워낙 못했고, 뭔가 완결된 분위기 자체가 아니다. 아주 깊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북한 철도에 관심있는 열차 오타쿠에게는 나름 귀할 거 같은 영상이다.

총 30분 정도.

 

초반 1/3은 증기 기관차 하나와 디젤 열차 하나(열차 번호도 나온다)를 계속 보여준다. 앞도 보여주고, 옆도 보여주고, 석탄을 넣는 모습도 보여주고, 바퀴가 움직이는 모습도 보여준다. 역에서 찍은 영상이 많지만 달리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찍은 화면도 있다.

 

중반 1/3은 평양역에서 묘향산역까지 달리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다. 무척 투박한 열차 승객 시점으로 그냥 "열차를 타면서 밖에 보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 자체다. 열차는 계속 가고 창문 너머로 일하는 사람들, 돌아다니는 사람들, 지나가는 트럭, 농촌, 도시, 산, 들이 펼쳐진다. 중간 중간 역을 지나칠 때는 자막으로(일본어다) 표시된다.

b

북한 철도 노선은 이렇게 생겼다. 만포선(순천~만포)이 묘향산역을 지나간다. 평양에서 순천까지는 평라선(평양~나선) 구간이고 순천부터는 만포선 구간이다. 만포선은 일제 시대 때 만주 침략을 위해 만들어진 노선인데 지금은 묘향산 관광용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1980년에 전 구간이 전철화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북부철길, 백두산청년선, 평라선 함흥에서 나선 구간이 무척 흥미가 간다. 개마 고원을 위쪽으로 지나는 만포에서 혜산 사이는 북한에서도 가장 취약한 교통 라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영하 39도를 찍었다는 삼지연도 저기 근처다. 예전에 옆집 사시던 할머니가 중강진 출신이라 그곳이 얼마나 추운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적이 있는데 중강진(찾아보니 지금은 중강군이란다)도 저기 근처다. 5번 국도가 원래 거제에서 중강진까지 가는 도로다(지금 우리나라 노선은 거제에서 철원까지).

철원 신탄리 역에 가면 경원선 철도 중단점이 있다. 경원선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노선이다. 위 지도에서 고원 바로 위가 원산인데 고원~원산 구간은 원래 함경선(원산~청진) 구간이다. 북한이 들어선 다음 이름이 좀 바뀌어서 경원선은 함경선 고원~원산 부분과 합쳐 강원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세포역에서 아래로 내려가있는 선이 신탄리에서 연결되는 경원선 라인이다.

2

심심해서 찾아본 세포역.

여하튼 이 동영상은 약 15분 정도 그냥 바깥 풍경을 계속 보여준다. 헤드폰으로 소리 크게 틀어놓고 콜라 마시면서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그거 참, 묘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묘향산의 절경을 볼 수 있나 좀 기대했는데 산악 지대로 들어서면서 살짝 보이다가 열차는 역에 도착한다.

 

마지막 1/3은 평양의 대중 교통이다. 지하철이 잠깐 나오고, 두가지 종류의 전차가 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하나는 두 칸 짜리로 일반적인 용도인 거 같고, 또 하나는 관광용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중간 1/3이 참 마음에 든다. 화장실에 다녀와도 아무 말 없이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다는게 아주 좋고 전반적으로 사람 목소리 따위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도 좋다. 칙칙 폭폭 덜컹 덜컹하는 기차 소리를 좋아한다면 이 동영상은 그야말로 100점 짜리다. 30분 내내 그 소리만 나온다. 몇 명 모여 방에 불 꺼놓고 큰 화면으로 이걸 보면서 맥주나 마시면 왠지 행복할 거 같다.

20120214

요즘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인가 하는 걸 몇 편 봤다. 예전에 전진의 여고생4와 비슷한 컨셉인데(그것도 열심히 봤었다.. -_-) 소녀시대 9명에 소년 5명이니까 2:1 정도로 멘토제 비슷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 다만 바쁜 사람들이라 2주에 한 번 정도 만나는 거 같다.

이런 방송은 사실 문제가 좀 있다(심리 치료를 공개 방송과 병행시키는 건 사실 매우 위험하다). 매우 민감한 일이 벌어지고, 전문가가 아닌 제작진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도 일반적인 시선을 고집하기 때문에 눈치를 못채거나, 이해를 못할 가능성이 높다.

