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4

일단은 쇼가야키

쇼가야키를 만들어 먹었다. 사실 요즘은 뭔가 먹고 싶다라는 구체적인 열망이 떠오르는 시간이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이고 그 외의 시간에는 안먹고 굶어 죽어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라는 기분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빵 두 쪽 구워 먹든가, 라면 먹든가, 밥에 김 싸 먹든가 정도의 의지만 부리고 있다.

그러다가 오늘 뭘 좀 만들어 볼까 하는 의지가 북받치는 중에 생강을 발견하고 쇼가야키로 방향을 잡았다.

엇비슷한 재료가 주어진다고 해도 쇼가야키를 만들 것인가, 돼지고기 생강구이를 만들 것인가, 그릴드 진저 포크를 만들 것인가라는 관념의 산물이 만든 애티튜드가 다른 결과물을 만들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은 재료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지향점을 낸다는 아이덴티티야 말로 일류 요리사의 증거겠지만, 나는 캐릭터는 커녕 대본을 따라가기 급급한(그것도 멋대로 해석하는) 루키일 뿐이고 이 상태로 익숙해지는 것 말고 더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는 별로 없는 상태이므로 전장 지배는 그저 멀리 있는 이상향일 뿐이다.

 

물론 몇 가지 생각할 것들은 좀 있다.

우선 타지의 요리라면 그곳의 사람들 입맛에 맞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그곳의 환경과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의 차이는 사실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국 입맛에 맞춘 일식 같은 건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걸 먹을 시간에 다른 한식을 찾는 게 낫다.

그렇지만 재료를 포섭해 새로이 만들어진 한식이라면 괜찮다. 돼지고기 생강구이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이런 태도는 물론 개인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던 그것도 옳을 것이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내가 쇼가야키를 만든다면 내 입맛보다는 일본인의 입맛을 우선해 생각하게 되는(매우 모호하게 형성된)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DB의 확층이 중요한데 사실 제대로 된 쇼가야키를 먹은 지 꽤 오랜 기간이 지나 있다. 그러므로 관념적 일식이라는 좀 더 모호한 벽에 기대게 된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이걸 숙독한다- http://www3.nhk.or.jp/nhkworld/cooking/korean/index.html

 

또 하나는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사 먹는 음식이 다르다는 거다. 사실 라면만 먹어봐도 차이가 좀 심하게 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모두 다 업장에 넘겨줄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센 불이 필요한 것, 오랫동안 조리해야 하는 것, 물의 양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는 것 들은 적어도 내게는 업장용 음식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집에서 만든 유린기가 닭도 신선하고 많이 들어있어서 더 맛있어 같은 말은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다. 그런 음식으로는 삼계탕, 곰탕, 설렁탕, 중국 음식, 스테이크 등등등.

물론 가끔 스펙을 뛰어 넘거나 근접하는 예외형 인간들이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다지'다. 예전에 라면을 집 가스렌지로 말도 안되게 맛있게 끓이는(집, 매장 통틀어 그 근접한 것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선배가 있었는데 그런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생강이 별로 없었고, 목살이 너무 두껍게 썰어져 있었다. 쇼가야키는 얇고 넓은 돼지고기에 생강이 스며들어서 달짝지근한 맛을 은근히 내야 하는데 애초에 틀려 있다. 결과적으로는 기꼬망을 좀 부었고 그래도 심심한 듯 해 바질을 넣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돼지고기 목살구이를 만들어야 할 재료로 그릴드 진저 포크와 쇼가야키 사이의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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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건 돼지고기 스테이크에 가깝다. 일본 음식은 (내 표현으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맛이 붕 떠 있는 애매함을 가지고 있는데(특히 관동 음식) 아직 그렇게 띄우질 못하겠다. 그 애매함을 사실 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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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를 우린 국물을 넣은 계란은 생긴 거는 저래도 괜찮았다. 계란말이 반찬과는 많이 다르다. 설탕을 넣으면 더 그렇게 되었겠지만 그렇게 단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쓰다 보니 곰탕이나 먹었으면 좋겠다. 곰탕 사줄 사람 손 들어 머리 위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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