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날은 쌀쌀해져서 후드를 걸치고 따뜻한 물을 떠다가 후후 불며 마신다. 책을 잠깐 보다가 덮었고, 방송을 잠깐 보다가 껐고, 뭘 잠깐 끄적거리며 쓰다가 관뒀다. 강아지랑 잠깐 놀다가 시큰둥 해 하고 있었더니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방이 어두워서 형광등을 켰지만 수명이 다 했는지 깜빡거려서 다시 껐다. 트위터를 잠깐 보고, 표정이 안보이는 사람이 내뱉는 완결된 글자의 모둠이 조금은 지겹다고 생각하고, 이제 비가 그친 거리를 잠깐 내다보고, 인스턴트 커피를 끓여 마신다. 오늘 꽤 많이 마신 거 같다. 빈 시간들이 설탕이 잔뜩 들어간 커피로 채워진다. 컴퓨터로 음악을 틀어 봤다가,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를 한다길래 버튼을 누르고, 껐다 켜져야 한다길래 또 버튼을 누르고, '동의' 버튼을 누르라길래 또 버튼을 누르고, 랜덤 플레이를 눌렀더니 '밀물'이라는 곡이 나오고, 그냥 끈다.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예전에 탑 기어에서 봤던 좋아하는 영상을 다시 한 번 본다. http://youtu.be/5Q0Svvdrx_E 차를 떠나서(뭐 차도 좋겠지만, 약간 두꺼비처럼 생겼다) 이 화면에 나오는 길이 좋아 보인다. 내친 김에 구글맵을 어제처럼 또 열어놓고, 오른쪽으로 아래쪽으로 뒤적거린다. 여길 갔었지, 여긴 어떨까. 방값을 알아보고, 열차 시간표를 찾아본다. 모스크바에서 밀라노까지 길찾기를 해놓고 3D화면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본다. 도심을 지나고, 호수 옆을 지나고, 국경을 넘고, 산을 넘는다. 그러고보니 커피를 마시러 온 다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철암역에 가자고 해서 난처하게 만들어야지. 아니 사실, 말하고 나면 난처해지는 건 나 뿐이겠지. 컴퓨터를 끄고 공들여 설거지를 하고, 공들여 방을 쓸어낸다. 먼지가 훨훨 날아다닌다. 어디선가 음식이 썪는 냄새가 난다. 부디 내 옷장 속은 아니길, 이라고 잠깐 생각한다.
20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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