소년 5명 중에서 한 명이 나갔는데 그 문제에 대해 오마이스타에 기사가 실린 게 있다.

http://bit.ly/A6YToF 

그럼에도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이유는 소년들이 상담사를 만나고 하는 과정을 보면서 뭔가 치유의 욕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시 멤버들이 소년들의 상담을 보고 자기들도 받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라고나 할까. 물론 이런 건 (자신이 만들었든, 남이 만들어줬든) 모티베이션이 중요한 거라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웃으려고 본다 정도가 맞다... 할 이야기들이 좀 있었는데 쓰다 보니까 여기다 하기는 좀 그렇군.

뉴욕 열전

9427840

부제로 저항의 도시 공간 뉴욕 이야기, 들뢰즈, 가따리의 눈으로 완성한 벤야민의 프로젝트 등등이 길게 붙어있다. 다 읽은 건 아니고(예상보다 두껍고 비쌌다, 2만 5천원) 목차와 서문을 읽고 부분 부분 발췌독.

내용은 제목 그대로인데 저자 자신도 뭘 쓸지 명확하게 결정하지 못한 채 약간 잡다하게 들어간 경향이 있다. 대충 뉴욕이라는 도시의 운동史, 그곳의 활동가로서 마주치는 모습과 감상 등을 적고 있다. 훑어보면서 책의 목표라도 가늠하고 싶었는데 애초에 그런 류의 책이 아니었다.

여튼 건축과 비슷한 것도 없는 학교의 도서관이라 그런지 책 자체가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새 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2006년에 나온 유체 도시를 구축하라는 2012년 1월에 번역 출간되었다. 정가 2만 2천원. 도서관에는 없다.

안전망, 언더그라운드2

사회가 요구하는 스텝들을 제대로 밟지 못하고 (자의적, 타의적 혹은 등등의 이유로) 이탈하게 되었을 때 복귀하거나, 그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 안전망이 우리 사회에는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 여러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공무원 시험 같은 데 열중하거나, 프리타의 인생을 살아가거나, 아니면 배금 주의에 빠져 사기, 범죄, 다단계 등으로 나아가거나 하는 등등의 선택지가 있다.

또한 자립, 인디 등의 이름이 붙은 음악이나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대표적인 자의적 궤도 이탈로 이 업종은 생활 방편이 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다른 돈벌이 분야에 함께 종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묵묵히 갈 길을 가며 산화하길 기다리거나 등등등. 실력이든 운이든 손익 분기라도 맞추고 있으면 그야말로 축복에 가깝다.

여하튼 이렇게 여러 갈래 길로 빠지게 되는데 보통 다른 나라의 경우(콩고나 잠비아 등 아프리카 여러나라 들, 일본의 옴 등등이 떠오르는 예다) 이럴 때 나아갈 수 있는 대표적인 선택지 중 하나인 종교, 특히 사이비 종교가 득세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약간 흥미롭다.

분명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간 즈음까지는 여러 사이비 종교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뉴스 등을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그런 뉴스도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유가 준 사이비 종교화 되어 있는 다단계와 연결된 배금 주의의 존재나, 중흥하고 있는 전도 중심의 기독교의 존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사회 자체가 타이트하게 짜여져 있고, 그 변방의 사람들을 패배자로 보는 시선이 무척 강한 것도(서울역에서 노숙자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셨던 엠비님의 시선이 대표적이고 메인 스트림 기성 세대의 시선도 대동소이하다) 그 밀어붙임의 압박 때문에 사이비 종교로라도 정신 세계에 몰두할 수 없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즉 더욱 익스트림해졌다.

콩고 같은 극단적인 예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좋은 삶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어 버린 경우 사이비 종교는 그닥 설득력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2를 읽었다. 언더그라운드1은 어느날 갑자기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시선이라면, 2는 가해자 쪽 - 옴 진리교 신도들의 시선이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경우 삶에 약간 불만족한 상황에서 ->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혹은 소문으로 들었던 옴 진리교의 책을 읽고 교단을 찾아가는 순서라는 점이다.

