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3

또 어제, 아니 오늘 새벽

1. 저번에 말했던 1차 대전 책을 계속 읽고 있다. 대충 이 책의 글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참호와 추위(혹은 더위), 진흙, 수렁, 습기, 쥐, 시체, 파리, 이, 기관총, 냄새, 졸림(과 피곤함)이 아주 아주 많고, 서로 얽힘 정도로 요약된다.

생각해보면 파리와 쥐가 살지 못할 정도로 극한 환경이 아니면(그런 곳은 사람도 더 살기 어렵겠지만) 보병 전투가 벌어지는 대부분의 지역이 이 지경일 것이다.

 

2. 이렇게 지저분하게 극한 지역 이야기도 있지만 또 다른 것으로 겨울의 산행 같은 게 있다. 어제 트위터에서 미시령 이야기를 잠깐 하면서 생각났다. 이 역시 매우 짜증나는데 온 고생해서 들어갈 땐 짜증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면 지나치게 멋지다. 눈이 가득 쌓여있고 한치 앞이 안보이다가 저녁이 들어 개기 시작하고 가리왕산이나 용대, 추전역이나 승부역 같은 곳에서 밤 하늘을 쳐다보면 보이는 내리 쏟아질 듯한 별들이나, 그 하얗고 차가운 공기 같은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좋다. 당장 가지도 못하는 데 어제 그런 생각을 좀 하다가 보니 짜증이 났다.

 

3. 앱스토어에 드디어 구글 맵이 올라왔다. 저번에도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애플 내장 맵에 딱히 큰 반감은 없다. 예전 노키아 맵은 아예 검색 자체가 안 됐는데(...ㅜㅜ) 애플 맵은 은근히 POI(Point Of Interest)가 많이 들어있어서 지도로는 안 보여도 검색하면 나오는 게 많다. 대중 교통 검색이 문제인데 그런 건 애초에 버스는 서울시에서 내놓은 버스앱과 지하철 앱을 사용하고 있다.

여하튼 지도에 스트리트 뷰나, 3D나, 지나치게 자세한 것들이 들어가는 현상을 그다지 반기지는 않는다. 데스크탑으로 볼 때는 심심풀이도 되니까 좋은 데 스마트폰으로 볼 때 아, 이 정교함을 보라 하며 뿌듯해 할 목적이 아니라면(그런 걸로 뿌듯해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그렇게까지 현실을 그대로 집어넣은 지도가 있어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

강원도 인제나 횡성 어디 산간에서 막 눈이 오기 시작하는 거 같으니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어디 큰 도시로 빠져나가야 할 위기를 살짝 느낄 때 빨리 뜨고, 검색할 때 버벅거리지 않고, 눈으로 보기에 엉망으로 왜곡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포인트를 정확히 찍어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도다. 즉 가는 길 사이에 있는 터닝 포인트를 잘 알려주는 게, 지금 바로 옆에 보이는 나무나 건물이 이 지도에 들어가 있나하는 자기 완성적 욕구보다 훨씬 중요하다. 지금 이 자리가 어딘지 시각적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모든 배치되어 있는 사물들이 지도에 들어가야만 해~ 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독도법 방법 강좌를 지도에 같이 넣어주는 게 더 낫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을 함. 일단 전혀 쓰잘 데 없는 기능들로 덧칠되어 있어 느려지는 게 짜증날 뿐이다.

 

4. 혼자 다니니까 민감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 중에, 저번에도 말한 적 있지만, 여러 칸이 비어있는 공공 화장실에서 굳이 옆 칸에 들어오는 자, 식당에서 건너편 테이블 마주하는 자리에 앉는 자, 텅 비어있는 6호선 지하철에서 굳이 옆자리에 앉는 자 뭐 이런 사람들이 아주 싫다.

만약에 목적이 있다면(남의 배변 소리를 듣거나 들려주고 싶어하는 변태 뭐 이런 것들일테니) 싫고, 목적이 없이 무심한 거라면 그 무심함이 싫다. 그런 무심함은 싫음을 넘어서 사실 좀 무섭다. 개인적으로는 저런 상태라면 정신에 약간은 문제가 있을 거라 가정을 하고, 혹시나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르니 기회가 된다면 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죽어도 그런 놈들 칼에 찔려 죽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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