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5
기차
사진은 누비라라는 무궁화호 수준 정도되는 전기 열차다. 대전 근처까지 다니는 거 같다. 타본 적은 없다. 이렇게 보니 이것도 소위 충룩(蟲look)이다.
기차라는 걸 참 좋아한다. 기차도 좋고, 기차역도 좋고, 기차길도 좋다. 그닥 매니아는 아니어서 딱 보고 몇 호 열차고 특징은 뭐고 하는 건 전혀 모르고, 그저 보고 타는 걸 좋아할 뿐이다.
가끔 국내 여행을 다닐 때 외진 곳에 있는 기차역을 가보기도 한다. 승부역, 부전역, 나전역, 구절리역 등등등. 내가 가본 역 중에 이미 사라진 곳도 많다. 아쉽다.
대학 때 여행 삼아서 비둘기호로 부산을 간 적이 있다. 하여간 징그럽게 오래 걸린다. 그래도 그때는 맨 뒷 칸 문이 열려있어서 거기 메달려 담배도 피고, 졸기도 하고, 터널 지나갈 때 소리도 지르고 했었다. 도착하고 났더니 얼굴에 까맣게 먼지가 달라붙어 있었다. 여튼 그건 좀 못할 짓이다. 이 열차편은 아니지만 기차를 좀 오래 타보고 싶다면 지금도 도전해 볼 만한 코스는 있다.
청량리역에서 부전역까지 가는 무궁화호 기차가 아침하고 밤, 하루에 두 번 있다. 이 열차 코스는 흥미진진하다. 청량리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향해 원주, 제천을 거친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희방사를 지나 영주, 안동으로 내려온다. 여기서 동쪽으로 빠지며 경주와 불국사 역을 지나고 동쪽 해안 라인을 따라 월내, 좌천, 기장을 거쳐 부산 시내로 진입한다. 그리고 해운대와 동래를 거쳐 부전역에 도착한다. 이렇게 8시간이 걸린다. 이 열차는 3만원이다.
기차 정도는 아니지만 지하철도 좋다. 기차라는 게 하나같이 특유의 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경향이 있지만 뭐 사실 시내 버스에서 나는 냄새보다는 낫지 싶다.
또한 서울역 2층에서 3층 사이에 있는 긴 계단에 앉아 멍하니 아이폰 같은 걸 보면서 들리는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안내 소리와, 멀리서 라이트를 빛내며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 계단 진동이 굉장해서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아프다.
여튼 기차는 특유의 안정감이 있다. 일단 레일 덕분에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가져다 주는 안정감이 굉장하다. 그래서 버스를 타도, 승용차를 타도 뭔가 불안하다. 좌우 뿐만 아니라 위 아래로도 흔들리는 비행기나 배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비행기라는 건 그 쇳덩어리가 뜬 다는 게 아직도 그닥 믿기지는 않는 운송 수단이다.
이런 경향은 약간 철이 없는 면도 있어서,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 끝나고 밤에 자대로 떠나는 기차를 타는데 그것도 약간 설레었다. 살면서 타본 유일한 공짜 기차다. 더플백을 메고 줄을 쭉 서서 멀리서 들어오는 기차를 보면서, 우왕 기차를 타네~ 속으로 생각했다.
아쉽게 나는 논산 연무대 역에서 서대전 역까지만 간 다음에 거기서 내렸다. 생각해 보니까 입대할 때도 혼자 입석표 끊어서 기차로 갔다. 두껍고 촌티나는 나일론 오리털 잠바를 입고 논산 훈련소로 털레털레 들어갔었지.
그렇지만 기차는 버스에 비하면 꽤 비싼 편이고, 시간 맞추기도 어려워서 잘은 못탄다. 그래도 동해선 어딘가 쯤 열차길 근처에 앉아있다가 털털털 거리며 지나가는 걸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소박하지만 하나같이 적어도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점에서 내 꿈은 이루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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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삭제@독자님 / 성북부터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 군요. 그 기차 막 전방으로 올라기지 않나요? 자대 가는 길 참 두근두근거리죠. 저는 당시 새벽에 도착해 봉고같은 거 타고 밤길을 막 달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시간이 그리 지났는데 잊혀지지가 않네요 ㅎㅎ
답글삭제그게 뭔가 무작위로 달라진다고 하더군요. 더 위까지 올라간다는 사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데 자세한 로직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연말에 추운 트럭 뒤에 앉아 택배처럼 실려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고 보면 군대처럼 전국민적인 화제도 없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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