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우리의 선조 정치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같은 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을 서로 적으로 만드는 것. 이건 아주 간단하고 치사하지만, 매우 효과적이다. 이건 일제시대에 나왔다.
제국 주의의 식민지를 유지시키려면 경찰 병력이 필요하다. 자, 말 잘듣는 몇 명을 뽑아 재물을 주고 권한을 준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로써 일제-조선의 대립 구도는 일제 추앙 세력 - 평범한 시민 - 독립군 체제로 전환되고, 그 이후는 서로 싸우고 서로 반목한다. 일제는 가끔 정말로 필요할 때만 나타나면 된다.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허물을 뒤에 둔 채 시민들을 공산주의자와 자본주의자로 분리시켰다. 당시에 시작된 반공 운동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보다 현실적이 되었고 보다 본격화되었다. 이건 매우 간단한 기술이다.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드는 자가 있으면 -> 혼란시키려는 목적이네 -> 공산주의자네 이러면 된다. 그러면 시민들이 알아서 분노하고 알아서 처단한다.
조사를 하거나, 진실을 알아보거나 이럴 겨를 따위는 없다. 이런 건 무슨 사건이 터졌을 때 인터넷 위에서 얼마나 빨리, 얼마나 거대하게 사람을 코너로 몰 수 있는 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 따위는 나라의 지도자에게나, 평범한 시민들에게나 전혀 필요가 없는 헌법 조항이다.
이때까지 북쪽이나 남쪽이나 정치의 목적이 오직 정권의 연장이었으므로 서로 궁짝도 잘 맞았다. 북쪽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고 남로당, 러시아파, 박헌영 파 같은 여러 분파들이 숙청당했다.
그 다음 정권에서는 공산당 드립에 지역 드립이 보다 효과적으로 합쳐졌고 이 구도는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이건 뭐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간첩이 있을 수도 있다. 적대하는 나라가 서로 마주 붙어있는데 없다면 안 보낸 쪽은 그냥 멍청한 거고, 국가를 유지할 자격이 없는 거다. 그리고 서로 잡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에는 감시와 견제의 눈이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굉장히 강력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견제가 없는 권력은 부패하든지, 안주하든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게된다. 우리 시민들의 권리 의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약한 것도 아마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지도층은 권력과 위계 질서를 당연히 요구하고, 시민들은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약자에 대한 성희롱, 얼마전 방통 위원인가의 대통령은 임금님 드립,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감히 나에게 드립, 죄는 저질렀지만 그동안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으니 드립 같은 것들이 그래서 끊임없이 생긴다.
시민 운동은 순수한 마음과 열정에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목표가 있어도 전략과 전술이 없으면 주도 면밀하고, 기민하고, 영리한 정치 권력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날아가고 만다.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난다느니, 밟을 수록 강해져 다시 일어난다느니 하지만 피해만 더 커지고, 시민들끼리의 괴리만 더 커질 뿐이다.
국회 의원들이 괜히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챙길 걸 챙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데 바보 짓 따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바보 짓 한다고 바보인 지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바람에 세상이 점점 이런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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