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0

샤넬에 대한 몇가지 시선

샤넬에 대해서는 굉장히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 덕분에 성장한 여자, 또 결국은 남자때문에 망한 여자, 탁월한 재능과 탁월한 감각.

우선 샤넬이 처음 데뷔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부유층을 위한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드레스가 유행이던 시기에 샤넬은 남자들 스포츠용 옷으로나 사용하던 저지를 이용한 드레스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코르셋도 없앴다. 샤넬은 저렴한 소재로 마음껏 활동하며 일하며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재들은 확대되었지만 트위드, 우븐 울 같은 역시나 드레스의 메인인 실크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거친 종류들이다.

치렁치렁해 불편하던 드레스를 무릎 선에서 잘라버린 것도, 손으로 꼭 쥐고 다닐 수 밖에 없었던 가방에 어깨 끈을 달아 손을 자유롭게 만든 것도 샤넬이다. 더불어 샤넬의 악세사리 라인은 플라스틱과 인조 진주가 상징처럼 드리워진다.

chanel_2_55

여자의 손을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최초의 끈 달린 가방, 2.55

이 모든 것들의 이유가 뭘까. 바로 여성이 일하는 데 불편하지 않고, 별 의미도 없는 허례에 찌들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옷이다. 그리고 여기에 유니크한 스타일을 더해 샤넬의 룩이 완성되었다.

이런 제품들은 당시 전쟁 끝무렵 여권 신장 운동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최고급품을 표방하고 있는 에르메스와는 세계관도 다르고 가는 길도 다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샤넬의 최초 샵은 그 유명한 깡봉 31이고 1910년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자샵으로 처음 시작했다. 얼마 전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모자는 귀족 부인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샤넬은 물론 이 분야에서도 심플함, 편안함, 편리함, 군더더기 없음을 밀고 나갔다. 그러든 저러든 주 고객은 파티에 나가는 여성들이다.

옷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이미지를 투사했든 그 옷들은 정말 일하러 나가는 오피스 레이디용이다. 그런게 존재하기나 했을까. Business Girl, B-Girl, 또는 BG라고 부르는 일하는 여성들은 2차 대전 때 남자가 다 전쟁에 가면서 일손이 딸리자 생겨났고, 전쟁이 끝나며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귀족 부인 포지셔닝에서 벗어나 30년대부터는 또 다른 상류층, 연예인들에 집중했다. 미국의 필름 프로듀셔은 사무엘 골드윈을 고용했고 그로부터 캐서린 햅번,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에게 샤넬의 옷을 입혔다(하지만 사실 이 시기가 그렇게 길지는 못했다).

 

어쨋든 샤넬이 말하는 일하기 편한 옷들은, 정작 일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는 옷이었다. 어깨에 쉽게 두를 수 있어 팔을 해방시키지만 관리가 무척 어려운 양가죽으로 된 2.55 역시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이건 일종의 코스프레다. 필드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자극을 만들었고, 그걸 투사해 그러한 보편적 정서와 동떨어져 있는 패션 세계를 추구하던 귀족층의 옷 취향을 환기시켰다.

 

또 하나 꼬이는 점은 샤넬 역시 일하는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여러 귀족, 군인, 관료들과 어울려 신분을 상징시키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장을 만들어냈지만 어쨋든 그는 (어떤 남편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을 했고, 일로 자아 실현을 이루어냈다.

결국 당시 계급 상황에 맞게 P(프롤레타리아)와 B(부르주아)로 이분화시켜본다면 P에서 B가 된 사람이 P의 이미지를 B에 투영시키는 고급 옷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 때에 비하면 귀족 - 평민 층의 경계는 많이 사라졌고 많은 여성들이 일터에서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서 월급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샤넬은 넘기 힘든 벽이다. 2.55의 경우 이번에 한-유럽 FTA의 영향으로 3%를 내렸는데 미디엄 사이즈가 620만원이다.

 

물론 이런 의미는 있다. 고려 청자는 적어도 금덩이 잔이 아니고 흙으로 만든, 어쨋든 깨지는 소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다 보편적인 제품이지만 어쨋든 12세기 전반에도 최고급품이었다. 지금도 최고급품이고 앞으로도 최고급품일 것이다.

절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도자기가 아니었다(과연 실사용을 하기는 했었는지 항상 궁금하다). 나중에 청자의 허례를 비판하며 등장한 백자도 역시 최고급품이었고 마찬가지로 아무나 사용하던 그릇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 청자같은 유니크한 고급 제품은 녹청자 같은 보급품의 발달한 결과로 등장한 것이고, 또 반대로 고려 청자라는 기술의 발전은 일반 자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덕분에 고려의 시민들은 품질이 훨씬 좋아진 분청사기 같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샤넬도 마찬가지다. 당시 일하는 여성, 그리고 그 당사자 중 한 명으로서 샤넬은 보급품 옷들을 개량, 발전시켜 고급품을 완성해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의 영향으로 일반적인 물품의 발전도 가능해졌다. 어쨋든 우리는 덕분에 무릎에서 끊기는 스커트나 그리고 어깨 끈이 달린 가방을 보고 있다. 뭐 이 정도는 샤넬의 가격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렇다.

 

또 하나 나치에 관련된 이야기도 쓰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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