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3

Planet Terror를 보다

Gridhouse에서 안 본 마지막 영화 Planet Terror를 봤다. 이 영화도 로드리게즈가 만들었고 퀀틴 타란티노는 중간에 질 낮은 악당으로 잠깐 나온다.

역시 뭔지 잘 모르고 봤는데 처음부터 낌새가 뭔가 공포물임이 분명하고 그러면 좀비 같은 게 나오겠구나 싶었는데(3류 영화에 나오는 악당은 좀비가 가장 적당하다) 역시나 등장했다.

이 영화는 막장이다. 마셰티와는 비교도 안되게 막장 3류 영화다. 구석 구석까지 엉망진창이고 말이 되는 구석도 없고, 말이 되도 납득할 구석은 없다. 어차피 그러자고 만든 영화이기는 하다.

 

어쨋든 보면서 생각나던 두 가지 이야기.

이런 영화도 그렇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도 그렇고 신무기나, 악당이 왜 생겨났는지나, 무슨 억울한 일이 있었는지나, 아니면 상대가 얼마나 강력한 지 등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걸 통해서 영화의 배경이나 앞으로 닥쳐올 위험의 정도 같은 걸 가늠하게 해 준다.

마셰티에서는 쉬(SHE)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고, 플래닛 테러에는 생화학 가스(DC-2던가?)가 왜 등장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거의 모든 액션 영화에 이런 부분들이 조금씩 껴 있다. 난 그런 장면들이 너무 재미있다. 내러티브 안에서의 그 생뚱맞음, 난데 없는 진지함, 경청하는 다른 배우들, 진중한 음악. 그 어색한 순간을 견딜 수가 없다.

 

 

또 하나. 이 영화는 Grindhouse라는 약간 더 큰 틀 안에 들어가있는 작품이다. Grindhous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휴식시간 없이 연속 상영하는 대중 극장, 심야 영화관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동시 상영관과 비슷한 느낌의 장소다.

그리고 퀀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라는 B급 무비를 표방하는 감독들답게 영화 내내 편집은 계속 튀고, 화면은 지글거리고, 내용은 말도 안되게 진행되고, 폭탄은 펑펑 터진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 가볍게 썼던 샤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http://macrostars.blogspot.com/2011/07/blog-post_20.html

이 샤넬 이야기는 '발상' 정도의 상태로 발전소에 올려놨는데 조금 더 가다듬어 패션붑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다. 거기서 사실 샤넬의 여권 신장형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옷과 가방은 귀족이나 상류 계층이나 살 수 있는 고급스러운 부티크와 이미지 그리고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고, 결국 이건 코스프레 정도의 행위다라는 투의 이야기를 했었다.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를 보자. 이들은 물론 1류 감독들이고, 캐스팅한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커트 러셀, 로버트 드니로, 브루스 윌리스, 제시카 알바, 니콜라스 케이지 등등등)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B급 무비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일부러 돈을 들여 노이즈를 삽입하고, 편집을 튀게 만든다. 필름이 모자라서, 편집실에 빛이 새들어서, 필름 관리를 잘 할 수가 없어서, 제작비가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결국 이들도 코스프레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진짜 옷들(예를 들어 몸빼는 그 분야에서 실로 완벽하다)이 동대문, 시장, 동네 어귀의 옷가게에서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샤넬은 그 이미지를 투영해(몸빼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고급품을 만든다.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는 삼류 영화관에 찾아오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같은 관객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B급 영화들의 이미지를 투영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샤넬의 경우와 비슷하게 이 둘의 영화는 그래도 식자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어쨋든 깐느 같은 곳에서 시사회가 열리고, 사이트 앤 사운드나 카이에 뒤 시네마, 프리미어의 기자들이 영화를 보고 코멘트를 남긴다. 남기남 감독이나 김인수 감독의 영화 개봉날하고는 풍경이 다르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트래비스가 아이리스와 첫 데이트때 포르노 극장에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은 너무나 의미심장해 지금도 그 의미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트래비스는 그 행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 지 전혀 모르는 삶을 살아온 선의의 행동이었고, 아이리스는 그 팩트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삶을 살아왔다.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영화를 재미있어 하고, 감동(까지는 아닐지라도)을 받고, 인상 깊게 간직하고 있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어쨋든 분명히 존재한다.

 

여튼 이 미묘한 관계에 대해 조금씩 더 생각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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