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기 전에는 금전 문제로 마음 앓이를 하고, 주말이 되고 나서는 또 다른 문제로 마음 앓이를 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밖으로 나갔다. 입맛도 전혀 없어 궁싯거리며 졸았지만, 알량한 내 위는 해가 질 때가 되자 배가 고프다는 동물적 신호를 계속 보냈다.
화장실이 급할 때, 배가 너무 고플 때, 내 동물적 본능에 또 다시 절망하고 운명을 탓한다. 이럴 때 마다 예전에 장나라가 스토커로 나오는 한국 영화의 장면, 헤어져서 슬퍼 죽겠는데 배가 고파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여튼 잠깐 뭔가를 먹었지만 배고픔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이성과 감정이 고개를 든다.
오래간 만에 좀 걸어다닐까 싶어 광흥창으로 갔다. 서강 대교와 마포 대교. 한 때 열심히 걸으며 건너던 다리들. 바람이 많이 불었고, 싸구려 츄리닝 바지 때문에 발목이 계속 시렸다. 하지만 두 치수 큰 거대한 패딩 조끼는 생긴 거의 한심함과는 다르게 충실히 역할을 수행했고, 등에서 땀이 흘렀다. 밑창이 뜯겨진 운동화 바닥으로 잔 돌이 자꾸 들어왔다. 한강 대교 인도에 왠 잔돌이 그리 많은지.
한창 공사중이었던 여의도 공원 건너편의 거대한 건물은 공사가 끝났는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쌍둥이 빌딩, 신한 은행, 여의도 공원, 순복음 교회, 국회 의사당. 그리고 건너편에서 지나치게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낯 익은 풍경.
하지만 눈이 아프다. 앞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보이는 몸집이 큰 남자가 담배를 피면서 다가온다. 약간 무섭지만 그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두 치수 큰 국방색 패딩 조끼에 발목이 짧은 회색 츄리닝 바지를 입은 남자가 다가오는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보였을 지 잠깐 궁금하다.
타블로의 열꽃은 한강 대교를 밤에 건널 때, 그 조용함과, 그 어두움에 너무 잘 어울린다. 목적에 적합한 음악 리스트가 있는 건 기쁜 일이다. 바람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들리고, 시커먼 강물이 천천히 흐르는 모습이 보이고, 자동차들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동안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요새 밤에 한 편씩 보는 디스커버리의 다큐멘터리 Man vs Wild에서 베어 그릴스가 캐나다 북쪽 빙하 구역에서 산 아래를 보며 냉혹하지만 아름답다며 감탄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곳은 대체 얼마나 멋질까. 그런 곳이라면 북극곰에게 잡혀 먹어도 행복할 거 같다.
여의나루 역 앞에서 왜인지 집에 있길래 들고 나온 초코 파이를 먹는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쿠폰이 하나 있는데 갈까 말까 잠깐 고민한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지하철을 탄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간다면 한 번도 써보지 않았지만 이태리 타월이라는 걸 사들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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