역시 일단은 책을 만들어 뿌려놔야 한다.

20120213

이것은 순전히 재미로

패션붑에 올릴까 하다가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정보라 그냥 여기에 올려본다.

3

애국모란피복공장이라는 곳에서 만드는 지은옷. 지은옷은 아마도 기성복을 말하는 듯. 여성용 코트같다.

 

4

보통강신발공장의 신발. 고무같은 재질로 만드는 구두 모양 고무신이 아닌가 싶다.

 

6 

평양창광옷공장 솜옷. 솜 패딩인 듯.  털은 뭔지 모르겠다. 라쿤털 이런 건 아닌거 같다.

 

5

함남에 있는 류원신발공장이라고 한다. 운동화.

 

7

공장 이름은 안 나와있다. 남성복 생산하는 곳인듯. 공장에 꽃이 잔뜩 걸려있는 게 인상적.

 

뭐 딱히 재미있거나 흥미를 끄는 내용은 없는 듯. 아무래도 공장 옷과 홈메이드 옷이 주류를 이룰 고 있을 거 같은데 홈메이드 쪽이 조금 더 궁금하다.

20120212

20120211 - 2

원래 사법부에 대한 긴 이야기의 스킴을 쓰고 있었는데 왠지 귀찮아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사법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 운용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는 법적인 범위 내에서 정치의 문제고, 그러므로 투표권자의 선택 문제로 환원된다.

뭐 대충 이 정도만 남겨두고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는 좀 더 홀가분한 상황에.

원래 그지 깽깽이라 못 볼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집에 계속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거 같아 로라이즈 공연을 보고 왔다. 사람12사람, 미묘, 이디오테입의 공연이 있었다.

사람12사람과 미묘는 내 음악 감상 패턴상 아주 조용히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데 사람이 좀 많아 약간 어수선하게 들었다. 사람12사람 때 잡음이 살짝 난 것도 아쉬었고. 마침 조용해지고 처음 보는 밴드라 이게 뭔가 싶어서 앞에까지 접근해 나름 집중하고 듣고 있었는데 ㅠㅠ

이디오테입은 신나기는 하는데 음반을 들을 때도 그랬듯이 하이/로우 음이 너무 없는 대다가 컴퓨터 음색이 너무 강해서 춤추고 놀기에는 상관없겠지만 소리에 금방 피곤해지는 경향이 있다.

여튼 잘 봤다. 그럼 된거지.

20120211

20120211

번호 달면서 뭐 쓰는 게 싫어서 안 붙이고 있는데 그러나 저러나 하는 짓은 사실 똑같다. 어쨋든 블로그니까.

싱글 몰트는 물론 매우 훌륭하지만 (가격 면에서) 꾸준한 조달이 불가하고 요즘 내 추세로 마시기도 그렇고, 결국 내 영혼을 줄기차게 파괴하고 있는 건 와일드 터키 6과 발렌타인 12다. 옛날에는 J&B와 잭 다니엘스였는데 취향이 좀 바뀐 건지 어쩐 건지.

현재 상황 다 떨어져가고 있어서 너무나 슬프다. 남는 거 있으신 분 저 주시면 안되나요! 안되면 스카치 블루라도 사야지 ㅠㅠ

사는 게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큰 맘 먹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기다 대고 인생은 그래도 소중한 거에요, 인생은 즐겁고 아름다운 거에요 운운하는 건 너무 뜬금없어서 마음이 상한다. 사정을 줄줄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한심하고 그래봐야 별 거 나올 거 같지도 않고. 병원 가면 약 주겠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뭔가 문득 생각나서 고개를 들다가 뭔 생각을 했었는지 까먹는다.

예전에는 우리 나라가 토목의 나라라고 생각해 왔는데 최근들어 곰곰이 뒤를 되돌아보니 그게 아니라 파시즘 모에 비스무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씬', 혹은 내가 한때 관심있게 지켜보며 약간은 관여했던 부분이 돌아가는 걸 보면 뭔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 같으면서도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부분들이 보여 아쉽다.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고 그냥 뭐 그렇다는.

후배를 만나서 밥을 먹었다. 요즘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고민에 빠진다.

요즘 하루에 한 끼 먹는다. 배가 안 고프다.

