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보니 419였네. 아침에 트윗 같은 데서 보고 알긴 했는데(요새는 날짜 자체를 잘 모르고 사는 거 같다) 예전처럼 몸에 와 닿는 듯한 기분은 아니다. 술렁하는 분위기가 없어서 그런건지, 술렁하는 분위기 가까이에 내가 가지 않고 있어서 그런건지, 술렁하고 있는데 나만 딴 생각하느라 모르는건지. 여하튼 이것은 극히 우중충한 이야기가 될 것임으로 취향이 아닌 분들은 피하시도록.
너무 더러워서 작은 사진으로. 이 운동화를 작년인가에 샀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런키퍼로 맘 잡고 걸을 때 마다 체크했었는데 이 운동화로만 150km를 넘어갔고 그 다음부터는 기억에 두지 않았다. 괴로울 때마다 걸었는데, 나는 계속 괴로웠으므로 걷기만 했다. 눈이 오기도 했고, 바람이 불기도 했고, 오늘처럼 윤중로에 벚꽃 구경을 하는 사람이 가득하기도 했고, 혼자 걷는게 아닌 적이 한 번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이 길을 따라 걸었다. 올해 들어선 처음이 아닌가 싶다. 찾을라면 찾을 수 있는데 귀찮다. 예전에는 구철도 선로길 공사로 길이 막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 마포대교로 갔는데 철도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사가 끝나 있었다. 가끔 방황할 때 광흥창 쪽으로만 갔는데 그 쪽은 아직 공사중이라 몰랐다.
철도 공원길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마포에 들어서자 마자 부터 한 발작 한 발작이 너무 익숙하다. 지긋지긋한 길이다. 줄창 걷기만 했다. 저 운동화를 처음 샀을 때 그에게 보여주며 예쁘다고 자랑을 했었다. 지금은 저리 보여도 베이지에 핑크색 선이 둘러진 예쁜 조합이다. 그러면서 같이 즐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바보같기만 했고,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하는 것들은 저주를 내려받은듣 안 되기만 했고, 그래서 그저 밤이 오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줄창 걷기만 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차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과, 건물의 조명들만 봤다. 한강은 밤중에 시커멓게만 보여도 어디는 검고, 어디는 좀 밝은 물길이 보인다. 가끔 전화를 걸었다. 삼성에서 노키아로, 노키아에서 아이폰으로 바뀌었다.
바람이 불던지, 눈이 날리든지, 차가 뛰어들든지 차라리 어디라도 빠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지만 그런 행운 따위는 오지 않았다. 사실 가만 보면 막상 빠져도 기어 나올 수 있을 거 같기는 하다. 200km에서 세기를 멈췄고, 몇 달이 더 지나 1월이 되었고, 이윽고 모든 게 사라졌다.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은 날들이 지천이었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중얼 중얼 중얼 중얼. 이러다 미치나 보구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러면 또 어떠냐. 요즘도 가끔 말이 튀어나오지만 그럴 땐 강아지를 붙잡고 이야기한다. 어리둥절해 하는 눈빛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철도길은 완전히 바뀌었고, 마포 오벨리스크 길 뒤도 예전에 비하면 뭔가 달라졌다. 조명은 예쁘장하고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벚꽃 만큼 흐드러진다는 말이 어울리는 것도 없다. 여전히 마포대교 북단에서 도로 건너는 곳은 어렵다. 강변 북로 진입하는 차들이 끊이질 않는다.
강을 건너다 고개들 들어보면 국회, 순복음교회, 옛날 SBS 건물, 여의도 공원, 쌍둥이 빌딩, 63빌딩. 이제는 그 사이에 AFC라는 큰 건물이 하나 늘어났다.
바람은 이제 차갑지 않다. 건널목에는 벚꽃 구경을 온 사람들이 잔뜩 신호등을 기다린다. 잡상인들은 참 여러가지를 가져다 판다. 서강대교 쪽으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여의나루 역으로 향한다. 담배를 피려다가 아, 끊을려고 안 샀지 하는 기억이 난다.
한강 둔치 광장에 술 마시는 할아버지들 근처에 잠깐 앉아 숨을 돌리는데 갑자기 울컥한다. 아, 역시 괜히 왔나 싶다. 답도 없는 걸 붙잡고 있느니 그 자리를 빨리 빠져나가는 게 낫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세상 모두가 변하는데, 나만 그냥 그 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다.
5km만 더 걸으면 300km다. 그건 저 신발로 채우고 싶다. 필요없는 고행으로 계속 산을 만든다. 인생은 그런 걸로도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렇게 그림자가 되어 간다. 모두의 빛을 더 환하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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