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4

우중충한 오후

특별 등기라는 걸 기다리다가 집에서 점심이 지나갔다. 특별 등기. 이름이 참 거창하다.

배가 고팠는데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 어제 강아지 밥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웅이도 하루를 굶었다. 어제 밤에 닭고기로 만든 간식 세개랑 개껌을 하나 줬었다. 줬다가 다시 가져오려고 붙잡으면 안 뺏길려고 발악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슬퍼진다. 설마 내가 니 밥을 뺏어 먹겠냐...

어쨋든 둘 다 굶은 채 가만히 앉아있다. 만사가 귀찮아 세수도 하지 않고 있다가 커피를 끓여 마셨다. 새로 구입한 전기 주전자는 용량도 커지고, 손잡이 부분도 좋아졌는데 못 생겼다. 머리만 큰 고려시대 돌 불상을 보는 거 같다. 그래도 물은 잘 끓여진다. 이것 저것 투덜거릴 때가 아니다.

그리고 또 가만히 앉아있다. 아이폰으로 TV나 볼까 싶어 틀었다가 이내 꺼버렸다. 시끄럽다. 바람소리가 창문을 친다. 차라리 그걸 듣고 있는 게 낫다. 그러다가 우당탕 우당탕하는 소리를 듣는다. 방 옆 베란다에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는 데 그 위는 양철 지붕이다. 아무래도 거기에 까치가 집을 튼거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했지만, 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라면이 하나 있길래 끓여먹었다. 온 집안이 구석구석 지저분하다. 웅이가 들어온 이후 그런 경향은 더욱 가속되고 있다. 매번 그거 하나는 열심히 닦아내는 데 강아지 오줌 냄새가 여전히 나는 거 같다.

요즘은 후각이 민감하다. 길바닥에서 지나가버린 고양이 흔적도 찾아낸다(이건 약간 과장이고 아파트 화단 옆 같은 곳을 지나면 고양이 오줌 냄새가 난다).

딩동 딩동하는 신경질 적인 소리가 들리고, 등기가 온다. 등기가 두 개다. 둘 다 별 볼일 없는 거지만, 그렇다고 별 볼일 없는 것 때문에 우체국 아저씨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고, 우체국에 찾으러 가는 것도 힘들다. 받는 게 별 볼일 없음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벌써 3시. 이제 어떻게 하나 생각하다가 역시 집을 나가기로 한다. 집에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담배만 피게 된다. 밖에 나가면 그나마 입맛이 생긴다.

여전히 춥다. 바람은 좀 가셨지만 그렇다고 추위가 사라진 건 아니다. 큰 벽에 둘러쌓여있고 유니콘이 뛰어다녔다든가 하던 무라카미의 소설이 생각난다. 저기 어디에 벽이 있을 거 같다. 그러고보니 조깅을 한 지 꽤 오래되었다.

겨울이라는 건 너무 춥다. 찬 바람이 불면 가슴이 아프고 구역질이 난다. 이제 곳 방 온도는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15도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어제 뉴스에 보니 겨울철 실내 권장 온도는 23도, 차상위 계층 겨울철 집안 평균 온도는 15도, 그 중 30%는 13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통계 따위 정권의 속임수일 뿐이라 하며 안 믿는 편인데 이걸 보니 왠지 잘 못 생각하고 있던게 아닌가 싶다. 매우 적합하다.

아이팟을 랜덤으로 돌리고 있는데 스퀘어푸셔가 나온다. 갑자기 짜증이 난다. 햄버거를 먹을까 생각을 했다. 아니다, 밥이나 먹자. 요즘 밤 11시에 GS25에서 파는 김탁구 빵을 사먹는 버릇이 붙었다. 김탁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게, 은근히 맛있다. 800원.

해가 졌다. 가만히 서서 보니 왼쪽 하늘에 하나, 오른쪽 하늘에 하나 뭔가가 반짝반짝 빛난다. 인공위성인가? 그런데 인공위성은 왜 빛나는 거지? 하늘 빛이 정말 예쁘다. 아이폰 카메라 따위로는 담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해가 지는 하늘만 보면 녹색 광선을 찾게 된다. 인상이라는 건 정말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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