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2

20120922 얼굴이 타다

1. 주말인데 집에나 있자라고 어제 밤부터 생각했다. 새벽 6시에 깨어났지만 앗싸하며 다시 잠들었다. 군대 훈련소에 있을 때 자다 깨어나 불안한 마음에 시계를 봤는데 아직 잘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게 확인되면 무척 기쁘다. 그 비슷한 느낌. 하지만 창으로 태양이 내려쬔다는 사실을 깜빡하는 바람에 느즈막하게 깨어났을 때는 얼굴이 따끔거렸다. 얼굴이 건조해 벗겨지길래 잠결에 스킨도 몇 번 바르고 그랬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2. 2013 봄/여름 옷들을 선보이는 패션쇼가 한참 진행중이다. 꽤 예전에는 그래도 챙겨봤는데 최근 몇 년은 챙겨 본 적이 없다. 거기 가 있는 사람들도 있는 판에, 여기서 사진이나 동영상 뒤적거려 봐야 뭐하나 이런 생각도 사실 좀 있고. 사진-동영상-패션쇼 직관-매장에서 만져보는 것-몇 년 입어보는 것 사이의 간극이 무척이나 큰 분야라 애초에 쇼 접근이 불가하면 다른 길을 찾는 게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쇼 스케쥴이 나와있는 구글 캘린더를 발견했고 - 심심해서 등록해 봤고 - 달력에 보이니 계속 보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아무래도 챙겨보다보니 할 말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블로그에 떠들고, 그러다보니 블로그 유입자 수도 완만한 감소 추세를 보인다. 사람들이 관심있는 패션은 예쁘게 입을 거, 싸고 예쁘게 입을 거, 아주 비싼 거, 야한 거, 유행하는 거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쇼에 대해 떠드는 건 품은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높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득도 없다. 거기에 직접 가서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니 그나마 나중에 봐도 남을 만한 이야기도 없고 별 볼일 없는 이야기만 하게 된다. 수X 버블이나 다X앤 정도 유명해지면 다시 가게 되려나.

 

3. 약간 조바심나는 두 개의 메일을 받고 기대에 찬 답장을 보냈으나 둘 다 답이 없다. 특히 앞에 것 때문에 토요일 내내 조금 쳐져있다. '기대'를 가지지 않는 게 내가 살아남는 길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기대하지 않았던 원고료가 들어올 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건 물론 기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분으로부터 블로그 도네이션도 받았다. 이것도 많이 기쁘다. 요새 워낙 어려워 그나마 이런 단비로 살아 남는다.

 

4. 그저께 밤에 문득 냄비 우동이 먹고 싶어졌다. 양은 냄비에 뜨겁게 끓여져 있는... 그래서 막 검색을 해 봤는데 괜찮은 냄비 우동집은 하나같이 마산, 진해 같은 곳에 있다. 그게 경상도 음식이었나?

물론 서울에도 괜찮은 집들이 있다. 특히 보천이나 동문 같은 곳은 훌륭하다. 하지만 혼자 쭈그리고 앉아 후르륵거리며 먹는 냄비 우동을 먹는 건 역시 싸구려가 어울린다. 주말에 동문 같은 데 가봐야 유명한 우동 먹겠다고 찾아온 커플 손님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일 뿐이고.. 그리고 돌냄비 우동집들이 많다. 송옥이나 장수 분식 좋아한다.

어쨌든 막 검색을 하다보니 욕망은 보다 구체적이 되었고, 보다 생생해졌다.

그래서 금요일 밤 상수동 쪽에는 뭐가 있지 않을까 싶어 쭉 걸어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허름한 집은 기계 우동집 밖에 없고 해서 낙담하고 있다가 냄비 우동집을 하나 발견했다. 4,500원으로 예산 제한선에 비해 비쌌지만(3,500원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귀찮아졌기 때문에 먹었다. 그렇게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튼 뜨끈뜨끈하고 약간 매콤해서 급한 마음은 달랠 수 있었다.

음식에 대한 코멘트는 잘 안하지만 감히 조언하자면 기계 우동면을 냄비 우동에 쓰면 안 되는 거다. 가솔린 자동차에 디젤을 넣지 않고, 모카 골드 인스턴트 커피에 레몬을 넣지 않는 것과 같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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