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7

카게무샤를 보다

밤에 카게무샤를 봤다. 원래는 일렉트로 룩스를 보려고 했는데 10분 쯤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난데없이 이런 대작으로 바뀌었다. 사실 왕자와 공주, 리플리 같은 대놓고 속이는 영화를 잘 못보는 편이라(민망하고 불안하다..) 카게무샤는 많이 본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나카다이 다쓰야가 중간에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하는 부분은 좀 좋아한다.

란의 리허설 격으로 알려진 영화고 그래서인지 전투 장면도, 영화의 박력도, 카게뮤샤가 나중에 미쳐가는 부분도 란에 비해 어딘가 좀 더 소박하다. 란에서 나카다이 다쓰야가 맡았던 히데토라가 막판에 미쳐가는 부분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물론 이쪽의 미묘한 움직임을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러므로 란보다는 카게무샤라고 누군가 말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중간에 나오는 노 공연 장면도 이 쪽이 훨씬 멋지다. 줄거리만 어떻게 좀 됐으면 나도 카게무샤를 더 많이 보고 좋아했을 거 같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말은 불쌍하다. 아키라 감독은 저승에서 말들에게 혼이 좀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영화를 보다보니 꿈이 보고 싶어졌다. 꿈은 마지막으로 본 게 15년 쯤 지난 거 같은데 조난당했을 때 유령 몰려오는 장면이 아직도 머리를 떠돈다. 이 장면은 머리 속에 콱 박혀 있어서 훈련소에서 겨울에 야간 보초 설 때도, 눈이 가득한 사람 거의 없는 산을 등산할 때도, 밤 중에 국립 수목원 산 속 깊숙히 자리한 숲속의 집 앞에서 담배를 피며 하늘을 바라볼 때도 그 장면이 떠오른다.

비슷한 상황에 떠오르는 게 하나 더 있는데 시마다 마사히코 소설 중에 산 등산하는 장면이다. 소설 제목은 뭐였는지 잊어버렸다. 사실 이 두 장면 다 처음 보고 다시 찾지 않고 있는데 그래서 머리 속에 관념적으로 더 박혀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뭐든 머리 속에서 재 생산되는 게 더 인상적이고 더 집요하다.

업데이트하고 나면 사라질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꿈은 슬슬 다시 보고 싶다. 하지만 그건 디비디도 안 가지고 있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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