뮤직뱅크는 좀 오그라드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비쥬얼드 하면서 가만히 듣고 있기에 좋다. 금요일 밤 같다. 그러다 뭔가 궁금해지는 노래가 나오면 비쥬얼드에서 멈춤 눌러놓고 보면 되고. 이번 주 뮤직뱅크에서 비쥬얼드를 이긴 자들은 BAP와 스텔라. 써니힐은 처음 뮤뱅에서 봤을 때에 비해 자신감이 넘쳐 보여서 좋았다.

쓸 데 있는 소리는 하나가 없구나.

20120210

히치하이커's 가이드 투 더 갤럭시를 보다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이하 히치하이커) 영화를 봤다. 이 이야기는 나름 인연이 있는데 먼저 영문본 책으로 읽다가 안되겠다 싶어 관두고 도서관/교보문고를 왔다 갔다 하며 번역본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영문본으로 가서 쉬엄쉬엄 다 읽었다. 정독이라기 보다는 '읽었다'라는 도 닦는 거 비슷한 행위 정도를 오랜 시간에 걸쳐 했다고 보는 게 옳다. 사실 별로 좋아하는 이야기도 아닌데 어쨋든 길고 쉽게 읽히니까 마주치면 보게 된다.

어쨋든 그러다가 영화를 봤다. 1978년에 BBC 라디오 시리즈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1979년부터 소설로 나왔다. 영상 버전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역시 BBC에서 6부작으로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로 1981년에 나왔다. DVD로도 나왔는데 포스터는 이 쪽이 더 그럴 듯하다. 이 시리즈는 나중에 PBS를 통해 미국에서 방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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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는 2005년에 Garth Jennings가 감독한 영화 버전. 이게 어제 본 거다.

아서 덴트 역을 맡은 Martin Freeman은 잘 모르는 사람인데 영국 햄프셔 출신으로 The Office, Hot Puzz, Nightwatching 같은 영국 드라마, BBC 역사물, 영화 등에 나온 바 있단다.

트리시아 역은 Zooey Deschanel. LA 출신의 미국인. 분명 이 사람을 어디서 봤는데 그게 어디었지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서 끝나고 찾아봤다. 예전에 케이블 TV에서 The Happening이라고 나무들이 호르몬 같은 걸 내뿜어서 사람들이 집단 자살하는 영화가 있는데 거기서 봤다. 거기서 세상 망해가는 데 남편이랑 싸우고 슬퍼하고 뭐 이런 역할. 뭘 보고 있는 지 모르겠는 눈동자 색이 매력적. 이 분은 She&Him이라는 컨츄리/포크 풍의 인디 밴드도 하고 있다. 곡들 나쁘지 않음. http://www.sheandhim.com/

포드 역은 Mos Def. 뉴욕 출신의 미국인. 이런 저런 TV 미니 시리즈나 영화에 많이 나왔고 이탈리안 잡에서 한쪽 귀 안들리던 사람이다. 착하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자포드 역에 Sam Rockwell. 미녀 삼총사에서 악당 대장인가로 나왔던 사람이다.

이외에 눈에 띄는 건 잠깐 나온 존 말코비치 / 우울증 걸린 로보트 마빈의 목소리를 알란 릭맨이 했는데(그 로보트랑 Deep Thought랑 합치면 안드로이드 로고랑 비슷한 모양 나올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알란 릭맨은 해리 포터에서 맨날 까만 옷 입고 있는 우중충한 마법사 선생 역 한 사람이다 / 그리고 BBC 버전에서 아서 덴트 역을 사이먼 존스가 했었는데 우주선이 마그라테아 도착했을 때 휴가라고 말했다가 핵폭탄 쏘는 3D 영상 아저씨 역할로 까메오 출연했다.

재밌는 것 중 하나는 거대한 컴퓨터 딥 쏘트에 애플 로고가 붙어있다는 거. 잘 보이진 않는다. 오른쪽 위.

1561.full

 

마빈은 BBC 버전과는 극적으로 다르게 생겼다.

marvin (1)A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왼쪽이 BBC, 오른쪽이 영화.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에 시작할 때 돌고래 이야기 나오는 뮤지컬 풍 합창곡을 들으면서 아, 이거 재밌겠다 생각했는데 처음에 너무 허들을 높여놔서 그런지 기대보다는 별로였다. 어쨋든 심심풀이로 아주 좋다.

