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2

일반론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다르다.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이익, 각자의 생각들이 점점 더 무르익고, 지식이 축적되고, 노하우를 전승하게 되면서 이런 다른 생각들은 공통 분모를 거의 찾을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어쨌든 세계의 흐름을 견주어보며 자신의 생각을 견고하게 한다.

물론 생각없이 편견과 아집으로 세상을 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인권은 있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형법상 불법(말을 안 듣는다고 때린다든가, 감금한다든가)만 아니면 괜찮다.

세계관이라는 것은 개인이 펼쳐놓은 장이다. 그걸 설득이나 논증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건 나이브하다. 이것은 마치 종교나 취향과 같다. 불교 신자가 설득으로 기독교 인을 개종시킬 수 있는가. 짜장면을 선호하는 사람이 짬뽕 선호자를 설득으로 돌려 놓을 수 있는가. 둘 다 쉽지 않은 일이고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세상에 필요한 것은 불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가 각자 사는 방법, 짜장면 선호자와 짬뽕 선호자가 각자 사는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가 있다. 즉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사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딜이다. 정치적인 문제에 토론이 존재하는 이유도, 논쟁이 존재하는 이유도 딜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다. 내가 여기는 양보 못하는데 그러니 저건 주겠다. 너도 그리해라. 물론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어서 누군가는 짜장면도 짬뽕도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걸 조절하는 게 일단은 현대 정치가 할 일이다.

내가 믿는 게 옳은 데 다 같이 망하면 어떻하냐고 라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게 옳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같이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회사와 나라가 다른 점은 회사는 일을 못하는 사람을 쫓아내야 하지만, 나라는 무능력한 사람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거다.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필 여기서 태어났지만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다. 콩고에서 태어나 10살에 민병대에 끌려가 폭탄을 짊어지고 사는 경우도 있고, 뉴욕에서 재산이 1조 쯤 있는 사람 애로 태어나 10살에 보유 재산이 1000억 쯤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간극에 대한 건 한 나라의 컨센서스가 아니라 전 세계의 컨센서스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물론 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라면 그렇지 않다. 마그나카르타가 1689년이고, 미국 권리 장전이 1789년이다. 뭐든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있다. 이건 적어도 300년 씩은 걸리는 일이고 그걸 30년에 해냈어!라고 좋아해 봐야 별 볼일 없다. 제도가 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채 이식만 한다고 그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남들은 무식해서 300년 씩 걸렸던 게 아니다.

여하튼 자신의 권리 수호를 위해서는 남의 권리도 수호해 줘야 한다. 지금 맞서 싸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배제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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