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아니고 미래.
삼국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삼국지는 마땅히 그래야 되는 몇 명을 위해 수십 수백만 사람들이 마땅히 바칠만한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다. 한 마디에 울고 불고, 한 마디에 죽고 살고. 그것이 무엇이든 수많은 즐거움들과 수많은 아픔들이 있었을 인생 하나하나가 속절없이 사라져간다. 그래야만 역사가 쌓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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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같은 걸 읽고 있으면 과연 내가 저기에 있으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저 파묻혀있는 군사 속에 있겠지. 말도 못타고 만리를 걸어 피곤한 몸으로 강을 건너다 강감찬 장군의 살수 대첩에 쓸려 물고기 밥이 되거나, 해운대에 헤일이 밀어 닥치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높은 곳으로 뛰어가다 쓸려가거나, 이연걸이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시장터에서 국밥을 먹다 무슨 일이야 하고 쳐다보다 밥상이 엎어지거나, 스파르타에 쳐들어가는 아테네 배 안에서 사슬에 묶여 열심히 노를 젓고 있거나 뭐 그런.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더 높은 건 엄연한 사실이다. 사람 숫자를 봐라.
미래를 이야기하고 세대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어딘가에는 주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인종은 인종끼리, 기계는 기계끼리, 동물은 동물끼리 경쟁하고 도태되고 다시 태어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잡아먹혔다는 네안데르탈처럼 몇 만년 단위로 쳐다보고 있지 않는 한 세대 간 진화 따위는 없다.
새로운 게 나타나고, 기존에 있던 걸 잡아 먹는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내가 마땅히 할 일은 없다. 요령껏 도망다니는 게 최선이고, 그러다 잡아먹히면 할 수 없다. 이제 때가 되었나보구나 하고 책을 덮고 일어서서 분연히 뛰어드는 게 최상이다. 아니면 타이타닉의 악사들처럼 바이올린이나 계속 켜든지.
그렇다면 샤넬이니 지방시니, 정치니 경제니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저 잠깐 있는 동안 웃을 수 있는 꺼리를 찾아낸 거고,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 다 똑같이 썩어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니힐리즘과의 종이장만한 경계점이다.
내가 떠드는 모든 이야기들은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번 ㄷㅁㄴ에서도 적어도 내 이야기는 아마도 그 지점에서 출발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희망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다. 뭐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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