개인적으로 바로 다음 이야기인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이 더 좋은데 영화화는 이제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주 대 폭발 장면을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을 화면으로 보고 싶은데 말야.

20120209

아웃 인 더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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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 많은 곳을 딱히 싫어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 소리와 뭔지 알 수 없는 유혹하는 숲의 소리만 있는 곳에 가만히 서 있는 걸 좋아한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다 보이는 이름 모를 낮은 산들을 보면 일어나는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고, 몇 군데는 올라가 본 적도 있다. 물론 이를 이룰 수 있는 체력과 재력이라는 건 약간 별도의 문제다.

40km쯤 걸으면 뭔가 생각이 바뀔까 싶어 코스를 알아보고 있다.

20120207

두 개의 M/V 관람

평소에 뮤직 비디오, 특히 그냥 클립 정도라면 심심풀이로 괜찮지 않나 생각하지만 한 시간 넘는 풀 M/V는 일반적으로 무척이나 재미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제목은 보통 매우 근사하지만 - 오아시스 2005 맨체스터 라이브! 뭐가 나올지 두근거린다 - 보다가 졸기 일쑤다. 여튼 그런 사람인데 최근 며칠 간 풀 렝쓰 M/V를 두 편이나 봤다. 하나 씩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우선 New York Dolls. 뉴욕 돌스는 2004년 재결성을 하고 2006년 음반을 만드는데 그걸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뉴욕 돌스의 예전 이야기는 여기저기 많이 찾을 수 있으니 생략하고 우선 멤버 구성을 보면

1971-1975에는

David Johansen - 보컬, 하모니카
Johnny Thunders - 기타, 보컬
Sylvain Sylvain - 기타, 베이스 피아노
Arthur Kane - 베이스
Billy Murcia - 드럼(1971~1972)
Jerry Nolan - 드럼(1972~1975)

이렇게였다. 처음 만들어졌던 1971년에만 Rick Rivets(기타)가 있었다. 이 중에서 Johnny Thunders는 1991년 아마도 약물 관련(하지만 루머 많음) 사망, Arthur Kane은 2004년 재결성때 참가했다가 그 해 런던에서 플루 바이러스에 걸렸다가 사망, Billy Murcia는 1972년에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고, Jerry Nolan은 1992년 박테리아 관련해 코마에 빠졌다가 사망했다.

초기 멤버 중 살아남은 사람이 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2006년 비디오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원년 멤버인 데이빗 요한슨과 실바인 실바인 외에
Brian Koonin - 키보드
Brian Delanie - 드럼
Sami Yaffa - 베이스
Steve Conte - 기타

 

그리고 2012년 지금 멤버는 여기서 두 명이 바뀌어
David Johansen - 보컬, 하모니카
Sylvain Sylvain - 기타, 베이스, 피아노
Brian Delanie - 드럼
Kenny Aaronson - 베이스
Earl Slick - 기타

이런 구성이다. 사실 뉴욕 돌스하면 자니 썬더스, 이런 느낌이 좀 있는데 여튼 그런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다.

 

재결성 과정을 살펴보면 일단 Morrissey(모리세이가 익숙한데 요새는 모리씨라고들 하더라)가 있다. 모리씨는 1970년대 뉴욕 돌스의 영국 팬클럽 회장 출신이었단다. 그는 2004년 멜트다운 페스티벌에 맞춰 살아남아 있는 세 명의 멤버(요한슨, 실바인, 케인)에게 재결성을 해보자고 꼬신다. 그들은 2004년에 몇 번 함께 페스티벌 참가를 했는데 케인이 사망하면서 계획이 조금 바뀐다.

2005년, 이제 둘 만 남은 원년 멤버는 2006년에 새 음반 'One Day It Will Please Us To Remember Even This'를 내놓을 거라는 발표를하고 제작에 들어간다. 그 동안 영국 투어도 하고 하면서 음반을 만드는데 그때 남긴 비디오가 내가 본 거다.

