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0

노리코의 식탁을 보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영화적인 걸 좋아한다. 현실같지도 않고, 연극같지도 않은 그냥 영화. 내용에 젖어들거나, 영화의 상황에 감정을 대입하게 되는 기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차가운 이성을 보유하고 있거나, 익숙하다면 어떤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거리 두기에 능하진 못하다. 그래서 내러티브가 강한 드라마를 잘 못보고 약간 황당하거나, 아방가르드 영화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너무 쩌렁쩌렁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또 너무 현실감 넘치는 명 연기도 무섭다. 배우가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고 '이것은 영화다'라는 사실을 언제나 실감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게 느껴질 때 꽤 재미있어 한다. 이런 건 사실 연기 만으로 되는 건 아니고, 영화 자체와 호흡을 맞춰야 '이상하지 않게' 영화가 풀려나간다.

일본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편한 것도 이와 비슷한 점이 좀 있다. 한국 영화는 너무 가깝게 보인다. 아무리 판타지여도 주변에서 보일 법한 사람들이 나와 있으니,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듯한 기분 탓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경우가 생긴다.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는 가끔 또 너무 멀리 느껴진다. 일본 영화는 있을 법도 하고, 없을 법도 한 알맞은 거리감이 있다. 생긴 건 비슷한데 말은 다르다. 풍경은 비슷한데 디테일은 차이가 난다. '거리 두기'를 위해 노력을 많이 쏟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편안하다.

어쨋든 또 소노 시온의 영화.

나온 지 몇 년 된 거 같은 데 처음 봤다. 인터넷의 리뷰들이 대부분 '집단 자살'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건 조금 재미있다. 그건 사실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데.

어쨋든 이 영화는 꽤 흥미진진한데, 문제들을 그렇게 탁월하게 풀어갔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현대 사회인이 현대 사회를 마주 대하는 일이니 당연한 지도 모른다. 감독이 턱 막히는 부분에서는 영화에서도 턱 막히고, 그런 것들은 이미 현대 사회를 사는 당사자 중 하나인 나도 턱 막혔던 부분이다.

소노 시온 영화는 대개 옅은 판타지 풍의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중간에 감정 돋는 열연을 펼치는 사람이 불현듯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러브 익스포져에서는 정신 병원에서 요코(미츠시마 히카리)가, 차가운 열대어에서는 마지막 딸과의 대화에서 사모토(후키코시 미츠루)가 그랬다. 이번에는 마지막 밥상에서 유코(요시타카 유리코)다.

덜걱거리는 와중에 튀어나오는 이 '명연기'들을 나는 꽤 좋아한다. 그 앞의 감정선도, 그 뒤의 감정선도 희미하다. 배우는 천천히 집중하고, 천천히 추스렸겠지만 영화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오고, 갑자기 사라진다. 이게 뭐지? 하고 있는 동안 히카리는, 유리코는 소리를 질러대며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다. 이런 거 너무 좋다.

유카, 혹은 요코, 나중엔 이름이 없어지는 역의 요시타카 유리코(吉高由里子)는 1988년 도쿄 생으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다. 출연작 중에 '스네이크 앤 이어링' 이라는 아주 묘한 영화가 있다. 이거 꽤 재미있다. 그리고 2010년 '카멜리아'에서 설경구, 강동원, 송혜교 등과 같이 연기하기도 했는데 이건 못봤다. 간츠 시리즈에도 나왔고 최근에는 미노루 후루야의 '두더지'를 소노 시온이 영화화했는데 거기 나왔다. 주연 여배우는 니카이도 후미(二階堂ふみ)고 조연 정도로 나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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