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구람 라잔이 폴트 라인에서 말하는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당연하지만 원인을 하나의 줄기로 퉁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라는 걸 미리 말해둔다.
클린턴 정권의 저소득자 주택 마련 정책과, 부시 정권의 주택 보급률 확대 정책 수립.
-> 이를 위해 대출 확대
-> 시중에 돈이 늘어나면서 화폐 가치 하락 : 주택 가격 상승
-> 상승된 가격의 주택을 이용한 대출 확대
-> 반복
대충 이런 순서다.
몇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두 정권 모두에서 시민들에게 주택 보급률을 높이려는 정책을 추진했고, 그 방법으로 대출 확대가 선택되었다. 재분배 정책 중 세금을 가지고 정부가 뭘 해보려고 하는 건 의회 통과가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손쉽게 대출 완화 정책이 추진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대출 완화는 비용이 적게 드는 정책 수단으로 생각된다.
책에서 라구람이 드는 인도의 예가 있는데 인도는 선거가 다가오면 대출 금리가 떨어지고, 선거가 끝나면 과잉 대출로 인한 부도자가 속출한다고 한다. 여튼 저 위의 경과가 의미하는 바는 대출 완화 정책이 그냥 보이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대출 확대를 위한 정부 개입이다. 미 정부는 클린턴 정권에서는 저소득자 대출 규모를, 부시 정권에서는 전반적인 대출 규모를 정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잣대로 사용했다. 당연히 허들이 낮아졌고(프레디맥과 페니메이의 감사 기관인 HUD의 무기력화) 대출이 마구 늘어난다. 정부의 정책 의도가 명확함을 파악한 민간 금융 기관들도 곧바로 이 시장에 뛰어들어 규모는 더욱 커진다.
자, 그렇다면 만약 위의 결과를 피하는 클린턴-부시 정권의 주택 자가 소유 비율 확대 정책은 뭐가 있었을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건 세금의 확대, 저소득자를 위한 보급형 주택 건설이다. 하지만 이건 세금의 확대에서 조세 저항을 불러 올 수 있고(당선 자체가 불확실해진다), 주택 보급은 프리 라이더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애초에 대립된 의회 구조에서 이런 정책은 통과 자체가 어렵다. 왜냐하면 비용 부담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주택 보급 확대에 따른 기존 주택 보유자의 자산 가치 하락도 고려 대상이다. 그들은 세금도 부담하고, 자산 가치 하락도 부담해야 한다. 뭐 돈 그렇게 많은데 기분좋게 내놓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즐겁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다들 알고 있다.
임대 주택 보급도 고려할 수 있다. 매달 부담하는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적어도 완전한 무임 승차는 불가하다. 이것은 부시가 연설했다는 '아메리칸 드림'과는 조금 다를 지 몰라도(이건 책 참고) 어쨋든 저소득자의 안정에 기여한다. 하지만 이 정책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지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매우 작게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요건이 꽤 까다로운대도 경쟁률이 미어 터진다.
라구잔은 교육 확대를 통한 소득 격차 해소를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글쎄, 매우 나이브하다고나 할까. 궁극적으로는 옳을 수 있겠지만 4년 중임, 우리의 경우 5년 단임인 정부 제도에서 채택되기가 무척 어렵다. 30년 넘게 재임한 세종 대왕 정도면 가시적 효과를 보이며 마무리지을 수도 있겠다.
뭐든 추진도 어렵고 정책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애초에 후기 자본주의 현대 국가에서의 '자기 보유 주택 확대'의 꿈을 담은 정책은 포기되게 되어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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