그리고 2009년, 2011년 스튜디오 앨범을 내 놨고 그 동안 멤버가 조금 바뀌면서 요즘에도 여기 저기 투어 중이다.

 

이 펑크와 글램의 조상같은 아저씨들은 분명 화려한 영향력을 미치던 시기와 전성기는 지나버렸고 원래 모습은 되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뉴욕 돌스가 재결성을 한다는 이야기도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게 뭔 일일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보통 이런 재결성이라면 상업적인 목적이 클 거 같은 느낌이 있는데, 다큐멘터리는 매우 매우 소소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마이클 스타이프도 피처링한다고 잠깐 나온다. 자니 썬더스는 없을지 몰라도 어쨋든 이 사람들은 지금도 투어를 뛰고 새 음반을 내놓는 현역이다.

New_York_Dolls_-_TopPop_1973_11

New_York_Dolls_(2006)

 

또 하나 M/V는 레이디 가가의 BBC Radio 1S 공연이다. 이건 정말 꽤나 흥미진진하다.

20120205

20120205

서울을 출발해서 대관령, 강릉(강문, 안인, 등명, 중앙시장), 횡성(둔내읍, 자작나무숲, 풍수원 성당), 양평(쉐르빌)을 거쳐 다시 서울.

고민을 잔뜩 안고 있지만, 그게 너무 잔뜩이라 그런 건지 말도 안나오고 그냥 몸이고 정신이고 피곤하기만 했다. 오지를 찾고 있는데 그다지 마음에 드는 곳을 루트 상에서 발견하진 못했다. 다만 영동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둔내면 근처에서 남쪽은 치악산 줄기인데, 북쪽으로 멀리 산들이 보여 저건 뭘까 하고 구글 지도에 체크만 해놓고 왔다.

와서 찾아보니 휘닉스 파크 뒤 쪽으로 6번 국도를 따라 태기산(1,258m), 봉복산(1,022m)이 있다. 이 두 산은 행정구역상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에 걸쳐 있다. 태기산은 삼한 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이 신라군에 쫓겨 성을 쌓고 싸워 태기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덕고산이라고도 한다.

태기산, 봉복산은 등산을 하기에는 대중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다만 횡성군에서 태기산 테마 임도라는 이름으로 16km에 달하는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놨다. 정식 명칭은 Eco 800 태기산 트레킹로. 뉴스는 잔뜩 검색되는데 가는 방법, 코스 안내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가 없다.

기록되지 않은, 기록될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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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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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음악은 여러가지로 챙겨 듣는 편이다. 뭔가 의미있고자, 혹은 일 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챙겨 듣는다. 요즘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상에 생사조차 알리고 싶지도 않은 시기에도 음악은 듣게 된다. 얼마 전에는 가지고 있던 Aphex Twin(AFX 포함 총 149곡)을 거의 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일종의 의식 같은 기분이 있었지만 가끔 이렇게 뭔가를 정주행을 할 때가 있다. 며칠 걸렸지만 일도 아닌게 내가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틀어놓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거다. 지하철하고 똑같다. 아무리 멀리, 복잡하게 가도 가만히 앉아있다가 몇 번 일어나기만 하면 간다. 듣다가 '들리는' 곡이 있으면 들으면 되고, '안 들리는' 곡이 있으면 안 들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AFX 쪽 음반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계속 챙겨듣는 게 있다. 대표적으로 네이버 신곡. 예전에는 멜론 신곡이었는데 네이버로 바꾸면서 네이버 신곡을 듣는다. 컴퓨터 붙잡고 있을 때는 계속 틀어놓는다. 듣다 보면 형편 없는 것들도 있고, 오 이것은- 하는 것들도 있고 그렇다. 뭐 평론가도 아니고 이렇게 열심히 챙겨서 들을 필요가 있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뭐가 나오고 있나 그냥 궁금해서 계속 챙겨 듣는다.

요즘 들은 것 중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우선 미료의 솔로 EP. 괜찮았다. 브아걸을 비롯해 멤버들이 솔로 음반을 착착 내놓고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생긴 다면 조금 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 박지윤의 새 싱글(음반이 나올 거 같은데)도 괜찮았다. 하지만 너무 저번 음반 '꽃, 다시 첫번째'와 같은 선상이다 / 그거 말고는 써니힐, 살찐 고양이 정도 재밌게 듣고 있다 / 용준형 새 곡은 소리가 마음에 든다 /  엠블랙 새 곡은 2PM같다.

