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3

잡설

부엌일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요리고 또 하나는 설거지다.

우선 요리는 매우 흥미로운 분야이고, 곧잘 이것 저것 만들어먹기는 하는데 아무리 봐도 훌륭한 요리사가 될 재목은 아닌 거 같다. 또한 흡연자, 그리고 취향이 딱 있어버리는 결정적인 핸디캡도 있다.

잘 모르는 분야(특히 요리와 여행)는 정확한 매뉴얼을 무척 중시하는데, 이 두 분야의 중요한 특징이 매뉴얼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다. 3분 동안 조리하면 이렇게 된다는 데 생긴 게 전혀 다르고, 정류장에서 산을 보고 앞으로 30m쯤 걸어가면 뭐가 나온다는데 막상 가보면 4면이 온통 산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므로 위기 대처 능력과 자유도의 활용이 매우 요긴한 분야다. 다른 분야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인데 요리와 여행에서는 이 부담으로 마음 고생을 좀 한다. 물론 될대로 되겠지 마음을 언젠가는 먹게 되고, 그러고 나면 편해지는 건 똑같다.

 

그리고 설거지. 이 두 분야로 한정하자면 내 재능은 이 쪽이 더 크다. 그렇다고 30년차 주부처럼 능숙하고 능률적으로 일처리를 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릇이 깨끗해지고, 싱크대가 깨끗해지고,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라는 원리의 이해가 매우 간단하다는 게 무척 마음에 든다.

실패의 가능성이라고는 그릇이 깨지는 것과 미끄러진 칼이 발에 꽃히는 거 정도 밖에 없다는 것도 두려움을 줄여준다(요리 실패의 폐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렵다).

아무리 낯선 곳에서 시도해도 성과가 눈에 보이고(다만 수압이 낮은 곳은 좀 짜증 남), 지저분한 것들을 잠시만 참으면 깔끔해진다. 반짝반짝한 싱크대처럼 예쁜 것도 없다. 특히나 대책없어 보이는 곳을 청소와 더불어 원상 복귀해내는 만족감도 무척 크다. 또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보일러에 문제가 있는 곳도 좀 짜증 남) 좀 더 좋은 핸드 크림을 구입하는 모티베이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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