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시 잔잔하게 가라앉아 흘러가 버리는 게 낫다. 개인적으로 약간 특별한 날이라 아무 것도 안 올릴까 했으나 뭐 그러면 뭐하고 저러면 뭐하냐의 단계까지 왔다. 이건 마치 어렸을 때 기분이 우중충하면 앨리스 인 체인스 같은 거 들으면서 젠장할 인생 이러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다.
2. 평소에는 인간 관계에 있어 거의 의욕을 부리지 않는 편이다. 낯도 가리고, 대화의 기술도 부족하고, 심적으로 굉장히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친한 사람 만나러 가는 것도 부담을 느끼는 판국에), 사실 뭐라도 할 경제 능력의 한계도 있고 등등.
여튼 그러다보면 이게 사는 건가 싶어서 가끔 의욕을 부린다. 강아지랑 같이 오래 지내서 그런지 이럴 때 보면 강아지를 닮아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대충 보면 대략 2~3년에 한 번 정도씩 사이클이 돌아오는 거 같다. 그렇게 사이클이 찾아오면 평소에 궁금했던,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곤 한다. 작용-반작용이란 이런 것이다. 중용의 길을 전혀 가지 못하고 극점 사이를 헤매며 그 간극에 힘겨워한다.
여하튼 최근 들어 잠깐 의욕을 보이고 있다.
3. 모 잡지에 기고한 원고료가 살짝 들어와서 404 씨디를 샀다. 책도 좀 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부족할 듯. 최전선이 밥, 그 다음이 차비, 그 다음은 인스턴트 커피 50개 짜리, 그 다음이 문화비 순이다. 인스턴트 커피는 안 마시면 머리통이 깨질 거 처럼 울렁거려서 밥, 차비, 문화비가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할 수 없다.
그런데.. 헌팅캡이 사고 싶은 것이다. 소비의 파도는 항상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구입하지는 않을 것임. 이렇게 여기저기 떠들면서 다른 걸 열심히 보다보면 욕구가 사라진다.
4. 약간 맥심하게 끌고 가보는 의견
포퓰리즘은 안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보수 정당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복지에 책정되는 예산을 막기 위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투표로 대표되는 대의 민주주의는 사실 포퓰리즘일 수 밖에 없다. 인기는 이해가 복잡한 정책들 보다 직접적이고 간단한 인상에서 더 쉽게 나온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와 비슷하게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끊임없는 계도와 계몽으로 선심성이 아닌 정책을 선택할 투표를 유지하려면 그 방법은 공고한 공교육 제도의 확립 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엔 돈이 많이 들고, 정작 사람들이 계몽되고 나면 포퓰리즘은 안되라고 외치던 관료 및 기존 정치권이 일순위로 밀려날 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국가의 교육 이념은 평범하고 반항적이지 않은 회사원 양성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이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유인이 없다. 아닌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후기 자본주의의 대의 민주주의라는 건 그런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 가지 못하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지면 경제가 알맞게 어려워지면 해결된다. 먹고 살아야되니까.
중위 투표란 보통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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