 

그리고 코미디 / 버라이어티 방송이 새로 시작하면 2회 정도는 꼭 본다. 그리고 재밌다 싶으면 계속 보고, 아니면 관두고. 이것도 역시 별 이유없고 궁금해서 그렇다. 요즘엔 무한 걸스가 제일 재미있고 코미디 빅리그도 보고 있다. 무한 도전, 라디오 스타, 해피 투게더는 정으로 보고 있는데 게스트나 내용보고 안 볼 때도 있다. 올해 들어 유재석이 캐릭터를 조심스럽게 변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힐링 캠프, 놀러와 가끔 보고 신동엽하고 김병만이 같이 하는 개구장이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 방송은 게스트를 좀 타는 거 같다. 일본 방송은 요새는 거의 안 본다.

 

패션 쪽 이야기는 이것 저것 챙겨 RSS로 받아보는데 하루에 대략 1000개 쯤 기사가 올라온다. 요새는 의욕이 없어서 안 읽고 있다. 예술 쪽 소식도 하루에 대략 800개 쯤 올라오는 데 역시 의욕이 없어서 안 보고 있다.

 

새로운 음악은 소스가 거의 없어서 뭔가 필이 받아 찾지 않으면 모른다. 요사이 듣기 시작한 걸로는 병1신들, 404, 하헌진 / Mali의 음악에 관심이 생겨서 Fatoumata Diawara의 Fatou와 Lobi Traore의 Bwati Kono를 듣고 있다, Fatou는 Wassoulou를 현대화시킨 음악이고, Bwati Kono는 아프리카식 블루스다. Fatou의 Sowa라는 곡 좋다. 아프리카어를 폼으로 쓰는 거 아닌가 하는 야매같은 느낌도 어딘가 있지만 정화되는 느낌도 분명히 있다.

이거 듣다가 켄지 카와이의 공각기동대 OST가 생각나서 그것도 다시 듣고 있다. OST는 사실 거의 안 듣기 때문에 넣어놓고 옵션에서 '랜덤 재생시 건너뛰기' 이런 거 해 놓는데 역시 가지고 있으면 편할 때가 있다 / Lower Dens의 'Twin-Hand Movement나 Zebra Katz도 요즘 듣고 있다 / K Records에서 새소식 이메일을 받고 있는데 사실 거의 안 보다가 오래간만에 읽어봤더니 궁금한게 많아지기는 했는데 이건 돈도 없고 뭐 그래서 그냥 궁금해 하기만 하고 있다 / 트위터에서 팔로잉하고 있는 Matador도 마찬가지, 세임 올 시츄에이션.

몇 개월 전에 아프리카 부족 음악들을 들어보고 싶어서 찾아 나선 적이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구하기가 힘들었다. 음반으로 나온 현대적인 곡들이 아니면 잘 없다. 역시 녹음기들고 아프리카를 찾아가야 뭐라도 남을 거 같다. MBC에서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아저씨가 괜히 전국 방방 곡곡 돌아다닌 게 아니다.

20120202

20120202

두번째 끄적임. 이 전에 올린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오자가 너무 많다.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아마도 한동안 고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주변에 함께 떠들 사람이 많았다면 여기가 조금이나마 덜 구질구질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는 과방 낙서장에 쉴 새 없이 주절거렸는데 이제 여기에 이러고 있다.

이렇게 밖으로 나가는 글은 가능한 정제된 이야기만 올리고 싶은데 그렇게 유지가 잘 안된다. 블로그가 유료거나 하나만 사용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구렁텅이가 되었을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여튼 벽 보면서 속으로 이야기하는 건 못하겠다. 따져보면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다.

여기는 누가 와서 보는 걸까.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면 어떤 사람들일까 항상 궁금하다. 알만한 사람들이면 메시지든 카톡이든 반응이 좀 있으면 좋겠는데 반응을 일으킬 만한 내용은 없나 싶어 조금 안타깝다. 언제나 실력이 문제다.

하소연이나 해보려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혹시나 싶은 사람까지 메시지를 보내고 심지어 친했던 선배 누님에게 근 십년 만에 연락도 했는데 다들 많이 바쁘다. 바쁜 건 여튼 좋은 일이다. 그럼 된거지 뭐.

간만에 본 라스는 무척 우울했다. 심지어 모든 시즌을 다 본 기막힌 외출 레귤러들이었는데도. 여기도, 저기도 죽는 이야기만 한다. ㅇㅅㅇ은 약간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갑자기 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행히 아내와 두 친구가 있다. 거기에 돈까지 있다. 타인인 나로서는 그 고민의 심연을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두 친구가 여튼 그를 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한다는 건, 방송으로라도 그런 자리가 마련된다는 건 그래도 긍정적인 시그널이지 싶다.

네 시다. 요즘 매일 이 시간에 깨어있었다. 바람이 무척 많이 부는 거 같다. 창문이 계속 덜컹거리고, 조막만한 방에 두 개나 달려있는 문에서는 찬 바람이 밀려 들어온다. 아이폰 온도계는 영하 15도를 표시하고 있다. 아이튠스를 뒤적거려보니 타블로의 에어백을 137번이나 들었다. 네 시다.

케빈 카터는 61년 남아공 출신으로 93년에 수단에서 쓰러진 굶주린 아이와 그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의 사진을 찍어 논란도 생기고 유명해진 사진가다. 어쨋든 그 사진 덕에 아프리카 원조는 늘어났고, 그는 94년 4월 퓰리처 상을 받았다.

계속 위험지역을 돌던 그는 그 해 친한 동료를 잃었고, 94년 7월에 어릴 적 놀던 동네에서 자살한다. 유언이 "최악이다. 전화가 끊겼다. 렌트비도 없다. 양육비도 없다. 빚을 갚을 돈도 없다. 돈이 없다!!! 나는 인간의 살육과 시체와 분노와 고통과 관련된 생생한 기억에 사로잡혀있다. ... 후략."이었다고 한다.



20120201

20120201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이어폰에서 Aphex Twin이 Reconstruct한 지저스 존스의 'Zeros and Ones'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으면서 만약 내게 장례식 같은 게 주어진다면, 이걸 틀어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러든 말든.

음악을 꾸준히 들어오다 보면 몇 번의 전기를 맞이한다. 어떤 곡을 듣게 되고 이로 인해 음악 감상 생활에 일종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오는 지점이다.

언젠가부터 음악을 소리에 집중해서 들어왔다. 저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다. 스튜디오에서 정제되고 완성된 사운드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락 페스티발 등 대형 공연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데 방해만 되고 무척 피곤하다. 음악을 좋아해도 공연은 별로인 사람도 있는거다. 시위는 별로지만 가투는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너무 떠들석하지 않다면 작은 공연장 정도는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재머스 정도 크기만 되도 힘들었다. 그래서 스톤 로지스가 오든 말든 지산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있더라도 마찬가지일 거 같다. 무리를 한다면 펫 샵 보이스 정도 아닐까. 뉴 오더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리에만 집중하다가 Aphex Twin을 기점으로 소리를 쌓아 올리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뭐가 들리는 지, 뭐가 쌓이고 있는지, 뭘 빼내는지를 듣는다. 심지어 걸그룹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음악 감상 라이프가 엉망이 되었버렸다(영화를 보면서 카메라 워크만 보고 있으면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안 남는 것과 같다). 요즘에는 가능한 넓게 보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잘 안 바뀌는 거 같다. Aphex Twin을 처음 들은 지 거의 15년 쯤 흐른 거 같고, 리차드 디 제임스도 이미 그 시절 애티튜드에서 벗어났을 거 같은데 나만 그물에 걸려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뭐 그렇게 신조처럼 받들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치밀한 인간도 아니고.

어쨋든 Zeros and Ones가 들리면 좋겠다. 귀신이 되어서도 가만히 앉아 진지한 자세로 소리에 집중할 수 있을 거 같다.

만사, 음색, 포기

1.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펜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가 문제가 되었다. 사라사 볼펜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케어케 검토 후 사라사, 제트스트림, 유니볼, 무인양품 볼펜 등이 공통 규격의 심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